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 464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2024)

책소개본 펀딩수익금 전액은 ‘나눔의 집’에 기부됩니다.일본인이 자국의 가해 역사를 비판하는 도서가 이전에도 존재했는가? 여기 전에 없던 일본 청년들이 혐오가 만연한 일본 사회를 살아가며 느꼈던 부끄러움과 고백의 기록을 담은 도서가 탄생했다.『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일본 출간 당시, 일본 아마존 ‘사회과학’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주목할 것은 해당 분야에 ‘혐한’ 도서가 다소 분포해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식 출간 전, 이례적으로 한국 주요 신문사에서도 이 도서와 관련된 수많은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냈다. 이 도서가 정체된 한일관계에 ‘새로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한일 양국 언론이 일찍부터 기대한 결과였다.『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일본이 한국에 행한 가해 역사를 마..

근대 일본 (2024) - 국가신도의 창출과 그 후

책소개만들어진 종교심(宗敎心)과사라지지 않은 근대 일본의 비종교(非宗敎)『근대 일본 국가신도의 창출과 그 후』근대 일본사에서 ‘만들어진’ 제도로서의 국가신도는 근대천황제 확립을 목표로 일본의 전통신앙 지형에 ‘변혁’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해외 식민지에도 국가신도를 침투시켜 식민지의 전통 신앙에도 ‘변용’을 불러일으켰다. 굴곡의 근대 일본 종교사와 식민지종교의 변주곡에 대한 이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국내와 그들의 구(舊) 식민지의 종교를 파악하는 데 불가결한 주제이다. 우리 종교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과연 알고 있는가.일제는 대한제국 강점 이후 1910년대에 식민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구관(舊慣)조사’를 실시하였으나 우리의 전통신앙과 종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동화(同化)주..

일본 개신교 역사 이야기 1 (2012)

책소개일본의 개신교 역사는 150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오늘날 일본에서 개신교를 믿는 인구는 1%가 채 되지 않는다. 저자는 개항 초기에 정착하기 시작한 개신교의 모습을 통해 그 원인을 파악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형성된 일본 개신교의 특징은 어떠한지 분석하였다. 특히 이 책은 일본 개신교 초기인 1859년부터 1912년까지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시에 요코하마가 개항되면서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더불어 개신교 선교사의 입국을 시작으로 일본 개신교의 문이 열린다. 초기 일본 개신교의 독특한 특징 8가지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으며, 근대 일본 국가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개신교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목차여는 글_왜, 초기 개신교 역사인가?1 개향과 일본 개신교1.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난세의 승자가 되었는가 (2024)

책소개나이 어린 인질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때까지,변혁의 시대를 거머쥔 마지막 천하인天下人의 일대기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며, 아들이 어머니를 배신해야 했던 일본 전국시대.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패륜과 하극상이 난무하던 폭력의 굴레를 부순 최후의 승자였다. 세계는 흔들리고 만인의 일상이 요동치던 시기, 기구한 운명의 나이 어린 인질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시대의 주인이 됐을까?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나고 바로 그다음 해, 일본 열도에 ‘대항해시대’가 해일처럼 몰려왔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서양 상인과 예수회 선교사는 일본 전국시대의 판도를 흔들었고, 그로 인한 ‘문화 충격’은 전국시대 다이묘들의 생존 전략을 송두리째 뒤바꾸었다. 이에야스는 변혁의 시대가 도래한 바로 그..

일본서기와 천황제의 창출 (2012)

책소개고대 천황제의 성립과정과 그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일본 역사에서 왜곡된 청황제 인식이 이후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규제하고 잘못된 역사관을 형성했음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고대에 후지와라노 후히토가 청황을 신격화하면서 천황제를 성립시킨 것은 근대에 천황제를 만든 메이지유신 공신들이 천황을 신격화하면서도 실제로는 천황을 단지 허수아비로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그 논리가 동일하다. 이것은 일본의 천황제를 이해하는 데 지극히 예리한 지적이며 근대의 황국사관이 시공을 초월하여 고대의 논리, 즉 일본서기의 신화적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목차저자 서문역자 해제l.『일본서기』의 구상제1장 쇼토쿠태자의 탄생1. 쇼토쿠태자 관계 사료의 재검토2. 쇼토쿠태..

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 (2019) - 날조된 천황 37명과 일본고대사

책소개무려 2,679년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이어온 일본 천황가(天皇家)는어디서 기원하였는가?일본 사람들은 일본을 통치한 천황가(天皇家)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초대 천황이라는 신무(神武)가 기원전 660년에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는 이때부터 서기 687년에 즉위한 40대 지통(持通)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왕조교체도 없이 계속하여 이어져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그 뒤를 이어 697년 즉위한 문무(文武)천황부터 현재의 영화(令和)천황에 이르기까지, 천황가의 왕통이 계속된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 천황가는 기원전 660년 즉위하였다는 신무 이래 2019년 현재 시점까지, 무려 2,67..

속국 倭國에서 독립국 日本으로 (2022)

책소개전무후무한 역사를 이어왔다는 일본 천황가(天皇家)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며 왜국은 백제의 속국이었다.백제가 멸망하고 백강전투에서도 패하자, 백제 부흥의 꿈은 완전히 사라졌다. 왜왕 천지는 이제는 백제의 속국이 아닌, 정상적인 국가로 독립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지 못한 국호 「倭國」을 「日本」으로 바꾸고, 최초의 율령, 최초의 호적, 최초의 학교, 새로운 관제, 등 독립국으로서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분주하였던 사정을 알 수 있다. 왜국이 속국이 아니었다면 수백년 이전에 이루어졌어야 할 일들이,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야 뒤늦게 마련되었던 것이다. 속국 혹은 식민지 「倭國」이, 백제 멸망 이후 비로소 독립국 「日本」으로 새출발하였다.목차머리말1장. 천황 즉위식의 ..

폐번치현 일본 근대국가 탄생의 무대 뒤 (2024)

책소개번을 폐하고 현을 만든다!폐번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폐번치현이 선언되기 불과 닷새 전이었다!“폐번 단행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다가왔다.정부 내의 동요는 격렬하였고 상하가 함께 ‘경악’했다”칙서 한 통으로 번이 사라지고 에도막부체제가 완전히 붕괴,메이지 중앙집권국가, ‘메이지국가’가 탄생하다『폐번치현』은 2014년 가도카와문고에서 출판된 가쓰타 마사하루의 『폐번치현 근대국가탄생의 무대 뒤(?藩置?―近代?家誕生の舞台裏)』의 번역서로, 메이지유신기 폐번치현을 단독으로 다룬 책으로는 국내 첫 소개이다. 폐번치현을 결과론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 몸을 두고 그 장소로부터 들여다보는 것이 본서의 기본적인 입장으로, 폐번치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문서와 일기류, 회의록 등에 기초한 1차 사료..

전근대 일본의 영토인식 (2012)

목차책머리에야마토 왕권의 영역 확장을 통해 본 고대 일본의 경계인식|홍성화Ⅰ. 머리말Ⅱ. 중국 사서에 나타난 일본의 경계인식Ⅲ. 일본 사료로 본 야마토 왕권의 경계인식1.『일본서기』의 영역 확장에 대한 인식2. 경계 지역의 인식3. 영역 확장의 실태Ⅳ. 고고학 자료를 통한 경계인식Ⅴ. 고대 이즈모의 지역성과 경계인식Ⅵ. 맺음말동아시아와 일본율령국가의 경계인식|송완범Ⅰ. 서Ⅱ. '율령국가'의 변경Ⅲ. '율령국가'의 경계인식 - 사천왕신앙1. 사이카이도2. 산이도3. 호쿠리쿠도4. 데와국Ⅳ. '율령국가'의 경계인식의 변화Ⅴ. 결국내외의 고지도로 본 중세 일본의 영토인식|김보한- 쓰시마와 오키를 중심으로Ⅰ. 머리말Ⅱ. 한·일 고지도에서 본 쓰시마와 오키1. 중세 일본의 관념적 영토인식2. 행기식일본도의 도로선..

교류와 전쟁으로 본 일본사 (2023)

책소개고대부터 근대까지 일본의 각 시기에 대해 찍은 역사적 좌표역사학자들은 역사학이 다른 학문보다 ‘사실’에 충실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의 연구도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어떤 사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기록되는 순간부터 그 사실은 기록자의 입장, 가치관,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만약 자신의 연구가 완전히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가치 중립적이며 치밀한 실증적 방법에 근거하고 있기에 일말의 오류도 없다고 믿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사실의 속성과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한 태도이다. 따라서 자신의 입장과 시각이 어디쯤 서 있는지를 자각하면서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는 것이 역사 연구의 기본이다. 역사의 사실과 연구자의 해석은 싫든 좋든 특정 위치에 좌표가 찍힐 수밖에 없고,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