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한국역사의 이해 (책소개)/9.한국문화.한국사

북행(北行) 허성관의 인문역사기행(2023) - 요동에서 삼강평원까지

동방박사님 2024. 6. 1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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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광활한 요동 벌판에서 북만주를 거쳐 내몽고자치구까지
우리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톺아보는 인문 기행

해양수산부 장관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후 줄곧 역사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오랜 세월 동아시아 북방을 누비며 그 찬연했던 한민족 역사와 문화의 자취를 직접 눈으로 더듬고 발로 찾아낸 우리 역사문화 순례기. 2013년 북경에서 산서성 대동과 태원을 거쳐 태항산맥을 따라 남하하여 하남성 안양까지 답사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광활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유적지들을 찾아간 장장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답사 여행의 기록이다.

한민족의 무대를 한반도 내로 축소시키려는 일제 식민사관에 이어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지금도 현장에 오롯이 남아 있는 유적들은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치밀한 역사 문헌 연구 못지않게 활발한 현장 답사가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답사기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고대사에 관한 온갖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직접 가서 눈으로 보는 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역사의 진실에 육박해 들어가는 노학자의 탐사 기록을 통해 E. H. 카의 말처럼 의미 있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순한 유적지 소개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의미와 맥락을 심도 있게 되짚어냄으로써, 한민족의 찬란한 발자취를 좇아 이 지역들을 답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문학적 가이드북으로서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시작하며─주제가 있는 여행의 즐거움

1부 북만주, 호륜패이초원을 가다

1. 송눈평원을 아십니까? ─장춘, 송원
2. 진개가 동호의 왕? ─송원, 오란호특
3. 송화강과 눈강을 보지 않고 우리 역사를 논하지 말라 ─오란호특, 탑자성, 치치하얼
4. 별이 쏟아지는 밤 대초원에 울려퍼지는 「강남 스타일」 ─치치하얼, 아극석, 금장칸 마을
5. 소·만 국경을 보다! ─천당초원, 만주리, 호륜호, 어얼구나
6. 순록의 고장에서 순록을 보지 못하다 ─어얼구나, 에벤키족 민속촌
7. 아리수, 아사달, 태백산, 동굴, 마늘! ─근하, 아리하, 알선동굴, 악륜춘족 박물관, 자거다치
8. 만주 독립군들이 즐겨 부른 노래 「찔레꽃」 ─자거다치, 눈강현, 치치하얼
9. 꿈에 금나라 태조를 만나 절하다 ─치치하얼, 아성, 하얼빈
10. 중국 북방 민족 역사는 우리 역사다 ─하얼빈

2부 동간도와 서간도를 가다

1. 남의 나라 같지 않다 ─연길
2. 두만강에 노 젓는 뱃사공은 없다 ─연길, 도문, 두만강, 명동촌
3. 우리는 대종교에 큰 빚을 졌다 ─용정, 대종교 3종사 묘, 청산리, 이도백하
4. 천지에서 개천을 경험하다 ─이도백하, 백두산 천지, 통화
5. 아! 이곳이 그곳이구나! ─통화, 삼원포, 고산자, 합니하, 집안
6. 고구려 중심에 가다 ─집안, 환도산성, 환인
7. 비류수 강변에서 자고 오녀산성에 오르다 ─환인, 오녀산성, 단동
8. 비사성은 아사달에 있었다 ─단동, 황금평, 비사성(대흑산성)

3부 산동성, 홍산, 요서를 가다

1.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치청왕국을 아십니까? ─청도, 청주, 제나라 임치성 유적, 치박
2. 치우천황 묘에 참배하다 ─치박, 곡부, 치우총, 하택
3. 기자는 중국 역사에서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하택, 조현, 기자총, 개봉
4. 열하 피서산장은 청나라 마지막 방어 거점이었을 것이다 ─개봉, 정주, 북경, 고북구, 승덕
5. 인류 최고 문명 중심지에 가다 ─승덕, 적봉
6. 북방 민족의 중원 정복로를 달리다 ─적봉, 요나라 중경, 우하량, 조양, 노룡현
7. 식민사학자들이 꼭 보아야 할 우리 고대사 현장 ─백이숙제 유지, 영평부, 갈석산, 천진

4부 우리 민족 문명의 시원, 삼강평원

1. 답사에도 운이 있어야 한다 ─하얼빈공항, 흑룡강성 박물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 송화강
2. 대일항전기 우리 민족 고난의 현장, 아성 ─하얼빈, 아성, 금나라 상경 박물관, 의란현 박물관, 왜긍합달 유적, 쌍압산
3. 40만 평 고대 도시, 봉림고성 ─쌍압산, 봉림고성, 포대산 유적, 요하현 박물관
4. 우리 민족 역사의 시원, 소남산 ─요하현, 소남산 유적, 완달산맥, 밀산
5. 박물관은 역사 교육 현장이어야 한다 ─밀산, 흥개호, 신개류 유적, 계서시 박물관, 도배산 유적, 목단강
6. 아, 상경용천부! ─목단강, 목단강시 박물관, 상경용천부, 경박호, 앵가령 유적, 연길

마치며─멀리 앞을 내다보는 나무들에게

저자 소개

저 : 허성관
광주일고,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 조사부 등에 근무하다 뉴욕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에서 경영학 석사(MBA)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시립대(Baruch College)와 동아대학교 교수, 해양수산부·행정자치부 장관, 광주과학기술원 총장을 역임했다. 교수 재임 중 회계, 재무, 증권시장 등과 관련된 영향력 있는 논문들을 발표했고, 은퇴 후 정부 혁...

책 속으로

주제를 정해 역사 현장을 발과 눈으로 확인하는 답사는 청춘을 되살리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책을 통해 역사적 근거를 찾고 현장을 확인하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임이 확실하다. 이 책에서는 우리 역사와 직접 관련된 답사 지역만을 실었다.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내몽고자치구,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 등이다. 이 지역들을 답사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 p.8

광복 7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테러리스트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얼빠진 학자도 있다. 그러나 안 의사 당신께서 갈파하셨듯이 대한독립군으로 적의 수괴를 사살한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한 손에 붓을,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독립투쟁에 매진하신 분이다. 독립전쟁은 바로 역사 전쟁임을 온몸으로 실천하셨다. 이회영 선생은 오늘날 가치로 수조 원이 넘는 6형제의 전 재산을 독립투쟁에 바쳤고,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932) 선생 등과 함께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3,500여 명의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다. 이들은 대일항쟁기 독립전쟁의 기둥이 되었다. 만주로 망명했던 이회영 선생 6형제 중에서 이시영(초대 부통령) 선생만 살아서 광복 후에 귀국했다. 비록 하늘길을 지나지만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 p.19~20

농안(農安)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농안,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 아닌가? 소년 시절에 국사에서 배운 우리 옛 나라 부여의 중심지가 아닌가! 내 머릿속에서 전설이 된 농안이 바로 여기 농안이다. 농안이 부여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부여 중심지는 아니라고 길림대학에서 공부한 임찬경 박사가 설명한다. 더 북쪽으로 답사할 것이므로 알게 되겠지만 부여 중심지는 훨씬 더 북쪽이고 오히려 농안은 부여 남쪽 경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농안이 중심지라면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니라고 한다.
--- p.22

발굴된 유물은 어디엔가 전시되어 있을 것이다. 장춘에서 북쪽으로 3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부여 유적이라고 임찬경 박사가 설명한다. 서기전 15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의 유적이라고 한다. 중국 학자들이 출토된 유물로 보아 부여 유적으로 판정했다고 한다. 이 유적은 중원 문명의 원형으로 알려진 앙소문화(仰紹文化), 우리 문화의 조상인 홍산문화(紅山文化), 상(商), 주(周)의 청동기 문화와 같은 시대라고 한다. 특히, 이 유적에서 철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 유적은 부여가 최소한 위만이 오기 전에 철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다. 식민사학자들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위만의 무리를 통해 철기가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틀렸다.
--- p.27~28

이 눈강과 송화강이 광대무변한 송눈평원의 젖줄이고 결국 두 강이 합쳐서 흑룡강과 하나가 된다. 이 평원이 있었기에 북방 민족들이 여기서 힘을 기른 후 중원을 장악하고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곳도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우리 민족 역사의 무대다. 이 광활한 평원, 상식을 뛰어넘는 장대한 눈강과 송화강을 보지 않은 자는 우리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다.
--- p.38

출판사 리뷰

“송화강과 눈강을 보지 않고 우리 역사를 논하지 말라!”
장장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답사 여행의 기록


이 책은 광개토태왕비, 백두산, 발해 상경용천부 등 우리에게 친숙한 유적지뿐만 아니라 상고시대 우리 조상들이 활약했던 송눈평원부터 부여족의 시원으로 추측되는 흑룡강성 북쪽의 아리하,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들의 활동 무대 중 하나였던 내몽고자치구의 만주리 등 상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수천 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장대한 여정을 담고 있다. 과거 동북아를 무대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일구어낸 우리 조상들의 흥망성쇠를 돌아보며 찬탄과 비탄이 교차하는 저자의 답사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교훈을 자연스레 되새기게 된다.

교통 형편, 기상 조건과 더불어 중국 측의 의도적인 흔적 지우기(?) 등의 숱한 난관을 뚫고서야 간신히 다가갈 수 있었던 곳들도 많았다고 한다. 동이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치우천황 묘(산동성 문상현 남왕진 소재)는 현지 주민들 중에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운 좋게 위치를 아는 택시 기사를 만나 그 실물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 상고사에서 논란의 대상 중 하나인 기자의 묘(산동성 조현 소재)는 한 마을 주민의 안내 덕분에 겨우 찾을 수 있었는데, 저자가 현장에서 직접 본 결과 이 근처가 은나라의 본거지이고 기자의 고향이니 기자 무덤도 평양이 아닌 이곳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지리적 여건에도 부합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최근에야 한국에 알려진 눈강현의 부여 유적지의 경우,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고 한다. 동북공정 탓인지, 아니면 지형이 변한 탓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안타깝다. 치치하얼 북쪽 250킬로미터, 내몽고자치구와 흑룡강성 경계에 부여의 유적지가 있었다니 우리네 역사 상식으로는 짐작도 못 한 사실이다. 이곳은 며칠 전에 답사한 부여 유적인 길림성 백성시의 한서유적지와 위도가 비슷하다. 여기 북쪽까지도 상고시대 우리 민족 국가 부여의 강역이니 장춘 이북 좁은 지역이 부여였다는 식민사학자(일제 총독부 사학자)들 주장이 거짓말임을 확실히 알겠다. 부여의 강역은 광활했고, 고구려 유리왕이 태자 해명에게 부여가 무섭다고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79-80쪽)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 다르게 현장 답사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심상치 않은 의문들을 제기하기도 한다. 가령 적봉시 외곽에 있는 삼좌점 산성의 경우, 성을 쌓은 방식, 석축원형제단과 적석총의 존재는 이 유적이 한족이 남긴 것이 아니고 우리 동이족 유적임을 말해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4천 년 전이면 고조선 초기다. 따라서 이 산성을 고조선 산성이라 명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 산성 이후 고구려 산성이 나타날 때까지 같은 유형의 산성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식민사학계는 고조선 산성으로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 고조선 산성이 고구려 산성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식민사학계 논리가 맞다고 해도 없는 것과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다른 문제다. 부정하기 전에 치열하게 발로 뛰고 연구하는 것이 먼저다. (228-229쪽)

중국이 동북아에서 우리 역사 지우기를 완료하기 전에, 우리 역사학계가 반드시 귀 기울이고 그 실상을 심층 연구해야 할 시사점들이 아닐 수 없다.

“북방 민족들의 역사도 우리 역사다!”
한민족과 북방 민족의 역사 유적을 총망라한 값진 답사 성과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우리 조상들의 나라인 부여, 고구려, 발해의 자취 못지않게 북위를 세운 선비족, 요를 세운 거란족, 금을 세운 여진족 등 동북아를 호령했던 북방 민족들의 역사를 우리 형제 민족의 역사로서 적극 살피고 보듬어냈다는 것이다. 거란족의 요나라 성 흔적, 금나라 상경 유적지, 부여족과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이 힘을 기른 지역인 백성시의 박물관, 대흥안령박물관, 노몬한 등에 지금도 오롯이 살아 숨 쉬는 북방 민족들의 발자취를 찾아낸 여정은 이제까지의 여느 답사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값진 답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방 민족들을 소중화사상의 관점에서 오랑캐로 보고 멸시했던 우리의 전통적인 역사관을 비판하며 그들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연구해야 할 당위성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북방 민족들은 대부분 오늘날 사라진 민족이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망한 지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 중국에는 만주족 말을 가르치는 초등학교도 없다. 북방 민족사를 연구하는 중국 학자들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한족 입장에서 연구한다. 북방 민족 중에서 지금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와 몽골 그리고 일본이다. 일본은 아니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 북방 민족사를 우리 관점에서 연구하고 정리해야 한다. 국가적인 사업으로 대대적으로, 그러나 조용히 추진해야 한다. 언제일지 알 수 없으나 먼 후일 반드시 크게 쓰일 것이다. 대륙성과 해양성이 발휘될 때 우리 민족은 융성했다. 북방 민족사 연구는 바로 우리 역사에서 대륙성을 회복하는 기초 작업이다. (100-101쪽)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반도 통일 이후 동북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기획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관점에서 북방 민족사를 새롭게 연구, 정립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는 자가당착적 국수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당차게 가슴에 품고 있었던 대륙의 혼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소중한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