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사회학 연구 (책소개)/7.언론미디어

언론 혐오 사회

동방박사님 2022. 5. 15. 07:01
728x90

저자 소개 

저 : 정상근
 
2007년 지역 언론에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레디앙이라는 인터넷 매체에서 진보정치 분야를 취재했고, 언론 전문지인 미디어오늘에 입사해 미디어부, 정치부 등을 거쳤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것보다 뉴스를 선별하고 요약하는 것에 소질이 있다고 느끼고 회사를 그만둔 후, 지금은 라디오 방송 등에서 뉴스 브리핑과 큐레이션을 하고 있다. 현재 SBS 〈김영철의 파워FM〉, 〈이재익의 정치쇼〉, KBS 〈주진우...
 

책 속으로

그나마 취재를 하면서 기사를 많이 쓰는 건 양반이다. 아예 어뷰징에 동원된 기자 아르바이트생들은 하루 100건의 기사도 쓰곤 한다. 암탉이 닭장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달걀만 낳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기사를 보고,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고, 조사 몇 개 바꾸고,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포털에 전송하곤 한다. 기자가 되기 위해 신문 읽고, 토론하고, 자격증 따며 노력해온 기자 지망생들을 활용해 언론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런 걸 기사라고’ 포털에 전송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 p.31

우스갯소리로 같은 언론사 기자라 하더라도 여당 출입기자는 여권, 야당 출입기자는 야권과 생각이 똑같아진다는 말이 있다. 정치부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정치인이 되고, 검찰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검사가 된다. (중략) 출입처에 갇혀 있다 보면 비판의 시선도, 감시와 견제의 시선도 바로 그 출입처로부터 나온다. 국민과 기자가 서 있는 곳이 다른데 국민이 보는 풍경이 기자들이 보는 풍경과 같을 수 없다.
--- p.39

처음부터 코로나19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매우 정치적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차별과 편견, 혐오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전염병 바이러스에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것을 배제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숱한 전염병을 겪으면서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산물이다. 그래서 전 세계인이 모인 국제기구에서 그렇게 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 언론은 계속해서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발생 초기 WHO에서 명확한 단어 규정을 내리기 전에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명칭이 통일된 이후에도 계속 ‘우한 폐렴’이란 용어를 썼다. 그 단어를 쓰지 않는 집단은 ‘친중’이고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분열시켰다.
--- p.45

국민의 범죄엔 추상같이 호통치며 엄정한 법질서를 강조하던 언론들이 광고주님의 중대범죄는 ‘쉴드’ 치기 바쁘다. 광고주님이 잡혀가면 경제 위기 운운하며 사면시켜달라 조르고, 광고주님의 경영 실패로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세금을 투입해 살려놓으라 떼를 쓴다. 잘 사는 집 아이나 못 사는 집 아이나 구분 짓지 말고 누구나 점심을 먹이자는 주장은 ‘포퓰리즘’이니 ‘퍼주기’니 비난하며 서민들의 마음을 후벼파지만, 광고주님에게는 아낌없는 주는 나무가 된다.
--- p.60

언론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저열하고 무책임했다는 것이다. 실종자들의 행방을 알 수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언론 중 하나라는 MBC는 실종자 가족들이 가족이 사망한다면 보험금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를 보도했다. (중략) 속보 경쟁이 이어지면서 오보 한 번 안 낸 언론을 찾기 어려웠고,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포털에 횡행했다.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대변하지 못했고 출입처에 의존하며 자료를 받아썼다. 실종자 가족들은 어느 언론도 신뢰하지 않았고, 신뢰를 넘어 아예 기자들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생겼다.
--- p.113

이런 모습이 출입처의 폐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카메라 뒤에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 그것은 기자가 취재한 사실을 독자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실을 넣고 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생방송 중 오가는 기자들의 질의응답이 어떤 사실을 재가공하지 않은 그야말로 ‘날 것’이라면, 백 브리핑을 통해 오가는 기자들과 취재원들의 질의응답은 필요한 재료를 빼내 가공하는 요리에 가깝다.
--- p.119

엠바고 파기와 관련해 생각해야 할 중요한 일례가 ‘제미니호 사건’이다. 지난 2011년 4월, 한국인 선원들이 타고 있던 싱가포르 국적의 선박 ‘제미니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되었다. 4명의 국민이 해적에 잡혀 있는데 우리 국민은 그 소식을 무려 16개월간 몰랐다. 외교통상부가 엠바고를 걸었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들은 무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엠바고가 걸려 있다는 이유로 제미니호 선원들이 피랍된 사실을 알고도 보도하지 않았고, 왜 구출하지 않냐고 더 묻지도 않았다.
--- p.129

가치는 바로 ‘신뢰성’이다. 게이트키핑은 언론사가 가진 유일한 무기다. SNS와 유튜브가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고,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각종 조사에서 처참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SNS에 떠도는 이야기와 언론 보도의 무게감은 전혀 다르다. 세상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지만, 게이트키핑을 통해 가려진 정보는 신뢰할 만한 정보로 인식된다. 많은 분이 ‘기레기’라 욕해도, “유튜브에서 봤어” 보다는 “뉴스에 나왔어”라는 말을, ‘아직까지는’ 조금 더 신뢰한다.
--- p.173

때때로 정치적 반대파들은 사실을 부인하고, 사실을 보도한 언론과 기자를 비난하고 욕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때때로 대중의 시선은 편향되기도 하고 비이성적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떤 기자들은 본인 SNS나 자기 기사에 달린 악플, 혹은 정치적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독자들을 조롱하고 비판하며 싸우려고 한다. 본인 딴에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독자들이 아니다. 극복해야 할 것은 극단의 시대이지 극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 p.189

징벌적 손해배상은 단순한 주제가 아니다. 언론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언론을 탄압한다는 말 사이에는 아주 미묘한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만 있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판사들이 언론 피해에 대한 손해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다. 언론 보도로 인생이 망가질 정도의 일이라면 피해자 인생에 언론이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의 보상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지금 언론과 언론인의 태도는 분명히 이상해 보인다. 수술실 CCTV 설치법에도, 사립학교법 개정안에도 언론은 아무리 못해도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기라도 했는데, 이 법안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언론자유 탄압이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자기들 문제여서 그런 것인가?
--- p.206

짧은 건 좋은데 내용은 알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정리된 기사가 아니라 그 순간순간 나오는 사실들만 기사로 쏟아내니 독자 입장으로선 이 이슈가 도대체 왜 논란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니 뉴스가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안 읽는다. 무슨 말인지 몰라 검색으로 맥락을 찾으려 해도 검색하면 다 똑같은 기사만 나온다. 이거 하나 알자고 금쪽같이 귀한 시간을 써야 하겠는가? 그냥 뉴스 안 읽고 말지.
--- p.306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기자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일방적인 보도 속에서도 이 법을 찬성하는 여론이 80%에 이르렀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부랴부랴 ‘자율규제 기구’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처한 환경이 다른 각각의 언론이 이를 따를 리 만무하다. 현재 처해 있는 저널리즘의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를 내는 것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다. 솔직히 자율심의 기구 같은 건 이미 2개나 있고 국가에서 법에 근거해 운영하는 규제 기구도 이미 2개나 있다.
--- p.310
 

출판사 리뷰

“이런 것도 뉴스냐?” “저 기레기는 앉아서 기사 쓰네!”
믿을 만한 기자도, 볼 만한 뉴스도 없는 한국 언론의 현실


2021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46개국 중 38위를 차지했다. 2020 언론인 신뢰도 조사에서는 5점 만점 중 2.98점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가짜뉴스의 주요 통로로 ‘언론’을 꼽고 언론사도 기자도 믿지 않는다. 뉴스보다 유튜브를 더 신뢰하고 기자라는 직업인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왜, 언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언론 혐오 사회』는 현직 언론인인 정상근 기자가 고발한 한국 언론의 현주소이다. 왜 모든 언론사가 똑같은 기사를 경쟁하듯 생산하는지, 왜 기레기란 소리를 듣고도 변화하지 않는지, 왜 오보를 내고도 사과하지 않는지, 왜 언론은 정치인과 재벌의 이야기만 듣는지, 왜 그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반대하는지 그 이유와 원인을 파헤친다.

언론을 불신하고 더 나아가 혐오하기도 하지만, 언론이 변질된 이유를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언론 개혁에 다가가는 첫 번째 발걸음은 바로 현실에 대한 직시이다. 이 책은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언론중재법, 출입처, 조회 수, 엠바고, 비보도, 기자단, 포털, 수익 등
한국 언론을 좌우하는 키워드 분석


뉴스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될까? 『언론 혐오 사회』에서는 언론사 내부를 들여다보며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문제점을 보여준다. 국회와 정부청사 등 출입처에 갇힌 기자들, 게이트키핑이 사라진 편집국, 조회 수에 집착하며 마구 뉴스를 쏟아내는 언론, 엠바고의 진실과 비보도의 명암, 기자들의 이익집단이 되어버린 기자단 등 한국 언론을 좌우하는 수많은 키워드를 분석한다. 또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이를 반대하는 언론인들의 속내를 꺼내 보이며 우리 언론이 넘어야 할 수많은 난관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수익’, 즉 돈이다. 뉴스가 공짜가 되어버린 이 시대, 모든 문제는 돈으로부터 파생된다. 언론이 추구해야 할 수익모델과 포털과의 관계를 깊게 고민하며 펼쳐 보인다.

정준희, 손가영, 임자운, 심인보 등
한국 언론과 함께한 이들의 인터뷰


『언론 혐오 사회』에서는 한국 언론과 함께하는 네 사람의 인터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공영 언론을 주목하는 정준희 교수, 기자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보도했던 손가영 기자, 삼성 반도체 희귀질환 사건에서 노동자를 변호했던 ‘반올림’의 임자운 변호사, ‘친일과 망각’ 등 굵직한 탐사보도를 해낸 뉴스타파의 심인보 기자 등 현업 언론인, 언론과 밀접한 사람들의 솔직한 인터뷰가 담겼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언론을 비판하고 비전을 제시한 인터뷰는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편파성, 정파성, 가치 지향성이 혼동돼 사용되는데 이 세 가지는 층위가 다르다. 예를 들어 가치 지향성은 편파나 정파로 얘기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다. 언론은 원래 가치 지향적이어야 한다. “나는 몰가치를 지향해”라고 해도 그건 가치 지향적이다. “나는 오락성을 지향해”, “공익성을 지향해”라고 해도, 다 가치 지향성이다. 좌파적, 우파적도 여기에 다 들어갈 수 있다. 특정 정파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정준희 교수

“여성들을 ‘품평’하는 듯한 대화 내용도 많았다. 소개팅 앱 등을 통해 매주 여성을 만나는 남성이 있었는데. 상대 여성의 사진을 공유하고 무엇을 했는지도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단톡방 참여자들은 여성을 보며 성적으로 조롱했고 성매매 업소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손가영 기자

“지금까지는 이해가 안 됐는데 기사를 썼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왜 그렇게 기사를 썼냐 했더니 그 기자가 하는 말이 ‘기자들은 관심이 없어요’였다. 기사를 쏟아내긴 하지만 홍보팀에서 얘기하니까 받아쓰는 거다. 그리고 그게 일인 거고. 밥벌이니까 나도 이해한다. 삼성을 옹호해줘야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냥 그런 직장생활을 하고들 있는 거다. 다만 그 직업이 언론이고 사회적 영향이 있다는 것뿐이다. 허탈해졌지만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대체 책임은 누가 지는 건가?”
-임자운 변호사

“어떤 ‘사건’이라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응축해서 보여준다. 사건은 어떤 구조적인 이유가 있으며 탐사보도는 그 구조를 찾아낸다. 비록 100% 완벽한 전말을 보여줄 순 없지만, 납득이 갈 만한 정보를 탐사해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경험해볼 만한 일인 것 같다.”
-심인보 기자

현직 기자가 한국 언론에 건네는 애정 어린 비판과 성찰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언론이 나아가야 할 수많은 비전을 제시한다. 질 좋은 뉴스를 독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취해야 할지 아프게 제안한다. 경직된 조직 문화 대신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화, 철학을 가진 공론장으로의 역할, 되살려야 하지만 답습해서는 안 되는 게이트키핑, 포털 탈출 등 언론이 본질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방법을 제시한다.

또 복붙 기사에는 기레기란 조롱과 욕설이 댓글을 어지럽히지만 공들인 기사에는 어김없이 ‘기자님’이라며 경의를 표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이 시대 언론이 진정 해야 할 일을 강조한다.

“청년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죽어가는 부조리한 현실을 추적하면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만들어질 수 있고, 연인 간 폭력 범죄에 대한 기사로 피해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 대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국가 폭력으로 피해를 입고 몇 대에 걸쳐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작은 마을을 위한 특별법도 이끌어낼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아니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자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많은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출처로 ‘언론’을 꼽고 있다.

달라져야 한다. 언론사가 달라져야 하고 언론사의 변화는 기자들이 만들어야 한다. 오랜 관습을 돌이켜보고 장점은 계승하고 문제점은 보완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 누가 대신하려 하면 언론 탄압이라고 할 것 아닌가? 그럼 스스로 변해야 한다.”
 

'27.사회학 연구 (책소개) > 7.언론미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시민 기자다  (0) 2022.08.07
칼럼니스트로 먹고살기  (0) 2022.05.15
프로파간다  (0) 2022.05.15
여론 굳히기  (0) 2022.05.15
미디어의 이해 (매클루언) : 인간의 확장  (0) 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