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4.인천시 관광 37

자유공원내 (송학동 옛 시장관사) 02-12

송학동 옛 시장관사 중구 응봉산 기슭에 있는 송학동 옛 시장관사는 1883년 인천 개항 후 한세기의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이곳은 인천항이 내려다보이는 수려한경관과 정원으로 이름이 나 있다. 송학동 옛 시장관사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1900년쯤에는 일본인 사업가의 일본식 저택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광복 후에는 동양장이라는 서구식 레스토랑과 송학장이라는 사교클럽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1965년 인천시에서 부지를 매입하여 한옥 건물을 신축하고 1966년부터 35년간 인천 시장공관으로 사용하였다. 이곳에서 총17명의 시장이 생활했다. 2001년부터는 인천직할시 승격 40주년을 기념하면서 재단장하여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탄생 하였다.

자유공원 (제물포 구락부) 02-12

구) 제물포 구락부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도시였다. 다른 개항장과 달리 서양 각국의 외교력과 경제활동이 청.일을 압도적으로 견제하면서 자주적인 개항장으로써의 가능성과 희망을 품게 해준 도시였으며, 1901년 6월 응봉산 자락에 건축된 제물포구락부는 그 구심점 역할을 담당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등 지난 한 근현대사를 시민과 함께 해왓으며, 건축 당시의 외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와 러시아의 건축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근대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1953년 4월부터 1990년 5월까지는 시립 박물관으로 활용되며 인천 시민의 사랑을 한껏 받기도 했었다.2020년 제물포구락부는 인천시의 문화재 활용정책 제1호 사업으로 재개관을 했으며, 자주적 개항의 꿈..

자유공원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지. 한미수호 100주년기념탑.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02-12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영어: Treaty of Peace, Amity, Commerce and Navigation, United States–Korea Treaty of 1882)은 1882년(고종 19년) 조선과 미국 간에 조인된 조약이다. 1882년 5월 22일(음력 4월 6일) 조선의 전권위원 신헌, 김홍집과 미국의 전권위원 로버트 윌슨 슈펠트 간에 제물포에서 체결되었다.이 조약은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수호 통상 조약이다. 미국 정부의 명을 받은 슈펠트는 처음에 일본을 통하여 조선과 수호 조약을 맺으려고 일본 외무경(外務卿) 이노우에 가오루(井上聲)의 소개장을 가지고 부산에 입항하였다. 그는 일본 영사(領事) 곤토(近藤眞鋤)로 하여금 동래부사를 방문하고..

차이나타운 (공화춘 : 짜장면 박물관) 02-12

인천 선린동 공화춘 共和春 공화춘의 전신은 산동회관으로 중국인 전용 주거지인 청국 조계지에서 음식점과 호텔의 혼합형 숙식업소로 시작하였다. 1911년 산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 (于希光)이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개업하였다가 이듬해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국의 봄' 이라는 의미의 공화춘으로 개명하였다. 일제강점기 이래 인천과 서울의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경인지역 최고급 요리점으로 70여 년간 그 명성을 이어왔고, 6.25전쟁 이후에는 짜장면 등 대중 음식을 보급 하였다. 공화춘은 화강암 석축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2층 벽돌조 건물로 화교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연안부두 신축으로 인천역 일대 상가가 쇠락하면서 1883년 영업을 중단하였고 2012년부터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 (의선당) 02-12

의선당 (義善堂) 1883년 청나라 영사관이 인천 선린동에 설립됨에 따라 선린과 북성 두 동은 화교들이 끊임없이 증가하면서 점차 차이나타운(청관)거리가 되었다.. 그해 인천에 체류하던 화교들은 후에 고향의 전통문화를 계승하여 작은 묘당을 건립하였고 '의선당' 이라고 불렀다. 정전은 부처님의 광명이 비추는 과세음보살, 용왕신, 의를 중하게 여기기를 천년에 이어 간다는 관공(관우), 마조선, 호삼할아버지등 다수소상을 모시는 것 외에도 다양한 민간 신앙신을 모신다. 의선당은 중국인들이 현지에 거주하고 바다에서 향해하며 무역의 교류나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평안과 화합하기를 기원하고 더욱 화교가 단결하고 정의가 가득하도록 살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차이나타운 / 인천역 / 동화마을 02-12

착공과 개통 1897년 3월 22일 대한제국은 주한미국전권공사 겸 기업가인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에게 사업을 맡겨 기공하였다. 미국이 기공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대한제국 정부가 '국내철도규칙’(1896. 7. 15)을 반포하면서 철도규격을 표준궤로 채택하였는데, 미국 철도가 표준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사업권을 가져오기 위해 대한제국 정부 조직이 매우 불안정하여 조만간에 나라로서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고(경술국치) 대놓고 소문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미국의 대한반도 투자를 크게 위축시켰다. 그리고 1898년에 자금난을 겪어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던 것을 당해 5월 10일에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가 양도받아[5] 1899(광무 3)년 9월 18일에 완공시킨다(철도의 날). 당시 ..

인천 수도국산 박물관 & 송현배수지

송현배수지 제수변실 송현배수지는 인천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자 도시 계획 시설로 1906년 11월 착공하여 1908년 준공되었다. 1910년 노량진에 수원지 정수 시설이 준공되자 노량진과 인천 사이에 32.62km의 수도관을 부설하여 1910년 12월10일부터 급수를 시작하였다. 배수지 시설로는 제수변실과 화강석으로 된 23단의 계단과 철제 정문이 있다. 제 수변실은 배수지에서 배수관의 단수 및 유압 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제수밸브를 보호하는 시설물로서 원통형이며 철근을 넣치 않고 굳힌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다. 1994년 재건축 이후 현재 제수변실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송현배수지의 부지 면적은 38.845제곱미터이고 7,000제곱미터의 저수조 3개를 갖추고 있다. 저수능력은 20,000톤이며 이곳에서 ..

강화산성.에버리치.이건창생가

강화산성 남장대 장재는 전쟁시 군사지휘에 용이한 곳에 지은 장군의 지휘소이다. 규모가 크고 중요한 성곽에 두어 평상시에는 성의 관리와 행정기능을 수행하였다. 강화산성은 1232년 고려시대 몽골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최우가 1234년 각 도의 도민과 장정을 징발해 내성.중성.외성으로 구분해 축조하고 그 안에 궁궐과 백사의 건물을 개성의 것과 비슷하게 건립하였다. 둘레는 7.1km의 강화산성에는남산과 북산에 각각 남장대와 북장대 그리고 서문안에 서장대가 있었으나 모두 허물어 진것을 2010년 남장대만 복원 하였다.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이 나무는 4월니면 잎보다 지름 3~5cm의 흰꽃이 먼저피고 열매 맺는 가을이면 노랗게 익는다. 나이는 400년이고 높이는 3.8m 땅위 2.8m높이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용트..

강화 산업조합

, 산업조합의 역사는 지워졌고 조양방직의 역사는 지금도 흐르고 있을까요? 역사는 승자기록의 역사일까요? 강화의 가난한 서민들의 생존기반이었던곳 집에서 직물을 짜던 8천명의 농민들 여성에게 직물 짜는 법을 가르치다가 한글을 가르쳐야 했던 청년들 8도를 다니며 직물을 팔던 사람들 노동자.농민과 함께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던 조합장과 직원들 이들에 대한 기억도 그렇게 흘러 사라진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마음도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본가들과 소위 지역 유지들의 악날한 행동과 함께 흘러갔다. 그렇게, 그렇게 사라진 기억이 되었다. 조양방직과 심도직물만 남았다. 얼마나 교묘한 역사 왜곡인가! (최태육페이스북에서)> "황우천(1894~1953)은 부근리에서 출생하여 경성중앙학교와 일본 경응慶應 대학을 졸업하고 19..

강화도 교동 대륭시장

강화도 교동 대륭시장 대륭시장은 6.25 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 온 주민들이 한강하구가 분단선이 되어 고향에 다시 돌아갈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을 본따 만든 골목시장이다. 50여년간 교동도 경제발전의 중심지였으며 지금은 시장을 만든 실향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국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의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2014년 7월 교동대교 개통과 함께 1960년대의 영화세트장같은 모습의 대륭시장을 카메라에 담기위한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