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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북] 08월 28일 (1952 한국과 일본 독도분쟁 발생)

동방박사님 2024. 8. 28.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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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 태종8년 태조실록 편찬 / 1861 화가 안중식 출생  / 1893 국어학자 이극로 출생 / 1912 서양화가 이인성출생 / 1933 전국에 풍수해 1841명 사망 / 1950 한국은행 1차화페개혁(조선은행권 원. 한국은행권 원 1;1 )단행 / 1952 한국과 일본 독도분쟁 발생 / 1960중앙전화국 용산분국 자동삭 교환시설 개통 / 1962 순천시 수해(1000여명 사상) / 1980 대학휴교령 107일 만에 해제 / 1991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1차 공사통수식 / 1995 칠례와 외교관사증면제협정 체결 / 광주지하철 1호선 귀국 / 1997 한국전기통신공사법 페지

독도

북쪽에서 본 독도. 왼쪽이 동도, 오른쪽이 서도.

독도

다른이름: 리앙쿠르 암초, / 다케시마(일본 주장), / 우산도, 가지도, 삼봉도, 호넷 섬 / 북쪽에서 본 독도. 왼쪽이 동도, 오른쪽이 서도. / 북쪽에서 본 독도. 왼쪽이 동도, 오른쪽이 서도.

지리

독도위치
독도위치

위치 동해 / 좌표 동도 북위 37° 1426.8동경 131° 5210.4″ / 서도 북위 37° 1430.6동경 131° 5154.6″ / 구성 도서 91개 섬 / 주요 도서 동도(東島) · 서도(西島) / 면적 동도 73,297m² / 서도 88,740m² / 기타 암초 25,517m² / 187,554m² / 최고점 서도 대한봉 168.500m

실효 지배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  경상북도 / ··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영유권 주장

일본의 기 일본 /  시마네현 / · 오키군 오키노시마정

독도(獨島)는 동해의 남서부, 울릉도와 오키 제도 사이에 위치한 섬 또는 암초이다. 리앙쿠르 암초(영어: Liancourt Rocks)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동도와 서도를 포함해 총 91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울릉도에서 뱃길로 200리 정도 떨어져 있다.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지배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에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최종덕이 19653월부터 최초 거주한 이래로 김성도 부부 및 독도경비대원 35, 등대 관리원 2, 울릉군청 독도관리 사무소 직원 2명 등 약 40명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2005년 동도에 대한 입도 신고제 도입 이후 20214월 기준 약 200만 명이 방문하였고, 1일 평균 500명이 입도하고 있다

명칭

독도는 한국어권에서 주로 쓰이며, 돌로 된 섬이란 뜻의 '돌섬'의 경상도 방언 명칭인 독섬을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쓰면서 독도(獨島)가 되었다. 일본어권에서는 다케시마라고 불리며, 과거에는 마쓰시마라고 불렸다. 국내 문헌에서는 독도를 일컫는 표현으로 우산도(于山島), 가지도(可支島), 삼봉도(三峰島) 등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미국 문헌에서는 호넷 섬 또는 '호넷 아일랜드'(Hornet Islands)라는 명칭으로 독도를 부르기도 하였다

3국에서는 독도 분쟁을 감안할 때 1849년에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선박인 '리앙쿠르 호'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 암초(프랑스어: Rochers Liancourt, 영어: Liancourt Rocks)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리 및 지질 

섬의 위치

이 섬은 동해의 해저 지형 중 울릉분지의 북쪽 경계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균 수심 2,000m의 해양 평원에 솟아 있는 화산섬이다.[7] 두 개의 큰 섬인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를 중심으로 총 91개의 크고 작은 섬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도와 서도 사이의 거리는 151m이다. 일본에서는 동도를 오지마(男島), 서도를 메지마(女島)라고 부른다.

독도의 총 면적은 187,554m², 서도(西島)88,740m², 동도(東島)73,297m², 그 밖의 암초가 25,517m²이다. 서도의 최고 높이는 168.5m이고, 동도의 최고 높이는 98.6m이다. 201211월부터 대한민국 정부 고시에 의거하여 서도의 최고봉은 '대한봉'(大韓峰), 동도의 최고봉은 '우산봉'(于山峰)으로 부른다. 동도의 최고봉은 1950년대에는 '성걸봉'으로 불렸으며, 2005년부터 고시 이전까지는 '일출봉'(日出峰)이라 불렸다. 동도와 서도 및 부속 도서는 대부분 수심 10m 미만의 얕은 땅으로 연결되어 있다.

독도의 동도는 동경 1315210.4, 북위 371426.8초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87.4 km 떨어져 있으며, 일본 시마네현 오키 제도에서는 약 157.5 km 떨어져 있다. 한반도에서의 거리는 약 216.8km이며, 일본 혼슈에서의 거리는 약 211km이다. 날씨가 좋으면 울릉도 동쪽 해안에서 육안으로 이 섬을 볼 수 있다.

독도는 약 460~250만 년 전에 형성된 해양섬 기원의 화산체로서, 섬 주변에 분포하는 지층들을 아래에서부터 괴상 응회각력암, 조면안산암 I, 층상 라필리응회암, 층상응회암, 조면안산암 II, 스코리아성 층상 라릴리응회암, 조면안산암III, 각력암, 조면암, 염기섬 암맥 등 총 9개의 화산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오랜 세월동안 침식되어 화산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독도(특히 동도)의 지반은 불안정한데, 이것은 단층과 절리, 균열, 그리고 불완전한 공사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독도는 지질학적으로 울릉도의 화산암류와 비슷한 전암 화학조성을 갖는 알칼리 현무암, 조면 현무암, 조면 안산암 및 조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도

높이 168.5m, 둘레 2.6km, 면적 88,740m² 5필지, 동도에 비해 높이가 높고 면적이 넓지만, 경사가 급한 편이라 필지가 적은 편이다.

자연환경 - 지형

대한봉: 서도의 정상

탕건봉: 서도 북쪽에 위치하여 봉우리 형상이 탕건을 꼭 닮아 붙여진 이름. 서도 최고봉과 북편에 위치함. 주로 주상절리임. 오른쪽으로 탕건봉이며, 탕건봉 상부는 주상절리, 하부는 타포니 형태이다.

삼형제굴바위: 형상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3개의 동굴이 있어 현지 어민들의 구전에 의한 명칭 안파식 대상에 발달한 시스택으로 서도에는 속하지 않지만 서도 근방에 위치

상장군바위

코끼리바위: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의 독특한 모양에 대하여 불리는 바위

김바위: 독특한 모양에 대한 일관된 명칭 구전으로 김은 해태를 의미함

동도

높이 98.6m, 둘레 2.8km 면적 73,297m² 7필지. 서도에 비해 높이가 낮고 면적이 좁지만, 둘레가 크고 완만해 필지가 많은 편이다.

자연환경 - 지형

한반도 바위: 북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반도 형상과 꼭 닮아 붙여진 이름. 실제 부속도서를 제외한 한반도의 형상이 보인다.

숫돌바위: 의용수비대원들이 생활할 당시 칼을 갈았다는 곳으로 바위의 암질이 숫돌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 선착장 근처에 노출되는 조면암맥. 차별침식으로 주변의 응회각력암층은 침식되어 없어지고 수면상에 솟아있어 숫돌바위라 일컬으며 주상절리가 거의 수평으로 발달되어 있다.

얼굴바위: 사람의 얼굴과 흡사한 독특한 모양으로 현지어민들의 구전으로 붙여진 이름.

독립문바위: 시아치(왼쪽)와 해식동굴(오른쪽) - 절리밀도가 높은 해안가에 위치하는 기반암 지대에서 발달 한다. 아치의 형태가 대한민국의 지도를 닮아서 잘 알려진 곳이다.

천장굴: 분화구라고도 하였으나 학계에 의하면 침식에 의해 함몰로 생긴 천장동굴로 불린 명칭

물오리바위: 물오리서식지로서 현지어민들에 의해 불리는 명칭으로 물오리는 바다가마우지를 지칭함

춧발바위: 춧발은 갑, 곶 등이 튀어 나온 곳을 의미하는 현지 방언으로 구전되어온 명칭

악어바위: 암석의 측면에서 형성된 풍화혈을 총칭하여 타포니라 한다. 집괴암을 구성하는 작은 역들이 염풍화 작용으로 인하여 기반암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구멍이 형성되어 있다.

행정 구역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에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96번지에 속하며 우편번호는 40240이다. 대한민국은 이 섬을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울릉군은 국민 공모를 통해 도로명 주소법에 따른 이 섬의 도로명 주소를 '독도안용복길'(서도)'독도이사부길'(동도)로 정하였다. 일본이 주장하는 행정 구역에서는 시마네현 오키군 오키노시마정에 속해 있다.

기후

파노라마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로 연간 평균강수량은 1,240mm 정도, 연평균 기온 약 12[22], 1월 평균기온 1, 8월 평균기온 23로 온난한 편이다. 연평균 풍속은 4.3m/s겨울과 봄에는 북서풍이 빈번하고, 여름과 가을에는 남서풍이 빈번하여 계절에 따른 주풍향이 뚜렷하다.[24] 안개가 잦고 연중 날씨 중 흐린 날은 160일 이상이며 비 또는 눈 오는 날은 150일 정도로, 겨울철 강수량이 많다. , 일 년 중 맑은 날은 불과 45일 정도밖에 없다.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 2003~2007

울릉도와 독도의 날씨 (2003 ~ 2007년 평균, 울릉도 기상대 관측)

1 2 3 4 5 6 7 8 9 10 11 12

평균기온 1.82 2.94 5.2 10.62 14.88 19.36 21.6 23.88 19.82 15.66 10.82 4.52

최고평균기온 4.88 6.12 9.06 14.7 18.62 23 24.52 27.14 22.84 19.12 14.16 7.44

최저평균기온 -0.4 0.44 2.3 7.3 11.68 16.64 19.44 21.58 17.62 13.24 8.38 2.26

강수량(mm) 94.72 66 86.3 136.54 181.88 148.82 259.06 200.14 277.82 100.06 124.44 155.34

자연 및 자원

두 섬과 주변 섬들은 서로 분리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저 2천여 미터로부터 바다 위로 솟은 해산(海山)의 봉우리 부분에 해당된다.

천연기념물

독도천연보호구역

독도천연보호구역

(獨島天然保護區域)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종목 천연기념물 제336

(19821116일 지정)

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이 부분의 본문은 독도천연보호구역입니다.

대한민국은 독도 섬 주변의 바다에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섬 일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이 섬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1982년에 "독도 해조류(바다제비·슴새·괭이갈매기) 번식지(獨島海鳥類-繁殖地)"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1999년에 천연보호구역으로 명칭을 바꾸어 동식물 전체의 식생을 관리하게 되었다.

2005년 독도의 기존 토지 및 부속도서를 측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지적공부를 정정하여 독도의 지적현황이 전체적으로 변경됨에 따라 2006914일 문화재청장은 문화재보호법 제6조에 의거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된 독도 천연보호구역의 문화재구역을 당초 고시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37필지 180,902평미터(보호구역)""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01필지 187,554평방미터(지정구역)으로 정정고시하였다.

2002년 경상북도는 환경부에 '울릉도·독도 해상국립공원' 지정을 건의했으나, 이는 울릉군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독도 사철나무

독도 사철나무

(獨島 사철나무)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종목 천연기념물 제538

(2012105일 지정)

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이 부분의 본문은 독도 사철나무입니다.

울릉군 독도리 30번지에 있는 독도 사철나무는 독도를 구성하는 2개 섬인 동도와 서도 중 동도의 천장굴 급경사 지역 위쪽 끝 부분에서 자라고 있으며, 강한 해풍과 극히 열악한 토양조건 등에서 자란 나무로 독도에서 생육하는 몇 안 되는 수목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20121025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38호로 지정되었다.

특정도서

대한민국은 독도가 독특한 자연환경이 유지되고 있고, 해양생물상이 다양하고 풍부하여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특정도서로 지정하였다.

지정일자 : 200095

지정번호 : 1

면적 : 187,554m2 (지번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 ~ 96이고, 200095일 특정도서로 최초 지정 당시 면적은 180,902m2였다)

특정도서안에서는 대한민국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8조에 의거 누구든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허가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건축물·공작물의 신축·개축·증축

개간·매립·준설 또는 간척

택지의 조성·토지의 형질변경·토지의 분할

공유수면의 매립

입목·죽의 벌채 또는 훼손

도로의 신설

·모래·자갈·돌의 채취, 광물의 채굴, 지하수의 개발

가축의 방목, 야생동물의 포획·살생 또는 그 알의 채취, 야생식물의 채취

특정도서에 서식하거나 도래하는 야생 동·식물 또는 특정도서 안에 존재하는 자연적 생성물을 그 섬 밖으로 반출하는 행위

특정도서 안으로 생태계 위해 외래 동·식물을 반입하는 행위

폐기물을 매립 또는 투기하는 행위

인화물질을 이용하여 음식물을 짓거나 야영을 하는 행위

지질·지형·자연적 생성물의 형상손괴 기타 이와 유사한 행위

국가지질공원

20121227일 환경부장관은 자연공원법 제36조의3의 규정에 의거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을 인증 고시하였다.

지질공원의 명칭 : 울릉도·독도 국가지질공원

지질공원의 구역 : 경상북도 울릉군 전 지역

지질공원의 면적 : 1,279 평방킬로미터

인증연월일 : 고시일

공원관리청: 경상북도

인증목적 : 울릉도·독도의 우수한 지질유산자원을 보전하고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국민의 휴양 및 정서함양에 기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

지정명소 : 23개소(울릉도 19, 독도 4)

울릉도 : 19개소 (봉래폭포, 저동 해안산책로, 도동 해안산책로, 거북바위 및 향나무자생지, 국수바위, 버섯바위, 학포 해안, 황토굴, 태하 해안산책로 및 대풍감, 노인봉, 송곳봉, 코끼리바위, 용출소, 알봉, 성인봉 원시림, 죽암몽돌해안, 삼선암, 관음도, 죽도)

독도 : 4개소 (숫돌바위, 독립문바위, 삼형제굴바위, 천장굴)

동물

2005년과 2006년에 이루어진 실태조사를 통해 독도에서 관찰된 조류는 126종이다.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은 괭이갈매기이었고, 7,00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제비, 슴새, 참새가 서식하고 있는데, 최근 슴새의 수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바다제비 수는 증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출처 필요] 섬은 남북으로 왕래하는 철새들이 쉬어가는 주요 휴식처이다. 조류는 여러 가지의 천연 기념물이 있다. 짐승은 1973년 경비대에서 토끼를 방목하였으나 지금은 한 마리도 서식하지 않는다. 곤충은 72637종이 서식하고 있다. 인근 해양에는 파랑돔, 가막베도라치, 일곱줄얼게비늘, 넙치, 미역치, 주홍감펭 등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또한 대구지방환경청은 지난 20075월부터 6개월 동안 경북대학교 울릉도·독도연구소와 공동으로 네 차례에 걸쳐 이 섬의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이 섬에 무척추동물 26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20071211일에 발표했다. 2013년에는 시베리아의 텃새인 솔양진이 수컷 한 개체가 남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동도에서 발견되었다.

바다사자(강치)

바다사자(독도강치)는 동해 연안에 서식하던 강치의 아종이다. 현재 멸종되었다고 알려진 동물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들을 "가제" 또는 "가지"로 불렀으며 이 섬을 중심으로 동해에 수만 마리가 서식했다고 한다. 이들이 머물렀다는 가제바위가 독도에 남아 있다. 러일 전쟁 전후로 가죽을 얻기 위해 시작된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바다사자는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었으며 1974년 홋카이도에서 새끼 강치가 확인된 이후로 목격되지 않는다. 1905년 일본 시마네현이 이 섬을 편입한 이후 일본인들의 어획이 시작되었지만, 1905년 이전에 울릉도에 살던 한국인들이 1904년과 1905년에 독도에서 강치를 잡아 매년 가죽 800(600)씩 일본에 수출한 기록이 1907년 시마네현 다케시마 섬 조사단의 오쿠하라 헤키운이 쓴 책 '죽도 및 울릉도'에 나온다.

식물

박선주 등이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실행한 독도의 식물상 및 식생 조사에서는 독도의 식물은 294849, 1아종 3변종 총 53종류로 조사되었다. 이 중 특산식물은 섬기린초와 섬초롱꽃 2종류이고, 귀화식물은 갓, 방가지똥, 큰이삭풀, 콩다닥냉이, 흰명아주, 둥근입나팔꽃 6종류가 있다. 식생형은 주로 해국-땅채송화, 해국-갯제비쑥, 왕호장근-도깨비쇠고비, 돌피, 물피군락 등으로 구분된다.

경사가 급하여 토양이 발달하지 못하였고, 비는 내리는 대로 배수되어 수분이 부족하여 자생하는 식물이 적으나 울릉도에서 씨앗이 날아와 50~60종의 풀과 나무가 있다. 이 섬에 사는 식물은 키가 작아 강한 바람에 적응하고 잎이 두껍고 잔털이 많다. 물론 가뭄과 추위에도 잘 견딘다. 200712, 외부에서 들여와 직접 심은 나무 가운데 무궁화, 후박나무, 곰솔, 향나무 등이 대부분 말라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얕은 바다에는 모자반, 대황 등의 해양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독도 사철나무는 독도에서 현존하는 수목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 독도에서 생육할 수 있는 수종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국토의 동쪽 끝 독도를 100년 이상 지켜왔다는 영토적·상징적 가치가 큰 점을 감안하여 2012105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38호로 지정되었다.

박테리아

섬 일대는 '박테리아의 보고'로 불릴 만큼 다양한 종의 박테리아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5, 200613, 200716, 20084종 등 2008년 기준으로 이 섬에서 발견된 신종 박테리아는 38종에 이른다. 발견된 신종 박테리아들의 학명에는 독도넬라 코린시스(Dokdonella koreensis), 동해아나 독도넨시스(Donghaeana dokdonensis) 등과 같이 '독도''동해'의 명칭이 포함되었다. 독도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들로 인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이 3년 연속으로 신종 세균 발표 건수 1위를 차지했다.

매장 자원

메탄 하이드레이트 

KAIST 생명공학과의 조사에 따르면, 섬 근해 해저에 이른바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메탄 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 고체 천연가스 또는 메탄 수화물)가 확인된 양만 약 6억 톤가량 매장되어 있다고 밝혀졌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녹으면서 물과 메탄 가스를 발생시켜 효용가치가 큰 미래 청정자원으로 주요 선진국의 개발·연구 대상으로 주목받는 자원이다.

해양

독도 주변은 쿠로시오 지류인 따뜻한 대만남류와 찬 북한 해류가 만나는 지역으로, 영양염류가 풍부하며, 이로 인한 동·식물 플랑크톤이 다양하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회유성 어족이 다량 분포하고 있다.

독도는 지형적으로 수심 2,068 m 정도 되는 동해 새중에서 분출한 화산성해산으로, 물위로 솟아있는 독도의 면적은 비록 작지만(0.186km2), 수면아래 독도의 면적을 합하면 울릉도의 2배 이상되는 거대한 해산이며, 동도와 서도를 중심으로 주변에 물개바위를 비롯한 크고 작은 32개 이상의 바위섬과 암초가 있어 단단한 바닥에 부착하여 생활하는 해양 저서생물에게 좋은 서식지를 마련하고 있다.

독도의 바다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으로 생물종이 다양하고 수산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섬 주변에는 감태, 대황, 모자반 등 해조류를 비롯하여 게류, 고둥류가 넓게 서식하고 있고, 어류로서는 볼락, 자리돔, 도화돔 등의 냉온대성, 온대성 및 아열대성 생물종이 집합하여 서식하고 있다. 또한 독도의 섬효과를 통해 깊은 바다의 영양염류가 표층으로 용승되어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동해의 회유성 및 독도 정착성 어종의 치어와 유어들이 모여 사는 산란장 내지 성육장의 기능으로서도 중요한 어장이다.

해양 생물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동도와 서도 주변연안 및 수중생태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해양·자포동물 22, 고둥류 30, 극피동물 23, 갑각류 22, 갈조식물류 17종과 어류 17종 등 총 169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도 주변연안에서 서식하고 있는 갑각류 중에서 도화새우, 물렁가시붉은새우, 가시배새우를 통틀어 '독도새우'라고 부르고 있다.

환경 오염

독도에 하수처리시설이 설치된 이후, 그 오작동으로 인해 독도 경비대나 등대 관리자와 같은 거주자들로부터 발생한 오수가 바다에 그대로 쏟아지는 일이 반복돼 독도 부근은 심각한 바다 오염의 우려가 높다. 독도 부근 바다에서는 바닷물이 우윳빛으로 변하거나, 해초들이 죽고 산호초가 석회화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는 이러한 오염을 줄이기 위한 공공 단체와 시민 조직에 의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교통

선착장

동도 선착장에 접안중인 해경  309 정

동도에 선착장과 접안 시설(199711월 완공, 19988월 지적공부에 등록) 80미터로 500톤급 선박 접안이 가능하며, 유인 등대 1기가 설치되어 있다.

출처: 대한민국 외교부 독도 2005~ 2015

독도 연도별 입도 현황(2005~ 2015)

년도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인원 수 () 41,134 78,152 101,428 129,910 135,376 115,074 179,621 205,778 255,838 139,892 178,785 1,560,988

여객선

대저해운에서 포항~울릉도~독도 구간을 12회 운항한다. 단 풍랑 등 기상특보가 발생시 결항될 수 있다

헬기장

이 부분의 본문은 독도헬기장입니다.

동도에 있는 독도헬기장(ICAO: RKDD)은 경찰청이 관할하는 헬리콥터 이착륙장이다. 동도에 있기 때문에 '동도 헬기장'으로도 불린다. 2008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로부터 지명약어 RKDD를 부여받았다.

통신

2013612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경북본부와 대구·경북 소재의 이통3사 및 협력사 공동 주관으로 독도에 입도해 독도의 전파환경을 측정한 결과 독도는 방송, 통신뿐 아니라 아마추어 무선 주파수까지 모두 양호하게 도달되며, 최신 초고속 광대역 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까지 끊김없이 전달된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시설

동도

경비 초소: 1999년 건물 옥상(해발고도 95m)에 무인기상관측장비(Automatic Weather System, AWS)를 설치하여 독도의 기온, 풍향, 풍속, 강수량을 매시간 측정하여 그 자료를 무선통신으로 울릉도로 송신하고 있음

막사 9

접안시설(선착장) : 199711월 건립, 최대 500톤급 접안 가능, 길이 80m, 넓이 1,945. 보통 울릉도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배를 타고 독도로 가는 경우 내리는 장소이다.

독도 등대 : 19548월 최초 설치, 199812월 증축 및 유인화(3명 근무), 등탑높이 15m, 넓이 161, 광원거리 25마일, 디젤발전기 2(75kw), 태양광발전(15kw)

위성 안테나 : 20006월 설치, 인터넷위성기지국 2

경비대 : 19978월 증축(30명 근무), 숙소 1658, 담수시설(27/1일 생산), 헬기장 1개소 400, 케이블카 1(300m, 1.5), (접안시설~경비대숙소 앞), 해수정화시설.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경비대는 군인이 아닌 경찰이다.

등반로 : 796m(0.8~1m)

해수정화시설

서도

경비대 30여명이 생활하고 방문객들이 방문하는 경로인 동도와는 달리 주로 주민 숙소로 이용되는 서도는 시설물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주민숙소 : 20118월 증축 완료(주민, 울릉군청 직원 각2명 거주 - 2018년 주민 중 한 분이셨던 김성도씨가 사망함에 따라 현재는 김신열씨 혼자 거주하고 있다.), 1373제곱미터, 담수기 2(4/1일 생산), 디젤발전기 2(50kh)

음용시설 : 물골 1/1(3톤 저장 가능)

등반로 : 550m (0.6~0.8m)[54]

기타

문화재청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독도 대포(大砲)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으나 좌절됐다. 당시 국무총리와 외교통상부 장관이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과 엄승용 전 문화재청 사적명승국장, 독도단체 및 문화재계 관계자들이 독도 대포의 영토주권 수호 상징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해 문화재 지정 재추진을 주장(서울신문 2014815일자 8)했으나 지금까지 정부나 지자체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역사

독도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관련 법령과 정부 조직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독도지속가능이용위원회 :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기본(시행)계획을 심의하기 위하여 설치된 대한민국 국토해양부 소속의 자문위원회이다.

관련 문화

전설

독도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여러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구멍바위'[56] 형성에 관한 전설이다.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힘센 노인 하나가 노인의 집 앞을 가리고 있던 바위를 묶어 배를 타고 옮기던 중에 다른 바위를 던져 바위에 구멍을 내고 난 후 독도에서 좌초되어 지금의 자리에 구멍바위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광

본래 이 섬은 대한민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서 입도가 제한되었으나 2005324일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대항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입도 허가제를 신고제로 변경함으로써 동도 선착장에 한해서 하루 1,800명씩 일반인의 관광을 허용했다. 학술 조사와 같이 관광 이외의 목적으로 이 섬을 방문할 경우에는 14일 전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기념 사업

대한민국이 1954년에 발행한 독도 우표

고종이 대한제국칙령 제4119001025일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제정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독도의 날이 기념일로 잘 알려져 있다.

1954915일 대한민국은 3종의 독도 우표 3000만 장을 발행했는데 2환권과 5환권은 각각 500만 장, 10환권은 2000만 장이 팔렸다. 일본 외무성에서 독도 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만국우편연합(UPU) 규정중 '우편물 중계의 자유보장' 조항에 따라 허용하기로 하였다. 일본은 항의의 표시로 독도 우표가 붙은 한국 우편물에 먹칠을 해서 배달을 하였다. 대한민국은 이 섬을 도안으로 한 우표를 2002년과 20041월 두 차례 더 발행했다. 200281일 내고향 특별우표 시리즈(32)중 경북편에도 독도우표가 포함, 90만장이 발행되었으나 당시 일본의 항의는 없었다. 20041월 대한민국이 독도 우표 4224만장을 발행하자 가와구치 일본 외상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입장과 한국의 우표발행이 만국우편연합헌장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주일 한국대사에게 항의하였다.

2004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이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보여주고 있는 고지도를 도안으로 한 우표를 발행하였으며 20068월에는 도안이 약간 수정되어 대한민국에서 판매되기도 하였다.

대한결핵협회는 2006년 크리스마스 실로 독도의 자연을 그린 '아이러브 독도'를 발행하였다.

독도함(獨島艦, LPH-6111)은 대한민국 해군의 독도급 강습상륙함의 첫 번째 함이다. 독도의 이름을 함명으로 정하였다. 실제로는 LHD(다목적 강습상륙함)의 기능을 갖고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LPH(강습상륙함)라고 불리고 있다. 200210월 말에 한진중공업이 대한민국 해군으로부터 수주를 받아 건조를 시작한 뒤, 2005712일 진수하였고 2006522일부터 시운전을 시작하여 200773일 취역하였다. 20103월 천안함 침몰 사고 수색구조 작전에 투입되었다.

학문

한국복지사이버대학에 2012년 독도학과가 개설되어 2014년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지리·환경·역사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 구축을 위해 전국 최초로 개설되었으며, 울릉군수와 독도경비대장 등 독도와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여러 인사들뿐만 아니라, 교육계 전문가, 독도 관련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인사들이 재학 중이거나 졸업하였다.

대중 문화

1982년에 한국방송의 PD였던 박문영은 이 섬을 주제로 한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만들어 코미디 프로그램인 유머 일번지를 통해 발표했는데, 곧 정광태의 정식 음반이 출시되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 밖에도 박명수의 We Love 독도등 수많은 연예인과 가수들이 독도에 관한 노래를 발표해 왔다.

2004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동으로 개발한 모바일 게임인 독도를 지켜라가 대한민국으로 수출되었다.[63] 이 게임은 통일부로부터 외교적인 문제를 피할 것을 요청받아 섬을 지켜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네티즌들의 항의로 다시 독도를 지켜라로 바뀌었다

2016년에는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애니메이션 <독도수비대 강치>를 제작했다.

 [Sources Wikipedia]

책소개

“독도는 우리 땅!”...한국인으로 귀화한 독보적인 독도 연구가 호사카 유지 교수의 한일관계사로 본 독도 이야기《우리 역사 독도》

우리나라 동쪽 끝에 위치한 섬, 독도.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외교부 독도 사이트(http://dokdo.mofa.go.kr/kor/)에 나와 있는 문구이다. 이 당연한 주장을 올리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독도 연구와 관련 주장이 나와서 가능했다. 일본이 홍보와 공세를 지속한 탓에 세계의 디지털 지도에 독도를 리앙쿠르트 섬(Liancourt Rock)이나 다케시마(Takeshima, 竹島(죽도))로,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한 지도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 데에도 범국민적인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있어왔다. 1982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김광태가 불렀고, 서경덕 교수가 2005년에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감성적으로 열정으로 접근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보다 이성적으로 풀어낸 체계적인 독도 관련서이다. 특히 저자는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독보적인 독도 연구가 호사카 유지 교수여서 더욱 눈길이 간다.
이 책은 독도가 처한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한 뒤에, 19세기 초까지 한일 양국의 역대 왕조와 정권이 독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한일관계사를 중심으로 밝힌 ‘독도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도가 진정 어느 나라의 땅인지를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독도문제에 대한 객관적 해법과 치밀한 대응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한일관계사로 증명하는 독도의 정체성: 독도의 주권은 대한민국에 있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면서 한동안 주춤하던 한국의 독도연구가 활발해졌다. 독도교육, 독도 관련 이벤트 등도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2008년 7월 이후 더욱 두드러진다. 2008년 7월에 일본이 중학교 신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일본에서 부르는 독도의 명칭)는 일본영토”라고 기재했고, 일본의 로비를 받은 미 지명위원회가 독도의 주권국가를 한때 “한국”에서 “미지정”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공세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독도연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독도의 내력을 역사적·정치사회적으로 명확히 파악해 정리함으로써 일본의 영유권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자세를 말한다. 독도연구가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치·경제적으로 국제여론을 움직이는 일본의 전 방위적인 공세에 밀려 결국 독도의 주권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 주목해 이 책은 19세기 초까지 한일 양국의 울릉도 및 독도 관련 사료를 다루면서 독도문제를 치밀하게 풀어나간다. 여기에는 우리 역대 왕조가 울릉도와 독도에 시행한 정책은 물론이고, 조선 왕조와 민간의 구체적 응전방식, 독도문제에 깊숙이 개입한 조선과 일본 양국의 전략과 전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객관적 자료로 승부하는 독도 연구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독도문제에 접근할 때마다 애국심을 강조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에 감정이 좋지 않은데, 수시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해 국민들의 감정은 절대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애국심에 비해 독도연구와 독도영유권 논리 개발에 쏟는 우리의 노력은 너무도 인색했다. 우리는 독도가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만 생각했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독도를 어떻게 자기네 땅이라고 선전하며 설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 독도에 관한 자료를 확보해 그것으로 독도영유권에 대한 논리를 체계화시키는 데도 소홀히 했다.
이 책의 저자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본의 공세에 대응해 독도가 우리 땅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 근거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두 차례나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당시 일본 정권의 확인까지 받은 안용복의 활약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된 조선의 지도는 물론이고, 에도막부 등 일본의 역대 정권이 색깔이나 글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땅으로 표기한 지도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가 제시한 자료 가운데는, 일본의 역대 정권이 울릉도와 독도가 “원래 조선 땅이었다”고 인정한 문서까지 들어가 있다.
한편 저자는 조선 숙종 때 조정과 신료들이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마치 울릉도와 다케시마(당시 울릉도를 가리킨 지명)가 다른 섬인 것처럼 언급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이로 인해 당시에 일본이 울릉도를 포함한 주변 섬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바뀌면서 어설픈 대응에서 탈피해 울릉도 및 독도영유권을 확실하게 주장하게 된다. 위기를 간신히 극복하기는 했지만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마저 일본에게 넘어갈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또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조선 조정과 대신들이 어민 안용복의 활약상을 알고도 그를 죽이려 하다가 결국 유배를 보낸 일까지 기록했다. 이렇게 저자는 역대 왕조의 적극적인 대응뿐만 아니라 잘못한 부분까지 언급함으로써 앞으로의 독도영유권 전략을 세워나가는 데 있어서 자양분으로 삼으려 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대 왕조와 일본 정권의 문서와 기록, 그리고 지도를 면밀히 살펴, 독도영유권이 우리나라에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일본의 역대 정권은 이미 울릉도 등지로 배를 타고 나아가면 안 되는 일이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며, 원래 자기네 땅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단지 그들은 그런 자료를 제시하고 있지 않은 채 자국에 유리한 자료와 해석만을 국제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논리와 방침에 대응해 독도영유권을 지켜나가려면,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독도와 관련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또 저자는 일본의 주장 가운데 비판하기 어려운 것도 가르쳐서 국민 모두가 함께 해결하자고 주장한다.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독도와 독도영유권에 관해 알아본 이 책을 통해, 독도에 관한 애정과 관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전 국민이 합심해서 대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한다.

역사가 증명한 독도의 정체성
● 우산과 무릉은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 『고려사 지리지』
●왜적이 우산무릉에서 도둑질을 했다. - 『태종실록』
●우산과 무릉 두 섬은 현의 정동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 『세종실록 지리지』
●울릉·우산 모두 우산국의 땅. 우산은 즉 왜가 말하는 마쓰시마(당시 독도의 일본식 이름)다. - 『동국문헌비고』
●“마쓰시마(독도의 옛 일본이름)는 자산도(독도의 옛 이름)이고 우리나라 땅이다. 너희가 감히 그곳에 가느냐!” - 안용복
●독도는 조선령이며 일본령이 아니다. - 에도막부
●일본영토 범위에는 독도는 물론 홋카이도도 없다. - 『고사기』, 『일본서기』에 드러난 내용

목차

들어가면서|독도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8

독도시론|미국지명위원회가 일으킨 파문·10
2008년 7월의 독도사태·17 / 국제사회는 왜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는가·18 / 우리나라 독도외교의 현주소·20 / 일본의 전략: 물밑에서 그러나 집요하게·22 / 샌프란시스코조약과 리앙쿠르 암·23 / 붕괴되는 일본의 주장·27 / 적확한 논리와 활발한 홍보 필요·33 / 일본은 왜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우기는가 ·34 / 갈등을 풀 열쇠는 무엇인가 ·37 / 그들이 미워도 그들을 알아야 이긴다·39 / 진정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모색하며·42

제1장 어느 나라가 독도를 영토로 삼았나 ·46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시켰을 때의 삼국과 일본·47 / 나무로 만든 사자로 우산국을 복속시킨 이사부·51 /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왕래했을까 ·54 / 한일관계사로 본 삼국시대 이후의 울릉도와 우산도·56
▶ 고대 왜의 군사력·68

제2장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울릉도와 독도·74
고려시대의 울릉도와 우산도·75 / 고려말 울릉도에 들른 왜구·83 / 조선과 수교한 일본·88 / 울릉도 공도정책을 추진한 태종·94 / 쇄환정책을 실천에 옮긴 김인우의 활약·98 / 대마도를 공격한 세종대왕·106 /『고려사 지리지』에 나타난 우산과 무릉·108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우산과 무릉·110
▶ 왜구의 정체성·114

제3장 요도, 삼봉도 수색과 『신증동국여지승람』·118
실패로 돌아간 요도 수색작업·119 / 성종 때 벌어진 삼봉도 수색작업·122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우산도와 울릉도·126 /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말까지의 조선과 일본·135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140

제4장 에도막부와 울릉도 도해면허·142
울릉도(다케시마) 도해면허·145 / 조선의 무인도에 도해를 허가한 도해면허·152 / 에도막부와 돗토리번의 유착관계·158 / 독도(마쓰시마) 도해면허와 두 섬으로의 도해·162 /『은주시청합기』·164
▶ 다케시마와 마쓰시마·174

제5장 울릉도 쟁계·178
사건의 발단·179 / 집권세력이 바뀐 조선 조정·184 / 조선 조정과 귤진중이 벌인 논쟁·190 / 180년 만에 울릉도 등지에 파견된 장한상·194 / 에도막부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조사하다·198 / 에도막부, 울릉도 도해를 금지시키다·204
▶ 조선과 일본의 대 대마도 관계·211

제6장 안용복의 제2차 도일과 울릉도 쟁계 종언·214
안용복, 울릉도에서 다시 일본어민들을 만나다·215 / 안용복의 제1차 도일과 당시의 일본·217 / 요나고와 돗토리성의 안용복·219 / 안용복이 제2차 도일을 감행한 동기·221 / 일본어민들을 쫓아간 안용복·223 / 1696년 오키 섬에 표착한 안용복·226 / 제2차 도일을 통해 돗토리번으로 간 안용복·236 / 돗토리성에 체류한 안용복·238 / 대마도주의 아버지 소 요시자네와 안용복·242 / 안용복에 대한 조선 조정의 평가·245 / 1693년 에도막부는 조선인의 울릉도 출어금지를 요청했다·248 / 울릉도 도해금지령과 안용복·250 / 안용복 사건의 쟁점·252 / 울릉도 쟁계의 종언·253
▶ 울릉도 쟁계의 종언을 고한 소 요시자네의 답서와 구상지각·257

제7장 울릉도 쟁계 이후의 울릉도와 독도·264
조선 조정의 울릉도 등지 수토·264 / 우산도가 현재의 독도임을 보여 주는 조선의 지도들·268 /『동국문헌비고』에 나타난 독도·270 / 일본의 왜곡된 논리·273 /『만기요람』의 우산도·278 / 하치에몽, 울릉도로 도해했다가 사형당하다·279
▶ 에도막부 말에 울릉도를 노린 초슈번·284

제8장 울릉도 쟁계 이후의 일본지도·288
울릉도 쟁계 이후의 관찬 일본지도·288 / 에도시대의 중요한 민간지도들·298
▶ 고대로부터 근세까지의 지도제작 방법과 역사성·306

[부록|독도정책에 관한 제안]
독도 문제에 관한 국민의 이해도 제고 및 일체감 조성·310

참고문헌·317
찾아보기·318

저자 소개 

저 : 호사카 유지 (Yuji Hosaka,ほさか ゆうじ,保坂 祐二)
 
195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교 공학부 졸업 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한일관계 연구를 위해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 체류 15년 만인 2003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2011년 독도 공로상, 2013년 홍조근정 훈장, 2018년 독도평화대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외교부 독도정책위원회 자문위원과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 동북아...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4970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독도에 대한 일본의 「고유영토론」 논리가 상당 부분 무너져버린 지금 일본 정부 스스로도 이 왜곡된 논리를 후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이며 어린 학생들에게 독도가 역사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잘못된 교육의 결과를 먼 후일 어떻게 다잡을 것인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이에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에서는 그동안 독도교육에 대한 연구를 정력적으로 해온 연구자들의 논고들을 「독도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한일 양국의 독도교육과 독도교육정책-」이라는 주제로 체계적으로 엮어 단행본으로 간행하기로 하였다. 여기에 실린 논문들은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공동연구원으로 제출한 연구 성과와 기관지 ??獨島硏究??에 기고한 논문들 중 엄선된 논문들이다. 본서에 논문을 기고해준 독도교육 전문가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난 2022년 2월 교육부 동북아역사대책팀에서는 〈2022년 독도교육 활성화 계획〉을 발표하여 학생, 교원, 대국민을 대상으로 독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 및 독도 영유권의식 제고를 위한 독도교육 활성화 방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독도 왜곡교육에 의한 도발이 가일층 가중되고 있는 엄중한 시기에 맞추어, 교육부 정책중점연구소인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에서는 우리나라 독도교육 활성화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본서를 기획하였다. 특히 독도교육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선 학교교육의 현장에서 독도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지침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책머리에 中)

목차

책머리에

제1부 한국의 독도교육

우리나라 초등학교 독도 교육정책 및 독도 교재 분석 | 전기석·박경근
1. 서론 / 2. 초등학교 교육과정 내 독도교육 / 3. 독도교재의 내용체계 분석 / 4. 요약 및 결론

우리나라 중학교 독도 교육의 현황과 과제 | 박재홍
1. 머리말 / 2. 중학교 교과서의 독도관련 내용체계 / 3.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독도교육 추진 내용 / 4. 중학교 독도교육의 현황 / 5. 중학교 독도교육의 과제 / 6. 맺음말

우리나라 고등학교 독도 교육의 현황과 문제점 | 이광현
1. 머리말 / 2. 2015 개정 교육과정과 ‘독도 교육’ / 3. 고등학교 독도교육의 현황과 문제점 / 4. 고등학교 독도 교육 개선을 위한 제언 / 5. 맺음말

초중등학교 독도교육실천연구회의 활동 분석 | 심정보
1. 머리말 / 2. 독도교육실천연구회의 구성과 운영 / 3. 독도교육실천연구회의 연구 활동 / 4. 맺음말

제2부 일본의 독도교육

일본 중학교 독도교육의 실태: 교과서 기술내용의 변화를 중심으로 | 박지영
1. 들어가며 / 2.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독도 교육 추이 / 3. 2015년 검정통과 일본 중학교 교과서 내용 비교분석 / 4. 나가며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을 통해 본 일본의 영토교육: ?개정 교육법?부터 ?2018 고교 학습지도요령?까지 | 이우진
1. 머리말 / 2. 아베 내각의 ?개정 교육기본법?에 담긴 영토교육 이념 / 3. ?제1기 교육진흥기본계획?(2008~2012)의 영토교육 / 4. ?제2기 교육진흥기본계획?(2013~ 2017)의 영토교육 / 5. ?제3기 교육진흥기본계획?(2018~2022)의 영토교육 / 6. 결론

일본 중학교 지리 교과서의 독도 관련 기술 연구: 2020년도 검정통과본 내용 분석과 기술 배경 검토를 중심으로 | 엄태봉
1. 머리말 / 2. 중학교 학습지도요령과 해설서의 지리 교과와 독도 관련 기술 변화 / 3. 2020년도 검정통과 지리 교과서의 독도 관련 기술 내용 분석 / 4. 2020년도 검정통과 지리 교과서의 독도 관련 기술 배경 검토 / 5. 맺음말

일본 시마네현 독도교육정책의 동향과 방향 | 송휘영
1. 머리말 / 2. 최근의 움직임과 독도관련 정책기조의 변화 / 3. 시마네현 독도관련 시책의 전개와 현황 / 4. 맺음말

제3부 한일 독도교육정책의 비교: 방향성과 대응방안

일본이 부정하는 한국의 독도교육 | 심정보
1. 머리말 / 2. 한국의 초중등학교 독도교육 현황 / 3. 일본이 비판하는 독도교육의 문제점 / 4. 맺음말

개정 『학습지도요령』과 개정 『교육과정』의 독도기술 비교 | 송휘영
1. 머리말 / 2. 일본의 독도 정책 및 교육의 변화 / 3. 개정 『학습지도요령』과 2015년 『교육과정』 독도관련 기술 비교 / 4. 맺음말

한국의 독도 교육정책: 초·중·고등학교의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 박창건
1. 머리말 / 2. 영토교육 강화로서의 독도 교육 / 3. 한국의 독도 교육과정 / 4. 개정 교육과정에서 독도교육의 특징과 한계 / 5. 맺음말

일본 독도 교육의 현황과 방향성 | 송휘영
1. 머리말 / 2. 일본 학교교육에서 독도에 관한 동향 / 3. 일본 고등학교 독도 교육의 현황분석: 시마네현의 경우 / 4. 일본 독도 교육의 방향성 / 5. 맺음말

한일관계에서 영토교육의 현재적 의미와 방향 | 박창건
1. 머리말 / 2. 영토교육 : 배타적 민족주의로부터 지역공동체적 시민주의로 / 3. 한국과 일본의 영토교육 현황 : 경상북도와 시네마현의 독도교육을 중심으로 / 4. 독도교육의 현재적 의미 / 5. 맺음말
 

저자 소개 (10명)

저 : 전기석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 석사과정 졸업
주요업적: ?2015 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지리의 독도교육 교수-학습 모형 개발?(독도연구 29) 등 다수
저 : 박경근
 
(재)독도재단 교육연구부 차장
주요업적: ?중학생들의 독도(Dokdo) 인식 및 바람직한 독도교육에 관한 연구?(독도연구 21), ??독도의 자연??(공저, 경북대출판부) 외 다수
저 : 박재홍
 
성광중학교 교사
주요업적: ?우리나라 중학교 독도 교육의 현황과 과제?(독도연구 28) 등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4935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독도는 우리 땅’, 정말 왜 그런지 아시나요?
동해의 작은 화산섬이 동북아 국제 정치의 최전선이 된 이유!


우리나라 사람 중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 근거와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대다수는 일본이 단순히 억지 주장을 펴고 있으며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이라는 믿음 정도만 갖고 있을 뿐이다.

사실 독도 문제는 역사가 워낙 길고 쟁점이 여럿이며 연구 성과 역시 꾸준히 쌓이고 있기 때문에 단숨에 파악하기 어렵다.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독도 문제가 따로 안내서가 필요할 만큼 단순한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지점이 2019년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독도를 “반일 종족주의의 최고 상징”이자 “환상의 섬”으로 지목해 논란을 빚은 『반일 종족주의』책이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라 있었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독도 120년』은 그 논란을 포함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도 문제의 120년 역사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흥미진진하게 엮어낸 독도 문제의 기본 안내서이다. 이 작은 섬에는 동북아시아의 근현대사가 압축적으로 다 담겨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여러 국가와 강렬한 인물이 총 출동해 각자의 입장과 이득에 따라 얽히고설키며 ‘대하드라마’와 같은 국면을 만들어 낸다.

목차

들어가며

1. 대한제국, 독도를 울도군에 소속시키다: 1900~1905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우용정 #배계주

2. 시마네현에 강제 편입된 작은 섬: 1905~1945년
#나카이 요자부로 #야마자 엔지로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심흥택

3. 되찾은 국토를 지키는 거대한 첫걸음: 1947년, 한국
#홍종인 #신석호 #방종현

4. 다시 독도를 노리다: 1947년, 일본
#가와카미 겐조 #윌리엄 시볼드

5. 분쟁의 불씨를 남긴 대일평화조약: 1947~1951년
#존 포스터 덜레스 #유진오 #딘 러스크

6. 평화선을 선포하다: 1951~1952년
#이승만 #김동조

7. 일본의 강·온 양면 공격: 1953~1962년
#변영태 #외교 각서 논쟁

8. 한일회담, 막판에 독도 문제를 덮다: 1961~1965년
#박정희 #김종필 #김종락

9. 한동안 잦아든 동해의 파고: 1965~2005년
#최종덕 #김성도 #태정관지령 #이한기

10. 다시 거세지는 일본의 도발: 2005년~현재
#다케시마의 날 #시모조 마사오

저자 소개

저 : 이선민 (李先敏)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 4월 조선일보사 입사 후, 현재 문화 분야 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에 있다. 1997년 영국 런던대 SOAS(동양아프리카학대학)와 2003년 미국 브라운대 왓슨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전공 분 아니라 인문 ·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높아 '저널리스트 같은 학자'가 될 것이라...

책 속으로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900년부터 현재까지 독도와 관련하여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을 알아야 한다. 그 이야기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와 같다. (…) 이 책은 지난 120년 동안 복잡하게 얽힌 독도 문제의 역사를 지정학과 인물에 중점을 두고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재구성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 p.6

일본 정부가 경찰 주재소까지 설치하면서 울릉도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동북아 전략에서 울릉도가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었다. 대륙 침략을 노리는 일본이나 남하 정책을 펴고 있던 러시아는 모두 동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울릉도를 차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 p. 39

나카이는 독도 인근 바다에서 강치잡이 독점권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생각해 한국 정부로부터 독도를 임차하려고 했다. 그런데 도쿄에서 일본 정부 인사를 만나 그 방법을 묻는 과정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해서 자신에게 대여해 달라는 청원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하게 됐다.
--- p.49

윌리엄 시볼드(1901~1980)는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 하급 외교관으로 출발했지만 맥아더의 신임을 바탕으로 빠르게 승진했다. (…) 1949년 11월 미국 국무부가 대일對日평화조약 제5차 초안에서 독도를 제주도·거문도·울릉도와 함께 일본 영토에서 배제하자 “리앙쿠르암(다케시마)에 대한 재고를 건의함. 이 섬에 대한 일본의 주장은 오래되고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됨”이라는 전문을 보냈다.
--- p.99

독도 폭격 사건이 발생한 지 두 해가 지난 1950년 6월 8일 독도 동도의 몽돌해안에서 경상북도 지사 조재천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난遭難어민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가로 43cm, 세로 136cm, 폭 19cm의 비석에는 피해 어민의 넋을 위로하고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밝히는 내용이 새겨졌다. 이렇게 해서 독도는 막 독립을 되찾은 신생 대한민국의 주권을 상징하는 섬으로 떠올랐다.
--- p.140

김종필은 (…) “농담으로는 독도에서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매기 똥도 없으니 폭파해 버리자고 말한 일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한일회담에 장애가 된다면 독도를 폭파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종필은 훗날 “하도 일본 지도자들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길래 ‘당신들 손에 넘겨주느니 차라리 폭파해 버리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해명했다.
--- p.172

최종덕이 독도에 들어간 목적은 처음엔 경제적 이득이었다. (…) 그러는 와중에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 등을 접했고 점차 자신이 독도를 지킨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우리 청년들을 믿습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내 뒤를 이어 독도에 살면서 독도를 지켜 갈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 p.188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와 태정관지령이 발굴됨으로써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한국과 일본이 모두 독도를 한국 영토로 생각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였으며 1905년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근대적인 국제법 원칙에 따라서 다시 일본 영토로 편입됐다는 일본의 주장에 큰 타격을 안겼다.
--- p.197

다케시마의 날 제정은 러시아와 영토 분쟁 중인 북방 영토(쿠릴 열도의 남쪽 4개 섬)와 달리 독도에 대한 일본 국민의 관심이 높지 않다는 인식에서 시작됐다. 1981년 일본 정부는 매년 2월 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지정했다. 그러자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의회에서는 독도 문제에 관한 전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 독도 강제 편입 100주년을 앞두고 상징적인 기념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탄 것이다.
--- p.211
 

출판사 리뷰

반일 종족주의 논쟁을 계기로 정확한 안내서가 필요함을 느껴

저자 이선민은 학계의 성과를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학술기자로서 오랫동안 일한 전직 언론인이다. 지난해인 2019년 <주간조선> 지면상에서 벌어진 반일 종족주의 논쟁에 참여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측의 맞은편에서 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고, 바로 그 논쟁이 이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독도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1950년대 일본이 외교 각서 논쟁을 걸어온 이래 (…) 동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평생 학계와 대중 독자를 연결하는 일을 해왔던 언론인으로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 독도 문제를 정확하게 소개하는 책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후기에서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논쟁을 위해 독도 문제와 관련된 저서와 연구 논문을 읽어 가면서 당면한 논쟁과는 별도로 (…)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커다란 발전이 있었는데도 그 성과가 일반인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의 핵심부터 분쟁을 주도하고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독도 120년』은 문제의 핵심을 근현대 동북아시아 국제 정치, 정확히는 지정학적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발견된 중요한 사료들과 한?일 서로가 구축한 논리 등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도 문제를 다룬 기존 책들이 대부분 분쟁 자체를 설명하는 데 그쳤던 것과 달리 분쟁을 주도하고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주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 저지르는 행패를 정부에 보고했으며 그 공적을 인정받아 최초로 울릉도 군수에 임명된 배계주라던가, 독도를 당연히 대한제국의 땅이라 생각해 주변의 어업권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일본 정부에 문의했던 사업가 나카이 요자부로, 맥아더 장군의 신임을 받은 외교관으로서 적극적으로 일본 측의 의견을 미국에 전달했던 윌리엄 시볼드, 한일회담 당시 독도 폭파론을 언급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김종필 등 독도를 둘러싼 다종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들은 재미를 배가하는 한편 독도 문제를 우리가 겪은 이야기처럼 생생히 살아 숨 쉬도록 만든다.

『독도 120년』은 그 독도 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반박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저 작은 섬 독도가 궁금했던 사람 그 모두에게 충분히 흥미진진한 안내자 역할을 해줄 것이다.

사회평론 지식 총서 SPIKE의 두 번째 책!

우리 사회의 이슈를 예리하고 강렬하게 담아내는 SPIKE 지식 총서는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지식, 한때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오랫동안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지식을 발굴하여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엮어냅니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4931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울릉도와 독도는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영역에 속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생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불법 도해는 끊이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조선의 백성들과 관리들이 침입자들을 쫓아내고 우리의 영토를 지켜왔다. 한편 일본의 태정관 지령이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 문제에 대한 일본 측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본 정부는 일본의 고유 영토론을 주장하는 등 독도에 대한 도발의 수위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독도 영유권 이슈는 한일 양자 간에만 국한되는 문제인가? 그리고 독도 영유권에 관한 논쟁은 동아시아 또는 극동에만 한정되는 특수한 문제인가? 외부 세계에서는 이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나?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에서는 19세기 동안에 일본이 독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정황을 Map Trade의 역사를 통해 파헤치고자 한다.

독도가 한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의 문제를 한일 양국 간의 갈등 양상으로 국한시켜 볼 것이 아니라, 세계 교류사, 항해사, 지도 제작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편적인 테마로서 다뤄질 필요가 있으며, 이 섬의 영유권에 관한 의문은 Map Trade의 역사를 통해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독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지리학(지도학), 역사학(사상사, 교류사, 해양사),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들한테도 영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목차

프롤로그

제1부. 극동으로

 1장. 미지의 세계
  1. 1700년 이전, 서구 세계의 극동 인식
  2. 조선왕조의 세계 인식
  3. 소빙기와 모피 무역

 2장. 19세기의 동아시아 정세
  1. 동아시아 3국의 개항
  2.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3. 일본 측 주장의 모순

제2부. 울릉도·독도의 발견과 지도 제작의 역사

 3장. 서구 세계에 전해진 한국의 섬들
  1. 러시아-청나라의 충돌과 청나라의 지도 제작
  2. 극동에 관한 지리 정보의 유럽 전파

 4장. 지도에 없는 섬을 발견하다
  1. 라페루즈의 항해와 ‘울릉도’의 발견
  2. 아르고노트호의 동해 진출과 ‘의문의 섬’ 발견

 5장. ‘섬들의 정체’에 의문을 갖다
  1. 브로튼의 동해안 탐사와 오류의 발견
  2. ‘아르고노트’는 실존하지 않는 섬

 6장. 울릉도·독도 존재의 공식화
  1. 독도를 목격한 서구인들
  2. 영불 연합 함대의 독도 재발견

제3부. 기술적 오류와 인식의 퇴보

 7장. 일본의 지도 제작과 독도에 대한 무지
  1. 일본의 세계지도 제작
  2. 일본의 서구지도 모사와 독도에 대한 인식의 퇴보

 8장.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
  1. 무비판적인 서구 지도 모사: 독도 누락
  2. 조선지도의 영향: 두 개의 울릉도
  3. 일본의 전통적 인식 틀: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역

 9장. 일본의 독도 인식과 영유권 문제
  1. 일본의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불법 편입(1905)
  2. 일제강점기, 일본의 독도 인식

저자 소개

저 : 이상균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프랑스 껑대학교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프랑스 지리교육의 이해』(2012),『Une discipline entre nation et empires : histoire de la geographie scolaire en Coree, 1876-2012(2013),『해양영토 바로알기』(2014, 공저)...
 
안녕하세요. 이 책의 저자 입니다.
skyigeo (skyigeo@naver.com) | 2021-07-15
일반적으로 영토문제는 자의적, 주관적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경향이 강한데, 이 책에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독도와 관련된 지도제작 및 영토문제를 다루고자 하였습니다. 예컨대, 일반적인 독도 관련 책들을 보면, 한국의 역사나 조선의 지도를 중심으로 관련 내용을 다루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은 서구인들이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지도제작의 역사를 논하면서 한일간의 특수한 이슈인 독도문제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습니다. - 지도제작에 대한 시계열적 분석을 시도하였습니다(Historical cartography). - 특히, 지도제작에 관여했던 다양한 국적의 지도제작자, 탐험가, 천문학자들의 행적과 만남, 그리고 교류(Map trade)를 추적함으로써 지도제작의 흐름과 계보, 그리고 영토문제와 관련된 특이점을 도출하였습니다. 2000년대 이후, 전 지구적으로 기온이 급격히 상승함에 따라 이상기후나 지구온난화가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15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소빙기 기후를 다루면서 동시대에 성행했던 모피무역에 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독도와 관련된 지도제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국의 무역선 아르고노트호인데, 이 배가 바로 모피무역에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모피무역은 모피무역 그 자체에 관한 논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토확장 및 식민지전쟁, 그리고 지도제작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은 이 책의 3장 이후에 본격적으로 다루어집니다. 한국의 동해상에 진출했던 다양한 국적의 탐험가들과 지도제작, 그리고 맵 트레이드 등에 관한 최신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였으며, 최초의 독도 스케치가 포함된 천연색 항해일지 자료를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독도나 영토문제에 관한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지도제작의 역사, 동서교류사, 항해사 등에 관한 일반 지식이나 교양을 얻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안녕하세요. 이 책의 저자 입니다.
skyigeo (skyigeo@naver.com) | 2021-07-10
일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타국의 영토를 탐내고, 무분별한 침략을 일삼는 등 여전히 팽창주의적 야망을 갖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 일본에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다케시마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행태들은 일본 정부의 비뚤어진 대외정책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으로서 독일과 일본이 종종 비교되는데, 독일은 철저한 반성과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오늘날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반면,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보다는 그들의 과오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듯한 인상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일본이 독도는 그들의 고유한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본의 행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이 하는 그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가? 절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함이 없다. 제3자가 보기에는 한국과 일본 간의 싸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일 간의 갈등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시 말하면, 독도 영유권에 관한 문제가 한일 간의 갈등적 이슈로 보여져서는 안되며, 일본이 과거로부터 저지른 수많은 문제들 속에 독도이슈를 함께 담아서 일본의 부정적인 행태가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구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대학살, 위안부 문제 등의 카테고리 안에서 일본의 독도도발 이슈를 함께 다룰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 우리가 일본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국제적인 공감과 여론의 도움을 받으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외부에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과 학자들은 일본 정부의 무모하고 헛된 망상에 현혹되지 말고, 일본 정부가 정도를 걸어갈 수 있도록 질책하고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일 간의 오랜 교류와 우정의 역사를 지켜가고, 상호 신뢰속에서 공동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 리뷰

울릉도와 독도는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영역에 속해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생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불법 도해는 끊이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조선의 백성들과 관리들이 침입자들을 쫓아내고 우리의 영토를 지켜왔다. 예컨대 17세기 말 일본 어부들이 불법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 건너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목재를 벌목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안용복과 같은 조선의 어부들은 일본인들의 불법 도해에 항의하다 일본에 피랍되기도 하였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기도 하는 등 우리의 해양 영토를 스스로 지켜왔으며, 조선의 정부 또한 정기적으로 울릉도에 수토사들을 보내 이들 섬에 대한 조선 왕실의 영유 의지를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한편 일본의 태정관 지령이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 문제에 대한 일본 측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본 정부는 일본의 고유 영토론을 주장하는 등 독도에 대한 도발의 수위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의 문제를 한일 간의 갈등 양상으로 몰고가서 결국, 국제사법재판소 등 제3의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과거에 일본이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다거나, 일본이 이 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된다면, 지금처럼 역사를 왜곡하는 비신사적인 행태를 오래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도 영유권 이슈는 한일 양자 간에만 국한되는 문제인가? 그리고 독도 영유권에 관한 논쟁은 동아시아 또는 극동에만 한정되는 특수한 문제인가? 외부 세계에서는 이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나? 이 책에서는 19세기 동안에 일본이 독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정황을 Map Trade의 역사를 통해 파헤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왜 19세기를 주목하고자 했나? 19세기는 동서양의 만남과 교류가 극대화되던 시기로서 탐험과 항해를 통해 지도 제작이 완성되던 시기이다. 한편 일본은 19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지도 제작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서구의 지도 제작 전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일본에서 생산된 지리 정보를 서구 세계에 보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19세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와 가장 가까운 과거이며,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그리고 서구 세계와 동아시아 세계를 연결해 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용돌이치는 19세기의 극동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일방적인 억지 주장은 힘을 잃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위치해 있는 해상 공간은 일찍이 서구인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으며, 항로상의 이정표로서 또는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그 중요성과 가치는 점점 더 부각되었고, 19세기 극동의 상황은 지도 제작에도 비중 있게 반영되었다.

한반도 동해상의 섬들에 관한 정보는 1717년에 청나라에서 제작된 「황여전람도」에 반영되어 프랑스로 전해졌으며, 20년 후인 1737년에 프랑스 왕실에서 프랑스어 버전으로 다시 제작되었고, 곧이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과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18세기 후반, 영국과 프랑스 등 해양 강국들은 중국을 통해 입수한 극동에 관한 지리 정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극동 탐사에 나섰다. 기존 지도에 미처 수록되지 않았던 지리 정보는 탐험을 통해 직접 확인한 후 지도에 새로 추가되었고, 지도상에는 있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섬들에 대해서는 지도에서 삭제하는 등 19세기를 지나는 동안 극동에 관한 지리 정보는 점점 더 완결도가 높아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등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지리 정보는 활발하게 유통되었으며, 탐험가들의 증언은 곧바로 지도 제작에 반영되었다.

일본은 세계지도 제작 과정에서 영국 등 서구의 지도 제작 전통과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 예컨대 영국의 상선 아르고노트(Argonaut)호의 극동 항해 이후, 지도상에 잘못 표현되었던 의문의 섬 아르고노트를 일본에서 그대로 따라 그리는 과정에서 울릉도를 아르고노트 섬에 비정하고, 독도를 다즐레(울릉도)에 비정하는 실수를 범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는 19세기 동안에 독도를 지도상에서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였으며 한동안 그러한 상태가 유지되었는데, 1904~1905년 무렵 러일전쟁 시기에 독도에 대한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일본에서는 독도의 위치 및 명칭과 관련된 일대 혼란이 야기되었다.

1905년에 일본은 돌연 독도를 시마네현에 다케시마(竹島)란 명칭으로 불법 편입시켰지만, 사실 다케시마는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울릉도를 가리키던 명칭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로 알고 있었는데, 19세기 동안의 일대 혼란을 계기로 울릉도 명칭이 마쓰시마가 되고, 독도 명칭은 다케시마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19세기 내내 일본에서는 독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였으며, 1905년에 이르러 허둥지둥 엉뚱한 이름으로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불법적으로 편입시키는 일을 저지르고, 오늘날 이 섬이 그들의 고유 영토라고 억지 부리고 있는데, 이 상황을 어찌 보아야 할 것인가?

독도가 한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의 문제를 한일 양국 간의 갈등 양상으로 국한시켜 볼 것이 아니라, 세계 교류사, 항해사, 지도 제작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편적인 테마로서 다뤄질 필요가 있으며, 이 섬의 영유권에 관한 의문은 Map Trade의 역사를 통해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독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지리학(지도학), 역사학(사상사, 교류사, 해양사),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들한테도 영감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4936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독도의 역사를 밝힘으로써 한일 간의 무의미한 마찰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최근의 독도에 대한 역사연구는 잇달아 사료가 발굴되어 새로운 사실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그러한 사료에 입각해 지금까지 본서의 저자인 나이토 세이추와 박병섭이 잡지나 인터넷 등에 발표한 논문을 수정해서 본서를 편찬했다.

목차

서문
옮긴이의 말

제1장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인가?

제2장 독도의 역사상의 쟁점
1. 조선 사서에 나타나는 독도와 우산도
2. 오키의 안용복
3. 메이지정부의 독도 판도 외 지령
4. 메이지시대의 수로지와 국경 확정
5. 대한제국 칙령의 '석도'
6. 다케시마(독도)문제의 사적 검증
7. 국제사법재판소나 국제법에 의한 해결

제3장 일본 측 주장을 비판하다
1. 사쿠라이 요시코 씨에 대한 비판
2. 아사히신문사에 대한 질문서
3. 시마네현『포토 시마네』의 주목할 만한 점
4. 『포토 시마네』의 대일평화조약 논의 비판
5.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 「최종보고서」의 문제점 - 태정관 지령문을 중심으로 -

제4장 울릉도-독도 기행

제5장 자료
1. 겐로쿠 9병자년 조선 배 착안 한 권의 각서
2. 태정관에 의한 다케시마 외일도 판도 외 지령
3. 미국 대사관의 비밀서간
4. 독도 관련 연표
5.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관련 연표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4971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비밀약속'이 있다?
전후 한일관계사를 재해석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한국과 일본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조약에서 독도·다케시마의 영유권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 영유권은 한일 양국 정부가 각자 주장해도 좋고, 그 주장에 대해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현상은 일본이 인정하되, 한국은 더 이상 시설의 증축, 병력 파견 등 현상을 깨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장래 어업구역을 설정할 때, 한일 양국은 독도·다케시마 지역을 각각 배타적 수역에 포함시키고 중복된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이 합의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간다."

이 책 『독도밀약』은 과거사에 대한 검증인 동시에 현재진행 중인 첨예한 사안에 대한 기록이다. 책의 제목에 나와 있듯이 이는 영유권이라는 엄중한 사안에 대한 정치세력 간의 밀약을 다루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주관한 2009년 제21회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에 선정된 이 책은 전후 한일관계사를 영유권분쟁이라는 시각을 통해 재해석하였다. 또한, 최초로 공개되는 많은 이야기를 포함해 사실관계를 객관적·중립적으로 기술한다.

목차

프롤로그 ‘미해결의 해결’은 왜 성립되었나
1. 밀약 위에 구축된 한일관계
2. 덩샤오핑보다 30년 이상 앞서다
3. 국교정상화까지 치열한 협상과정을 추적하다

제1장 암중모색의 시대
1. 영토를 둘러싼 분쟁의 기원
2. ‘이승만 라인’의 설정과 한일단교
3. 대담한 유화카드를 선택한 기시 노부스케
4. 한일의 두 지도자, 하야하다

제2장 숙부와 조카사위의 대일외교
1. 친일정권의 탄생
2. 한일회담, 움직이기 시작하다
3. 오노 반보쿠와 한일 로비 라인
4. 청구권 자금을 둘러싼 공방
5. 이승만 라인, 사라지다

제3장 새로운 한일 로비
1. 오노 반보쿠-김종필 라인의 소멸
2. ‘돌격내각’의 탄생
3. 정일권-고노 라인에서 움직인 사람들

제4장 독도밀약
1. 고노 이치로, 본격적으로 움직이다
2. 어업 문제를 정리하다
3. 독도밀약의 성립
4. 밀약의 형태를 만들다
5. 밀약의 ‘정치학’

제5장 두 개의 상실
1. 문서의 상실
2. 정신의 상실

에필로그 시험되는 예지
1. 나니와부시 정치의 시대
2. 나니와부시 문화의 종언

저자 소개

저자 : 노 다니엘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MIT에서 정치경제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의 펠로우로 일본의 자본주의에 관해 연구한 후 홍콩과기대학 조교수, 중국인민은행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아시아 정치경제의 실무에 대한 관심으로 학계를 떠나 미국과 일본의 정부기업 관계 컨설팅회사와 싱크탱크에서 일했다. 2006년부터 ≪월간중앙≫의 객원편집위원으로 글을 써 왔으며 저서로 『우경화하는 신의 나라』(2006), 『아라...
 
역자 : 김철훈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50기 수습기자로 입사하여 사회부, 문화부, 국제부 기자 등을 거쳐 1996~1997년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과 도쿄 특파원을 지냈다. 2000~2001년 한국일보 자회사 한국아이닷컴 이사로 근무했으며, 다시 편집국에 복귀해 사회부, 국제부, 데스크 등으로 일하다 2005~2008년 도쿄 특파원으로 두 번째 부임했다. 특파원 임기를 마친 후 한국일보를 퇴사, 1년간 뉴시스 통신사...

책 속으로

그러면 나는 왜 이렇게 민감한 내용에 관해 ‘극도로 냉정한 필치’로 집필하게 되었는가? 나는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해외에서 성인기 대부분을 보낸 중년의 지식인으로서 한국에 선진적인 민주사회가 정착한 데 감격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형식적으로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왕성하면서도 실질적인 면에서는 ‘사회적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동조하는 풍토가 있다는 아쉬움을 느낀다. 이 풍토는 한국 사회를 아직도 구속하고 있는 민족주의와 연결되어 ‘괘씸한 생각’은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위험한 경향이 있다고 느낀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다케시마에 관해 어떤 약속이 있는데…….” 일본 총리를 세 번이나 역임한 노정치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나는 내 귀를 의심하는 기분이었다. 2006년 6월, 당시 나는 ≪월간중앙≫ 8월호에 특집기사를 기고하기 위하여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를 인터뷰했다. 문제의 발언은 한일관계에 관한 그의 의견을 듣던 중 나온 것이었다. 독도의 영유권에 관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정권 차원에서 맺은 비밀약속이 있다니! 놀라운 말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물으니 1965년에 체결된 한일국교정상화조약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일단 “선반에 얹어놓기로 한(棚上げ)” 비밀의 협정(取り決め)이 있다는 것이었다.
--- p.11

1951년 9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강화회의가 열렸다. 대일(對日)강화조약은 같은 달 8일 조인되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지만 전승국들로부터 관대한 대접을 받았다. 히로히토(裕人) 천황이 강화회의 수일 전인 8월 28일 ‘관대한 강화’에 대한 감사의 뜻을 미국 측에 전한 것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패전 처리의 일환이었던 영토 문제에서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의 내용은 일본의 커다란 외교적 승리였다. 독도가 한일 간 논쟁의 대상이 된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강화조약의 제2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중략) 이 문헌에는 독도나 다케시마(竹島) 혹은 옛 지명이라고 추측되는 ‘마쓰시마(松島)’라는 글자가 일절 없다. 독도는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하는 권리의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영토라는 주장의 가장 큰 근거는 여기에 있다.
--- pp.50-51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와 주변 장교들은 일본과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쿠데타 6일 후인 5월 22일 ‘혁명정부’의 외무장관에 임명된 김홍일(金弘壹)은 기자회견에서 “한일회담이 조기에 개최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날 이케다 총리는 “부산이 적화될 경우 일본의 치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남조선(한국)의 반공체제에 대해 일본은 큰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은 현실적으로 한국을 적극적으로 원조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도 일한교섭을 재개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혁명정부’가 국교정상화를 서두른 최대 동기는 ‘청구권’이라고 불렸던 자금의 확보였다. 한일교섭은 ‘재산권및청구권위원회’에서 진행되었다.
--- pp.112-113

고노와 우노, 김종락 3인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방안이 ‘미해결의 해결’이라는 것이었다. 이 ‘미해결의 해결’은 당시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명안’이라고 칭찬받고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고노의 ‘미해결의 해결책’은 나중에 중일 간의 영토 문제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이 내놓은 ‘미해결의 해결책’보다 먼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락은 “사실은 내가” 그 안을 내놓았다고 털어놓았다. 어찌 되었든 이 안은 한일 쌍방에 모양새가 좋은 것이었다. 한국 측에서 보면 ‘독도 문제 논의는 정상화된 이후에’라는 기존의 입장과 꼭 맞는 것이었다. 일본 측으로서도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는 사안을 ‘보류해 두는’ 것이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 p.271

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한울타리 안의 ‘우리’로 보았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에 잘 나타난다. 오노 반보쿠가 김종필을 처음으로 만난 장면은 오노가 목욕을 마치고 탕에서 나온 때였다. 당시 36세의 김종필은 오노가 초대면임에도 “오, 선생님의 물건 크네요”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의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자민당 부총재를 처음 만나서 하는 대화가 아니라 순진한 청년이 목욕탕에서 동네 선배를 만나서 하는 투의 말이다. 오노는(나중에 일본 정계에서 ‘문학청년’이라고 불렸던) 김종필의 이 파격적인 멘트가 마음에 들었고, 그 후로 파격적인 친한파 정치가가 되어,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부자관계”라는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 p.331

출판사 리뷰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정권 차원에서 맺은 ‘비밀약속’이 있다?
생존하는 한일외교사의 주역들을 인터뷰해 엮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전후 한일관계사를 독도 영유권분쟁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책!


이 책은 과거사를 검증한 것이면서 동시에 현재진행 중인 첨예한 사안에 대한 기록이다.
- 일본 마이니치신문(2009년 제21회 아시아태평양상 대상 선정도서)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해방 후 한일외교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를테면 ‘독도밀약’이라는 특종기사를 통해 구체적인 한일관계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은 책이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정권 차원에서 맺은 ‘비밀약속’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조약에서 독도·다케시마의 영유권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 영유권은 한일 양국 정부가 각자 주장해도 좋고, 그 주장에 대해 서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현상(status quo)은 일본이 인정하되, 한국은 더 이상 시설의 증축, 병력 파견 등 현상을 깨는 행위(status quo ante)를 하지 않는다. 장래 어업구역을 설정할 때, 한일 양국은 독도·다케시마 지역을 각각 배타적 수역에 포함시키고 중복된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이 합의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간다.”
- 독도밀약의 내용

놀랍게도 1965년에 체결된 한일국교정상화조약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일단 “선반에 얹어놓기로 한(棚上げ)” 비밀의 협정(取り決め)이 있었다. 그 전말은 이러하다.
1965년 1월, 당시 일본 자민당 부총재 고노 이치로(河野一郞)가 자필로 쓴 메모를 그의 비서 출신 중의원 의원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나중에 총리)가 들고 와 성북동에 있던 범양그룹 회장의 자택 홈바에서 당시의 국무총리 정일권에게 읽어주었고, 그 자리에는 김종락(김종필의 친형), 문덕주(나중에 외무차관), 그리고 시마모토(당시 ≪요미우리신문≫ 특파원)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건은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게 된다.

독도 문제, 어업권 문제 등 엄청난 사안들을 다루는 비밀협상을 벌인 장소가 왜 재벌그룹 회장의 홈바였을까? 1961년의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게 된 박정희는 취약한 정치적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국의 근대화’로 실력을 보이는 길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한일국교정상화’를 서둘러서 일본의 자금을 들여와, 이미 선포해놓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박정희는 국교정상화라는 외교적 거사를 처리하는 데에 두 개의 채널을 동원했다. 하나는 외무부를 중심으로 하는 관료들로 구성된 공식채널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혁명동지들’, 특히 자신의 조카사위이며 심복인 김종필과 그의 육사 동기생들로 구성되는 비공식채널이었다.

그들은 왜 독도밀약을 맺었나?

이 책은 과거사를 검증한 것이면서 동시에 현재진행 중인 첨예한 사안에 대한 기록이다. 책의 제목에 나와 있듯이 이는 영유권이라는 엄중한 사안에 대한 정치세력 간의 밀약을 다룬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밀약을 맺었으며, 그 밀약의 내용이 적힌 서류자료는 어디에 있을까?
한일국교정상화조약에 이르는 과정에서 독도의 영유권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니 당시의 상황에서 밀약은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빠르게 굴러가는, 그리고 멈출 수도 없는 역사의 마차 위에 올라탄 당시 한일의 권력자들은 이 중대한 사안을 어설프게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하느니 차라리 다음 세대의 지혜와 영단에 맡기자고 생각한 측면도 있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에서도 남중국해의 섬들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를 ‘미해결의 해결’로 처리한 바 있다.
그러나 밀약이 적힌 서류자료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당시 한국 측 관련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종락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태워버렸다고 했다. 전두환 장군을 대표로 하는 신군부가 구세대를 숙청하기 시작할 때, 박 대통령의 지시로 당시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관련 자료를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과 혁명주체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한다. 한편, 그 문서를 작성한 고노 이치로는 1965년 국교정상화가 된 직후 병사했다. 기록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습성으로 볼 때 고노의 후손이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독도밀약’이라는 존재를 ‘몇 쪽의 서류’가 아니라, 관련된 다양한 문건으로 시야를 넓혀 본다면 조각조각이 한국과 일본에 산재해 있을 것이라며 그 예를 들고 있다.

일본이 독도? 다케시마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뜨거운 민족애와 영토주의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애국심은 인류의 미덕으로 칭송되는 하나의 감정적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주관적인 판단, 냉정한 사실파악의 결여, 치밀한 외교전략의 준비 부족 상태에서 여과 없이 표출된 대표적인 예가 최남선의 조언, 그리고 이를 외교정책에 반영한 당시의 한국 정부가 아닌가 한다. 더구나 이러한 행동이 일부 인사들의 무책임한 낭만주의나 영웅심과 결합할 때, 그 후손은 큰 대가와 희생을 치를 수도 있다.”

일본인들은 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그 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가? 한국 못지않게 교육수준이 높으며 국제사회에서 경제 대국이라고 인정받는 일본인들은 왜 그렇게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차적인 근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를 정리하는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하는 영토에서 독도가 빠졌다는 사실이다. 그해 9월 8일, 이 조약이 조인되기 한 달 전에 당시 미 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였던 딘 러스크(Dean Rusk)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한다’는 서신을 한국 정부에 보냈다.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그가 독도는 한국에 영유권이 있다는 판단을 포기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그중에서 하나가 당시 한국을 대표하던 역사학자 육당 최남선이 한일회담에 임하는 한국 대표들에게 경솔하고 부적절한 조언을 한 것이었다. 1948년 한국에 정부가 수립되고 그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역임한 유진오가 한일회담의 대표단에 들어가게 되어, 영유권 협상을 앞두고 당시의 권위 있는 사학자 최남선을 방문하여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최남선은 “목포, 나가사키, 상해를 잇는 삼각형의 가운데쯤에 파랑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의 영유권도 독도영유권과 함께 주장해두라”고 조언했다. 이제 갓 근대정부를 수립한 당시의 한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힘이 달리고 준비가 부족했다. 연구태세를 비롯한 모든 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진오는 이 주장을 연합국 측, 즉 미국에 공식적으로 제기한다. 존재 자체를 모르는 파랑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당시 이미 체계적으로 외교를 전개하던 일본에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던 영유권 외교전에서 한국의 주장이 일본의 주장에 비해 진정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만 것이다.

전후 한일관계사의 요약판, 독도밀약!

독도밀약의 내용은 한국인들의 인식이나 정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화성(引火性)이 강한 사안이다. 이 책의 저자 노 다니엘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국에서 독도영유권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다는 것은 ‘괘씸죄’에 해당할 수 있는 일이니 공연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이승만 정권이 선포한 ‘평화선(平和線)’이 박정희 정권에 와서 사실상 철회되고 그 대신 독도밀약이 성립되는 과정은 전후 한일관계사의 요약판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도 한국의 독도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반론이 발을 붙일 수 있는 공식적인 발판이 되었던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 시작해 한일국교정상화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독도영유권을 논할 때 비로소 독도밀약의 배경과 맥락이 설명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중략) 나는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해외에서 성인기 대부분을 보낸 중년의 지식인으로서 한국에 선진적인 민주사회가 정착한 데 감격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형식적으로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왕성하면서도 실질적인 면에서는 ‘사회적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동조하는 풍토가 있다는 아쉬움을 느낀다. 이 풍토는 한국 사회를 아직도 구속하고 있는 민족주의와 연결되어 ‘괘씸한 생각’은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위험한 경향이 있다고 느낀다.”

전후 한일관계사를 독도 영유권분쟁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책!

1951년부터 시작해 1965년 1월의 독도밀약에 이어 6월의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이르는 시기는 실로 총과 칼이 아니라 말과 머리로 싸운 ‘역사전쟁’의 기간이었다. 14년의 기간에 7차에 이르는 한일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일본에서는 내각이 여섯 번 바뀌었고 한국에서는 이승만 정권이 장면정권을 거쳐 박정희 정권으로 바뀌는 역사의 대전환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승만 정권이 선포한 ‘평화선(平和線)’이 박정희 정권에 와서 사실상 철회되고 그 대신 독도밀약이 성립되는 과정은 전후 한일관계사의 요약판이라고 말한다.
소시샤에서 “다케시마밀약(竹島密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책은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주관한 2009년 제21회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에 놼정되었다. 이 책이 일본에서 권위 있는 학술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전후 한일관계사를 영유권분쟁이라는 시각을 통해 재해석했으며, 최초로 공개되는 많은 이야기를 포함해 사실관계를 객관적·중립적으로 기술했다는 데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서평을 쓴 일본 학자는 이 책이 “이승만 정권 시대로부터의 일한외교 교섭을 극도로 냉정한 필치로 묘사”했다고 평했다.

예상 독자층
한일관계 연구자 및 독도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4929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왜 동해 아닌 한국해인가

강효백 저자의 『한국해 KOREA SEA』는 풍부한 사료와 방대한 도편을 활용하여 동해에 매몰된 해양 명칭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 해양 영토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 입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우리 바다 고유의 이름의 변천을 통시적으로 살펴본다. 다양한 사서와 문헌,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멜 표류기』, 『걸리버 여행기』, 『모비 딕』까지 망라하여 잘못된 주장들은 짚고, 독자의 관심과 호기심을 환기한다. 저자의 열정과 집념으로 가려 실은 서양 각국과 중국, 일본의 도편 그리고 사료들은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서 저자의 힘 있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동해를 한국해로 바로잡는 일은 비단 한 바다의 이름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우리 해양 영토를 복원하고 확장하는 일이다. 동해 아닌 한국해로, 서해 대신 황해로, 남해를 버리고 대한 해협으로 불러야 할 자명하고 온당한 이유다.
 
목차
들어가는 말

Ⅰ. 고려바다와 고래바다

1. 바다는 5층 빌딩, 국호가 붙은 바다의 5대 장점
2. 한일간의 바다 5대 특징
3. 고려, 고래, 한국만(COREA GULF)은 세 쌍둥이

Ⅱ. 경해 vs 동해

1. 바다와 이름
2. 삼한 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고래바다
3. 중국은 지금도 경해(鯨海)로 부르고 있다
4. 동해는 지구상에 무수히 많다
5. 『삼국사기』의 동해는 어디인가?
6. 광개토대왕 비문의 ‘동해고’는 바다 이름인가?
7. 조선 시대 지도 속 동해는 어디일까?
8. 중국의 동해는 어디일까?
9. 베트남의 동해는 어디일까?
10. 일본의 동해는 어디일까?
11. 동해는 일본의 미칭(美稱)
12. 명성황후 시해 교사범이 성을 ‘동해’로 간 이유는?
13. 東은 일본의 약칭, 東자 성씨 30개
14. 일본 동해대학은 말한다. 일본과 동해는 동의어라고
15. 일본을 동해(태평양)로 쫓아내라 - 안창호
16. 누가 언제부터 왜 한국해를 동해로 부르게 했나?
17. 여기 바다의 음모가 서리어 있다 - 이육사

Ⅲ. 한국해와 한국만 지도

1. 나라 이름이 붙은 바다 지도의 힘
2. 『걸리버 여행기』, 동해도 일본해도 아닌 한국해
3. 서양 고지도, 한국해 318점, 일본해 212점, 동해 0점
4. 동양해(MARE ORIENTAL)가 ‘동해’인가?
5. MARE EOUM이 한일간의 바다 ‘동해’인가?
6. EASTERN or COREA SEA가 ‘동해’인가?
7. 서양 각국의 한국해 vs 일본해 최초 표기 지도
8. 포르투갈·이탈리아, ‘한국해’ 표기의 시작
9. 네덜란드, 17세기 한일간의 바다를 한국해로 도배
10. 프랑스, 18세기 한국해 황금시대를 열다
11. 영국, 19세기 후반에도 한국해 표기 지도
12. 미국, 1840년까지 한국해 60점 vs 일본해 9점
13. 독일, 양보다 질- 한국의 만, 한국의 해협
14. 러시아, 한국해를 동해로 부르는 한국 이해 불가
15. 일본, 1910년까지 조선해 표기 지도 27점
16. 이토 히로부미 비롯 구한말 일본정부 ‘조선해’ 표기
17. 한국만 86점 vs 일본만 0점
18. 한국만은 한국의 역사적 만, 한국의 내해
19. 천하무적 국호가 붙은 만의 힘

Ⅳ. 고래사냥과 한국해

1. 고래와 반구대, 물 반 고래 반 한국해
2. 『하멜 표류기』와 네덜란드 한국해 지도
3.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와 독도
4. 영국의 포경 산업 - 한국해, 대한해협, 독도
5. ‘COREA’는 미국 포경선 이름이자 한국의 국호
6. 미국 포경선의 조업지는 일본해가 아닌 한국해
7. 『모비 딕』의 포경선이 고래사냥한 한국만
8. 일본이 귀신고래를 최우선 멸종시킨 까닭은?

Ⅴ. 팩트체크와 대책

1. 한일간의 바다 이름에 대한 논쟁
2. 한국 외교부가 한국해로 주장하지 않는 이유
3. 창해와 청해가 한국해의 대안인가?
4. 동해 버리고 한국해로 불러야만 할 이유
5. 황해 이름은 황해도에서 유래되었다
6. 세계는 대한해협, 한국에서만 남해
7. 일제강점기 이전 우리나라 남해는 동중국해
8. 주권국 대한민국 바다 이름: 한국해, 황해, 대한해협

※ 마크 밀리 전 미국 합참의장, ‘일본해(동해)’를 ‘한국해’로 바로잡아야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강효백 (姜孝伯)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대만사범대학에서 수학한 후 국립 대만정치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학과 중국인민대학 등에서 강의했으며 주대만대표부와 상하이 총영사관을 거쳐 주중국대사관 외교관을 12년간 역임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관한 기사를 『인민일보』(人民日報)에 대서특필하게 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지금은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

출판사 리뷰

섬은 고지다.
독도는 ‘한국해’라는 우리 바다 산의 우리 고지다.
한국해 산꼭대기 한국 고지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산 이름을 일본의 별칭 ‘동해’ 버리고‘한국해’로 바로잡아야 한다.
- 본문 중에서

『한국해 KOREA SEA』는 이어도를 통해 해양 영토를 복원한 쾌거를 이루어낸 강효백 저자의 역작이다.

한국해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본서에서 풍부한 사료와 방대한 도편을 활용하여 동해에 매몰된 해양 명칭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 해양 영토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 입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왜 한국해를 한국해라 부르지 못하는가?

옛 일본의 지식인들은 자국을 동해로 표기하고 불렀다. 일본의 군국주의, 제국주의가 한껏 고조되던 시기에 동해는 대일본제국과 동의어가 되었다.

한일병탄 이후 일제는 한국의 고유 지명을 별 의미 없는 동서남북 방위를 붙여 개칭했다. 국제에서 통용되던 바다 이름 한국해를 동해로, 대한해협을 남해로, 황해를 서해로 변조시킨 것 또한 이 시기다. 즉 일본이 한국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한국해는 일본해로 변조되고, 독도는 다케시마로 바뀌었다. 이 같은 변조에 우리의 대응은 고작 고유 명칭인 ‘한국해’에서 방위개념이자 일본의 별칭 ‘동해’로 퇴보한 것이었다.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저자는 우리 바다 고유의 이름의 변천을 통시적으로 살펴본다. 다양한 사서와 문헌,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멜 표류기』, 『걸리버 여행기』, 『모비 딕』까지 망라하여 잘못된 주장들은 짚고, 독자의 관심과 호기심을 환기한다.

왜 동해 아닌 한국해로 불러야만 하는가?

특정 국가의 이름이 붙은 바다나 만, 필리핀해, 노르웨이해, 아일랜드해의 예를 보면 해양 관할권의 대부분은 그 특정 국가가 차지한다. 반면, ‘EAST SEA’와 같은 방위 지명은 그 바다가 속한 지리적 위치를 명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막연히 동쪽 바다라는 의미 의외에 어떠한 지리정보를 제시하지 못한다. 한국해 명칭을 되찾는다면, 남한 육지 영토 면적의 10배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해양영토 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

둘째, 국제해양법에 근거하여 독도 동쪽 200해리까지 한국의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을 주장할 수 있어 독도 문제를 진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허망한 구호나 변죽을 울리는 모호한 표현 대신 저자는 부인할 수 없는 도편과 사료들로 한국해의 당위와 가치를 역설한다. 짧고 힘 있는 쾌도난마의 문장들 또한 이 책의 큰 매력 중 하나로 다가온다.

지식의 발견은 그 자체로 얼어붙은 인식을 깨는 일이다.

또한 지도와 서적, 서양 각국의 역사에 새겨진 한국해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일은 지식을 넘어 우리 해양 영토 주권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책이 오랜 편견의 벽을 허무는 도끼의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9516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책소개

대한민국의 영도인 독도는 분명 육지영토이나 이는 한반도의 일부인 육지영토가 아니라 그의 부속도서의 일부인 육지영토이다. 동해에 위치한 부속도서의 하나인 독도는 국제해양법에 의해 규율된다. 특히 “유엔해양법협약”과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한일어업협정”에 의해 규율된다. 1998년의 “한일어업협정”은 독도의 영유권을 훼손하는 많은 규정을 두고 있음은 유감이다. 그러므로 동 협정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총 면적 불과 5만여 평에 불과한 독도는 “유엔해양법”상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창출한다.

목차

서론

제1장 맥아더 라인과 평화선
제1절 맥아더 라인
제2절 평화선

제2장 독도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
제1절 독도의 영해
제2절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
제3절 독도의 대륙붕

제3장 1998년의 한일어업협정과 독도
제1절 독도의 영유권 훼손
제2절 추적권의 배제
제3절 금반언의 효과
제4절 한일어업협정은 어업협정인가?
제5절 국제법학자 41인의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견해 비판
제6절 헌법재판소의 한일어업협정 합헌결정에 대한 비판
제7절 한일어업협정 폐기 후 대처방안
제8절 독도를 기점으로 하지 않은 한일어업협정 비판
제9절 대일평화조약과 한일어업협정의 저촉

제4장 울릉도의 속도인 독도의 법적 지위와 한일해양경계 획정에 있어서 독도의 존재 가치
제1절 울릉도의 속도인 독도의 법적 지위
제2절 한일해양경계 획정에 있어서 독도의 존재 가치

결론

부록
1. SCAPIN 제1033호
2. 평화선 선언
3. 유엔해양법협약
4. 영해 및 접속수역법
5. 배타적 경제수역법
6. 한일어업협정
 

저자 소개

저자 : 김명기
배재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육군보병학교 (갑종간부 제149기) 및 단국대학교 대학원 졸업(법학박사) 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연구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객원교수, 중국 길림대학교 객원교수, 대한국제법학회 회장, 세계국제법협회 한국본부 회장 외 다양한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는 독도조사연구학회 명예회장 / 명지대학교 명예교수 / 상사중재위원 /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공동연구원으로 있다.
 

출판사 리뷰

제2차 대전 이후 연합군최고사령부가 1945년 9월 22일 일본정부에 대한 지령으로 설치한 “맥아더 라인”은 일본 측에서 보아 그의 외부에 독도를 위치시키고 설정되었다. 이는 연합국에 의한 한국의 독도영유권의 승인을 의미한다. 그 후 1952년 1월 18일에 대한민국이 “국무원고시 제14호”로 “인접해양 주권선언”으로 한국 측에서 보아 독도를 내포한 “평화선”을 설정하였는바, 이는 대한민국에 의한 독도 영토주권의 현시(display)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영도인 독도는 분명 육지영토이나 이는 한반도의 일부인 육지영토가 아니라 그의 부속도서의 일부인 육지영토이다. 동해에 위치한 부속도서의 하나인 독도는 국제해양법에 의해 규율된다. 특히 “유엔해양법협약”과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한일어업협정”에 의해 규율된다. 1998년의 “한일어업협정”은 독도의 영유권을 훼손하는 많은 규정을 두고 있음은 유감이다. 그러므로 동 협정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총 면적 불과 5만여 평에 불과한 독도는 “유엔해양법”상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창출한다.

이는 일본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과 중첩되어 한일 간에 이의 경계획정을 위한 회담이 진행 중에 있다. 우리의 영토 독도가 한일 간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에 있어서 이른바 전부효과(full effect)를 창출할 수 있는 근거를 국제판례로부터 도출을 시도해 보려한다.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14934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255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 

 

출처: https://japan114.tistory.com/254 [동방박사의 여행견문록 since 2010: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