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3.일본근대사

왜 전쟁까지 :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와 '세계의 길' 사이에서 (2017)

동방박사님 2022. 8. 9. 07:20
728x90

책소개

만약 그때 일본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 가정과 다른 선택지를 살펴보는 것은 미래의 길을 묻는 일이다
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 1940년 삼국동맹, 1941년 미일교섭
태평양전쟁으로 나아가기까지 일본에 주어진 세 번의 기회와 결정

E. H. 카가 그 유명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교훈을 남긴 이래로, 많은 이들에게 역사란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면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신입생은 저 유명한 책을 읽으라고 강요받아 딱 저 한 문장만 기억에 남을 독서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또한 많은 이들에게 ‘역사’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운동, 1904년 러일전쟁, 1910년 한일병합 등 앞서 일어난 사건의 순서를 외우는 일이다. 학창시절, 연도뿐 아니라 날짜까지 외우라는 요구를 받고 역사에 흥미를 잃은 이들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역사’란 교훈과 재미(있는 혹은 없는) 사이에 갇힌 채 덕후들의 놀이터가 되거나 정치가들의 싸움터가 되는 것으로 그 역할이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일본 도쿄대학의 가토 요코 교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이미 정해진 과거에 ‘만약’을 가정하고 실제 결과와는 다른 선택지를 살핌으로써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목차

머리말 5

1장. 국가가 역사를 쓸 때, 역사가 태어날 때
역사의 렌즈로 세상 보기 19
사료와 데이터 대조하기 24
역사를 쓸 때 54
역사의 시작은 63

2장. 선택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리튼 보고서
세계의 길 81
선택의 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23
위정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150

3장. 군사동맹이란 무엇인가-20일 만에 맺어진 삼국군사동맹
군사동맹이란 173
왜 독일과 일본은 시간을 재촉했을까 192
버스를 놓치게 될까봐 동맹을 맺은 게 아니다 227

4장. 일본이 전쟁에 진 이유는 무엇일까-미일교섭의 함의
전쟁 전야, 적국이 마주 앉다 265
사료에 남은 흔적 290
일본은 왜 미국의 제재를 예상하지 못했나 311
국민은 이 길만 가도록 배워왔다 338
절망 때문에 전쟁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355

5장. 패전과 헌법
강의를 마치며 373

맺음말 404
감사의 말 409
옮긴이의 말 411
주 417
 
저자 소개 
저 : 카토 요코 (Yoko Kato,かとう ようこ,加藤 陽子)
 
1960년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징병제와 근대 일본徵兵制と近代日本」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야마나시대학 조교수,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방문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도쿄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일본 근현대사이다. 대학원에서 보수적 역사학자인 이토 다카시伊藤隆의 지도를 받았으나 지도교수와는 정반대로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인식, 집단자위권 등에 반대하는 진보적 연구 활동을...

역 : 양지연

 
좋은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이다. 서강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 북한대학원에서 문화언론학을 전공했다. 공공 기관에서 홍보와 출판 업무를 담당했다. 하루 중 잠자기 전 아이와 함께 그림책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엄마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는 『이게 정말 마음일까?』, 『만약의 세계』, 『보통이 아닌 날들』, 『어이없는 진화』,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왜 전쟁까지』, 『아빠는 육아휴직 중』, 『의외로...
 

책 속으로

국가의 ‘선택’은 진공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제도의 제약 속에서 국제 환경과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으며 이루어집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문제의 본질이 올바른 형태로 선택 문항에 반영되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당시 위정자나 언론이 보여준 선택지가 아니라 세계가 일본에게 제시한 진짜 선택지의 모습과 내용을 명확히 밝히고, 일본이 바꿔치기한 선택지의 형태와 내용을 정확하게 재현하여 세계와 일본이 격렬하게 대립했던 순간을 포착하려고 시도했습니다. _‘머리말’ 중에서, 9쪽

때로는 사소한 우연이 세상을 크게 바꾸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거대한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 일본이 전쟁의 길로 나아가며 경험한 세 번의 교섭을 돌아보며 ‘선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_‘머리말’ 중에서, 11쪽

1945년 8월 일본의 패배로 끝난 전쟁을 경계로 일본 사회의 기본질서, 곧 헌법원리가 바뀌었다는 말이 됩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패전국인 일본의 헌법원리를 바꿨습니다. 헌법원리가 바뀐 세계, 즉 전후의 시간이 엮어온 오늘날의 사회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헌법원리가 바뀌기 전의 세계, 즉 전쟁 이전과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를 먼저 고찰해야 합니다. _‘1장. 국가가 역사를 쓸 때, 역사가 태어날 때’ 중에서, 25쪽

국제 환경과 국가의 존재 방식을 규정하는 무수한 제도가 한 국가의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살면서 맞닥뜨리는 인생의 길이 시험문제마냥 A 아니면 B로 제시되지도 않는다는 것이지요. 무언가를 고른다는 행위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그것이 어떤 형태의 선택지로 눈앞에 있었는지가 무척 중요합니다. _‘2장. 선택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리튼 보고서’ 중에서, 84쪽

리튼은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국제연맹총회가 열리기 전에 미리 중국과 일본이 평등한 입장에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려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을 국제연맹에 불러내 추궁하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중일 양국이 협의해야 하며 그러기 위한 조건을 연맹이 제안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양국이 마주보고 대화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_‘2장. 선택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리튼 보고서’ 중에서, 102쪽

전쟁은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행위입니다. 미국은 일본이 제공권을 장악한 섬을 적절하게 우회하면서 서태평양으로 전진하는 징검다리 작전을 펼치며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전쟁터를 골랐습니다. 미군이 건너뛴 섬에 남겨진 일본군은 보급이 끊긴 채로 갇혀 대부분 굶어 죽었습니다. 일본군의 보급선이 끊긴 상황에서 태평양전쟁은 함대 결전이 아닌 항공기 결전으로 승부가 났습니다. 사실 5대 3이라는 수치를 수용한 시점에서 일본은 미국에 대항하는 길을 포기한 국가였지요. _‘3장. 군사동맹이란 무엇인가-20일 만에 맺어진 삼국군사동맹’, 259쪽

피동자 위치를 취하면서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린다. 이런 일본의 결정과 선택의 특징에 연구자들은 ‘비결정의 구도’66 또는 ‘양론병기兩論倂記’67 등의 이름을 붙여서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최후의 최후까지 양쪽 논리를 모두 취하는 듯한 문장을 준비해두고 상황을 주시하는 방식은 국제 환경과 국내 정치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통찰하는 국가를 상대로 할 때에는 일관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고 마는 치명적 결함도 안고 있습니다. _‘4장. 일본이 전쟁에 진 이유는 무엇일까-미일교섭의 함의’, 324~325쪽

미국은 일본이 북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했을 때에는 억제된 경고를 보냈습니다. 옥탄가 87 이상의 수출 금지라는 전문가다운 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1년 후인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진주 때에는 전면 금수 조치를 취하며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본이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까지 차지하게 되면 미군기지가 있는 필리핀 등에도 긴장이 고조됩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석유도 노릴 수 있는 곳에 온 셈이지요. 영국, 미국에게 무척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_‘4장. 일본이 전쟁에 진 이유는 무엇일까-미일교섭의 함의’, 333쪽

미국이 연합국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원동력 가운데 압도적인 군사력, 물적 자원, 우수한 과학기술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음은 분명합니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국가였던 셈이지요. 다만 국가가 이런 물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총력전 태세를 갖추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를 떠받쳐주는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가 있었습니다. 비상시에 국가와 국민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의회제민주주의와 국민주권 원리가 견고하게 뒷받침해주었지요.
이에 비해 일본은 … 이른바 국민 생활의 모든 것이 국가로 흡수된 상태였습니다. 민간인의 투항도 금지되었고 유구한 대의에 살라며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던 국가였지요. ‘5장. 패전과 헌법’ 중에서, 387~388쪽

저는 지금까지 제가 연구해온 역사학의 재미를 말하는 일은 있어도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라도 부끄럽기 마련입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활발한 지진 활동기에 들어갔고, 인간사회도 환경 문제와 경제 문제 등 인류의 미래를 흔들어놓을 불가역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인식을 변화시킨 요인을 종합적으로 포착하는 역사라는 학문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절실히 느낍니다. _‘맺음말’ 중에서, 406~407쪽

가토 요코는 무엇보다 선택의 문법을 강조한다. 안보법제가 국회를 통과한 뒤로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언젠가 국민투표의 형식으로든 다른 형태로든 국가는 국민에게 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물을 것이고 국민은 어떤 형태로든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과거 세 가지 교섭의 과정을 되짚으며 가토 요코는 선택을 할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선택의 제약조건은 무엇인지, 선택 문항은 어떤 식으로 제시되는지 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선택을 할 때에는 문제의 본질이 선택 문항에 올바르게 반영되었는지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공포, 불안, 두려움 혹은 친밀감 같은 인간의 근원적 감정에 이끌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한편으로 이 책은 선택하는 순간의 문법을 보여주는 문법책이자, 선택의 지혜를 기르기 위한 하나의 가이드북인 셈이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413~414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만약 그때 일본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 가정과 다른 선택지를 살펴보는 것은 미래의 길을 묻는 일이다

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 1940년 삼국동맹, 1941년 미일교섭
태평양전쟁으로 나아가기까지 일본에 주어진 세 번의 기회와 결정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었고,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E. H. 카가 그 유명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교훈을 남긴 이래로, 많은 이들에게 역사란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면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신입생은 저 유명한 책을 읽으라고 강요받아 딱 저 한 문장만 기억에 남을 독서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또한 많은 이들에게 ‘역사’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운동, 1904년 러일전쟁, 1910년 한일병합 등 앞서 일어난 사건의 순서를 외우는 일이다. 학창시절, 연도뿐 아니라 날짜까지 외우라는 요구를 받고 역사에 흥미를 잃은 이들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역사’란 교훈과 재미(있는 혹은 없는) 사이에 갇힌 채 덕후들의 놀이터가 되거나 정치가들의 싸움터가 되는 것으로 그 역할이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일본 도쿄대학의 가토 요코 교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이미 정해진 과거에 ‘만약’을 가정하고 실제 결과와는 다른 선택지를 살핌으로써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게임의 규칙이 불공정하거나 심판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인이 국가와 맺은 사회계약이 깨졌다고 절망하지 말고, 게임의 규칙을 공정하게 바꾸거나 심판을 공평한 사람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 방법을 역사에서 배우는 일, 그 일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 때로는 사소한 우연이 세상을 크게 바꾸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거대한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 일본이 전쟁의 길로 나아가며 경험한 세 번의 교섭을 돌아보며 ‘선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_8~11쪽

낱낱의 장면을 들추어라
전작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에서 청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까지 이어진 일본의 근현대 50년을 탁월한 시각으로 분석해 “관념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역사를 구축했다”고 평가받은 그가, 이번에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기까지 10년간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검토하고 결국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를 면밀하게 추적한다. 『왜 전쟁까지』는 저자가 일본의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2015년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강의에서 가토 요코 교수는 전전戰前 일본이 직면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풀어내고, 학생들은 질문을 통해 강단의 연구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역사의 가정’을 확장시킨다. 책 안에서 학생과 선생이 서로의 나침반이 되어 역사의 장면 장면을 재현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대단하다. 그 문답의 리듬을 따라가며 일본과 세계가 나누었던 대화를, 그들이 검토했던 계획을, 그리고 최종 결정의 순간을 들추어 보는 사이에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는 지금 일본의 모습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만주사변(1931)과 리튼 조사단(1932)

“일본에게 만주가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세계 평화의 길로 돌아올 수는 없는가?”
1931 9.21 중국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을 국제연맹에 제소
1932 1.28 상하이사변
2.29 리튼 조사단 방일. 9월까지 중국, 만주 시찰 후 10월 1일 보고서 발표
3.1 만주국 건국
9.15 일본, 만주국을 승인(일만의정서 조인)
11.21 국제연맹이사회, 리튼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주사변 심의 개시
1933 3.12 일본, 국제연맹 탈퇴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미국은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본토를 공격받았고, 유럽에는 아시아-태평양 일대에서도 전쟁을 견뎌내야 하는 부담이 더해졌다. 이 사건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발의 원자폭탄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가토 요코는 이보다 앞서 일본제국이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할 수 있었던 세 번의 기회에 주목한다. 그 첫째가 만주사변-리튼 조사단-일본의 국제연맹 탈퇴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중국 장제스 정권의 제소로 만주사변을 조사하게 된 국제연맹 조사단(단장인 빅터 불워 리튼의 이름을 따 ‘리튼 조사단’이라 칭한다)은 만주에서 벌어진 일본 관동군의 군사행위는 자위권의 발동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타국에 대한 침략행위도 아니라는 중립적인 결론을 내린 후, 중일 양국은 교섭을 통해 만주의 자치를 보장하는 신질서를 구축하라고 제안한다. 만주에 얽힌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갈등을 전쟁 없이 봉합하고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리튼 조사단은 만주에 관동군을 주둔시키는 것보다 만주를 자유로운 시장으로 개방하고 그 안에서 경제적 이익을 구하는 것이 일본과 세계에 유익하고 안전하다는 논리로 일본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일본 내부에 ‘보고서는 중국의 이익만을 우선한다’라고 왜곡된 채 전달되었고, 그 결과 일본은 괴뢰정부인 만주국 건국과 국제연맹 탈퇴를 선택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발발(1939)과 삼국군사동맹(1940)

“일본은 정말로 독일이 세계를 제압할 것이라고 믿는가?”
1939 9.1 독일, 폴란드 침공. 2차 세계대전 발발
1940 6.14 독일, 파리에 무혈입성
7.12 일본, ‘일·독·이 제휴강화에 관한 육군·해군·외무 3성 실무회의’ 개최
9.7 독일, 영국 본토에 폭격 개시. 독일 특사 스타머 도쿄 도착
9.27 베를린에서 삼국군사동맹 조인
11.5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3선 당선

일본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는 일본이 추축 동맹에 가담을 모색하고 있을 때 제시되었다. 삼국군사동맹은 유럽에서 시작된 2차 세계대전과 1937년 7월에 극동에서 시작된 중일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 일본, 독일, 이탈리아가 체결한 조약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1940년 9월 27일 베를린에서 조인되었다. 일반적으로 나치 독일이 유럽의 전쟁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는 것을 저지하고 신속하게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 극동의 일본을 포섭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는 동맹의 이면에는 독일의 승리를 예상한 일본이 전후 구 독일의 식민지였던 남양군도를 비롯한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계획은 천황과 내무 각부의 결정권자들이 아니라, 육군성·해군성·외무성의 과장급 실무자들에 의해 입안되었음을 밝힌다. 당시 일본 내부에서 ‘이 동맹을 맺으면 미·영 등의 세계와 적대관계가 되고 결국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일본은 확전은 버틸 수 없다’라는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독일의 승세는 다시 한 번 일본을 오판으로 이끌었다.

미일교섭과 진주만 공습(1941)

“미국은 미일 양국의 상호 존경에 기반한 신뢰와 협력의 신시대 개척을 희망한다”
1941 3.8 노무라 주미대사, 코델 헐 미국 국무장관 회담
4.16 미일, 미일양해안을 바탕으로 교섭 개시
7.28 일본군,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진주
8.1 미국, 일본에 석유 전면 금수 조치 실시
8.9 영국 처칠과 미국 루스벨트, 대서양회담 개최
11.26 미국, 일본에 ‘헐 노트’(미일교섭 최종 제안) 제시
12.8 일본, 미국에 협상 결렬을 통고하는 동시에 진주만 공습

1941년 12월 8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관해 70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는 미국 국내의 반전 여론을 꺾기 위해 루스벨트와 미군이 일본군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설명도 존재한다. 가토 요코는 일본군 제로센 전투기가 진주만을 덮치기 전까지 약 9개월간 진행된 미일교섭의 과정을 차근차근 뒤따라가며 긴박했던 순간을 재구성한다.
1941년 3월 8일 교섭이 시작된 이래로 양국은 수차례 대사를 파견하고 회담을 열고 외교문서를 교환하며 전쟁으로 치닫던 상황을 되돌리려 했다. 유럽에서 독일을 상대하던 영국 전시내각의 처칠 총리 또한 일본의 마쓰오카 요스케 외무상에게 친서를 보내 독일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영미와 제휴하자고 권고하기도 했다. 저자는 놀랍게도 당시 미일교섭이 양국의 정상이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만나는 것으로까지 발전할 수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교섭이 진행되고 있던 그해 7월 일본군이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지역을 기습 점령하자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했고, 그 사이에서 양국의 주전파와 주화파의 내분이 심화된다. 마지막까지 평화의 끈을 놓지 않았던 루스벨트는 12월 6일 오후 9시에 쇼와 천황에게 타협을 제안하는 전보를 보냈지만, 불과 30분 뒤 워싱턴에 일본의 선전포고가 도착한다.

역사의 ‘만약’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
18세기의 철학자 루소는 전쟁을 ‘상대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질서, 즉 헌법원리를 파헤쳐 헌법을 바꿔놓는 행위’로 정의했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헌법의 세계에서 전후 70년을 보내며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일본이라는 국가와 사회가 ‘세계의 길’이 내거는 이념에 패배한 구체적 형태가 바로 태평양전쟁입니다. …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 헌법이 바뀌었습니다. 평화헌법이라고 말하는데, 교전권(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권리)까지 부인하는 데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흔히 연합국최고사령부의 군인이 겨우 8일 만에 영문 초안을 정리해 만든 헌법을 70년 동안이나 애지중지 껴안고 있어도 괜찮은가라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점령군으로 들어온 국가가 미국이 아니었어도, 소련이었어도 영국이었어도 중국이었어도 그들 역시 헌법을 바꿔 썼을 것입니다. _388쪽

2015년 8월 15일, 아키히토 천황은 전국전몰자추모식에서 “과거의 전쟁을 깊이 반성함과 동시에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말했다. 불과 한 달 후인 9월 19일, 일본 참의원이 안보법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일본 자위대는 ‘자위’의 개념을 넘어 해외에서 군사활동을 벌일 수 있는 군대로 성격이 바뀌었다. 아베 내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라고 적힌 이른바 ‘평화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새겨 넣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며, 이 책은 일본과 세계에 질문을 던진다. 지난 세기의 오판을 벌써 잊어버렸느냐고.
 

추천평

“키워드는 ‘선택’이다. 주어진 선택 문항 속에 문제의 본질이 반영되어 있는가를 당시 국내외의 정황과 사료를 바탕으로 면밀히 해설하며 ‘전쟁으로’ 치닫는 길을 꼼꼼히 추적한다.”
- 나리타 류이치 | 역사학자, 『다이쇼 데모크라시』 저자

“일본의 근대가 보편적 이념의 구체화가 결여된 시대였다는 결론에 독자들도 도달하게 될 것이다.”
- 호사카 마사야스 | 저널리스트, 『쇼와 육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