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불교의 이해 (독서)/3.불교경전법문

불교인문주의자의 경전읽기 (일지스님)

동방박사님 2023. 2. 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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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천재적’ 승려의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
“본지에 ‘감춰진 불교이야기’를 연재해 온 일지 스님(경학회 회주)이 23일 서울 수국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44세. 해박한 교학을 바탕으로 한 직관적인 문체로 ‘불교인문주의’라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온 일지스님은 1974년 백양사에서 서옹스님(현 고불총림 방장)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80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다. 1997년 불교경학연구소를 설립해 후학들을 지도하며 많은 경전과 선어록을 번역했다. 삼수갑산으로 떠난 부처 선불교 백문백답 등 20여권의 저서가 있다. 스님의 지인들과 문인들은 고인을 추모하는 사업으로 ‘일지 문고’의 출간을 준비 중이다.” (현대불교신문 2002년 8월 28일)

불교적 삶과 현대사회의 관계성이 깊이 천착
일지스님의 입적을 알리는 교계 신문의 짧은 부고기사는 일지스님을 ‘불교인문주의’를 개척한 인물로 소개했다. 불교인문주의. 인문학과 불교학에서 어디에서 소개된 바가 없는 이 영역은 온전히 ‘일지’라는 한 ‘천재적’(민족사 윤창화 사장의 표현) 승려가 걸어온 길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15세 때인 1974년에 출가, 해인강원과 율원을 수료한 그는 1988년 논문 ‘현대중공의 불교인식’으로 제1회 해인학술상을 수상했다. 이후부터 그는 불교적 삶과 현대사회의 관계성이 깊이 천착하면서 특유의 박람강기와 직관적 문체를 바탕으로 경전經典과 선禪을 탐구해나갔다. 1990년 『까르마의 열쇠』를 시작으로 1991년 『달마에서 임제까지』(1991), 『붓다·해석·실천』(1991), 『중관불교와 유식불교』(1992) ,『떠도는 돈황―불교문학과 선으로 본 오늘의 불교인문주의』(1993) 등 1999년『통윤의 유마경 풀이』까지 20여 권의 묵직한 저서와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은 현대불교신문의 연재와 함께 이지누 씨가 편집책임을 맡았던 디새집의 ‘구산선문’ 연재를 중단하게 했다.

특유의 박람강기와 직관적 문체로 경전經典과 선禪을 탐구
지난 2018년 11월 편집자는 일지스님의 속가俗家 동생(고현섭)을 만났다. 동생에 따르면 일지스님 열네 살에 집을 나와 간 곳이 해남 대흥사 진불암이었다. 이 진불암의 생활이 『선불교 백문백답』 서문(1997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지금부터 20년도 훨씬 전의 어느 가을, 감옥 같던 집과 학교를 모두 거부한 더벅머리 소년으로 해남 대흥사 진불암眞佛庵의 뜰을 쓸고 있었다. …시간을 정해놓고 치는 방선放禪 죽비도 없이 그저 법당의 문살 사이로 파르스름한 새벽의 대기大氣가 스며들고 날이 훤하게 밝을 때까지 좌선하던 진불암에서의 3년은 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기억으로 남아서 항상 그립기만하다.” 일지스님은 이후 백양사에서 계를 받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일지스님이 출가한지 1년이 되지 않았을 때 속가에 잠시 들러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행전을 치면서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사람이 왜 사는지 아느냐?” 그때 열 네 살의 형이 던진 그 말이 동생은 지금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동생도 2년 뒤에 형을 따라 출가한 후, 10년 뒤 환속했다.)

성철스님과의 만남
일지스님은 1980년 해인강원을 졸업하고, 1982년 해인율원을 수료했는데, 이 시기에 한국 현대불교의 큰 스승인 성철스님과 조우한다. 일지스님은 그의 또 다른 책 『멀어저도 큰 산을 남는 스님』에서 성철스님에게 받은 영향을 이렇게 기록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 해인사에 머물면서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아직 철부지에 불과하던 우리에게 때로는 매섭게, 때로는 자정하게 가르침을 베푸시던 스님을 잊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이익을 버리고 일체를 희생해서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는 진지하고도 철저한 구도정신과 자비의 실천으로 이 시대의 중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특히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라“는 스님의 가르침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려운 길이다.”

20여 권의 저작들에 녹아든 ‘불교인문주의’
일지스님은 해인사를 나온 이후 경전과 선을 탐구해나갔다. 그의 경전과 선의 편력은 초기불교에서 아비달마, 부파, 대승, 중관, 유식, 선 등을 종횡무진하며 나아간다. 그에게 경전과 선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이 아닌, “다가오는 21세기는 불교에게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이 깊이 배어 있다. 예컨대 그는 “선은 역사 형성의 현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선의 성찰적 근대성과 공공성 확립을 위해” 불교가 “인문학적으로 광범위하게 검토”될 것을 주문한다. 그의 이런 탐구정신은 ‘불교인문주의’라는 그만의 사상적 영역으로 들어오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20여 권의 저작물들은 이런 물음을 던진 것에 대한 그만의 답변인 셈이다.

 

목차

궁극의 화두인 붓다 006
불교에서 길을 묻다 016
업業 026
인간人間 036
신앙信仰 046
병과 건강 056
경전經典 066
선禪 076
연기緣起 086
해탈解脫 096
무아無我 106
무량수경이 설하는 다섯 가지 대악大惡 116

회심回心 126
보리심菩提心 136
인욕忍辱 146
제법실상諸法實相 156
정진精進 166
보살菩薩 176
전법傳法 186
신구의 삼업三業 196
몸 206
마음의 평화 216
아소카의 법 226
정토淨土 236
 

저자 소개

저 : 일지
 
일지一指스님은 1960년에 태어나, 1974년에 출가하여1980년 해인사 강원(제21회)을 졸업하고 1982년 해인율원을 수료했다. 이후 계속 경학經學과 선학禪學에 정진해 왔으며, 문경 봉암사, 망월사, 오대산 상원사 등지의 선원에서 수선안거를 했다. 1988년에 논문 「現代中共의 佛敎認識」으로 제1회 해인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낙산사 교무를 거쳐 사단법인 법사원불교대학 교수, 불지사 출판부장, 민족사 주간으로 일...
 

책 속으로

경전을 어떻게 읽고, 삶에 적용할 것인가?
불교의 인문적 해석과 실천을 통찰한 책


이 책은 스님이 입적하기 전 2000년 1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2년간 월간 「불광」에 연재한 글이다. 때문에 스님의 입적 전 불교적 인문의 사유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텍스트이다. 이 책은 불교인뿐 아니라 불교를 이해하는 이들이 삶 속에서 생각해봐야 할 24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각각의 주제를 경전에서는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살폈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경전의 내용이 주는 메시지의 인문적 해석이다. 곧 경전을 통해서 인간의 실존과 삶, 그리고 사회와 역사와 문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출가 이후 ‘경전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며, 실천해야 하는가?’란 문제의식과 연결되며, 그 물음은 ‘불교의 인문적 해석과 실천’이라는 저자의 통찰과 맞닿아있다. 특히 저자가 맨 처음 올린 「붓다」의 해석은 불교의 메시지가 어디를 향하는지, 통찰력있게 보여준다.

“나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고
인간으로 성장하였으며
인간으로서 붓다를 이루었다.”
『증일아함경』 권28, 「청법품」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이 경전 문구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여기에 등장하는 경전의 내용과 해석들은 우리의 불교적 관념체계를 적지 않게 흔든다. 이 경전 내용이 주는 메시지를 스님은 어떻게 그려낼까.

“부처님은 스스로 인간임을 선언한다. 불교는 신神의 존재를 상정하거나 신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을 철학적 목표로 삼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불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無神論이라고 말하지만, 이와 같은 규정은 어디까지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有神論을 상대적으로 대비하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생겨난 것일 뿐 ‘불교는 무신론이다’라는 언급 자체가 상당히 애매한 규정인 것이다. 물론 불교는 ‘사람은 신앙으로써 거센 흐름을 건너고 정진으로써 바다를 건넌다. 근면으로써 고통을 초월하고, 지혜로써 완전한 청정의 경지에 도달한다’라고 설할 만큼, 신앙을 중시하며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에 귀의하는 삼귀의三歸依를 기초적인 신앙의례로 삼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적어도 불교도에 있어 종교의 의미는 타율적인 심판을 내리는 절대자에 대한 피조물로서의 예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인간생활의 궁극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삶의 여러 갈등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고차적인 신앙과 수행의 체계라는 점이다. 불교도들에게 있어 신앙의 의미는 단순한 ‘믿음’만이 아니라 ‘지혜’의 증장에 필요한 덕목이며 마음의 청정을 증득하는 기본 전제이다.”(11쪽)

또한 「불교에서 길을 묻다」란 주제에서 스님은 “불교는 메마른 도구적 지식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불교수행의 본질,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몸가짐(修身)과 마음닦음(修心)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비와 지혜의 통찰이 담긴 몸가짐과 마음닦음의 실천은 모든 불교도들이 선택해야 하는 삶의 지표이다. 따라서 불교수행이 깊고 정교해지면 정교해질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성실하게 닦아가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항상 묻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핵심에는 몸가짐과 마음닦음의 문제가 관통하고 있다”(19쪽)라며 불교의 본질을 명료하게 짚어낸다.

「선」의 항목에서는 현대 한국선의 문제를 ‘위기의 선’으로 진단하며, 선이 마치 인스턴트식품으로 취급되는 것을 경계한다.
“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대승불교 본래의 지혜와 자비를 망각한 선은 불교가 아니라 도교道敎다. 한국불교의 승가가 진정 한국불교의 정체성이 계속 선禪이라고 한다면 선의 실참實參과 불교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79쪽)
“아무리 선불교에 관한 정보가 컴퓨터에 의해서 대량으로 유통되고, 아무리 선 입문서들이 산더미처럼 출판되더라도 대승불교의 강인한 인간주의에서 출발한 선의 ‘내심자증內心自證 자각성지自覺聖智’라는 대주제가 일상의 실천으로 이행되지 않는다면 선은 동양사상의 아류로 전락한 채 ‘깨달음’이라는 허망한 독백만을 일삼게 될 것이다.”(83쪽)

「해탈」에서는 해탈의 신비성과 추상성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우리는 해탈이라는 말을 너무 안이하고 추상적이며 신비한 어감을 갖는 불교 용어로만 생각해 왔으며 그 결과 해탈은 현실의 초월이나 도피를 의미하는 사어死語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해탈은 그렇게 신비적이거나 집중적인 수행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수만 가지 멍에에 묶여있는 현대인이야말로 해탈이 필요한 존재들인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의 마음상태, 욕구에 대해 사색하고 탐진치貪瞋癡로 오염되어 있는 불순한 에너지와 거품을 걷어내면 해탈은 그렇게 추상적이거나 신비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99쪽)

「보리심」에서는 보리심이야말로 불교의 정신이 꽃피는 대승보살의 수행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 삶을 내면으로부터 성찰하고 인간의 무력함과 이기심과 욕망의 추한 면들을 스스로 깨닫고 진실한 삶의 길을 구하려는 노력을 결심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젊은 날 세웠던 수없는 결심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뎌져가더라도 역시 이 결심은 쉽게 버릴 수 없는 중요한 자각이다. 즉 우리가 아무리 욕망과 이기심의 유혹 앞에 쉽게 굴복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욕망과 이기심의 집착에서부터 벗어나려고 강렬하게 희구한다. 그 결심이 서는 자리에서 바로 불교는 시작된다.”

「보살」에서는 보살이 대승불교의 실천자임을 말한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이 어떤 삶의 척도도 찾지 못하고, 세상은 날로 무분별한 난장판의 극한으로 치닫는다. 오늘 인생과 사회를 말하는 고급 이론이나 현학적인 언어는 이미 진부하다. 그것은 이기심의 언어이며 교만의 언어이며 탐욕의 언어일 뿐이다. 젊은이들이 학교와 종교에서조차 어떠한 삶의 척도도 찾지 못하고, 자살 사이트와 폭탄 제조 사이트에 빠져 있을 때 혼자만의 성불이나 견성은 그렇게 그윽하고 우아하기만 한 것일까? 불교의 실천에 관한 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실천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것이다. 말만 실천을 앞세울 뿐 그 실천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의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실천도 일회적인 캠페인에 불과하다. 불교가 진정으로 가장 행복한 인생, 가장 밝은 사회를 염원하는 인류의 사라지지 않는 꿈이며, 동양의 종교와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종교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지금 이 땅에서 우리의 이웃들이 어떻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지 보살의 눈, 보살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181쪽)

「정토」에서는 어디에서 정토신앙이 출발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토신앙의 본질은 구원이다. 정토신앙은 예토穢土의 오염을 반성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진솔하게 인정한다. 결국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로서 아미
타부처님의 대자비와 본원本願에 귀의하여 정토를 희구한다. 정토신앙은 나약한 인간이 절대자의 힘을 빌리는 연약한 신앙일까. 아니다. 숙업의 올가미에 묶여 있는 연약한 인간,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어두운 나락을 깊이 응시하여 스스로의 죄업을 참회하고 탐욕과 무지, 항상 죽음의 그늘에 덮여 있는 유한한 예토에서 정토를 구현하려는 신앙이다. 인간 스스로의 나약함과 유한함을 진솔하게 인정한다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 작은 깨달음이야말로 정토신앙의 출발점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일지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전화기를 타고 한 지인이 들려준 목소리는 마치 어느 신문 속 부음기사처럼 들렸다. 머리를 흔들며 다시 정신을 차리니, 수국사 한켠에 마련된 컨테이너에서 나에게 『정토삼부경』을 가르쳐 주셨던 그 분이었다. 귓속이 웅웅거렸다. 나는 멍한 상태로 홀로 수국사로 향했다. 2002년 8월 23일, 수국사 주지스님에게 발견된 일지스님의 육신은 돌아가신 지 2~3일이 지난 후였다.

여름 장마의 습한 기운이 컨테이너를 가득 채웠다. 10평 남짓한 스님의 방은 잠자고 글을 쓰는 2평 정도의 공간을 빼면 약 4천여 권의 책으로 빼곡했다. 이 공간에서 스님은 매주 1회 석·박사 청년들과 함께 경을 읽었다. 스님은 학사출신인 나에게 교계 월간지 기자 시절부터의 인연으로 이모임에 말석 한 자리를 내줬다. 한 사람씩 원문을 읽고 해석하며 진행된 경전 읽기는 나에겐 곤혹이었다. 한문을 띄엄띄엄 읽는 나에게 스님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함께 경전의 길로 이끌어주었다.

영민한 제자들에 비해 나는 아둔한 제자였기에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나에게 ‘경전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란 제목으로 짧은 편지(이 편지는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분실하고 말았다)를 건넸을까. 스님의 관심과 배려와는 달리 나는 경전 공부에 소홀했다. 오히려 스님이 쓴 경전의 해석들에 매료됐다. 생각해보면 나는 스님께 경을 배우는 것보다, 스님의 글쓰기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전의 해석 방식에 더 탐닉했던 것 같다. 예컨대 『무량수경』을 강독하면서 ‘信心에 대한 소고’를 A4 용지 3장에 가득 채우거나, ‘無我에 대해서’를 A4 1장에 써내려갔다. ‘單獨者로서의 인간과 業에 관하여’란독창적인 글을 만난 것도 『무량수경』을 강독하면서다. 스님은 매주 한 번씩 A4 용지 4~13매를 10포인트 글자로 가득 채워 나눠주셨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올해 8월 말 늦은 밤 스님의 빛바랜 책과 글을 읽으면서 나는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해인강원의 선배였던 민족사 윤창화 사장은 “지금 그만한 불교적 천재가 또 있을까?” 하며, 스님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스스로를 ‘불교인문주의자’로 칭하고,비승비속非僧非俗의 삶으로 수많은 경전을 탐구해나갔다. 스님이 이르고자 한 곳은 어딜까. 스님의 『정토삼부경』 경전강독 노트(2000.11.4.)에는 “인간의 고독과 업의 숙명성을 꿰뚫어 보고 해탈을 설하는 붓다”를 언급하며 경전의 한 문장을 가장 위에 인용했다.“나는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았으며 나에게는 어떠한 벗도 없었다.(『상응부경전』 1)”

이 책은 월간 『불광』에 2000년부터 2년 동안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불교인문주의자’의 경전을 읽은 시선이 대중에게 전달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편집인 김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