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기독교신학 (연구>책소개)/8.목회신학(설교)

그리스도 철학자

동방박사님 2022. 9. 23. 22:18
728x90

책소개

예수그리스도를 철학자적 시각으로 조명하여 기독교가 가야할 길을 제시한 책.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인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사도들의 증언으로부터 출발하여 종교재판을 지나 근대 세계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역설적인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보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복음서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서구 사회, 특히 유럽 사회에서 오랫동안 제도화의 길을 걸어온 그리스도교가 정작 그 권력화의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심하게 왜곡, 변질시켜 왔으며, 그 결과가 근, 현대 철학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반-기독교적 성향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볼 때, 자유, 이성과 같은 근대적 가치들은 모두 2,000년 전 나사렛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가르침 속에 뿌리 내리고 있던 것들이다. 다만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교회, 특히 중세 가톨릭 교회 제도에 의한 왜곡으로 인해 세인들의 인상 속에 근대적 가치와 그 실질적 모태가 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서로 대척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잘못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잘못된 오해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저자가 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책의 목적이다.

 

목차

옮긴이의 말

프롤로그 대심문관과 대면한 예수

제1장 예수의 역사와 역사 속의 예수
성경의 주해가 과학이 될 때
비기독교적 텍스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 타키투스와 플리니우스
기독교 원전들
정전 텍스트들 / 성서 외전 / 진실성의 기준들
예수의 생애
예수 시대의 팔레스타인 / 유대의 가족 / 순회 설교자 / 예수의 성격 / 기적을 행하는 자
그리스도의 수난
부활한 자의 출현

제2장 그리스도의 철학
예수의 영성
와서 나를 따르라 / 왕국의 패러독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그리스도의 윤리
평등 / 개인의 자유 / 여성의 해방 / 사회 정의 / 권력의 분리 / 비폭력과 용서 / 이웃에 대한 사랑
인간

제3장 기독교의 탄생
예수와 유대교
세 가지 새로운 행동
예수에서 그리스도로
첫 번째 교회
다소의 바울
신적인 로고스
그리스도에 대한 논쟁
순교자들
박해의 마감과 삼위일체 신학

제4장 그리스도교 사회
공식 종교
새로운 사회적 응집력 / 동방 정교회
기독교의 반격
수도원 제도 : 복음의 이상과 문화의 수호
교회와 권력
기독교 유럽
클뤼니 수도회와 그레고리우스의 개혁 / 신의 휴전 / 청빈함과 자비 / 문화의 발전과 대학의 설립 / 시토 수도회의 개혁과 탁발 수도회의 탄생
교회, 그리스도의 군대
아우구스티누스와 정의로운 전쟁 / 십자군 원정 / 이성과 신앙 / 이교에 대한 투쟁 / 종교 재판 / 인디언들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 바야돌리드 논쟁

제5장 기독교 휴머니즘에서 무신론적 휴머니즘으로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개혁
자유와 인식 / 프로테스탄트 개혁
계몽주의 휴머니즘
전통에 맞선 근대 세계 / 비판적 이성과 주체의 자율성 / 기독교 계몽주의와 비종교적 계몽주의 / 칸트의 도덕
무신론적 휴머니즘
콩트 : 지적인 소외로서의 종교 / 포이어바흐 : 인류학적 소외로서의 종교 / 마르크스 : 경제적 소외로서의 종교 / 프로이트 : 심리적 소외로서의 종교

제6장 근대 세계의 모태
역사와 진보
진보라는 근대적 사상의 태동 / 진보 신화의 비약과 비판 / 진보 개념의 종교적 기원 : 구원의 역사와 지복천년설
이성
니체와 신의 죽음 / 막스 베버와 합리화 / 의문하는 이성
유럽의 “기독교적 뿌리”에 대한 논쟁
가톨릭 교회와 근대 세계
근대적 사상들에 대한 비판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 어려운 문제제기

제7장 우리들 속에 남아 있는 기독교적인 것은 무엇인가?
근대성 속의 기독교
다원주의와 회의주의 / 위?아래가 뒤바뀐 신앙 / 확실성의 회귀
예배드리는 종교인으로서의 기독교 신자들
한 교회에 속한다 / 단순히 믿는다 / 예배에 참석하는 열성적인 신자다 / 미국의 종교심
문화적 기독교 신자들
기독교에 젖어 있는 문화
예수 그리스도 이후 / 기독교적인 축제들 / 기독교 방식으로 말하는 것 / 기독교 예술
비가시적인 기독교

에필로그 사마리아 여인과 대면한 예수
이상한 장소에서의 만남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다면”
진정한 종교란 무엇인가?
외적인 종교에서 내적인 영성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
어려운 자유
사랑만이 믿음에 합당하다
그리스도적 메시지의 전복
‘비 능력’의 철학
서구에서의 기독교의 미래

감사의 말
 

저자 소개

역 : 김모세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프랑스 인문학 연구 모임 ‘시지프’의 일원이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프랑수아 모리악의 작품에 나타난 타자의 문제』『르네 지라르』가 있고, 옮긴 책으로 『우리 아이 첫 자신감 노트』 『페넬로페는 변기에 응가해요』 『인간의 대지』 『미래 사회 코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이 있다.

역 : 김용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인 조르주 페렉의 작품을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 중이다. 프랑스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Sisyphe)’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알파벳의 신비』(공역, 살림), 『수사학 3: 아리스토텔레스』(공역, 리젬), 『예고된 공황』(공역, 바다), 『그리스도 철학자』(공역, 연암서가),...
 

저자 : 프레데릭 르누아르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로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객원연구원이다. 잡지 『종교의 세계『 편집장이기도 한 그는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다수의 에세이들과 역사 소설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저작들은 2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책임의 시대』(1991), 『불교와 서양의 만남』(2001), 『신의 변형』(2003), 『비밀』(2003), 『다빈치 코드 연구』(2004, 공저), 『천사의 약속』(2006...
 

관련 자료

주요 내용

기독교의 역사는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을 거두기 위한 안식처들을 만들었던 감독들, 자신들의 믿음을 공식적으로 저버리기를 거부했던 순교자들, 세상을 위한 기도에 전념키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수도사들, 문둥병자들을 포옹하고 가장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삶을 바쳤던 성인들, 성당 건축자들과 믿음에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들, 학교와 무료 진료소를 설립했던 선교사들, 대학을 세웠던 신학자들, 그리고 믿음을 따라 선을 실천한 수많은 평신도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복음서는 예수가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악마의 유혹에도, 그를 왕으로 삼으려는 민중의 욕망에도, 예루살렘에 올라감으로서 확실한 죽음으로 향하기보다는 도망가라는 제그를 왕말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았다. 다시 키르케고르로 돌아오자면, 그는 “사람들이 다음 세상에서도 또다시 회상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이상한 질문을 제보다고 있다.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단 한 가지가 있다. 즉 진리를 위해 고통당해야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비록 이러한 답변은 분명히 키르케고르의 혼란스러움과 논A확실흔적들을 간직다고 있음에도 불구다고, 필자는 그 답변이 뭔가 심오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답변은 그리스도의 삶과 관련해서 밝혀지고 있다. 즉 한 삶 속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 즉―사람들이 믿든지 그렇지 않든지에 따라 실재적이거나하기징적인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영원한 것이란 라 실재말하는 선한 것뜬는 은 라 실재실현한 위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I따라 실재진실의 편에 섰어야 했던 바로 그 여러 순간들이다. 비록 그 순간들이따라 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게 했던 순간이었을지라룄 이해되고 특히 라 의 생명을 요구다는 순간들이었을지라룄재말이다. 라 모두는 이러한 경험을 다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종종 라 를 죽음으로까지 이끌 올라감다. 남녀를 막론하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인간 존엄죽음으로진리에 충실하기 위해서 이친구나하저항을 함께한 동지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 이치욕스럽거나하범죄와 관련된 행위에 복종하기 않기 위해서 죽었거나하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예를 들면 1989 아6월 천안문 광장에서 생명의하위험을 무릅쓰고 장갑차들 있에 섰던 중국의 한 젊은있에 그 누구룄재잊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남자들, 이러한 여자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까지 인간 존엄의 진리를 증언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인류 역사의 진정한 성자들인 것이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스스로를 부인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가 되자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졌다. 신앙 때문에 박해받았던 자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재빠르게 박해자로 변모했다.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급속한 성공에 의해 눈이 멀었고, 권력의 맛을 보았다. 교회 제도는 요새처럼 견고해졌으며, 점차 교회는 최초의 목적보다는 오히려 그 제도 자체에 대한 강박적인 염려에 빠졌다. 복음은 계속해서 전파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명령과 교회 제도의 실천 사이에는 끝없이 틈이 벌어졌다. 교회 제도는 점점 더 교회의 생존과 발전, 지배를 보장해줄 수 있는 것에만 응답하게 되었다.

기독교적인 철학이 신앙과 관련될 때, 철학은 신학의 시녀가 되어버리고, 따라서 철학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한다. 이와 동시에, 예수의 메시지는 몇 가지 차원에서 읽힐 수 있다. 사람들은 특히 종교적인 차원을 받아들였다. 즉 예수는 유대교의 개혁자 혹은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특히 자신과의 인격적인 만남에 기초하고 있는 새로운 영적인 길에 초석을 놓았다. 하지만 그는 또한 보편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가르침도 전파했다. 즉 비폭력,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 정의와 나눔, 집단보다는 개인의 우위, 선택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 정치와 종교의 분리, 이웃을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과 적까지도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드러냄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초월적인 전망 속에 각인되고 있다. 그 가르침이 또한 심오한 합리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윤리적인 메시지는 진정한 ‘지혜’, 즉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이해하고자 했던 지혜이다. 그 증거로,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이러한 가르침에 의지해서 교회의 지배로부터 유럽 사회들을 해방시키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세속적 도덕과 인간의 권리들에 대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합리적인 계획은 결국 하나님이 없는 기독교적인 윤리로서, 게다가 속인에게 양도된 그러한 윤리로서 모습을 드러뮳었다.

예수는 신학자도 정치적 선동자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마귀를 쫓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작은 마을들에서 사랑과 비폭력을 설교한 사람, 독립적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설파했던 설교자였다. 티베리아스나 세포리스와 같은 큰 도시들보다는 오히려 가버나움, 가나 같은 작은 마을들을 말이다. 그는 열두 제자(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상징적 관계를 지닌 숫자이다)와 점점 더 늘어난 신봉자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복음서에서는 그들 중 레위와 나다나엘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자들 또한 그를 따랐는데, 당시 사회에서 매우 미천한 존재였던 여성들이 매우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 시집을 가곤 했던 당시의 풍속을 고려할 때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부분 소외계층, 과부, 창녀,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누가복음 8:2)이었다.

예수는 그간의 모든 도덕적 규칙을 뒤집으며 인간과 신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새로 정립함으로써 삶의 새로운 방식을 확립하려했다. 그가 제시하는 규칙은 신의 사랑, 즉 ‘아가페(agape)’에 토대를 둔다. 차후에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규칙들은 역사적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의 장을 넘어서서, 모든 인간의 평등, 박애, 선택의 자유, 여성권리의 신장, 사회정의, 비폭력, 교권과 지상권의 분리와 같이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윤리학의 토대도 제공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의 메시지를 통해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관념들을 뒤바꾸었다. 이러한 정신적 혁명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율적 주체로서의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이다. 그는 인간 존재에 전에 볼 수 없는 높은 가치를 부여했으며 모든 외적인 조건들, 즉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 종교 등을 뛰어넘어 각각의 개인을 그 자체로 충만한 존엄성과 자유 속에서 이해했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들은 과거 수 세기 동안 여러 사회들에서 행사했던 영향력을 상실했다. 교회들은 더 이상 자신의 세계관, 계율의 준수, 도덕성을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들은 여러 목소리들 중의 한 목소리가 되었고, 민족적인 혹은 사회적인 여러 주제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유일하고 독특한 것과는 관련이 없게 되었다. 좀 더 심층적으로 보자면, 교회는 신자들의 종교심에 대한 주요한 준거들을 전체로 모으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주요한 준거들이란 믿음, 계율 준수, 소속감, 도덕성, 교리 등등을 말하며, 예전에는 다소간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이 모든 것들이 오늘날에는 분해되어 버렸다.

현대 사회의 비가시적인 기독교는 의심할 여지없이 여러 과오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독교는 분명 우리의 가치들의 근간이 되는 초월성에 대한 세속적인 형태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타인의 존중에 대한 보편적인 윤리를 정당화시키고, 그 윤리를 실행하는데 있어서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니체처럼 평등, 이웃에 대한 사랑, 형제애 혹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을 증오하지 않는 한, 필자는 유대―기독교적 메시지와 그 메시지의 세속적인 변모들이 어떤 점에서 그토록 해로운 것인지를 이해 할 수 없으며, 우리가 왜 그 메시지의 세속적인 변모들을 그토록 경이로운 메시지들로 대체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비판적인 이성의 날을 세운 채 우리의 유산 속에서 인간에게 좋고 유용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출판사 리뷰

복음서에 기록된 ‘있는 그대로’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라

복음서들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신에 대한 믿음에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보편적인 중요성을 가진 윤리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만인의 평등한 존엄성, 정의와 나눔, 비폭력, 집단에 대한 개인의 해방 및 남성에 대한 여성의 해방, 선택의 자유, 정치와 종교의 분리, 인류애 등이 그것이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자, 그리스도의 가르침 중 많은 부분이 교회 제도에 의해 가려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지혜는 천년 후에 다시 태어난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사상가들은 유럽의 여러 사회들을 종교 권력이라는 제국에서 해방시키고 근대적인 휴머니즘의 토대를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의 철학”이라는 에라스무스의 표현에 의지한다.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이 책에서 사도들의 증언으로부터 출발하여 종교재판을 지나 근대 세계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역설적인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보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복음서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철저하게 철학적, 학문적 관점에서 성서와 거기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라보고 있다. 자연히 기존 교회 제도의 옹호나 신자들에게 신앙적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 특히 복음서의 기록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책의 첫 부분에서부터 ‘오직’ 복음서에 충실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복음서들의 역사적, 실증적 고증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사실에 기반하여 논지를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논의가 전개될수록 저자는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 자체로 돌아갈 것을 이 책 전체를 통해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저자는 학자의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그리스도가 행한 것으로 기록된 여러 기적들을 상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진 학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신성, 메시아적 특징, 그를 통한 구원, 부활 사건 등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댄 브라운과 미셸 옹프레 등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복음서의 내용 자체, 초기 기독교의 역사, 사도들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있는 그대로’, 어찌 보면 이 말이야말로 저자의 의도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 보여주는 말이 될 것이다. 저자는 서구 사회, 특히 유럽 사회에서 오랫동안 제도화의 길을 걸어온 그리스도교가 정작 그 권력화의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심하게 왜곡, 변질시켜 왔으며, 그 결과가 근, 현대 철학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반-기독교적 성향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볼 때, 자유, 이성과 같은 근대적 가치들은 모두 2,000년 전 나사렛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가르침 속에 뿌리 내리고 있던 것들이다. 다만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교회, 특히 중세 가톨릭 교회 제도에 의한 왜곡으로 인해 세인들의 인상 속에 근대적 가치와 그 실질적 모태가 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서로 대척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잘못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잘못된 오해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저자가 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책의 목적이다. 책의 머리말 부분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한 대목은 책 전체의 관점을 훌륭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기반으로 이 책은 크게 다음 네 가지 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철학적 관점에서의 ‘있는 그대로’의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여러 가르침들 가운데서도 책의 궁극적 목적과 연결되는 부분, 근대 철학의 모태로 볼 수 있는 가르침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질 논의의 전제로서의 역할이지만, 이미 첫 번째 장 속에서 책 전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장은 그 제목에서부터 암시하고 있듯이 책 전체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속의 책, 이른바 ‘심연 구조’를 이루는 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 시대 이후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기독교의 역사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가진 특별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으로 여겨지는데, 단순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철학적 관념 놀이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그 관념의 맥을 연결해 나가는 저자의 연금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약 100페이지 정도로 압축된 기독교 교회사는 그 자체로도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 부분에서 저자는 초기 순교자들의 시대, 콘스탄티누스 황제로부터 시작된 제도화의 시대, 중세 시대로 특징지어지는 가톨릭 권력의 시대 등으로 시기를 나누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고 심지어는 왜곡, 변형되어 갔는지를 보여주고, 그 원인이 된 구체적인 시대, 상황의 맥락을 소개하고 있다.

셋째로 저자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휴머니즘’의 역사를 추적해 나가면서 그 철학적 역사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르네상스 시기 종교 개혁 운동과 더불어 휴머니즘 운동이 태동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근대의 탄생을 불러온 휴머니즘의 본질적 가치들 속에 자리 잡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분석하고자 근대의여기에서도 저자는 통시적 분석의 방법과 그 선적인 시간을 역으로 파고들어가는 철학적 분석의 방법을 병행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르네상스에서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에 이어 19세기 독일 철학과종교 에 이르기까지 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처음에는 철저하게 이 태동존인 휴머니즘의 개념이 점차 탈 이 태화의 길을 걷다가 급기야는 반댠이 태동했다는을 띠게 된 상황과 그 원인을 분석 근대의동시에 저자는 이 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이 태동존인 휴보이는 철학적 입장들도 본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토대가 없었다면 태동할 수 없었을 을 라는 일관된 입장을 여러 예기에서도 저설득시키고자 근대의물론 이 과정에서 휴머니즘과 관련하여 조금은 휴머주의적인 저자의 입장이 피력되기도 근대의앞서 밝혔듯이 철저하게 철학자의 관점에서 씌어 통껜 라는 맥락을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혹시 신앙을 가진 독자들의 경우 학문적 관점에서 기독교 변증에 이용될 수 있는 저자의 관점이라는 점을 상기하길 바라는 바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시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 시대의 기독교의 모습을 예측하고 있다. 특히 근 2000년 동안 기독교 사회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다 근래 들어 급격히 탈 기독교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유럽 사회의 모습과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서의 새로운 기독교 사회의 태동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객관적 시각에서의 서술을 이어나간다. 아울러 각 시민의 깊은 문화적 무의식 속에 내재된 유럽의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 사실, 즉 급격히 탈 기독교화되는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는 반 기독교적 성향을 띠는 것으로 보이는 현대적 문화에 동화되어 있는 유럽인들이 실질적으로는 한결같이 뿌리 깊은 그리스도교적 메시지를 바탕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잊혀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다시 꺼내 들어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소중한 가치를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는 무기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책의 시작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예로 장식했던 저자는 책의 맺는 말 부분에서는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만남 장면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장면에 나오는 대화에 등장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결국 ‘사랑’에 대한 메시지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사랑이란 가장 평범하고 진부해 보이면서도, 가장 강력하고 궁극적인 가치이며,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