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한국정치의 이해 (책소개)/3.한국좌파정치

슬기로운 좌파생활 (2022) -‘명랑좌파’ 우석훈의 좌파 에세이

동방박사님 2023. 5. 2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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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 좌파 합시다!”

생활 속에서 좌파로 살아가거나
취미 생활로 좌파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한국 사회의 최전선이 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88만원 세대』로 우리 사회에 ‘세대론’을 불러일으킨 우석훈이 좌파 에세이 『슬기로운 좌파생활』로 돌아왔다. 우리의 교육 구조가 만든 집단 좌절을 체감하는 중2와 진보 성향의 엄마의 부조화, ‘너도 페미냐?’라는 문장에 담긴 남혐과 여혐, #숏컷 #멸공 으로 회자되는 시대착오적인 남성 근본주의(male chauvinism)…… 왼쪽으로 가는 젊은 여성과 오른쪽으로 향하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이 시대를 구성하고 있다.

이 혼돈의 시대에 우석훈은 단호히 말한다. 보수와 진보 모두 한국 청년들이 겪고 있는 젠더 전쟁에 관심 없다고, 보수는 청년의 절반인 남성 표를 가져오기를 바랄 뿐이고, 진보는 보수가 기이한 방식으로 ‘선빵’을 날리면 그 뒤에야 움직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석훈의 해법은 ‘좌파’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남녀 문제는 소득격차를 넘어 자산격차로 심화된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생기는 다양한 갈등 현상이기에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중요하며, 삶에 있어서 같은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평등주의자(egalitarian)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젠더, 여성, 교육, 자본주의, 청소년, 노조, 카피레프트, 탈코르셋, 인공지능…… ‘상냥하고 명랑한 좌파’로 늙어가고 싶다고 고백하는 우석훈은 진보와 보수의 낡은 ‘정치’에서 벗어나 ‘생활’이라는 일상의 실천으로 옮기자고 권한다. 그리고 좌표의 중심을 ‘청년’에 둔다. 비록 소수파이지만 취미 생활로 좌파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한국 사회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고, 한국의 새로운 미래는 여기에서 시작될 거라고 말한다.

목차

들어가며 중2병 아들과 갱년기 아내, ‘환장의 커플’ ― 6

1장. 좌파라는 멸종 위기종

어영부영하기 직전 ― 22
왼쪽에 앉으면 좌파다 ― 43
스타일이 빨갱이, 연암 박지원 ― 53
웃기는 것은 나의 무기, 움베르토 에코 ― 67
빨간색 모닝과 빨간색 아반떼, 조금 더 상냥하게 ― 86
이제는 덜 고통스러운 삶 ― 99

2장. 중학교 2학년, 여기가 최전선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이미 늦었다고? ― 112
여혐과 남혐이 시작되는 나이, 16세의 ‘이생망’ ― 121
완성형 여혐,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 130
‘자산 =자본 + 부채’, 자산 전쟁의 시대 ― 143

3장. 고스트의 속삭임이 들릴 때

어느 좌파 청소년의 경우 ― 172
고스트의 속삭임이 들릴 때 ― 178
‘카피레프트’의 레프티스트 ― 199
네이버 노조와 사무직 노조, 친절과 일상성 ― 214
문화와 예술, 그리고 프레카리아트 ― 227
탈코르셋으로 향하는 10대 소녀들 ― 250

4장. 취미로서의 좌파 생활

조선의 마지막 빨갱이 ― 278
취미로서의 좌파 생활 ― 290
짧은 제네바 여행 ― 303
너도 페미냐? 아니, 좌파입니다 ― 316
슬기로운 좌파 생활 ― 326

나가며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AI 버전-먼 미래를 생각하며― 342
 

저자 소개

저 : 우석훈 (禹晳熏)
 
경제학자. 두 아이의 아빠.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하다. 늘 명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된다. 욕심과 의무감 대신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으로 살아가는 경제를 기다린다. 저서로 『88만원 세대』 『당인리』 『팬데믹 제2국면』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진보는 좀 어렵다. 보수가 자본주의를 지킨다고 하면, 진보는 보수에 대해서 상대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한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한국에서는 보수가 지키려고 하지 않는 문제는 진보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현실적 문제점이 생긴다. 자본주의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고, 보수가 뭘 하는지, 그들이 뭘 하는지, 그것 자체에 더 관심 있는 이념 집단이 하나 생긴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가 아는 진보는 자본주의, 특히 한국 자본주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애당초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보수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 사회는 진보할까?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불분명한데다가, 고도성장이 어려워진 시점에 이를 제어하기 위한 적절한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였다. 진보는 적당한 경제 성장률 속에서는 이념으로 잘 작동하겠지만, 성장률이 내려가면서 한국 사회는 성과는 나지 않으면서 점점 경쟁만 많아지는 형태로 갈 것이다. 그래서 20대는 전 세대보다 가난하지만 더욱 보수적으로, 지금 10대는 그보다 더 가난하지만 더더욱 보수로 갈 확률이 높다. 그리고 수많은 보통의 남자들은 여자들만 욕하면서 젠더라는 창구가 열어낸 극우파의 길로 갈 것이다. 퇴행적이지만, 그걸 퇴행적이라고 말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시대가 앞으로 10년간 펼쳐질 것이다.

21세기, 아직도 한국의 진보는 너무 비분강개형이다. 원형적 비극을 깊은 곳에 깔고 있는 무거운 스타일이 유행한다. 유머 스타일로 시대를 웃겼던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연암 박지원을 오늘에 다시 생각하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스타일 그 자체만으로도 불온하고 빨갱이였던 역사가 우리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의 엄숙주의 앞에서 문화적·정서적으로 충돌하는 사람들 중에서 연암 박지원 같은 사람이 또 나오기를 희망한다.

일종의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나는 에코가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유머러스하게 살아가려고 했고, 명랑함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저자로서 살아가는 내내 노력했고, 분노와 증오로 살지 않았다. 분노가 순간적으로 만드는 힘은 강렬하다. 그것이 집단의 이름이 되면 커다란 힘을 만든다. 그러나 분노가 만드는 힘은 오래가지 못한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에 의해 무너진다. 오래가는 것은 유머와 낭만, 그리고 여유 같은 것이다. 문재인 집권기에 청년의 분노가 집권자인 진보 50대에게 향했다. 흔히 586이라고 부른다. 만약 우리가 20대에 유머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게 같이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배웠다면 현실은 달랐을 것이다.

빨간색 모닝을 타면서 내가 배운 것은 한 가지다. 더 상냥하게 살아야겠다는 것. ‘조폭 차’로 불리는 검정색 그랜저를 비롯해서 벤츠 같은 고가의 차량은 거리에서 상냥하지 않다. 택시보다 차선 변경도 마음대로 하고, 고속도로에서 ‘칼치기’도 대개 그런 고성능 차들이 한다.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인생은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세상은 상냥한 사람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이 되면서 거칠었던 시대에서 점점 부드럽고 소프트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개성이 확실한 사람들이 타인과 편하게 살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냥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부모보다 가난해진 세대, 한국에서는 몰락하는 시대에 관한 정서적이거나 목가적인 은유의 부드러운 시로 등장한 게 아니라 부동산, 주식, 그리고 암호화폐에 이르는 자산 전쟁, 아니 ‘자산 투쟁’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게 21세기 한국 자본주의다. 여기에는 도덕이나 윤리가 개입할 공간이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얘기는 “과도한 부채는 위험하다”는 말 정도인데, 이래 망하나, 저렇게 망하나, 궁지에 몰린 청년들에게 먹히기 어렵다. “주식은 여유 자금으로 하세요.”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증권 전문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자신은 책임지기 어렵다, 그 말을 이렇게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다. 증권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할 여유 자금이 있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자산 획득에 열을 올릴까? 그런 여유 자금이 없으니까, 그걸 만들려고 자산 투쟁에 뛰어드는 것 아닌가?

일종의 청소년 서브 컬처로 자리 잡고 있는 남자 중학생들의 여혐에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거의 없다. 예전에 공부만 열심히 하던 ‘샌님들’이 학교에서 따돌림 당했던 것처럼 여성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 즉 외국의 10대 남학생처럼 생각하면 딱 왕따다. 10대에게도 조금씩 이념이 생겨나고 선호가 생겨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은 우파의 이념이 싹 쓸고 가는 게 유행이 되었다.

현재 집권 세력인 진보는 뭐하고 있냐고?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표가 아닌 것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현재의 한국 진보는 자본주의에도 관심 없고, 자본주의적 경제 주체의 재생산에도 관심 없다.

이 새로운 시대에 좌파는 어떻게 태어날까? 『자본론』은 1876년,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 공업 시대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며 그 모순이 첨예화되던 순간에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디지털의 전면화가 유토피아를 열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다음의 『자본론』은 텍스트로 된 책이 아니라 메타버스 안에서 카피레프트 공동체가 만들어낸 작은 약속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그냥 좋아서 그 일을 하는 프레카리아트의 삶, 그것만큼 비경제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삶은 없다. 자본주의에서 예술만큼 자본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비자본주의적인 것은 없다. 그 불안한 삶은 시장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충돌한다. 아름다움은 돈의 가치로 표현되지만, 돈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또 다른 초월적 속성을 갖는다. 만약 돈을 버는 게 좋아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정신 감정을 받아보라고 권유할 것이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다르다. 아름다움이라는 목적을 위해 경제적 대가를 희생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고결하거나 아름다운 삶이라고 예찬하지 불쌍한 삶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탈코르셋은 페미니즘이냐 아니냐, 강성이냐 근본주의냐를 떠나서 그냥 문화 다양성의 시각으로 ‘남이사’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남이야 숏컷을 하든 투 블럭을 하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국가가 복지 차원에서 기초 화장품을 제공하는 것도 아닌데, 내 돈 덜 쓰겠다는데 왜 다른 사람이 상관하는가 싶다. 젠더 문제로서 코르셋은 자본주의가 만든 불평등 속에서 일종의 문화로 존재했다. 그 문제를 없애거나 완화시키려는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이자 패션의 역사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한국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마초 자본주의로서의 특징이 더해진다. 남자들이 도저히 그 꼴을 못 본다. 그냥 개인의 문화적 취향, ‘개취’ 정도로 생각하면 될 일에 집단적인 분노를 폭발시킨다. 분명한 것은 뉴룩을 이끌었던 크리스천 디오르 수준의 유능하면서도 반동적인 거장이 다시 등장하기 전에는 한국에 발생한 탈코르셋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뒤집지 못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지금 한국 자본주의의 최전선은 이준석을 타고 젠더 갈등을 넘으려는 20~30대 남성들의 보수화가 차지할 것이다. 다른 것은 진보이지만 유독 “페미니스트는 싫어”라는 청년 남성은 좌파와는 관계없다. 여성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많아서 불만이라면 자본주의 자체를 고쳐야 한다. 여성을 고치려 드는 건 좌파가 아니다. 한국 특유의 마초자본주의는 사회의 빠른 변화 속도와 50:50 사회라는 자산 불평등과 만나서 한동안 극심한 마초 반동 현상을 일으킬 것이다. 지금 10대 남학생의 집단적 마초 성향이 20대보다 강하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최소한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저는 좌파입니다.” 이 낮은 목소리가 좀 더 스타일리시하고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가난의 리얼리즘과 절규의 사실주의가 시대의 스타일이었던 20세기가 있었다. 21세기는 역설적으로 설정이 사실을 이기는 시대가 되었다. 더 웃고, 더 웃기는 것이 새로운 스타일이 되면 좋겠다.

자본주의 안에서 벌어지는 모순과의 싸움은 남자든 여자든 누가 누구를 이긴다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대기업 사장들을 다 잡아 가둔다고 자본주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스타일 싸움이다. 이게 21세기 방식 아닌가? 지지할 정당이 없어도 생활 속에서 좌파로 살아가거나 취미 생활로 좌파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한국 사회의 최전선이 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지금이 2022년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해시태그(#)가 온라인 공간을 떠돌고 있다. 이게 뉴스거리가 될까 하는 뉴스가 스마트폰을 뒤덮는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의 ‘숏컷(쇼트커트)’을 본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은 갓 스물의 여성이 짧은 머리를 한 건 분명 ‘탈코르셋’일 거라고 확신했다. 글과 댓글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안산=페미니스트=남혐’ 공식이 만들어졌다.

우리 언론은 성대결, 젠더 갈등, 페미니스트 논란으로 이름 붙여 ‘클릭 수’ 늘리기에 급급했고, 다수의 외신은 이 풍경을 두고 ‘온라인 학대’라고 이름 붙였다. 어느 유통 대기업 재벌 3세는 ‘멸공’(공산주의 세력을 멸함)이라는 70년대 냉전 용어를 다시 써먹고, 야당 대선 후보를 비롯한 국회의원들은 멸공(멸치+콩) 인증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시대를 읽는 독법은 여럿이다. 옹호와 비판, 지지와 불매 운동이 공존한다. 그중에서도 우석훈 식 독법이 도드라진다. “지금 한국의 일부 남성들의 ‘여성 특혜’에 대한 주장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그건 ‘전도된 메일 쇼비니즘(male chauvinism)’이다. 모든 이념은 적당히 해야지, 너무 강해지면 그 자체로 쇼비니즘이 된다.” 그의 새 책 『슬기로운 좌파생활』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베 놀이, 메일 쇼비니즘
한국 자본주의가 만든 불평등이 만든 코미디


한국의 일부 ‘이대남(20대 남성)’은 왜 자꾸만 오른쪽으로 가는 걸까.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강하고 더 우수하다는 남성 우월주의도 문제인데, 여성들에게 빼앗긴 기회를 회복하자는 전도된 의미를 당연한 듯 사용하고, 거기에 ‘공정’이라는 개념까지 끌어다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석훈은 경제학자다. 그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우경화 현상은 “한국 자본주의가 만든 불평등이 격발시킨 코미디”라고 단언한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기술의 전통적인 엔사이클로피디어와 지금-여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최신의 위키피디아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갖가지 사례로 우리를 이끈다.

한국 자본주의 불평등은 그의 책 『88만원 세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를 내놓아 시대를 평정했다. 20대의 95퍼센트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 아래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 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퍼센트를 곱한 ‘수치’ 안에서 우리는 2010년대 한국 사회를 예감할 수 있었다. 세대를 수식하는 단어는 이전에도 적지 않았지만, 세대 관찰자는 물론 세대 당사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린 담론은 처음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우리 사회에 온갖 ‘세대론’이 쏟아졌다. 88만원 세대는 N포 세대를 거쳐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되었다.

MZ세대와 윗세대를 가른 분기점은 1997년 외환위기라는 게 정설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었으리라. 보수 정당이 자초한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진보 정당, 아니 덜 보수적인 정당이 선택한 모델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였다. 정치는 사법기관에 종속되고, 경제부처와 관료가 지배 권력을 쥐었다. 금융이 경제를 이끌고, 세계화가 시대정신이 되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을 낳았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시대정신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한국의 30대는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성인이 되었다. 이제는 586이 되어버린 386세대와 그 아래 포스트 386세대는 국가의 정치적·경제적 체제를 고민했지만 밀레니얼세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상황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대안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윗세대에게 부정적이었던 경쟁과 효율성은 MZ세대에겐 피할 수 없는 삶의 필수과목이 되었다. 88만원 세대는 불평등을 받아들이며 삶의 요소를 하나씩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되었다. 반대급부로 젠더, 공정, 정의가 도드라졌다. 어떤 M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정체성을 활용해 세대론을 극복하려 했다. 밈(meme·인터넷 유행)과 ‘취향 존중’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다른 세대가 들어올 수 없는 그들만의 취향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소셜 미디어를 타고 공유되었다. 사교육(학원)에서부터 각자도생을 체득한 청년들은 ‘일잘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주식과 코인에 올인하고 있다. 『아침형 인간』은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로 앞당겨졌다. 그리고 코로나19를 맞이했다.

우석훈에게도 ‘청년’은 핵심 주제다. 그러나 우석훈의 ‘청년론’은 세상의 그것과 확연히 달라서 청년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시대착오적인 구애와 선을 긋는다. ‘청년간담회’를 열어놓고 스피커폰으로 인사한 대선 후보와 청년세대의 지갑을 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플랫폼 기업과 해시태그 놀이에 심취한 어느 재벌 3세와 확실히 다르다.

우석훈은 ‘좌파’라는 새로운 세대론에서 ‘변화’라는 정수(essence)를 포착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의 각 영역에서 MZ세대가 핵심어가 된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좌파’라는 삶의 양식을 건넨다. 생활과 취미로 ‘좌파’를 장착한 청년들에게 다음 시대의 주역이 되어달라고 바통을 넘긴다.

좌파로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빨갱이’ 우석훈의 좌파 에세이


잠깐, 좌파라고?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좌파라고? 요즘 누가 좌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조선의 마지막 빨갱이’로 불리는 우석훈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자칭 ‘보수’ ‘진보’ 양당이 자본주의 앞에 사이좋게 타협하는 한국 사회에서 저자는 좌파인 스스로를 ‘멸종 위기종’이라고 태연히 객관화한다. 그리고 딴청을 피운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에 청춘들이 보수에 투표하건, 우파가 되건, 극우파가 되건 무슨 상관이랴?

그러면서도 시대착오적인 젠더 갈등과 오역(誤譯)되어 사용되는 공정 담론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며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상황을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싸움으로 요약한다. 좌파는 멸종 직전일지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좌파는 영원할 거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좌(左)밍아웃’한다. “저는 좌파인데요.”

『슬기로운 좌파생활』은 좌파가 없는 자본주의라는 황망한 현실을 버텨온 우석훈의 홀로서기다. 그는 홀로 읊조린다.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누가 누구를 이긴다고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진보/보수라는 틀로 움직이지 말고 ‘좌/우’라는 틀 안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바라보자고.

진보 성향의 엄마와 10대부터 ‘여혐’ 성향을 보이는 아들 사이의 갈등, 특목고 트랙과 일반고 트랙이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분리되며 발생하는 중2병, 썸 타기?모태 솔로?데이트 비용 논쟁?데이트 폭력, 비연애?비성관계?비결혼?비출산, 전 세대보다 가난한 20대와 그보다 더 가난한 10대가 보수로 향하는 시대의 퇴행…… 그가 한국 자본주의의 후미진 곳에서 시대와 불화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한 문제의식은 스타일리시하고 매력적이다. ‘구조를 벗어나는 힘’이라는 본래 의미를 대입시키면 단연 힙(hip)하다.

우석훈의 ‘명랑하고 상냥한’ 좌파 에세이 『슬기로운 좌파생활』을 미리 읽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엄마 페미야?’라는 말에 다리가 풀린 이들을 위한 처방전”이라고 권하고,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은 “미래 좌파의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칭찬했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추천평

40대 또래 친구들을 페미니스트 전사로 만들었던 말은 ‘맘충’이었다. 특히 한때 운동권이었던 이들은 더욱 분노했다. 여성 혐오가 엄마에게로까지 확산되자 순식간에 판이 달라졌다. 최근 몇 년은 그야말로 혁명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혁명의 시간이 지나면 반혁명의 그림자도 찾아오는 법, 최근 페미니스트에 대한 공격이 점점 가속되는 중이다. 이제 그 친구들은 자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고 했다.

“엄마 페미야?” 맘충이란 소리에는 분노했는데 “엄마 페미야?”라는 말에는 다리가 풀렸다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우석훈의 처방이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 좌파란 모름지기 인기가 없어도 버티는 거 하나는 잘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지는 법이 없다.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
- 권김현영(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지은이)

나에게 추천사를 요청한 저자에게 감사한다. 서점에서 이 책을 봤다면 제목만 보고 이렇게 흥미로운 책을 ‘아, 그러시군요’ 하고 그냥 지나쳤을지 모른다. “너도 페미냐?”는 질문에 586 남자사람 우석훈은 산뜻하게 대답한다. “나는 좌파다!”

남녀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좌파에게 남녀평등은 기본이다. 자칭 ‘보수’ ‘진보’ 양당이 자본주의 앞에 사이좋게 타협하는 한국 사회에서 저자는 좌파인 스스로를 ‘멸종 위기종’이라고 태연히 객관화한다. 좌파는 멸종 직전일지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좌파는 영원하다. 이 책은 미래 좌파의 새로운 스타일로 비분강개 대신 명랑함과 상냥함을 제안하는 그가 응달에서 자생하는 한 줌의 젊은 좌파들에게 보내는 조심스러운 자기소개와 연대의 편지다.
-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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