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로마카톨릭-천주교 (책소개)/3.묵상.영성.기도

아브라함

동방박사님 2022. 9. 24. 12:27
728x90

책소개

일개 소수 민족의 우두머리였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아브라함의 일생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 그 사건 에 내포된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현실의 삶에 접목시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성화와 사진 자료를 곁들여 이야기의 재미와 생생함을 더함은 물론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따른 참신앙인 아브라함의 일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혹독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이를 극복하며 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갈대와 같은 믿음으로 희망을 잃어가는 우리 세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머리말

1. 아브람의 등장
1) 아브람의 아버지 테라
2) 족장이며 무역상인 아브람
3) 주님께서 선택하신 아브람

2. 주님의 부르심
1) 따르기 어려운 부르심
2) 부르심에 응하는 자세
3) 주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3. 믿음의 결단
1) 어려운 결심
2) 결단과 출발
3) 주님의 큰 약속
4)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사람들

4. 새 삶의 터전
1) 약속의 땅
2) 사라이 사건
3) 파라오의 처신

5. 아브람과 롯
1) 아버지와 아들 사이 같은 백부와 조카
2) 선택의 자유와 책임
3) 롯을 구출한 아브람
4) 아브람과 멜키체덱

6. 하느님과 아브람의 계약
1) 의인으로 인정받은 아브람
2) 계약의 체결
3) 계약의 내용

7. 하가르와 이스마엘
1) 하가르
2) 하가르의 위기 극복
3) 하가르와 이스마엘의 추방

8. 아브람 부부의 개명과 할례
1) 개명
2) 할례

9. 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
1) 소돔의 멸망 예고
2) 아브라함의 탄원
3) 소돔의 타락
4) 모압족과 암몬족

10.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1) 사라의 사건
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동맹 계약
3) 이사악과 아비멜렉

11. 이사악
1) 이사악의 탄생 예고
2) 이사악의 탄생
3) 이사악의 희생 제사
4) 인생의 시련과 하느님의 섭리


12. 이사악의 혼인
1) 이사악과 레베카의 혼인
2) 행복한 가정

13. 아브라함의 말년
1) 아브라함의 약력
2) 사라의 죽음과 묘지 매입
3) 아브라함의 말년
4) 아브라함의 죽음

14. 아브라함의 자손
1) 아브라함의 혈연의 자손
2)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후손
 

저자 소개 

저 : 정진석
 
1931년 12월 서울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4년 가톨릭대학 신학부에 입학,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회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0년 최연소 주교로 서품되었다. 이후 28년 동안 청주교구장을 지냈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했다. 2006년 3월에는 베네딕...
 

책 속으로

하란을 출발한 이후 험난한 여행길에서 아브람은 수백 명이나 되는 가솔을 무사히 통솔하는 늠름한 자세를 견지해왔습니다. 그래서 사라이는 새삼스레 남편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다소곳하게 가나안 땅 네겝에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자리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근이 들자 아브람이 뜻밖에도 옹졸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만사에 자신만만해 보이던 아브람이 소심하게도 식량이 떨어질까 봐 초조해하는 기색을 하인들 앞에서도 감추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람이 하느님의 섭리를 못 미더워하여 이집트로 가자고 사라이에게 제안했을 때, 사라이는 가련해보이는 남편 때문에 족장의 부인으로서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pp.70-71

성경은 이 대목에서 아브람을 ‘히브리인’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B.C. 20세기 우르 제3왕조 때부터 문헌에 기록되기 시작한 ‘히브리인’이라는 명칭은 원래 특정 종족을 가리키는 의미보다는 사회적 의미를 지녔던 단어였다고 합니다. 애초에는 전쟁 포로, 외국인, 용병, 노예 등 동 지방에 떠돌아다니던 하층민을 일컫던 말이었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엄격한 의미의 이스라엘인들보다는 더 폭넓은 집단을 가리킨 말이었습니다. 그리스어에서는 ‘히브리인’을 ‘유프라테스 강의 건너편에서 온 사람’으로 번역합니다. 어쨌든 아브람을 히브리인이라고 일컫는 이 성경 구절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아직 낯선 이방인으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p.99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무수한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셨지만 실제로는 아직까지 아들 하나도 점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호언장담하셨지만, 아직까지 자기에게 친자식을 주시지 않으시니 하느님의 약속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실의에 빠졌습니다.

---p.109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은 고대인들 사이에서 가끔 있었던 일입니다. 서부 셈족들 사이에서는 집안에 매우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맏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맏아들을 번제물로 봉헌하는 것을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신에게 봉헌하는 최고의 경신 행위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멀쩡한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거스르는 야만적 풍속이기에 하느님께서 엄금하셨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주님께서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친히 하시고 또 아브라함도 그 명령에 순종하려고 했을까요?

---pp.227-228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하느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습니다. 이제 이사악을 묶어야 할 시간이 닥쳐왔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해맑은 빛 하늘에서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뜨거운 열기를 쏟아 붓고 있었습니다. 그 햇볕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모리야 산마루 바위 위에는 처절한 긴장감이 감돌고, 핏기가 싹 가셔서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아버지의 주름투성이 얼굴과 공포에 질려서 경련을 일으키며 일그러진 어린 소년의 처참한 얼굴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p.234

이사악은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이사악은 자기를 희생 제물로 불태울 장작을 짊어지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를 불태울 장작더미 위에 스스로 걸어서 올라가 앉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사악의 자기 봉헌은 예수님의 자기 봉헌을 훌륭하게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못 박히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산에 올라가셨고 그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성부께 봉헌하신 것입니다.

---p.236


아브라함과 사라도 갈라설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는 바람에 파라오와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갔었습니다. 그때 사라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사라는 아브라함의 옹졸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더할 수 없이 섭섭하고 노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 전체를 살리기 위해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부부가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의견 차이로 인한 파경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p.267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신앙은 매우 따르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은 목적지를 알지 못하면서 무조건 길을 나서야 하는 어리석음이요, 약속된 땅이라고는 하지만 이방인들로 들끓고 있는 땅에서 살아야 하는 어수룩함이며, 늙도록 자식 하나 두지 못했는데도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보리라는 말씀을 믿는 순진함이요, 사랑하는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미련함이었습니다.

---p.273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된 아브라함의 정신적 후손입니다(로마 4,11-12). 할례를 받았거나 받지 않았거나 이스라엘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갈라 3,14).

---p.294
 

출판사 리뷰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지금부터 약 4천 년 전, 중동 아시아의 바빌로니아 왕국에 살았던 아브라함. 그는 이름도 없는 소수 민족의 족장에 불과했습니다. 대단한 업적이나 공로도 없는 그를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의 부르심에 선뜻 응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화려한 이상을 품고 신천지를 개척할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정열의 세월을 보낸 지도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갑자기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는 여러 날을 두고 심사숙고한 끝에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여 목적지도 모르면서 정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신앙심을 보상하시는 의미로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큰 약속을 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아들도 딸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하느님의 약속과는 반대로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75세가 된 아브람은 결혼한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선뜻 믿을 수 없는 주님의 이 황당한 약속을 아브라함은 순수하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 약속을 아브라함이 기대했던 것만큼 신속하게 실현시켜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가르의 임신과 추방 사건 때나 이사악의 봉헌 사건 때 거듭하여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끝끝내 그 위대한 신앙을 지켰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리 큰 시련을 겪어도 주님의 보호와 섭리를 신뢰하고 주님의 약속에 희망을 안고 평생토록 외곬으로 살아간 신앙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무모해 보이는 그 신앙으로 아브라함은 믿는 이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유다교 전통에서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도 ‘신앙인들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그는 하느님을 믿는 모든 신앙인들, 즉 유다교인, 그리스도교인, 이슬람교인 등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


책을 통해 많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낙으로 삼아온 정진석 추기경은 해마다 영명 축일을 맞아 그의 해박한 성경 지식을 바탕으로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출간해왔습니다. 『구세주 예수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 『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 『모세(상)』, 『모세(중)』, 『모세(하)』에 이어 올해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일개 소수 민족의 우두머리였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희망을 안고 산 신앙인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일생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 그 사건 에 내포된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현실의 삶에 접목시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화와 사진 자료를 곁들여 이야기의 재미와 생생함을 더함은 물론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따른 참신앙인 아브라함의 일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혹독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이를 극복하며 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갈대와 같은 믿음으로 희망을 잃어가는 우리 세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