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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반도인의 일본 이주 고대사를 기행하다
‘해밑섬’이라함은 일본의 일(日)은 우리말 ‘해’이며 본(本)은 우리말 ‘밑’을 뜻하는 현재의 일본 열도를 뜻한다. 이 책은 기 원전 3세기경부터 시작하여 기원후 7세기까지의 약 1000년에 걸쳐 펼쳐졌던 한반도인들의 일본열도로의 장대한 이주의 자취를 찾아가는 역사기행이다. 저자는 도쿄에 살고 있던 어느날 도쿄평야에 남아있는 고구려 이주민들의 역사를 알게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저자가 그때까지 알지 못했고 배운 적도 없는 새로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곳까지 왔을까를 궁리하던 중 재일 역사가 김달수씨의 한반도 도래인에 관한 연구를 접하게 된다. 그의 책에는 고구려인 뿐만 아니라 도쿄평야의 북쪽에 남아있는 신라인과 가야인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도 있었다.
도쿄평야에 남겨진 한반도 이주 집단의 역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겹겹이 쌓여온 지층과 같은 한반도 이주민들의 역사를 알게되고 그들이 도쿄평야를 개척한 주역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던 일본열도의 본토인이라는 일본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또한 이 고대의 한반도 이주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중세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보기 시작한다. 저자는 도쿄 지방을 시작으로 역사기행의 범위를 넓혀가며 한반도 선조들의 고대 이주의 역사가 남아있는 일본열도 내의 여러 현장을 방문하기 시작한다. 역사기행의 범위는 도쿄평야에서 일본열도의 본섬인 혼슈의 북쪽 해안으로 이어지고 세토내해 양안, 교토 주변, 오사카 남쪽의 가와치, 나라와 아스카 그리고 규슈 전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이주민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일본열도 전지역에 걸쳤다.
저자는 기행과 더불어 한일고대사에 관한 기존의 모든 역사 가설들을 폭넓게 살펴보고 이 가설들 사이에 공통적인 부분을 발견한다. 확실한 것은 기원전부터 시작된 한반도로부터 일본열도로의 초기 이주, 이주의 주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기원후 3~4세기에 일어난 강력한 한반도 세력의 일본열도 진출과 이를 전후한 집단 이주, 그리고 5~6세기에 나타난 백제계 세력의 일본열도에 대한 영향력 증대 등이다. 저자는 귀국 후 우리 고대국가들의 초기역사를 살펴보며 국내의 답사활동을 계속하였다. 일본열도에서 보고 알게된 것들과 우리 고대사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역사기행의 기록과 한일고대사의 가설들을 3편의 책으로 정리하였고 이 책은 그 첫번째 편이다.
‘해밑섬’이라함은 일본의 일(日)은 우리말 ‘해’이며 본(本)은 우리말 ‘밑’을 뜻하는 현재의 일본 열도를 뜻한다. 이 책은 기 원전 3세기경부터 시작하여 기원후 7세기까지의 약 1000년에 걸쳐 펼쳐졌던 한반도인들의 일본열도로의 장대한 이주의 자취를 찾아가는 역사기행이다. 저자는 도쿄에 살고 있던 어느날 도쿄평야에 남아있는 고구려 이주민들의 역사를 알게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저자가 그때까지 알지 못했고 배운 적도 없는 새로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곳까지 왔을까를 궁리하던 중 재일 역사가 김달수씨의 한반도 도래인에 관한 연구를 접하게 된다. 그의 책에는 고구려인 뿐만 아니라 도쿄평야의 북쪽에 남아있는 신라인과 가야인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도 있었다.
도쿄평야에 남겨진 한반도 이주 집단의 역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시간을 두고 겹겹이 쌓여온 지층과 같은 한반도 이주민들의 역사를 알게되고 그들이 도쿄평야를 개척한 주역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던 일본열도의 본토인이라는 일본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또한 이 고대의 한반도 이주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중세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보기 시작한다. 저자는 도쿄 지방을 시작으로 역사기행의 범위를 넓혀가며 한반도 선조들의 고대 이주의 역사가 남아있는 일본열도 내의 여러 현장을 방문하기 시작한다. 역사기행의 범위는 도쿄평야에서 일본열도의 본섬인 혼슈의 북쪽 해안으로 이어지고 세토내해 양안, 교토 주변, 오사카 남쪽의 가와치, 나라와 아스카 그리고 규슈 전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이주민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일본열도 전지역에 걸쳤다.
저자는 기행과 더불어 한일고대사에 관한 기존의 모든 역사 가설들을 폭넓게 살펴보고 이 가설들 사이에 공통적인 부분을 발견한다. 확실한 것은 기원전부터 시작된 한반도로부터 일본열도로의 초기 이주, 이주의 주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기원후 3~4세기에 일어난 강력한 한반도 세력의 일본열도 진출과 이를 전후한 집단 이주, 그리고 5~6세기에 나타난 백제계 세력의 일본열도에 대한 영향력 증대 등이다. 저자는 귀국 후 우리 고대국가들의 초기역사를 살펴보며 국내의 답사활동을 계속하였다. 일본열도에서 보고 알게된 것들과 우리 고대사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역사기행의 기록과 한일고대사의 가설들을 3편의 책으로 정리하였고 이 책은 그 첫번째 편이다.
목차
서론 11
제1부 도쿄와 일본 19
I. 도쿄 (Tokyo, 東京, トウキョウ) 23
1. 긴자(銀座) 30
2. 마루노우찌(丸の?) 32
3. 신바시(新橋) 38
4. 메이지징구(明治神宮, 명치신궁) 47
II. 일본의 문화와 풍습 52
1. 일지신사(日枝神社, 히에진자) 52
2. 마쓰리(祭り) 54
3. 일본의 3대 마쓰리(祭り) 63
4. 카메이도신사의 천신(天神) 73
5. 일본의 신과 신사(神社) 79
6. 하치오지 와 우두천황(牛頭天皇, 소머리천황, 소시머리천왕) 95
7. 고쿠분지(?分寺) 백제 와당 103
8. 다카오산의 텐구(天狗) 110
9. 부동존(不動存)과 일본의 불교 122
10. 일본민가원(日本民家園) 130
11. 기모노(着物) (和服) 137
12. 일본어의 뿌리 145
제2부 도쿄평야의 고대사 155
III. 도쿄평야에서 우리민족의 고대사를 만나다 159
1. 사이타마의 고려신사(高麗神社) 159
2. 오이소의 고려신사(高?神社) 171
3. 하코네와 고구려(高麗) 179
4. 사무카와신사(寒川神社)와 도래인 186
5. 고마에 고분군, 조후(調布) 199
6. 심대사(深大寺)의 복만이 이야기 207
7. 김달수선생과 『일본 속의 조선문화 (日本の中の朝鮮文化)』 213
8. 치치부(秩父) 228
9. 교다(行田) 사키다마 고분군 239
10. 아키루노시의 세토오카 적석총(積石塚) 251
11. 도래인의 땅, 군마(群馬) 257
12. 기류시(桐生市)의 도래인 유적 271
13. 아카기산(赤城山, 적성산)과 일본의 신사 281
14. 군마, 마에바시(前橋)의 고분들 296
15. 사이타마의 신라군(新羅郡) 309
16. 군마의 지명 319
제3부 이주와 변천사 323
IV. 도쿄평야에 정착한 한반도 도래인들의 이주 루트 327
1. 야마나시 루트 328
2. 가루이자와(?井?) 루트 339
3. 남해안 루트 357
4. 도쿄평야의 남부 해안 378
V. 관동지방에 이주하여 이 지역을 개척한 도래인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387
1. 가마쿠라(鎌倉) 399
2. 미우라(三浦) 반도 412
3. 가마쿠라 선종(禪宗) 불교 416
4. 누마쓰(沼津) 「왓쇼이」 425
제4부 혼슈 북쪽의 도래인 429
VI-Ⅰ. 혼슈 북쪽 해안의 도래인(동쪽) 433
1. 나가노(長野, 信濃, 옛 지명은 시나노) 433
2. 가미코치(上高地) 453
3. 아즈미노(安曇野) 464
4. 조에쓰(上越) 474
5. 니이가타(新潟) 484
6. 아키타(秋田) 491
7. 아오모리(?森) 499
8. 삿포로 509
VI-Ⅱ. 혼슈 북쪽 해안의 도래인(서쪽) 520
1. 노토반도(能登半島) 520
2. 후쿠이-쓰루가-미야즈(宮津) 529
3. 미야즈(宮津) 533
4. 이즈모대사(出雲大社) 542
5. 오오쿠니에 관한 신화 549
6. 이즈모(出雲)의 가야 555
에필로그 563
참고서적 568
제1부 도쿄와 일본 19
I. 도쿄 (Tokyo, 東京, トウキョウ) 23
1. 긴자(銀座) 30
2. 마루노우찌(丸の?) 32
3. 신바시(新橋) 38
4. 메이지징구(明治神宮, 명치신궁) 47
II. 일본의 문화와 풍습 52
1. 일지신사(日枝神社, 히에진자) 52
2. 마쓰리(祭り) 54
3. 일본의 3대 마쓰리(祭り) 63
4. 카메이도신사의 천신(天神) 73
5. 일본의 신과 신사(神社) 79
6. 하치오지 와 우두천황(牛頭天皇, 소머리천황, 소시머리천왕) 95
7. 고쿠분지(?分寺) 백제 와당 103
8. 다카오산의 텐구(天狗) 110
9. 부동존(不動存)과 일본의 불교 122
10. 일본민가원(日本民家園) 130
11. 기모노(着物) (和服) 137
12. 일본어의 뿌리 145
제2부 도쿄평야의 고대사 155
III. 도쿄평야에서 우리민족의 고대사를 만나다 159
1. 사이타마의 고려신사(高麗神社) 159
2. 오이소의 고려신사(高?神社) 171
3. 하코네와 고구려(高麗) 179
4. 사무카와신사(寒川神社)와 도래인 186
5. 고마에 고분군, 조후(調布) 199
6. 심대사(深大寺)의 복만이 이야기 207
7. 김달수선생과 『일본 속의 조선문화 (日本の中の朝鮮文化)』 213
8. 치치부(秩父) 228
9. 교다(行田) 사키다마 고분군 239
10. 아키루노시의 세토오카 적석총(積石塚) 251
11. 도래인의 땅, 군마(群馬) 257
12. 기류시(桐生市)의 도래인 유적 271
13. 아카기산(赤城山, 적성산)과 일본의 신사 281
14. 군마, 마에바시(前橋)의 고분들 296
15. 사이타마의 신라군(新羅郡) 309
16. 군마의 지명 319
제3부 이주와 변천사 323
IV. 도쿄평야에 정착한 한반도 도래인들의 이주 루트 327
1. 야마나시 루트 328
2. 가루이자와(?井?) 루트 339
3. 남해안 루트 357
4. 도쿄평야의 남부 해안 378
V. 관동지방에 이주하여 이 지역을 개척한 도래인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387
1. 가마쿠라(鎌倉) 399
2. 미우라(三浦) 반도 412
3. 가마쿠라 선종(禪宗) 불교 416
4. 누마쓰(沼津) 「왓쇼이」 425
제4부 혼슈 북쪽의 도래인 429
VI-Ⅰ. 혼슈 북쪽 해안의 도래인(동쪽) 433
1. 나가노(長野, 信濃, 옛 지명은 시나노) 433
2. 가미코치(上高地) 453
3. 아즈미노(安曇野) 464
4. 조에쓰(上越) 474
5. 니이가타(新潟) 484
6. 아키타(秋田) 491
7. 아오모리(?森) 499
8. 삿포로 509
VI-Ⅱ. 혼슈 북쪽 해안의 도래인(서쪽) 520
1. 노토반도(能登半島) 520
2. 후쿠이-쓰루가-미야즈(宮津) 529
3. 미야즈(宮津) 533
4. 이즈모대사(出雲大社) 542
5. 오오쿠니에 관한 신화 549
6. 이즈모(出雲)의 가야 555
에필로그 563
참고서적 568
책 속으로
‘해밑섬’이라함은 짐작하시다시피 현재의 일본 열도다. 일본의 일(日)은 우리말 ‘해’이며 본(本)은 우리말 ‘밑’을 뜻하는데 일본 열도로 건너가 일본식으로 ‘밑’은 단음으로 발음하지 않고 ‘모토’라고 두 음절로 발음한다. 독자분이 일본에서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아시모토에 주의하라는 안내방송을 들은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시모토(足元)란 ‘발밑’을 말한다. 한자는 달라도 다 ‘밑’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한반도에서 보았을 때 바다 건너 해뜨는 곳, 뜨는 해 아래에 있는 섬인 해밑섬. 즉, 한 때 한반도에 살았던 선조들에게 뉴 프론티어였던 해밑섬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다.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에 시작하여 7세기에 끝나는 약 천 년간에 걸친다. 우리 선조들이 해밑섬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생활기반을 구축하며 벌어졌던 이야기의 현장을 답사하고 고증을 찾아 확인하며 10년간에 걸쳐서 쓴 이야기다.
이 책은 도쿄지역에서 시작하여 나라와 아스카를 거쳐 규슈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는 일본의 고대사를 살펴보는 3권의 역사기행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이 역사기행에서 역사의 주체는 일본인이 아니라 한반도로부터 이주)도래)하여 일본 고대사의 중심에서 활약한 우리의 선조들이다.
한반도 이주민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열도의 서쪽인 규슈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또 일부는 규슈를 거쳐 또는 직접 일본 열도의 북쪽 해안선을 따라 쓰루가, 이즈미, 나가노로 나아갔고 또 다른 일파는 시모노세키 해협을 통과하여 세토내해로 나가 해안선을 따라 기비, 시코쿠, 가와치, 아스카로 들어갔다. 이 중 아스카지역은 일본 열도의 중심지역으로서 후대에 고대사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우리 동해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서 혼슈 북쪽 해안으로 직접 이동한 흔적도 있다. 노토반도와 나가노 및 니이가타 방면의 고대사가 그러하다.
쓰루가, 이즈미 등 혼슈의 북쪽 해안에 자리잡았던 이주민 집단은 자발적으로 남쪽의 산맥을 넘고 비와코(琵琶湖() 호숫가를 따라 아스카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하였고 다른 집단은 후진 세력에 밀려나 나가노지역으로 또 더 멀리 관동평야(도쿄평야)까지 이동했다. 아스카에 정착한 세력의 일부 역시 혼슈 남쪽의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서 도쿄 서남쪽의 치바반도를 통해 관동평야로 이동했다. 일본 열도 내의 제2차 이동이다. 이러한 일련의 도미노적인 인구 이동은 한반도로부터 일본 열도로 순차적인 인구 이동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 원동력이 한반도에서 자리잡고 있던 민족에게서 나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시대적으로 보면 규슈와 이즈모로 제일 먼저 진출했고 다음은 아스카, 나라이며 관동지역은 고대사의 마지막 이동지역에 해당될 것이다. 즉 관동지방은 이주민의 이동 지역 중 제일 마지막 영역으로 개척자의 영역 또는 승자의 영역이 아니라 루저(Loser)의 영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서쪽에서 온 강력한 후진 세력들에 의해 쫓겨서 밀려난 곳이다. 또한 이 지역은 이주민들의 동진에 따라 밀려온 일본 열도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의 지역이기도 하였다. 이주민 중에 쫓겨온 사람들과 미리 쫓겨난 원주민들이 공존하거나 갈등하던 지역인 관동평야에서 필자의 고대사 기행은 시작되었다.
역사를 시대순으로 따르자면 규슈, 아스카-나라 그리고 관동지방의 역사를 더듬어 보아야 하는데 필자는 도쿄에서 일본 생활을 시작한 연유로 일본 고대사에 대한 경험을 역사의 발전방향과 반대로 접하면서 시작하였다. 따라서 필자의 역사 기행은 수많은 물음표로 시작되었다.
역사 연구에는 여러 가지 원칙이 있다. 근대 일본과 193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관은 실증사관이다. 기록과 유적, 유물을 통한 직접적인 증거를 기본으로 하는 역사 연구 방법이다. 문헌이 중시되고 유물이 중시되는 사관이다. 보편성을 띤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실증사관은 그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즉 사료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기록과 유물이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그 해석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사료의 훼손과 조작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까지 어렵게 발견된 사료의 해석에 관해 이견이 없었던 적이 없다.
필자의 경우는 전문적인 역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 민속적, 언어적, 경제적 증거들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낭만주의 사관’을 선호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일본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고대사 부분에서 한반도 도래인의 역사를 유추해보려고 노력하였다. 더불어 일본의 역사서와 신사에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에서 숨겨진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였다. ‘신화는 연구할수록 진실임이 드러나고 기록된 역사는 연구할수록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격언에 유의하였다. 일본 열도 각지에 산재하는 고분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고 여기서 발견된 유물들과 한반도에서 발견된 동시대 유물들의 유사성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필자의 설명에서 지명의 유래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이다. ‘지명(地名)은 시간의 화석(化石)’이라는 원칙, 즉 장구한 시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과 사람들이 이동할 때는 지명을 가지고 이동한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습성을 역사 연구에 활용하는 것이다. 지명은 천년이 지나도 90% 정도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대사는 역사서가 보존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의 고대사는 중국의 사서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서는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와 1281년에 편찬된 삼국유사다. 그전에 존재했던 많은 사서들은 제목만 남아 있을 뿐 원본은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 이전의 유일한 문자기록은 광개토대왕 비문(414년)을 비롯한 삼국시대의 비문뿐이다.
일본도 고대사의 경우에 동시대를 기술한 중국의 사서에 의존하는 것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일텐데 그렇지 않고 서기 700년 초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성립된 독자적인 사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 こじき, 712년)』와 『일본서기(720년)』는 7세기 후반부터 준비가 시작되었고 백제인의 후예들에 의해 편찬되었다. 그러나 그 사서들과 중국의 사서들의 역사기록을 비교하면 고대사의 기간에 해당하는 상당기간 동안 역사기록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더구나 서기 266년에서 413년 사이 약 150년 해당하는 일본의 역사기록은 중국 사서를 비롯한 어느 나라의 사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객관적인 역사기록의 공백기다. 더욱 주의해야할 점은 이 공백기간 동안 일본역사에는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 고대사의 수수께끼라는 것은 모두 이 기간과 그 전후 기간에 집중되어 있다. 이 기간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객관적 기록들은 광개토대왕비(414년), 칠지도와 칠자경의 명문, 규슈 에다후나야마 고분 철검과 사이타마의 이나라야나 고분 철검에 새겨진 명문과 몇 개의 비석에 있는 비문뿐이다.
일본 고대사의 수수께끼에 대하여는 수많은 가설과 이론이 나와 있다. 일부 일본인, 미국인, 한국인 역사 연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설들은 모두 이 공백기의 역사에 대하여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 마지막 부분인 3권에서 그 가설들을 모아 정리하고 있다.
역사기행의 결론 일부분을 미리 말씀드리면 이 많은 가설들의 공통점은 한반도에서 어떤 세력이 3~5세기에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열도의 중심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주체로서는 부여, 가야, 신라, 고구려, 백제, 한반도 남부에 있던 왜, 만주지방의 선비 등 다양하다.
일본신화에는 규슈에 내려온 천손족이 후대에 세토내해를 통해 아스카지역을 정복했다고 되어 있다. 다른 나라의 역사서와는 비교와 검증이 되지 않는 일본의 독자적인 사서에는 역사의 공백기간에 신공황후라는 인물이 한반도 남부인 임나(가야지역)를 정복했고 신라와 백제 및 고구려도 복속시켰다고 적고 있다. 또한 그 신공의 아들인 응신이 나라지역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고 적혀있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나라의 사서에도 나타나지 않는 역사기록이다. 일본의 역사학은 이러한 사서의 틀 안에 갇혀 있다. 따라서 일본 열도에는 선사시대부터 일본인이라는 민족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외부의 영향을 일체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의 일본인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역사는 지층과 같은 것이다. 고대사는 지층의 아래쪽에 묻혀 있다. 그 아래쪽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연치 않게 드러나 있는 지층의 편린을 들여다 보면서 역사를 유추해보아야 한다.
글의 초두에 일본 관동지방의 역사 지층을 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숨어있는 역사에 대한 친근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역의 근세사와 중세사도 일부 소개하고 있으며, 도쿄 이외의 타 지역의 고대사를 다룰 때도 중세사가 일부 등장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野七生)」의 다음 말은 필자에게 용기를 주었다.
“확실한 사료의 뒷바침이 없으면 다룰 수 없는 학자나 연구자와는 달리 우리는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는 자유롭게 추측하고 상상하는 것이 허용된다.”
어느 해 가을에 우연치않게 시작한 한일고대사 기행은 10년 만에 그 1막을 내린다. 이 책은 그 역사기행의 기록이다.
이 책은 한반도에서 보았을 때 바다 건너 해뜨는 곳, 뜨는 해 아래에 있는 섬인 해밑섬. 즉, 한 때 한반도에 살았던 선조들에게 뉴 프론티어였던 해밑섬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다.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에 시작하여 7세기에 끝나는 약 천 년간에 걸친다. 우리 선조들이 해밑섬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생활기반을 구축하며 벌어졌던 이야기의 현장을 답사하고 고증을 찾아 확인하며 10년간에 걸쳐서 쓴 이야기다.
이 책은 도쿄지역에서 시작하여 나라와 아스카를 거쳐 규슈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는 일본의 고대사를 살펴보는 3권의 역사기행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이 역사기행에서 역사의 주체는 일본인이 아니라 한반도로부터 이주)도래)하여 일본 고대사의 중심에서 활약한 우리의 선조들이다.
한반도 이주민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열도의 서쪽인 규슈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또 일부는 규슈를 거쳐 또는 직접 일본 열도의 북쪽 해안선을 따라 쓰루가, 이즈미, 나가노로 나아갔고 또 다른 일파는 시모노세키 해협을 통과하여 세토내해로 나가 해안선을 따라 기비, 시코쿠, 가와치, 아스카로 들어갔다. 이 중 아스카지역은 일본 열도의 중심지역으로서 후대에 고대사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우리 동해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서 혼슈 북쪽 해안으로 직접 이동한 흔적도 있다. 노토반도와 나가노 및 니이가타 방면의 고대사가 그러하다.
쓰루가, 이즈미 등 혼슈의 북쪽 해안에 자리잡았던 이주민 집단은 자발적으로 남쪽의 산맥을 넘고 비와코(琵琶湖() 호숫가를 따라 아스카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하였고 다른 집단은 후진 세력에 밀려나 나가노지역으로 또 더 멀리 관동평야(도쿄평야)까지 이동했다. 아스카에 정착한 세력의 일부 역시 혼슈 남쪽의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서 도쿄 서남쪽의 치바반도를 통해 관동평야로 이동했다. 일본 열도 내의 제2차 이동이다. 이러한 일련의 도미노적인 인구 이동은 한반도로부터 일본 열도로 순차적인 인구 이동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 원동력이 한반도에서 자리잡고 있던 민족에게서 나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시대적으로 보면 규슈와 이즈모로 제일 먼저 진출했고 다음은 아스카, 나라이며 관동지역은 고대사의 마지막 이동지역에 해당될 것이다. 즉 관동지방은 이주민의 이동 지역 중 제일 마지막 영역으로 개척자의 영역 또는 승자의 영역이 아니라 루저(Loser)의 영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서쪽에서 온 강력한 후진 세력들에 의해 쫓겨서 밀려난 곳이다. 또한 이 지역은 이주민들의 동진에 따라 밀려온 일본 열도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의 지역이기도 하였다. 이주민 중에 쫓겨온 사람들과 미리 쫓겨난 원주민들이 공존하거나 갈등하던 지역인 관동평야에서 필자의 고대사 기행은 시작되었다.
역사를 시대순으로 따르자면 규슈, 아스카-나라 그리고 관동지방의 역사를 더듬어 보아야 하는데 필자는 도쿄에서 일본 생활을 시작한 연유로 일본 고대사에 대한 경험을 역사의 발전방향과 반대로 접하면서 시작하였다. 따라서 필자의 역사 기행은 수많은 물음표로 시작되었다.
역사 연구에는 여러 가지 원칙이 있다. 근대 일본과 193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관은 실증사관이다. 기록과 유적, 유물을 통한 직접적인 증거를 기본으로 하는 역사 연구 방법이다. 문헌이 중시되고 유물이 중시되는 사관이다. 보편성을 띤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실증사관은 그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즉 사료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기록과 유물이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그 해석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사료의 훼손과 조작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까지 어렵게 발견된 사료의 해석에 관해 이견이 없었던 적이 없다.
필자의 경우는 전문적인 역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 민속적, 언어적, 경제적 증거들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낭만주의 사관’을 선호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일본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고대사 부분에서 한반도 도래인의 역사를 유추해보려고 노력하였다. 더불어 일본의 역사서와 신사에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에서 숨겨진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였다. ‘신화는 연구할수록 진실임이 드러나고 기록된 역사는 연구할수록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격언에 유의하였다. 일본 열도 각지에 산재하는 고분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고 여기서 발견된 유물들과 한반도에서 발견된 동시대 유물들의 유사성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필자의 설명에서 지명의 유래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이다. ‘지명(地名)은 시간의 화석(化石)’이라는 원칙, 즉 장구한 시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과 사람들이 이동할 때는 지명을 가지고 이동한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습성을 역사 연구에 활용하는 것이다. 지명은 천년이 지나도 90% 정도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대사는 역사서가 보존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의 고대사는 중국의 사서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서는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와 1281년에 편찬된 삼국유사다. 그전에 존재했던 많은 사서들은 제목만 남아 있을 뿐 원본은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 이전의 유일한 문자기록은 광개토대왕 비문(414년)을 비롯한 삼국시대의 비문뿐이다.
일본도 고대사의 경우에 동시대를 기술한 중국의 사서에 의존하는 것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일텐데 그렇지 않고 서기 700년 초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성립된 독자적인 사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 こじき, 712년)』와 『일본서기(720년)』는 7세기 후반부터 준비가 시작되었고 백제인의 후예들에 의해 편찬되었다. 그러나 그 사서들과 중국의 사서들의 역사기록을 비교하면 고대사의 기간에 해당하는 상당기간 동안 역사기록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더구나 서기 266년에서 413년 사이 약 150년 해당하는 일본의 역사기록은 중국 사서를 비롯한 어느 나라의 사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객관적인 역사기록의 공백기다. 더욱 주의해야할 점은 이 공백기간 동안 일본역사에는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 고대사의 수수께끼라는 것은 모두 이 기간과 그 전후 기간에 집중되어 있다. 이 기간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객관적 기록들은 광개토대왕비(414년), 칠지도와 칠자경의 명문, 규슈 에다후나야마 고분 철검과 사이타마의 이나라야나 고분 철검에 새겨진 명문과 몇 개의 비석에 있는 비문뿐이다.
일본 고대사의 수수께끼에 대하여는 수많은 가설과 이론이 나와 있다. 일부 일본인, 미국인, 한국인 역사 연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설들은 모두 이 공백기의 역사에 대하여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 마지막 부분인 3권에서 그 가설들을 모아 정리하고 있다.
역사기행의 결론 일부분을 미리 말씀드리면 이 많은 가설들의 공통점은 한반도에서 어떤 세력이 3~5세기에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열도의 중심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주체로서는 부여, 가야, 신라, 고구려, 백제, 한반도 남부에 있던 왜, 만주지방의 선비 등 다양하다.
일본신화에는 규슈에 내려온 천손족이 후대에 세토내해를 통해 아스카지역을 정복했다고 되어 있다. 다른 나라의 역사서와는 비교와 검증이 되지 않는 일본의 독자적인 사서에는 역사의 공백기간에 신공황후라는 인물이 한반도 남부인 임나(가야지역)를 정복했고 신라와 백제 및 고구려도 복속시켰다고 적고 있다. 또한 그 신공의 아들인 응신이 나라지역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고 적혀있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나라의 사서에도 나타나지 않는 역사기록이다. 일본의 역사학은 이러한 사서의 틀 안에 갇혀 있다. 따라서 일본 열도에는 선사시대부터 일본인이라는 민족이 살고 있었고 그들은 외부의 영향을 일체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의 일본인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필자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역사는 지층과 같은 것이다. 고대사는 지층의 아래쪽에 묻혀 있다. 그 아래쪽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연치 않게 드러나 있는 지층의 편린을 들여다 보면서 역사를 유추해보아야 한다.
글의 초두에 일본 관동지방의 역사 지층을 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숨어있는 역사에 대한 친근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역의 근세사와 중세사도 일부 소개하고 있으며, 도쿄 이외의 타 지역의 고대사를 다룰 때도 중세사가 일부 등장하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野七生)」의 다음 말은 필자에게 용기를 주었다.
“확실한 사료의 뒷바침이 없으면 다룰 수 없는 학자나 연구자와는 달리 우리는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는 자유롭게 추측하고 상상하는 것이 허용된다.”
어느 해 가을에 우연치않게 시작한 한일고대사 기행은 10년 만에 그 1막을 내린다. 이 책은 그 역사기행의 기록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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