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5.일본천황제

화려한 군주

동방박사님 2021. 12. 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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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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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서문과 감사의 말

1장 서론: 발명하기, 망각하기, 기억하기

내셔널리즘과 도쿠가와 시대의 천황
기억의 장
국민국가의 역사민족지를 향하여
시각적 지배

1부 국가적 미장센

2장 행재소에서 제국의 수도로

행재소로서의 도쿄
옥렴을 걷고 나오다
과거의 무게
행재소에서 제국의 수도로
국가적 풍경과 국민적 내러티브

2부 근대 천황의 패전트

개관

3장 환실의례 꾸며내기

문명·부국·강병
-헌법 발포식
-은혼식 대축전
-일본 최초의 황실 결혼식
-전쟁의례와 시각적 지배
고물(古物)의 스펙터클

4장 일본의 근대성과 천황제

천황의 두 신체
성별화의 정치와 정치의 성별화

3부 국민

5장 군중과 황실 패전트

국민적 성찬식으로서의 황실 패전트
대중 동원
민중의 일상문화와 국가의 공식문화

6장 에필로그: 현재의 역사를 향하여

천황제와 전통
천황의 응시

지은이 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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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다카시 후지타니
1953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975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공저) 등이 있다.
역자 한석정
195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로 역사사회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1932~1936>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일본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국가의례가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행한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역할을 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살펴보고 있는 <화려한 군주>는 일본의 근대와 천황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마루야마 마사오 등이 제대로 근대화되지 못한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치달은 근본 원인을 봉건적인 천황제로 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은이는 천황제가 일본 국민국가 형성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으며 그토록 단기간 안에 일본 내셔널리즘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도 천황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책은 메이지 시대 이후 천황의 이미지와 황실의례가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본 내 마이너리티 집단의 목소리에서 희망을 찾는다. 또한 경제 불황과 함께 되살아나고 있는 배타적 내셔널리즘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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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장은 메이지 정부가 만들어낸 황실의례(순행, 개선관병식, 황실결혼식, 황실장례식 등)와, 메이지 정부가 조성하고 변조시킨 물리적 경관(국가적 영웅의 동상, 기념비, 국가의 신사[神社], 천황의 궁성 등)이 국민공동체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기억의 장'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개괄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의례와 물리적 경관은 도쿠가와 막부의 정치질서하에서 자기가 사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귀속감만 있었던 사람들에게 천황을 국가의 중심으로 인지시키고, 국민적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장치였다.

2장은 천황의 의례 무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기술한다. 특히 1880년대 후반을 경계로 해서 전국을 순행하는 천황에서 '수도의 황거(皇居)'에 사는 천황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순행이란 과거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천황을 움직이고 보이는 존재로 만들고, 일반 국민에게 천황이 사회의 중심적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1880년대 이후 순행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고정된 수도의 제정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도쿄 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메이지 정부 지도자들 사이의 논쟁을 통해 도쿄는 문명과 정치를 대표하는 근대적 의미의 장소가 되고, 교토는 국가의 영속성을 확인하는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로 자리매김된다.

3장은 1889년의 메이지 헌법발포식에서부터 1906년의 개선관병식에 이르는 수많은 의례가 수도 도쿄라는 무대의 성립과 함께 가능해졌음을 논한다. 헌법발포식은 헌법이 국민의 총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천황의 하사품인 양 꾸며진 의례였다. 황실결혼식은 서양의 그리스도교식 결혼을 모방하여 새롭게 종교적 색채를 입혀 신도(神道)식으로 꾸며졌다. 이후 일본의 결혼식은 전통혼례도 서양식 결혼도 아닌 신도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관병식은 천황의 응시에 의해 행사되는 권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의례였다.

4장은 칸토로비치의 '군주의 두 개의 신체론'에 빗대어 천황의 이원성을 말한다. 천황은 현실정치에 관여하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인 동시에 초월적이면서 영원불멸하는 신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민중은 천황을 '이키가미'(生き神), 즉 '살아 있는 신'이라고 믿었다. 아울러 도쿠가와 시대의 성(性)적으로 모호하고 비(非)남성적이었던 천황의 신체는 국민국가의 힘을 표상하기 위해 역동적이고 강력한 군인의 모습을 한 남성으로 변형된다. 한편 황실 여성은 황위 상속에서 제외되고, 황후는 '현모양처'의 이상이자 '여성다움'의 상징이 되었다.

5장에서는 국가의 공식문화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살펴본다. 일반 민중이 이 공식문화를 누구나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며, 일부에서는 거부하기도 했고, 민속적인 것과 융합하는 형태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천황 중심의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신흥종교가 생겨나기도 했고, 국가의례를 지역공동체의 전통적인 축제 한마당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또한 수도에서 개최되는 각종 의례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도쿄를 여행하는 일은 유명 사찰이나 명승지를 찾아 순례여행을 하는 과거의 종교적 관습과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혼합적인 수용이 결과적으로는 국민적 동일성을 창출하는 데 무시하지 못할 기여를 했음을 이 책은 시사한다.

6장은 메이지 시대 이후 천황의 이미지와 황실의례가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본 내 마이너리티 집단의 목소리에서 희망을 찾는 동시에 일본의 경제 기적이 붕괴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국가공동체에 대한 배타적인 신념이나 내셔널리즘의 목소리에 우려를 표한다.
 

출판사 리뷰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예전에는 매주 월요일 아침,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을 학교운동장에 모아놓고 조회라는 것을 거행했다. 그때마다 조회의 시작을 알리는 교감 선생님(또는 교무주임 선생님)의 멘트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지금으로부터 국민의례를 거행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멘트를 TV로 중계되는 국경일 기념식에서도 들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국가 대항 경기, 이를테면 올림픽과 월드컵 심지어는 프로야구 경기장에서도 국민의례는 빠지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정형화된 국민의례를 하는 의미는 무얼까? 국경일과 국민의례는 언제 생겨났고 누가 왜 만들어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근대의 만들어진 전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런 근본적인 근대의 수수께끼를 속 시원히 풀어 준다. 일본의 근대 국민국가와 천황제의 성립과정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통해서.

<이 책의 특징>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일본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국가의례가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행한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역할을 탐구하는 이 책은 그런 의례가 일견 지극히 형식적이고 하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국민을 동원하고 국가의 공식문화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권력작용의 장(場)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치사나 사상사적 접근방식이 아닌 문화사적 접근방식으로 일본의 근대와 천황제를 비판하고 있다. 더구나 이 비판은 현상이나 결과에 대한 비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근원적이다. 국가의례는 근대성과 천황제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루야마 마사오 같은 모더니스트들이나 강좌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일본의 천황제를 비판하는 논지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일본이 제대로 근대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파쇼화되고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며, 그 근본원인은 봉건적인 천황제의 부활에 있다고 보았다. 반면 이 책의 지은이는 천황제가 일본 국민국가 형성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으며 그토록 단기간 안에 일본 내셔널리즘이 성립될 수 있었던 것도 천황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이 상반된 두 논리의 차이는 근대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는 마루야마 마사오나 강좌파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근대를 이상적으로 보지 않는다. 메이지 유신에 의한 왕정복고는 외형적으로는 전통의 부활이자 봉건성의 연장 같지만 실은 '발명된 전통'이자 역사의 급격한 단절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일본의 내셔널리즘이든 제국주의든 천황제든 침략전쟁이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대의 산물이지 근대성이 왜곡되거나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에 대한 치밀한 실증작업이 이 책의 근간을 이룬다. 특히 다양한 시각자료와 기념엽서의 사진을 통해 천황의 응시와 근대적인 권력의 관계를 미셀 푸코의 권력론에 기초해서 분석한 부분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