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5.일본천황제

일본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동방박사님 2021. 12. 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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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합리적 근대 세계를 만든 비합리적 존재,
제국주의 시대에 부활한 일본 천황제 신화를 해부하다


이 책은 일본이 근대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선택한 ‘천황’이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은 천황을 근대화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천황제 신화 만들기에 골몰했다. 일본 신화를 기반으로 한 신도를 국가 종교로 삼아 보호 육성한 것이나 신사 건립에 열성적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일본 역사를 통틀어 천황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극히 한정된 시대에 불과하다. 그런 천황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낸 것이 메이지 정부다. 단지 신화에 근거할 뿐인 천황제를 이데올로기화한 메이지 정부의 목적은 제국주의 시대 천황을 정점으로 국가 시책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신민을 만드는 데 있었다.

오랫동안 일본 신화를 연구한 저자는 8세기에 쓰인《고사기》와《일본서기》속 천황 신화 분석을 발판으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이룬 ‘일본 신화’와 ‘신도’ 그리고 ‘천황’의 삼각 구도를 해부한다. 이는 일본 신화가 일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형되어왔는지, 신화와 역사의 상호 침투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위정자들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끊임없이 신화를 이용해왔다. 따라서 일본 신화를 시대적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만 그 맥락을 추적할 수 있다.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 신화와 역사, 사상사를 주유하며 천황제를 추적하고 그 뒤에 감춰진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와 작동 원리를 철저히 분석하고 있다. 전쟁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없이 지속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근대 제국주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재탕한《새로운 역사 교과서》,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등에서 보이는 일본 우익의 왜곡된 역사관의 실체가 무엇인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천황제 신화의 뿌리,《고사기》신화와《일본서기》신화
천황제 신화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로 알려진《고사기》와《일본서기》속 신화를 그 모태로 한다.《고사기》와《일본서기》는 고대 국가의 기틀이 마련된 7세기 말에 편찬되기 시작해 712년과 720년에 각각 완성되었다. 편찬 시기가 대변하듯 일본 열도를 통일한 야마토 정권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쓰인 이 두 권의 역사서는 각 지역 기층 신화의 통합과 배제, 각색·수정을 거쳐 통일된 천황제 서사를 창조했다. 이러한 점은 천황 신화의 가장 핵심적인 두 신, 즉 야마토 왕조의 황조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이즈모의 지방신 스사노오노미코토가 이즈모의 야마토 왕조 복속이라는 당위성을 위해 남매 관계로 설정된 것에서 잘 드러난다.(40쪽)
근대에 들어와서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신화를 이용하는 일은 반복된다. 조선을 합병한 일본은《일본서기》의 별책격인 일서 제4와 제5에만 기록된 신화를 토대로 스사노오를 신라 신 또는 단군으로 비정하고 일본과 조선은 동일 조상에서 나왔다는 ‘일선동조론’을 주장한다.(41쪽) 한일 고대사의 쟁점 가운데 하나인 ‘임나일본부설’의 배경이 된 ‘진구 황후 조선 정벌 전승’(68쪽)도 마찬가지다. ‘해외 평정에 의한 왕화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창작된 이 이야기는 역사학자들에 의해 명백하게 허구임이 밝혀졌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메이지로 이어지는 ‘정한론’의 명분으로 끊임없이 거론돼왔다.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슬로건으로 내세운 ‘팔굉일우’(천지사방을 하나의 지붕으로 덮는다) 또한 진무 천황 건국 신화에서 기원한 것으로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였다.(64쪽)
일본 고대 역사서에 기록된 신화는 천황이 천손의 자손이라거나 초대 천황의 건국 연대나 재위 기간을 터무니없게 설정하는 등 신뢰할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일본 신화는 각 시대의 정치적 필요에 공명하며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규정해왔기 때문에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근대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이것의 가장 극단적 형태로 현재까지도 일본 우익들의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침략 이데올로기가 된 천황제
사실 천황이 실제로 전국을 통치하지 못했던 시대에도 천황제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본사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전국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막부의 쇼군들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보다 천황의 권위를 통해 다른 무장과 차별화된 관직을 얻어 그들 위에 군림하는 편을 택했다. 천황제는 한마디로 정치적 이용 가치라는 측면에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근대 국가 수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신정부 인사들에게는 아직 중세적 사고에 젖어 있는 국민들을 통합할 상징적 존재가 필요했고, 일본 고래의 신화 속에서 신비화된 천황은 이에 딱 맞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막부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메이지 정부는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며 만세일계의 천황이 일본을 통치한다’는 ‘국체’ 관념을 국민 개개인에게 심기 위한 천황 신격화 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우선 막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 머물러 있던 천황의 존재를 각인하기 위해 천황의 전국 순행을 실시하고 역대 천황릉을 정비했다. 또한 건국 신화의 배경이 된 나라 시와 미야자키 현에는 신궁을 건립한다. 만들어진 전통으로서 근대의 천황제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천황 신격화의 정점은 천황가의 황조신과 일본 토착 신을 모시는 신도를 국가 종교화해 천황제에 종교적 맹목적성을 부여한 것이다. 원래 신도는 외래 종교의 대척점에서 생긴 개념으로 중세와 근대를 거치는 동안 방대한 철학적 체계를 갖춘 불교·유교 등과 습합하며 그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의 ‘신불 분리령’(1868)으로 신도는 ‘국체’를 교화하는 국가 종교로서의 절대적인 지위를 얻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근대 일본의 기틀은 헌법 같은 법제도보다 제정일치라는 전근대적인 요소로 그 기반을 다진 셈이다. 이후 천황제 신화는〈군인칙유〉(1882)와〈대일본제국헌법〉(1889),〈황실전범〉(1889),〈교육칙어〉(1890),《국체의 본의》(1937) 같은 정치적?종교적 언설로서 재생산되어 이데올로기화의 길을 걸었다.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어두운 역사와 ‘새역모’의 역사 왜곡
메이지 정부는 1889년〈대일본제국헌법〉(일명 메이지 헌법) 제1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와 제3조 “천황은 신성불가침하다”를 통해 일본은 천황 국가임을 천명했다. 물론 천황의 통치권은 조규와 제국의회의 동의를 얻어 행사되어야 한다고 명시한 조항을 통해 제한이 가해졌다. 하지만 군 통수권에 있어서만은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이후 도조 히데키 군부 내각(1941. 10~1944. 7)은 천황을 등에 업고 천황의 군대인 황군이 벌이는 전쟁은 성전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한다. 전쟁 말기에는 자국민과 식민지 주민에게 천황을 위해 죽을 것을 강요하며 ‘옥쇄’(옥이 아름답게 부서지듯 명예와 충의를 위해 깨끗하게 죽는 것)와 ‘특공’(가미카제 특공대)으로 대변되는 집단 자살을 종용했다.
이처럼 저자가 근대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주목한 이유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풍에 가세한 일본의 침략 전쟁이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또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드리운 음험한 국군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힌 일본 우익들의 준동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우려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이 주도하고 있는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다.
1995년 결성된 ‘자유주의사관연구회’는 전후 일본의 ‘자학 사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997년 새역모를 결성한다. 새역모에서 만든 교과서인《새로운 역사 교과서》는 전전의 신화적 역사관을 현대사에 되풀이하며 전후의 평화 헌법 개정이나〈교육기본법〉개정 등 일본 사회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다.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근간인 신화와 이를 재창조한 근대의 메커니즘이 우익들을 통해 현대에도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는 등 일본의 우경화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급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는 천황 찬가인〈기미가요〉를 개사해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담은 노래〈나에게 키스를Kiss Me〉(445쪽)을 만들어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경계하는 사람들도 많다. 저자가 한일 양국의 과거사 문제 해결과 발전적 미래를 위한 희망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저자는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평화를 위협하는 군국주의 부활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저항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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