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선시대사 이해 (책소개)/1.조선왕

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 : 태조에서 순종까지, 왕의 사망일기

동방박사님 2022. 6. 14.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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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 왕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다
“태조에서 순종까지, 왕의 사망 일기”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밝혀진 조선 왕들의 사망 원인은 당뇨병, 울화병, 불면증과 같은 성인병과 등창, 피부병, 성병과 같은 성인성 질환, 폐결핵이나 폐렴과 같은 선천성 유전병 등이다. 이 병들은 흔히 과식, 과음, 과색(過色)에 의한 것과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왕의 수명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왕권이 약해진 조선 후기에는 왕의 수명이 더 짧아지는 경향도 보인다.

조선 왕들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수도 없이 많다. 저자들은 조선 왕들의 사망 원인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수많은 고문헌과 의학 서적을 살펴보았다. 조선 왕들의 사망 원인이 타고난 유전자 때문인지, 잘못된 식생활과 과음·과식이나 지나친 성생활로 인한 성인성 질환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원인에 의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조선 왕들의 건강을 해쳤던 생활 습관으로 무절제, 지나친 호의호식과 그에 비해 운동이 부족했던 점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장수한 왕들은 적당한 운동과 소식과 채식 위주의 음식을 섭취했고, 반면에 고기를 좋아하고 과식과 과색을 즐겨했던 왕들은 장수하지 못했다.

『조선의 왕은 어떻게 죽었을까』는 조선 왕들의 일상과 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들로 인해 그들이 어떤 질병으로 사망했는지, 고질적인 식습관은 질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러한 식습관을 불러온 가족사와 개인적인 성품 등이 질병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도 살펴본다. 인간의 수명은 생활 습관이나 체질, 삶을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스트레스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목차

추천의 글 · 4
머리말 · 7
프롤로그 · 16

【제1대】 태조
신덕왕후 강씨와 두 아들의 죽음 · 23 | 중원의 황제가 되는 길 · 27 | 알츠하이머병과 우울증을 앓다 · 30
【제2대】 정종
격구와 사냥을 즐기다 · 35 | 재위 2년 2개월, 상왕 19년 · 38 | 불면증에 시달리다 · 41 | ‘기생한 왕’과 ‘허수아비 왕’ · 45
【제3대】 태종
허약한 체질의 소심한 왕 · 49 | 애간장이 마음과 몸에 축적되다 · 53 | 목이 뻐근하고 팔이 시리다 · 57
【제4대】 세종
육식을 좋아했던 대식가 · 59 | 닭, 꿩, 양고기를 처방하다 · 62 | 안질과 임질로 고생하다 · 65 | 척추에 염증이 생기고 움직임이 둔해지다 · 67
【제5대】 문종
등에 난 종기 · 71 | 꿩고기가 독살의 증거인가? · 75 | 종기가 암 덩어리는 아니었을까? · 77
【제6대】 단종
“나를 죽일 수 있는 자가 없다” · 81 | 가장 불운했던 왕이자 가장 단명했던 왕 · 85 | 죽음의 공포로 인해 생긴 구역질 · 87
【제7대】 세조
친족을 살해한 죄책감 · 91 |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피부병을 치료하다 · 95 | 악행을 저지르고 깨끗한 병으로 죽는 왕은 없다 · 98
【제8대】 예종
족질을 앓다 · 103 | 예종은 독살된 것일까? · 107 | 허위로 작성된 유교 · 109
【제9대】 성종
야음을 틈타 궁궐 밖으로 나가다 · 113 | 감기와 종기로 고생하다 · 117 | 과도한 음주와 성생활 · 120 | 대장암으로 사망하다 · 122
【제10대】 연산군
사슴을 활로 쏴 죽이다 · 127 | 소변을 찔끔찔끔 자주 보다 · 130 | 연산군의 광기의 원인 · 133 | 연산군은 살해되었을까? · 136
【제11대】 중종
산증과 종기를 앓다 · 139 | 똥물을 마시다 · 142 | 대변을 보지 못하다 · 145
【제12대】 인종
주다례를 지내다 · 149 | 문정왕후가 궁궐 밖에 나가다 · 153 |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명열 · 156
【제13대】 명종
학질과 감기를 앓다 · 161 | 후사를 정하지 못하다 · 165 | 허혈성 심장질환을 앓다 · 167
【제14대】 선조
학문에 밝고 합리적인 왕 · 171 | 위장병과 이명을 앓다 · 174 | 인목왕후가 선조의 임종을 지킨 이유 · 179
【제15대】 광해군
화증과 심질을 앓다 · 183 | 임진왜란과 왕위 계승 · 187 | 노력하고 힘써서 피로한 병 · 190 | 광해군이 장수한 이유 · 192
【제16대】 인조
가장 무능한 왕 · 195 | 학질로 사망하다 · 199 | 여우 뼈의 저주 · 201 | 조현병을 앓다 · 204
【제17대】 효종
욱하는 성질과 식탐 · 207 | 머리에 생긴 종기 · 211 | 과다 출혈로 사망하다 · 214
【제18대】 현종
위장병과 안질을 앓다 · 219 | 죽는 순간까지 고통을 호소하다 · 222 | 슬픔이 지나쳐 병이 되다 · 225
【제19대】 숙종
다혈질적인 성격 · 229 | 애간장을 태우다 · 233 | 잊을 수 없는 원수 같은 질환 · 235 | 종기로 고생하다 · 237
【제20대】 경종
생모의 비극적인 죽음 · 241 | 게장과 생감 · 244 | 발작성 경련과 간질 · 247
【제21대】 영조
두 얼굴의 왕 · 249 | “회충은 사람과 함께 사는 인룡이다” · 252 | 천수를 누리다 · 255
【제22대】 정조
아버지의 죽음을 보다 · 259 | 담배 애연가 · 261 | 종기로 고생하다 · 264 | 정신이 혼미해지는 증상 · 267
【제23대】 순조
신경질적이고 내향적인 왕 · 271 | 가위눌림과 종기 · 273 | 왕에게 조동과 황홀하는 징후가 있다 · 276
【제24대】 헌종
세도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 281 | 죽음으로 몰고 간 질병 · 284 | 궁녀와 녹용 · 288
【제25대】 철종
마음도 몸도 지쳐버린 어리석은 왕 · 293 | 한약을 먹다 · 297 | 정치적 무력감과 좌절감 · 301
【제26대】 고종
늦게 자고 야식을 즐기다 · 303 | 불면증과 스트레스 · 307 | 식혜를 마신 후 사망하다 · 309 | 독약을 타서 시해하다 · 311
【제27대】 순종
수두와 두창을 앓다 · 315 | 음식물이 체해 일어나는 설사 · 318 | 고자와 무자식 · 320

참고문헌 · 324
 
 

저자 소개

저 : 정승호
 
관광학 박사·법학 박사·심리학 박사이며, 현재 오앤엘코리아와 리츠코리아 대표로 있다. 경기대학교·광운대학교·세종대학교·충북대학교·경찰대학교·국토교통부·공무원연수원·한국토지주택공사 등에서 강의와 시험 출제 위원을 역임했다. 서울시장상, 올림픽유공표창, 법무부장관상, 대통령경호실장상, 여수세계엑스포 추진 단장상,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상, 대한도시계획학회상, 한국관광연구학회상, 한국관광기업 경영대상 등을 수상했다. ...

저 : 김수진

호텔관광경영학 박사로 현재 남서울대학교 호텔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건국대학교·세종사이버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장안대학교 호텔경영학과 겸임 부교수, 호원대학교 외식서비스경영학과 조교수, 백석예술대학교 외식산업학부 조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외식산업학회 상임이사, 한국커피학회 이사, 한국카페&레스토랑협회 서울시 지회장, 한국이미지경영교육협회 이사, 한국산업인력공단·한국관광공사·고용노동부 등 정부...
 

책 속으로

자식들 간의 죽고 죽이는 참혹한 현장을 지켜보고 자신이 병으로 누워 있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자식을 지켜보았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화병으로 쓰러져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태조는 창덕궁 별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말년에 알츠하이머병과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는 고구려의 장수왕처럼 90세를 넘게 살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70세를 넘기는 일이 흔하지 않았고 그래서 ‘예부터 흔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고희(古稀)라고 했다.
--- p.32~34, 「태조」 중에서

세종은 숨을 거두기 전인 1449년(세종 31) 12월에 “근자에는 왼쪽 다리마저 아파져서, 기거(起居)할 때면 반드시 사람이 곁부축해야 하고,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있어도 반드시 놀라고 두려워서 마음이 몹시 두근거린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세종이 어느새 언어 건삽증(乾澁症, 혀가 굳어져 말을 못하는 증상)과 심허(心虛)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증후다. 이 증상은 잠시 호전되었다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세종의 사망 원인은 젊어서부터 앓고 있던 당뇨, 종기, 중풍, 망막증 등 수많은 질병이 원인이었다.
--- p.66, 「세종」 중에서

세조의 치료 기록으로 유일하게 기록된 칠기탕 처방과 그의 깊은 불교 숭상은 매정한 절대 권력자의 마음속을 엿보는 창(窓)일지도 모른다. 곁으로 용감하고 위엄 있는 왕이었지만, 마음속은 늘 근심하고 놀라고 죽은 자들의 저주를 두려워했을 것이다. 세조는 정신적인 과로로 인해 많이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468년(세조 14) 수강궁(壽康宮)에서 사망했다. 천년 만년 살 것 같이 친형제와 조카 등 친족을 도륙했던 잔인한 세조는 52세라는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흙으로 돌아갔다.
--- p.97, 「세조」 중에서

야인건수는 전염병에 걸려 열이 심할 때 먹으면 관 속에 있는 사람도 살아 나온다고 해서 파관탕(破棺湯)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판소리 명창들이 득음을 하기 위해 수련하다가 목에서 피가 나오고 열이 나면 절간의 똥물을 길어다 끓인 다음 마셨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중종은 8회에 걸쳐 야인건수를 복용한다. 그때마다 열이 잡히면서 치료 성과를 올린다. 그리고 죽기 전날까지도 야인건수와 청심환을 복용했다. 그러나 결국 15일 열이 잡히지 않으면서 혼수상태에 빠졌고, 불알이 오그라들었다. 음축증(陰縮證)이다. 죽음을 앞두고 생명력이 다했던 것이다.
--- p.144, 「중종」 중에서

선조의 사망 원인은 돌연사로 의심된다. 선조가 평소 앓았던 소화불량이나 중풍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보통 심장이 뛰지 않을 때 심장마비라고 하지만, 의학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돌연사란 자살이나 사고가 아니면서 사망하는 경우인데, 의학적인 정의로는 사망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증상이 발생하고 1시간 이내에 사망한 경우를 말한다. 가슴 통증이 시작된 지 30분 내에 사망하는 경우나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 이어 매우 어지러워하다가 정신을 잃고 몇 분 후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 p.182, 「선조」 중에서

인조가 숨을 거두기 전에 앓았던 질병은 학질이었다. 학질은 몸을 벌벌 떨며, 주기적으로 열이 나는 병이다. 학질은 사람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포악스러운 병이다. 현대의학에서는 학질을 일정한 시간을 두고 추워서 떨다가 열이 나고 땀을 흘리면서 열이 내렸다가 하루나 이틀이 지나 다시 발작하는 것을 말한다. 학질 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 원충이 혈구에 기생해 생기는 전염병이다. 당시 의료 환경이나 보건위생상 문제가 많았던 궁중 생활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병이다.
--- p.201, 「인조」 중에서

이런 일련의 치료 기록들은 숙종의 병이 간헐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며, 근본적으로 간질환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 상태가 계속 악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1719년(숙종 45) 10월 아들 연령군이 사망하자 숙종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진다. 1720년 5월 7일에는 간경화 말기 증세인 복수가 차오르는 증상이 나타났다. 숙종은 이후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 p.234~235, 「숙종」 중에서

그러나 효명세자는 갑자기 병석에 누웠고, 1830년(순조 30) 윤4월 22일 병석에 누운 지 14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어린 자식의 죽음으로 밥맛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순조는 4년 후인 1834년(순조 34)에 사망하고 말았다. 특별히 위급한 질병도 없이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것은 종기보다는 마음에 자리 잡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 정조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죄의식, 어쩌지도 못하고 지켜보아야 하는 김조순의 세력에 굴복한 것에 대한 허망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p.279, 「순조」 중에서

철종은 다리가 마비되는 불편함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걸음걸이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처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의원 의관들은 지황탕이나 교감지황탕(交感地黃湯) 같은 보약 처방으로 일관한다. 마지막 처방은 12월 2일 성향이진탕(星香二陳湯)에 인삼과 부자를 5돈이나 넣은 것이었다. 양기만이라도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자포자기식 처방이다. 결국 철종은 12월 8일 묘시(오전 5~7시)에 세상을 떠났다. 한창 나이인 33세였다.
--- p.299, 「철종」 중에서

순종의 질병은 43세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앓았던 다리의 부종이다. 부종은 조직 내에 림프액이나 조직의 삼출물 등의 액체가 고여 과잉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원인으로는 전신 부종과 국소 부종으로 분류해 원인을 평가해볼 수 있다. 전신 부종은 일반적으로 심장질환, 신장질환, 간질환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국소 부종은 국소적인 순환 이상에 의해 발생하며, 림프부종이나 정맥 순환 이상 혹은 약물에 의한 원인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 특히 순종이 부종을 앓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실제 전신 부종의 증상에는 심장질환이 포함된다.
--- p.319, 「순종」 중에서
 

 

출판사 리뷰

조선의 왕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의 관리를 받았다. 먹고 자는 것에서부터 크고 작은 병까지 왕의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국가가 관리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명의라고 할 어의들과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할 대소신료들이 왕의 몸을 치밀하게 살펴 병을 진단하고 처방했다.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다. 천하를 손에 넣고 호령하며 안정적인 삶을 누렸고, 몸에 좋은 값비싼 음식과 희귀한 보약을 몸에 달고 살았던 왕치고 그 수명이 길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장수한 왕, 즉 60세를 넘긴 왕은 태조(74세)·정종(63세)·광해군(67세)?숙종(60세)·영조(83세)·고종(68세) 등 6명뿐이다. 반면 단명한 왕, 즉 40세 이전에 사망한 왕은 문종(39세), 단종(17세), 예종(20세), 성종(38세), 연산군(31세), 인종(31세), 명종(34세), 현종(34세), 경종(37세), 헌종(23세), 철종(33세) 등 11명이다.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을 보면 왕 노릇하기가 정말 힘들었는지, 아니면 그들의 타고난 성격이나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에 이른 나이에 죽음에 이르렀는지 의문이 든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밝혀진 조선 왕들의 사망 원인은 당뇨병, 울화병, 불면증과 같은 성인병과 등창, 피부병, 성병과 같은 성인성 질환, 폐결핵이나 폐렴과 같은 선천성 유전병 등이다. 이 병들은 흔히 과식, 과음, 과색(過色)에 의한 것과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왕의 수명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왕권이 약해진 조선 후기에는 왕의 수명이 더 짧아지는 경향도 보인다.

종기로 사망하다

조선의 왕 중에서 종기로 사망한 왕이 가장 많았다. 종기는 소독약과 항생제가 없었던 시절에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또 조선시대 의관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조선의 왕 27명 중 절반에 가까운 12명이 종기를 앓았다. 종기로 상당 기간 고통을 호소한 왕도 있었고, 종기로 사망에 이른 왕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왕으로는 문종, 성종, 연산군, 중종, 광해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정조, 순조, 헌종이다.
1449년 왕세자인 문종이 종기를 앓았고, 그 뿌리가 빠져나와 세종이 관원들을 칭찬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1452년 조선 최고의 명의 전순의가 침으로 종기를 따서 고름을 짜냈다. 두서너 홉의 고름을 짜냈다고 하는데, 360cc 정도의 엄청난 양이다. 전순의는 “왕의 옥체가 어제보다 나으니 날마다 건강이 회복되는 중이다”라고 보고했지만, 문종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대소신료들은 종기 치료에 해로운 꿩고기를 올려 문종을 사망하게 했다고 의심했다. 더구나 종기에 고름이 생겼을 때는 침을 써서 고름을 빼내지만, 초기에 쓰면 도리어 증상이 악화되어 염증이 심화되었다고 말했다.
성종도 종기를 앓았는데, 1483년 기록에 성종이 작은 종기를 앓았다고 한다. 또 1493년 8월 14일의 기록에는 성종의 입술 위에 종기가 터져 피가 나왔다고 했으며, 9월 12일과 17일에는 입술에 난 종기로 능에 참배하는 것을 연기하자고 논의한 내용이 나온다. 이것으로 보건대 성종은 20세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종기로 고생했음을 알 수 있다.
숙종은 종기로 고생했다. 1705년 9월에 오른쪽 엉덩이에 종기가 났고, 11월에 왼쪽 엉덩이에도 종기가 생겼다. 1706년 1월에 장강혈 아래에 종기가 나서 침을 맞았다. 장강혈이란 항문과 꼬리뼈 사이에 있는 혈자리다. 1709년 11월에 왼쪽 난문혈에 멍울이 잡혀서 침과 뜸을 시술했다. 난문혈이란 샅, 곧 아랫배와 허벅다리 사이를 말한다. 이처럼 숙종의 종기는 그 위치가 엉덩이, 항문 주위, 아랫배, 허벅다리 사이다. 모두 하복부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숙종의 사타구니에 생긴 혹 또는 종기는 바이러스성 질환이거나 악성 종양일 가능성이 높다.
정조는 즉위 초부터 종기로 고생했는데, 대부분 얼굴 부위에 생겼다는 것과 여름에 생겼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코, 눈꺼풀, 미간, 눈썹, 머리, 귀밑머리, 턱까지 종기가 나서 상당 기간 고생했다. 어떤 종기는 연적만큼이나 크며, 오래되어 원기가 점점 약해졌다. 정조는 종기 부위가 당기고 아프며 입맛이 없고 열기가 오르는 증상이 심해졌다. 잠깐 동안 잠을 잘 때, 속적삼과 잠자리에 몇 되나 되는 피고름이 저절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정조는 마침내 종기가 생긴 지 2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스트레스로 사망하다

조선의 왕들을 괴롭힌 대부분의 질병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왕의 생활은 아무리 건강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병에 걸리지 않고 버티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라는 자리 때문에 생긴 병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는 한 낫지 않는다. 세조뿐만 아니라 연산군, 중종, 광해군, 숙종 등은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이 병의 근원이 되었다. 거기에다 육체적인 피로와 과로가 그들의 건강 악화를 부채질했다.
조선의 왕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음주를 했다. 조선의 왕들 중 술을 좋아한 호주가를 꼽는다면 태종, 세조, 영조를 들 수 있다. 그중 최고의 호주가는 영조가 아닐까 한다. 정종도 고기와 술을 좋아했고, 세조는 죽기 전까지 술을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고, 성종은 ‘주요순 야걸주(晝堯舜夜桀紂)’, 즉 낮에는 요순과 같은 성군이고 밤에는 걸주와 같은 호색가였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스트레스는 과다한 영양 섭취로 혈액성 염증 질환을 일으킨다. 조선의 왕 중에서 사망 원인이 당뇨병이나 등창, 피부병, 노인성 질환으로 기록되어 있는 태조, 세종, 문종, 세조, 성종, 중종, 숙종, 영조 등은 대부분 과식과 고지방성 음식을 섭취해 혈액성 염증 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혈액성 염증 질환의 원인은 고지방이나 고칼로리 음식이다. 활동량에 비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신체 균형이 깨져 심장병 같은 당뇨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정종은 설사병을 앓았는데, 이방원에 의해 언제 왕위에서 쫓겨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불안과 스트레스, 그로 인해 생겨난 과민성 장질환으로 인한 설사병으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세조는 조카 단종과 친동생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을 죽이고,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를 죽이는 등 수많은 사람을 죽인 죄의식으로 마음이 고통스러웠다. 이로 인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은 “나의 병은 화병인데 어찌 회복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는데, 스트레스성 화병이 자신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고백했다. 인조의 건강에 결정타를 입힌 사건은 병자호란이다. 전란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인조의 병증을 악화시킨 주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인조는 재위 기간 내내 자기 병의 원인을 저주라고 굳게 믿었다. 이 주술 집착 역시 전쟁과 반란, 궁중 암투의 충격이 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다.
고종은 테러와 암살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갑신정변, 임오군란, 을미사변 등으로 고종의 재위 기간은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다. 하룻밤도 편히 잘 수 없었다. 고종은 음모에 대비하기 위해 잠을 자지 않았고, 환한 낮이 되어야 안심하고 잤다. 이러한 외부환경은 고종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고종을 괴롭힌 불면증은 바로 이 스트레스에서 왔다. 그래서 고종은 늦게 자고 야식을 즐기는 생활을 했고, 결국은 소화 능력이 떨어져 평소 소화제를 복용하거나 죽을 즐겨 먹었다. 사실 스트레스와 소화불량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관이 수축하게 되고, 위의 소화 운동을 담당하는 위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도 위축된다. 위장의 운동 능력이 떨어지면서 잘 체하게 되고 속이 더부룩해진다.

죽은 것인가? 죽임을 당한 것인가?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 앞에 무릎을 꿇고 세조의 명령이라며 사약을 마시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단종은 “내 위에 윗사람이 없으니 누가 내게 전지를 내리며, 사약이란 것이 어디에서 났더냐? 나를 죽일 수 있는 자가 없고, 나를 호령할 자가 없다”며 호통을 쳤다. 왕방연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관가에서 심부름하는 공생이 활시위로 단종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날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검은 안개가 온 세상을 덮었다. 그러나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라고 나와 있다.
예종의 시신은 이틀이 지나자 변색이 되었다. 시신의 변색은 약물에 중독되었을 때 생기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더구나 예종이 사망한 때는 겨울이어서 변색될 때가 아니었다. 또 예종의 유교(遺敎)는 정희왕후와 한명회가 결탁해서 명나라에 왕위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허위로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독살설을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예종의 유교를 위조해 작성했다는 것은 누구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를 말해준다. 예종이 죽은 후 한명회는 정희왕후의 후원으로 모든 권력을 장악했고, 어린 성종을 왕으로 앉힌 후 정희왕후는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선조 독살설에 대해 서인 측이 유일한 근거로 삼은 것은 찹쌀밥이다. 선조가 사망한 당일 “미시에 찹쌀밥을 올렸는데, 선조가 갑자기 기가 막히는 병이 발생해 위급한 상태가 되었다”라고 했다. 바로 이 찹쌀밥을 광해군이 주었다는 것이 서인 측의 주장이다. 또 선조의 독살설을 입증하는 인물로 개시라는 궁녀가 등장한다. 개시가 광해군과 몰래 접촉해 뒷날을 도모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광해군을 쫓아낸 서인 측에서 과장한 가능성이 크다. 선조 독살설은 인조반정 후에 조직적으로 유포되었다.
효종은 종기를 앓고 있었는데, 침을 잘 놓는 신가귀가 고름을 짜내기 위해 침을 놓았다. 신가귀는 1년 전 효종의 발에 종기가 생겨 고름이 흘러나올 때에도 침을 놓아서 치료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효종의 머리 종기에서 고름이 나오고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효종은 피가 쏟아지기 시작한 지 대략 5시간이 흐르자 얼굴이 점점 잿빛으로 변해가고,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그 후 효종은 사망했다. 당시 신가귀는 손을 떠는 수전증을 앓고 있었는데, 혈락(血絡)을 범한 탓이었다. 침을 놓다가 혈관을 잘못 건드려 피가 멈추지 않았고, 결국 효종은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경종은 게장과 생감을 먹은 후 가슴과 배가 조이듯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경종의 치료는 조선의 명의인 이공윤이 쥐고 있었다. 경종이 복통과 설사로 괴로워하자 이공윤은 곽향정기산과 두시탕을 처방했다. 차도가 없었지만, 이 상황에서도 이공윤의 호언장담은 계속되었다. 경종의 환후는 더욱 위태로워졌고 맥까지 약해졌다. 복통은 심해졌고,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때로는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경종은 5일 후 세상을 떠났다.
고종은 궁녀 2명이 올린 식혜를 마셨다. 고종이 식혜를 마신 지 30분이 안 되어 경련을 일으켰고 곧바로 사망했다. 독약이 들어 있는 식혜를 마셨던 것이다. 고종의 시신은 팔다리가 엄청나게 부어올랐고, 입안에 있는 이는 모두 빠졌고, 혀는 닳아 없어졌다. 그리고 목에서 복부까지 30센티미터나 되는 검은 줄이 길게 나 있었다. 당시 고종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헤이그 밀사 사건 때 고종에게 “일본에 가 일황에게 사죄하든지 퇴위하라”고 윽박질렀던 이완용과 친일파뿐이었다. 더구나 고종이 사망한 직후 궁녀 2명이 의문사하기도 했다.
 
 

추천평

조선 왕들의 사망 원인을 궁금해하지 않는 독자가 어디 있을까? 조선 왕들의 질병 치료 기록은 아직 연구되지 않은 미개척 분야이며, 여전히 미궁 속에 있는 질병이 가득하다. 이 책은 그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한의학적 관점에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다. 자신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많은 질병이 이 책에 소개되고 있어 질병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독서가 될 만하다.
- 김형준(한의학 박사, 생명나무가꾸는사랑의한의원 원장)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단편적인 왕들의 질병 기록을 현대 의학적 견해로 추론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인문학자와 의학자의 학문적 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그동안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조선 왕들의 질병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그 질병이 당시의 보건 환경이나 현대 의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질병의 원인이 음식이나 식습관 때문은 아닌지에 대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 책은 조선 왕들의 식습관이 그들의 질병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사망 원인이 왕의 개인적인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에 의해서였는지를 추적한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라 적극 추천한다.
- 김태균 (가정의학과 전문의, 춘천호반요양병원 원장)

조선의 왕들은 정비는 한 명이었지만, 후궁은 여럿을 두었다. 당시 취약한 보건 환경상의 문제 등으로 대부분의 왕은 성인성 질환에 취약했다. 성종은 등창과 폐병을 앓았고, 세종은 임질을 앓았다. 이러한 증상은 오늘날 성인성 질환이 진행되기 전 징조를 말한다. 이외에도 많은 조선의 왕이 후사를 낳기 위해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종마처럼 살았다. 이 책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통해 조선 왕들의 질병의 원인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 김성태 (의학 박사, 연세비뇨기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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