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책소개)/2.개항기.구한말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

동방박사님 2022. 7. 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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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구한말 서양인들의 일상, 그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추적하다.

구한말 한국에는 의외로 다양한 국적의 서양인들이 체류하였다. 이들은 선교사로, 외교관으로, 전기기술자로, 때로는 금광이 넘쳐난다는 정보에 홀려 미지의 땅 조선에 흘러들어왔으며, 정동에 서양인촌을 형성하여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일구기도 했다. 이 책은 구한말 한국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 그들, 낯선 땅, 조선살이에 나선 서양인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의 비싼 물가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 행여 병이라도 나면 현대적인 의료시설이 없어 일본이나 중국으로 의료여행을 떠나야 했던 경우들, 사격연습을 한다며 한국인의 상투를 쏘아 맞추는 등의 행동을 서슴지 않는 협잡꾼,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왕따를 당했던 독일 공사, 애완견 때문에 발생한 분쟁 등 안락한 생활을 누렸을 것만 같은 구한말 서양인들의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당시 서양인들의 일상을 복원하기 위해 가급적 해외 자료에 의존하였다. 서양인들이 쓴 자서전과 여행기는 물론 해외에서 발행된 일간지, 그리고 각종 기록문서를 이용했고, 때로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그들의 후손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정치사나 외교사의 입장이 아닌 서양인들의 실제적인 이국생활을 추적하였으며, 그동안 한번도 소개되지 않은 비행기 사진과 자동차 사진 등이 소개되고, 그 외에도 당시 한국인들과 서양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선보이고 있다.

 

목차

머리말

서양인의 조선살이
서울의 서양인촌
사라져가는 불결한 개천들
서울의 서양 상점
범죄의 도시, 서울
비밀단체 프리메이슨과 근대화
영아소동의 진실
서울에서 죽은 최초의 서양인
서울에서 열린 미국의 독립기념일 축제
서양 아이들의 한국살이
서양인들의 겨울나기와 경복궁 스케이트장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한 미국 공사관
최초의 미국인 죄수 재판
석탄 품귀 현상
서양인을 따라온 애완견 이야기
천방지축 한국의 조랑말 타기
서양식 호텔에서의 하룻밤
귀신들린 집이 넘쳐나는 서울

서양인들의 뒷이야기
미국 공사관의 철의 여인, 로즈 푸트
술고래 미국 공사의 짧은 한국행, 윌리엄 파커
크리스마스 「왕따」가 된 독일 공사, 크라이엔
전직이 의심스런 입국자들
어느 외교관 딸의 운명적인 사랑
한국 학생 장학기금을 설립한 다혈질 청년, 레이몬드 크룸
외교관들의 스캔들
아메리칸 카우보이의 무모한 사격연습
서양인 치과의사들
한국학의 기틀을 닦은 프랑스 외교관, 모리스 쿠랑
성냥제조업자, 조셉 로젠바움
한국 최초의 영어학교 선생, 핼리팩스
고종과 미국 여인의 황당한 결혼 이야기

서양인들의 한국 엿보기
한국인들의 소문난 음주벽
서양인의 「석전」 관람기
옥분이의 기적
살인자로 전락한 배재학당의 엘리트
김홍륙과 아관파천
알렌이 목격한 갑신정변
천연두와 최초의 예방접종
1886년 한국 최악의 콜레라 발생
콜레라 잡는 고양이
자전거를 처음 본 한국인들
사기당한 해운왕국의 꿈
1불도 못 번 고종의 금광 사업
처음 등장한 전기를 둘러싼 소동
한국에서 처음 열린 축구와 야구 경기
최초의 자동차
한국인에게 우주인의 꿈을 심어준 비행기
한국 사람들 영화에 빠지다
한강 나룻배들의 희노애락

참고문헌
주 석
찾아보기
 

저자 소개 

 
프리랜서 컬럼리스트로 『Christian Science Monitor』, 『Eloquence』, 『Asia Times』, 『Korea Herald』, 『Korea Times』, 『 Korea Witness』, 『Royal Asiatic Society』 등에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왕립아시아학회 극동지부 회원으로 제국주의 시대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1880년대부터 1...
 
저자 : 정성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명지대학교 디지탈아카이빙연구소와 국제한국학연구소 소장 및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 한국미국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저서로는 『서양의 한국: 이미지의 탄생과 변화』, 『한국관련 서양고서 해제집』, 『서양인이 쓴 민속문헌 해제집』, 『Bibliography of Western Literatures on Korea, 1...
 

출판사 리뷰

구한말 조선살이에 나선 서양인들의 일상을 엿보다!
낯선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 아닌,
이방인들의 조선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


구한말 서양인들이 기록한 서양인들의 생활기
구한말 한국에는 의외로 다양한 국적의 서양인들이 체류하였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그들의 실제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동안 간행된 많은 책들은 개항 초기 서양인들이 바라본 한국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우리는 서양인들이 구한말 한국을 방문했다가 보고 들은 것을 철저하게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글들을 통해 또다른 우리의 역사를 만났다. 그 안에는 우리가 기록하지 못한 낯선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 그 책들의 주인공은 서양인의 눈의 비친 한국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구한말 한국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 그들, 낯선 땅, 조선살이에 나선 서양인들의 일상생활은 어땠을까. 이 책은 당시 서양인들의 일상을 복원하기 위해 가급적 해외 자료에 의존하였다. 서양인들이 쓴 자서전과 여행기는 물론 해외에서 발행된 일간지, 그리고 각종 기록문서를 이용했고, 때로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그들의 후손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정치사나 외교사의 입장이 아닌 서양인들의 실제적인 이국생활을 추적하였다.

비싼 물가를 걱정한 서양인들의 평범한 일상사
당시 서양인들은 선교사로, 외교관으로, 전기기술자로, 때로는 금광이 넘쳐난다는 정보에 홀려 노다지를 꿈꾸며 미지의 땅 조선으로 흘러들었다. 이들은 정동에 서양인촌을 형성하여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일구었다. 서양인촌 주변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어 서양 상점이 들어섰고, 서양인들은 가로등을 설치하고 불결한 시궁창을 현대식 수로로 개선하는 등 주변을 정비하여 자신들의 안식처를 가꾸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서울의 비싼 물가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게다가 비싼 물건이나마 희귀하여 식료품이며 난방용 석탄 등을 구하지 못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입해서 충족하거나 본국으로 주문해야만 했다. 행여 병이라도 나면 현대적인 의료시설이 없어 일본이나 중국으로 의료여행을 떠나야 했다. 한국인이 보기에 당시의 서양인들은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 역시 낯선 땅에서 적은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며 어려움을 감내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인이 숨기고 싶었던 뒷이야기-술주정뱅이 공사에 외교관 스캔들까지
조선이 개항을 선언하자 많은 나라들이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으로 몰려들었다. 각국의 외교관들이 파견되었고, 사업가들, 선교사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서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하지만 구한말 입국자들 중에는 이들처럼 신분이 명확한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행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도 있었고, 기술자로 가장했지만 자국 회사의 경비를 위해 입국한 아메리칸 카우보이들도 있었다. 이 가운데는 아시아 인종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고, 사격연습을 한다며 한국인의 상투를 쏘아 맞추는 등의 행동을 서슴지 않는 협잡꾼도 있었다. 한편 교양 있는 집단으로 여겨졌던 외교관 사회에서도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근거 없는 소문으로 독일 공사는 크리스마스파티에서 ‘왕따’를 당했고, 술주정뱅이 미국 공사는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본국으로 소환되는 수모를 겪었다. 또 사랑 때문에 친밀한 관계가 한순간 원수지간으로 돌아서 평생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애완견 때문에 분쟁이 생기기도 했으며, 살인사건이 발생해 영사법정이 벌어지기도 하는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구한말 서양인들의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서양인과 한국인이 일군 낯선 공존
구한말 한국에서는 많은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전기가 도입되었고, 금광개발, 성냥공장설립, 기선회사설립 등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업 대부분은 실패로 돌아가 한국인뿐 아니라 일부 서양인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한국 정부가 외국 공사를 통해 초빙한 기술자들은 실상은 전문인력이 아니었고,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겨 한국을 떠났다. 그럼에도 당시 서양인들이 서구 문물 도입에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서양인들은 틀니, 맥주, 스케이트 같은 일상용품뿐 아니라 자전거, 기차, 항공기, 영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물을 소개했고, 이를 접한 한국인들의 놀라움과 충격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처음 선원들의 초청을 받아 간 자리에서 서양술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맛본 최초의 서양술은 몇 달간 항해로 인해 이미 김이 다 빠져버린 울주였다. 서양술과 한국인의 첫 대면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 서양인이 한국인들 앞에서 선보인 새로운 문물은 대부분은 한국인에게 경악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탄 서양인을 본 한국인들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놀랐고, 이 낯설고 신기한 놀이가 궁금했던 궁궐의 민비와 고종은 서양인들을 초청하여 경복궁 향원정에서 스케이팅 파티를 열어주며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한국인들은 처음 등장한 자동차가 거리를 내달리며 내는 굉음소리에 혼비백산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꿈을 키웠다. 이렇게 구한말 서양인과 한국인들은 서로를 경계의 대상으로 때로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낯선 공존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