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서양철학의 이해 (독서>책소개)/4.서양철학이해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읽기 (2024)

동방박사님 2024. 5. 16. 13:26
728x90

책소개

“절망의 현상학,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키르케고르가 분석하고 있는 절망의 다양한 형태를 통과한다. 따라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인간 일반에 대한 책이지만 우리 개개인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해설서를 독자들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도록 쓰고 싶었다. 내가 이 책의 서두에서 키르케고르의 분석을 나의 어쭙잖은 인생 경험을 예로 하여 풀어쓴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내가 키르케고르의 분석을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 나가는 과정 자체에 대한 분석이라고 느꼈던 것처럼, 독자들도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머리말 절망의 현상학으로서 『죽음에 이르는 병』

1장 들어가면서: 자기 상실로서의 절망

2장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

1. 인간 존재의 근본 성격
2. 인간의 과제로서의 필연성과 가능성, 유한성과 무한성, 몸과 영혼, 과거와 미래의 종합
3. 절망의 보편성
4.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서의 절망
5. 절망의 모든 형태
1) 절망에 대한 의식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고찰되는 경우의 절망. 따라서 여기서는 종합의 모든 계기만이 문제가 된다
2) 의식의 규정 아래서 고찰할 경우의 절망

3장 절망은 죄이다

1. 신에 대한 신앙을 통한 유한성과 무한성의 진정한 종합
2. 죄와 신앙
3. 절망의 심화로서의 죄
4. 소크라테스의 죄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5. 죄인의 드묾
6. 자기의 죄에 대해 절망하는 죄
7. 죄의 용서에 대하여 절망하는 죄(좌절)

4장 첫 번째 장에 대한 해설

5장 나오면서: 절망을 통과하는 신앙

저자 소개

저 : 박찬국 (Park,Chan-Kook,朴贊國)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을 삶의 의미를 찾는 철학자.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로 원효학술상, 운제철학상, 반야학술상 등을 받았다.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 비교를 중요한 연구 과제 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 동서양의 사상을 편견 없이 넘나들...

책 속으로

키르케고르는 우리가 부나 명예와 같은 세간적인 가치들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자신의 삶이 성공적이라고 희희낙락해 있는 상태야말로 가장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본다. 세간적인 가치들이야말로 언제든 쉽게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취약한 것이고 죽음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헛된 것이 된다. 따라서 세간적인 가치들의 허망함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성공에 희희낙락하는 것이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절망에 내맡겨져 있는 것이다.
--- p.14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자아에 대한 망각이라고 할 수 있는 절망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한 진정한 자아를 완전히 망각하면서 삼켜 버릴 수 없다. 그 안에는 항상 불안과 불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절망은 진정한 자아를 망각하면서 삼켜 버리려 하지만, 그것을 망각하고 삼켜 버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육체가 육체의 병에 의해 삼켜져 버리는 일은 있어도, 영혼은 영혼의 병인 절망에 의해 완전히 삼켜지지 않는다. 진정한 자아는 항상 내면에 잠복해 있는 것이다.
--- p.48

그는 유한성 속에 살면서도 자신의 삶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유한성 속에서 살면서도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지 못하는 삶은, 유한성에서 벗어날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는 삶이기에 유한성에 완전히 빠져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참된 자아와 무한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이러한 인간은 절망 속에 있지만 의식적으로는 이러한 절망을 느끼지 못한다.
--- p.81

그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인격자로서 명성을 얻으며, 인격자로서의 명성을 향유하고 교양 있는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목사들의 축복을 받을 경우, 그는 자신이 절망을 극복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그의 상태야말로 절망이다. 이러한 절망은 아직 심미적 실존의 순진한 직접성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 경우 절망한 자가 행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이라는 것도 심미적 실존으로서의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질적인 반성이 아니라 심미적 실존에 여전히 구속되어 있는 한갓 양적인 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 p.116

키르케고르의 이러한 입장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그리스도교 사상가에게서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는 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는 평안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오직 신만이 죽음으로 끝나는 유한하고 덧없는 현실에서 그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영원성과 평온을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은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게 되는 그 모든 존재자와 사건을 신에게서 비롯된 것으로서 껴안고 긍정하는 넓은 마음을 선사한다.
--- p.150

키르케고르는 모든 절망이 결국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믿음에 입각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극단에 이르기까지 밀고 나간 것이 바로 신에게 반항하는 남성적 절망이라고 본다. 이 점에서 키르케고르는 모든 종류의 절망은 남성적인 절망으로 환원될 수 있고 소급될 수 있다고 말한다. 허무주의적 염세주의라는 것에도 결국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고 신은 없다고 보는 인간에 대한 오만이 잠재해 있다. 이 점에서 허무주의적 염세주의는 언제든지 신에게 저항하는 남성적 절망으로 변화될 수 있다.
--- p.196

출판사 리뷰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이들을 위한 키르케고르의 진단

현대인들은 모두 죽어 가고 있다. 아니, 고금을 통틀어 인간이라면 모두 죽어 갔으며, 죽어 가고 있고, 죽어 갈 것이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들이 죽어 갔고 죽어 가고 죽어 갈 것인 이유는 그들이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죽음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인간이 죽어 갔고 죽어 가고 죽어 갈 것이라는 논지는 “인간은 죽는다”라는 자연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정신의 죽음을 일컫는다. 그렇기에 죽음에 이르는 병 역시도 암이나 폐병 같은 종류의 육체적 병이 아니라 정신적 병을 이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병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를 의사에게 맡길 수 없다. 이 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오직 철학자, 그것도 키르케고르와 같이 위대한 철학자에 의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이제, 위대한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냉철한 성찰을 통해서 그 병을 진단해 보자.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바로 절망이다. 그런데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고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죽어 갈 수는 없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 병을 치료해야만 한다. 그러니 키르케고르와 함께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한 번 치료해 보자. 주지하듯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병을 진단해야만 한다. 그리고 병을 진단한다는 것은 곧 그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를 판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먼저 인간이 앓고 있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그 형태에 따라 나누어 “본래적인 절망”과 “비본래적인 절망”, “남성적 절망”과 “여성적 절망” 등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 분류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앓고 있는 절망의 종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차례는 그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명의 키르케고르의 처방전, 『죽음에 이르는 병』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는 병에 대한 진단서이자 처방전이다. 무릇 병의 원인을 진단하고 나면 그 치료법도 차차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절망이라는 원인과 종류를 진단한 키르케고르는 그에 대한 치료법 역시 처방하고 있다. 그 치료법이란 바로 무한성과 유한성을 종합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절망을 극복하고 비로소 진정한 자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무한성과 유한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기에 이 둘의 종합은 역설적인 종합이며, 인간 자신만의 힘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절망은 난치병이기는 하지만, 불치병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무한성과 유한성을 종합할 수 있는 길이 단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신에 대한 신앙이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한성과 유한성의 종합이라는 역설적 종합 역시 이루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신에게 진정으로 귀의하여 참회하며 신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신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참회와 신의 은총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 내에서 무한성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한성 내에 무한성을 실현하면서 인간은 바야흐로 유한성과 무한성을 종합하게 된다. 아마 이러한 키르케고르의 논지는 자못 지나치게 그리스도교적인 교설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단지 그리스도교인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려는 사람은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병』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가 난해하여 혼자서는 읽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 책을 읽기 위해서는 “친절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러한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어 가기 위한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