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 360

원주 법장사지 역사와 흔적 (2024-04-18)

원주 법천사지(原州 法泉寺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사적/종목 사적 제466호(2005년 8월 31일 지정)면적 142,122m2 시대 통일신라/소유 국유,공유,사유/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629번지 외 원주법천사지(原州法泉寺址) / 대한민국 강원도의 기념물(해지) / 종목 기념물 제48호 /(1982년 11월 3일 지정)/(2005년 8월 31일 해지) 원주 법천사지(原州 法泉寺址)는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법천사 터이다. 2005년 8월 3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66호로 지정되었다. 원주 법천사지(原州 法泉寺址) 개요 법천사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법상종 사찰로 명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곳에는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법당터 및 ..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2024-04-18)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원주 법천사지유적전시관은 사적 원주 법천사지 내 위치한 전시관으로 남한강 유역의 주요 페사지인 거돈사지와 흥법사지를 보존관리하고 연구하는 공간입니다. 원주 법천사지는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법고사로 창건하여, 고려 문종 때 지광국사 해린의 하산소로 지정되면서 대형 사찰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법상종 계열의 사찰로 왕실의 후원을 받았으며 페사되기 전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법천사지에는 국보 법천사지 지광국탑비와 2024년에 원주로 돌아올 예정인 국보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강원도 문화재자료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기획전시홀 밎 로비 (1층) 위 공간은 향후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및 지광국사탑비 실내로 들어오기 전까지 기획 전시실로 운영될..

의친왕 이야기 (2024-03-10)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1877년 3월 30일 ~ 1955년 8월 16일)은 조선의 왕족이고 대한제국의 황족 종실이며 고종의 두번째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의친왕 이강 고종 후궁 귀인 장씨(貴人 張氏)의 소생으로 출생한 그의 본관은 전주이고, 휘는 강(堈)이며, 초명은 이평길(李平吉), 호는 춘암(春菴)]이다. 일생 1891년 12월 28일 의화공(義和公)에 책봉되었으며, 불과 한 달 후 1892년 1월 28일 의화군(義和君)에 개봉된 그는 1894년에 대사로 일본에 다녀오고, 이듬해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6개국 특파 대사에 임명되었다. 1896년 미국에 유학하고, 1900년 대한제국 시기에 의친왕에 봉해졌다. 1905년 귀국하여 대한제국 육군 부장(3성 ..

덕혜옹주 이야기 (2024-03-10)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명딸이다. 황녀로서 덕혜라는 호를 하사받기 전까지 ‘복녕당 아기씨’로 불렸고, 1962년 ‘이덕혜’(李德惠)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1] 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덕수궁에서 태어나 경성일출공립심상소학교 재학 중에 일본의 강제적인 요구에 따라 유학을 명분으로 도쿄로 보내져 일본 황족들이 공부하는 학교인 여자 가쿠슈인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 옛 쓰시마 번주 가문의 당주이자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여 1932년 외동딸 소 마사에를 낳았다. 그러나 이즈음 조울증, 우울장애, 반복성 우울 장애와 더불어 정신장애인 조현병(정신분열증) 증..

덕혜옹주 묘/의친왕 묘 (2024-03-10)

덕혜옹주 묘 (德惠翁主 墓)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의 고명딸인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의 묘이다. 고종은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덕수궁 (경운궁)에 처음으로 유치원을 설립할 정도로 덕혜옹주를 아꼈다. 덕혜옹주는 9세가 될 때까지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다가 1921년에 덕혜옹주에 봉혜졌고, 1925년에 일제가 유학이라는 명분을 세워 일본에 데려갔다. 일본에서는 영친왕의 숙소에 기거하면서 학습원과 중등과정을 수료하였다. 19세에 소 다케유키 (宗武志 종무지)와 정략결혼을 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1962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하다가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의친왕 묘 (義親王 墓) 고종황제와 귀인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의친왕(義親王 : 1877~1955)과 의친왕비 김씨 (..

홍릉.유릉 역사문화관 (2024-03-10)

유네스코 세계유산 홍릉. 유릉 조선왕릉은 조선(1392~1897)의 왕고 왕비 그리고 대한제국 (1897년~1910)의 황제와 황후 73면늬 무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능은 모두 42기가 있으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는 왕릉 조성과 관리에 효와 예를 갖추어 정성을 다햇습니다. 풍수사상에 따라 최고 명당에 왕릉자리를 정하고 주변 지형과 경관을 그대로 살려 능을 만들었습니다. 왕릉을 짓고 관리하는 일을 상세하게 적은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있고 지금 각 왕릉에서는 해마다 제항을 지내고 있어 살아 있는 문화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홍릉은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과 대한제국 1대황제 고..

탑골공원 역사 특별전시

조선시대 탑골 현재 종로 인사동과 낙원동 일대는 엣날 한양 경행방 (慶幸坊) 이었다. 불교를 숭상하였던 세조(1455~1468)는 이곳에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였고, 일명 백탑(白搭)이라고 일컫는 대리석 소쟁의 10층석탑을 건립하였다. 이때부터 그 주변을 탑이 있는 동네라하여 탑골(塔골) 또는 탑동(塔洞) 으로 불렀다. 원각사는 왕실의 사찰로 번창하였고, 탑골 일대는 외국 사신들도 즐겨 찾는 한양의 명소(名所) 로 발전하였다. 세조 이후 원각사는 예전의 위상을 점차 잃었고, 결국 1504년 (연산군10)에 폐사 (廢寺)되었다. 임진왜란이후 원각사 터와 탑골에는 백성들의 민가가 빽빽이 들어서면서 과거 흔적을 찾을수 없었고, 10층석탑만이 우뚝 솟은 채로 옛 영광을 상징하고 있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공평동 룰 공평동 일대는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일반 서민부터 왕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생활상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었다. 또 태화관, 종로YMCA등 민족운동과 관련된 근대유적도 다수 분포해 두터운 역사적 층위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1978년 총 19개 도심개발지구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6개 지구의 재개발 사업이 2010년에 완료 되었다. 제1.2.4지구는 재개발사업의 시행에 앞서 2010년 문화재 지표조사, 2014~15년 매장문화재 발국조사를 실시하였다. 그결과 조선시대 초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108동건물지, 500여 년전 조선시대 골목길 등의 유구와, 1,000여점의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 되었다. 한양도성 내 전모를 간직한 조선시대 생활유적으로 '조선의 폼페..

영원 (의민황태자 : 영친왕 & 의민황태자비 : 영친왕비). 회인원 (이구)

영원 (英園) 회인원 (懷仁園) 영원 (英園)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 (1987~1970, 영친왕) 의민황태자비 (1901~1989, 영친왕비) 를 합장한 원(園)이고 회인원 (懷仁園)은 의민 황태자의 둘째 아들인 황세손 이구 (李玖: 1931~2005)의 원(園)이다. 1970년에 의민 황태자가 세상을 떠나자 고종의 홍릉(洪陵) 근처에 *원소를 조성하고 이름을 영원이라 하였다. 이 후 1989년에 의민황태자비가 세상을 떠나자 영원에 합장하였고, 2005년에 황세손이 세상을 떠나자 영원 동쪽에 원소를 조성하고 이름을 화인원이라 하였다. 영원은 조선왕릉의 형태로 조성하여 재실, 홍살문, 정자각, 비각을 배치하였고, 원침 (園寢)에는 남간석을 두르고 석양과 석호,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 ..

남양주시 금곡 (홍릉.유릉) 대한제국 황실 후궁들의 묘

사적 남양주 홍릉과 유릉 홍릉은 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 高宗: 1852~1919과 명성황후 明成皇后閔氏 1851~1895의 능이고, 유릉은 대한제국 2대황제 순종純宗:1874~1926과 첫 번째 황후 순명황후 민씨 1872~1904, 두 번째황후 순정황후 윤씨 1894~1966의능이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의 조선왕릉 형식과 다르게 대한제국 황제릉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황제릉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명나라 황제의 예를 참조하고, 기존 조선왕릉의 예를계승하여 조성한 능이다. 기존 조선왕릉과 다른 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제향공간에 있던 정자각 대신 침전(寢殿)을 두었고, 침전 앞부터 홍살문까지 향로를따라 문석인. 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모양의 석물을 배치하였다. 홍릉..

환구단

환구단 정문 대한제국(1897~1910)초기 원구단 시설을 건설하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다. 원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시설로,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당시 황궁은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맞은편 남별궁터에 세웠다. 원구단의 전체 시설은 제를 올리는 원구단과 천신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 그리고 그 주변 시설로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을 갖추었으나 현재 황궁우 그리고 그 주변시설로 엊실, 향대청, 석고각 등을 갖추었으나 현재 황궁우와 석고각 안에 돌복만 남아있다. 정문은 원래 황궁우 남족 지금의 조선호텔 출입국가 있는 소공로변에 있었는데, 1960년대 말 철거된 뒤 오랫동안 소재를 알지 못했다. 2007년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그린파크호텔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호텔정문으로 사용하..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길상사(吉祥寺) 길상사(吉祥寺)의 절 이름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란 의미로, 묘길상(妙吉祥) 곧 문수보살의 별칭에서 인용된 불교용어이며,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松廣寺)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창건 당시의 이름이 송광산 길상사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송광산 길상사가 새로운 규모로 중창되고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9년 동안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도량으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송광사는 현재 오늘날까지도 승보..

서울 성북동 길상사 : 법정스님 기념관

법정스님 1932~2010 전라남도 해남 출생.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진리의 길을 찿아 1956년 효봉 학눌 (曉峰學訥)의 문화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기초를 다진 후,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 (修禪安居) 했다. 1960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불교사전편찬. 불교경전 역경에 헌신하였으며 1975년 송광산 뒷산에 불일암 (佛日庵)을 짓고 수행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청빈과 무소유( 無所有)의 삶을 실천 하였다. 1994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를 창립하여 이끌어주었고, 무소유 사랑에 감동한 길영한여사로 부터 성북동의 대원각을 무소유보시하여 ..

고양 서삼릉 (高陽 西三陵) : 희릉, 효릉, 예릉

고양 서삼릉 (高陽 西三陵) 서삼릉은 "서쪽에 있는 세 기의 능' 이라는 뜻으로 희릉禧陵, 효릉孝陵, 예릉譽陵이 있는 곳이다. 처음 헌릉(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근처에 있던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정경왕후의 희릉이 1537년(중종 32년) 이곳으로 옮겨졌고, 이후 인종과 인성왕후의 효릉, 철종과 철인 황후의 예릉이 조성되었다. 서삼릉 안에는 왕릉 3기 외에도 소경원, 의령원, 효창원 3기와 회묘, 왕자, 왕녀, 후궁 등의 묘 47기, 태실 54기가 있다. 희릉 禧陵 : 11대 중종의 두번째왕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 효릉 孝陵 :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 예릉 睿陵 : 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쌍릉 소경원 昭慶園 : 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원 의령원 懿寧園 : 추존 장조의 황제(사도..

고양시 서삼릉 : 희릉 禧陵(중종비 장경왕후)

고양시 서삼릉 : 희릉 禧陵(중종비 장경왕후) : 사적 200호 희릉은 조선 11대 중종中宗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씨 (章敬王后 尹氏 : 1491~1515) 의 능이다. 장경왕후는 1506년 (중종1년) 중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1507년(중종2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사이애 1남(인종) 1년(효혜옹주)를 낳았으며, 1515년(중종10년) 인종을 낳은후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희릉은 처음에 헌릉(채종과 원경왕후의능, 서초구 내곡동 소재) 서쪽 언덕에 조성 되었으나, 1537년 (중종32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1544년(중종39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희릉 옆 언덕 (현 철종 예릉 자리)에 중종의 능이 조성되어 정릉이 되었다가, 1562년(명종 17년) 중종의 능이 선릉 동쪽 (현 강남구 ..

고양시 서삼릉 : 예릉 譽陵 (철종과 철인왕후)

예릉 譽陵 (철종과 철인왕후) : 사적 제 200호 예릉은 조선 25대 철종 哲宗 (1831~1863, 1849~1863 재위) 과 철인왕후 (哲仁皇后 金氏)의 능이다. 철종은 전계대원군 (全溪大院君) 의 아들로 강화도 유배지에서 생활 하던중, 1849년 헌종이 세상을 떠나자 순원황후 純元皇后 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봉기가 일어나 삼청이정청을 설치하여 민심을 수습하려 하였으나, 세도정치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철인왕후는 1851년(철종 2년)에 왕비로 책봉 되었고, 철종이 세상을 떠나자 대비大妃 가 되었다. 철종과 철인왕후는 1908년(융희2년)에 각각 철종황제와 철인장 황후로 추존 되었다. 예릉은 영조(英祖) 대에 편찬한 『국조상례보편 』 의 예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조..

고양시 서삼릉 : 효창원 (문효세자). 의룡원 (의소세손)

효창원 孝昌圓 (문효세자) : 사적200호 효창원은 조선 22대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1782~1786) 의 원* 이다. 문효세자는 정조와 의빈 성씨 宜嬪成氏의 아들로 1784년 (정조8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86년(정조10년) 5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처음에 온효세자 溫孝世子에서 문효세자로, 무덤의 이름도 효창묘孝昌墓 에서 1870년(고종7년) 효창원으로 격상되었다. 처음에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있었으나 1944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입구에는 정조의 글을 지은 **신도비가 있다. *원圓 : 왕의 사친 (후궁이나 왕족),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 등의 무덤 **신도비 (神道碑) : 왕과 대신들의 무덤 앞에 세워 업적을 기리는 비 의령원 懿零圓 (의소세손) :..

경기도 김포 장릉

김포 장릉 金浦 章陵 사적 제202호 장릉(章陵)은 조선 16대 인조의 부모인 추존 원종(元宗: 1580~1619) 과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 1678~1626)의 능이다. 원종은 선조(宣祖)와 인빈 김씨(仁嬪 金氏)의 셋째 아들로 1587년에 정원군에 봉해졌고 1619년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양주 곡촌리에 (현 남양주시 금곡동)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623년에 아들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大院君)으로 추존되고 1626년에 묘를 원으로 높여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다. 1632년 원종으로 추종되고 원을 능으로 높여 장릉이라 하였다. 인현왕후는 구사맹(具思孟)의 다섯째 딸로 1590년에 연주군부인에 봉해졌고 1623년에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계운궁(啓運宮) 연주부부인이 되었다. 16..

한옥.고택관리사 수료후 답사 (조견당)

한옥고택관리사1기 - 수료증. 자격증 수여식 및 답사 명품고택 조견당 답사일지 (2021년8월25일 ) 비가 내리는 평일 8월25일 (수) 요일이다. 수료생 30명이 조별로 10명씩 나누어 분반했는데, 오늘 오전에 6명이 충북 KTX 제천역에서 만나서 카니발로 이동하여 오전 10시경에 드디어 답사지인 강원도 영월군 조견당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옥과 고택에 관련된 교육을 통해서 알고 있던 내용의 현장답사는 우리모두에게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요즘 시대적으로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고택체험이 많이 떠오르고 있는 터이다. 숙박하는것이 호텔과는 다르고 느낌이 전혀 생소하다. 마당이 있고. 장독대가 있는 곳에서 하룻밤을 잔다는 것은 현대인에게 주는 새로운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따라 많은비는 아니지만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