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한반도평화 연구 (책소개)/6.남북분단 DMZ

비무장 지대를 넘는길

동방박사님 2022. 9. 27.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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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두 발과 정치학자로서의 날카로운 분석으로 둘러본 분단과 통일의 현장 답사기-통일 독일의 사회, 문화, 생태, 역사로부터 한반도 분단 극복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목차

1부 역사는 반복되는가
_ 분단과 통일의 전사(前史)
라인강 고성 vs 임진강~염하 유적 - 옛 통일의 회상
뤼베크 소금창고(개방) vs 서해 염전(폐쇄)
베를린 프랑스성당(개방을 통한 통일) vs 강화도 대원군경고비(쇄국을 통한 분단)
바트엠스 빌헬름별장(통일전쟁) vs 화진포 김일성별장(분단전쟁)
독일 DMZ(전쟁발발) vs 한반도 DMZ(전쟁억지)

2부. 이름 모를 비목이여!
_ 분단의 슬픈 자화상
포츠담회담(분단) vs 포츠담광장(통일)
점령분할선(패전국) vs 군사분계선(휴전국)
사라진 마을 vs 분단된 마을 vs 조성된 마을 - 마을 공동체
동서독(동독내) 완충지대 vs 남북한(남북간) 완충지대
155km 베를린장벽 vs 155마일 남북한분단선 - 155의 길이
오베르바움 다리(연결) vs 돌아오지 않는 다리(단절)
목숨 걸고 넘는 담 vs 죽어서 넘는 담 vs 죽어서도 못 넘는 담 - 높이가 다른 담


3부. 슬픔 속에도 희망은 자라고
_ 분단과 통일의 문화예술
한슈타인성 vs 궁예도성 - 분단선 고성
드레스덴 성모교회(화합의 건물복원) vs 철원 노동당사(방치된 건물잔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통일 예술) vs 임진각(분단 예술)

4부. 물은 유유히 흐르고 날것들은 자유로운데
_ 통일과 화합의 길
발트해 분단선 vs NLL - 바다의 분단
엘베강(분단선) vs 북한강(끊어진 물길)
괼치계곡다리(자발적 합작) vs 승일교(강제적 합작)
엘베강 생물권보전지역 vs DMZ 생물권보전지역 - 유네스코 자연문화협력
철의 장막 유럽그린벨트 vs 철의 삼각 철새네트워크 - 생태평화
브란덴부르크문 vs 도라산역 - 연결의 가치

저자 소개

저자 : 김재한
김재한은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8년 미국 Hoover Institution이 National Fellow로, 2010년 교육부가 국가석학으로 선정한 바 있다. 2014년부터 중앙SUNDAY의 인기칼럼 ‘세상을 바꾼 전략’을 연재하고 있다.
저자 : 김규현
김규현은 미주, 유럽, 아시아의 여러 국경지역을 김재한과 함께 현지 조사했다. 2014년 이스라엘 Galilee International Management Institute의 Israeli-Palestinian Conflict 프로그램 연수시에는 중동의 여러 분쟁 현장을 답사한 바 있다.

 
 

책 속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정치력은 독일 30년전쟁(1618~1648)을 종식시키는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소멸되었다. 그 이후 근대국가 체제가 태동하였다.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은 어떤 방식이 백성을 덜 착취하느냐에 따라 선택되어지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통일 여부도 장기적으론 어떤 방식이 실제 주민들에게 더 좋으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염하의 손돌목은 라인강의 로렐라이를 연상시킬 정도로 물길이 꺾이는 곳이다. 강폭이 좁은 목은 거리가 가까워서 도하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빠른 물살 때문에 더 어렵다. 고려시대 몽골 침략 때 왕을 모시고 배를 몰았던 손돌이 거친 풍랑과 물살 탓에 왕의 의심을 사서 처형되었다는 설화 등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설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위험한 바닷길이 오히려 적의 추격을 피하는 안전한 길임에도 권력자의 의심은 자신의 안전뿐 아니라 억울한 백성 한 사람의 목숨까지 가져간 꼴이다. ---「1부. 역사는 반복되는가: 라인강 고성 vs 임진강---「염하 유적」중에서


프랑스 문화를 흠모한 프리드리히 2세는 당시 민족국가나 민족주의의 개념이 없던 독일의 여러 작은 공국 사람들에게 독일민족주의 의식을 제공한 인물이다. 독일민족주의의 상징적 인물이 프랑스 문화의 추종자였던 것이다. 제1차 대전 패전 직후 독일의 여러 정파들은 자신의 정치동원에 프리드리히 2세를 이용했다. 특히 히틀러는 프리드리히 2세를 자신의 롤 모델로 여겼다.
보불(프로이센-프랑스)전쟁과 양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 힘의 원천은 역설적이게도 프랑스에게서 왔던 것이다. 프로이센은 1870~1871년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해 독일 통일을 이루었는데, 그 저력은 개방을 통한 프랑스 인재와 문화의 적극적 수용에 기초한 것이었다.

경고비 근처에는 프랑스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조선인의 처참한 광경이 찍힌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프랑스와 미국은 관심이 없어 철수한 것인데, 대원군은 이를 승리라고 우기며 쇄국을 고수하다 결국 강대국도 아닌 인접국 일본의 함대에 항복하게 되었다. 쇄국이 나라를 식민지로 전락시켰고, 그로 인해 민족 분단이 초래되었던 것이다.
조선 말기 세운 담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서독 경계선을 포함한 철의 장막도 그 경계 대상은 외부세력이 아니라 외부와 접촉하여 자신에게 대항할 내부세력이었던 것이다. 철의 장막에 의한 피해자가 동쪽의 일반 주민이었듯이, 조선시대 담의 피해자는 일반 백성이었다. ---「 베를린 프랑스성당 vs 강화고 대원군 경고비」중에서

1953년 7월 31일에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 제4차 회의에서 쌍방은 DMZ에서 민사경찰을 보총(rifle)과 권총(pistol)만으로 무장 가능하고, 방아쇠를 한 번 잡아당길 때 총탄이 연속 발사되는 자동식 무기의 휴대는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즉 정전협정상의 비무장은 자동소총 이상의 무기를 금지한다는 의미이다.
남북이 각각 DMZ 한계선으로 부르는 철책선은 정전협정에서 규정한 ‘MDL로부터의 2km’보다 MDL에 더 가까이 설치되어 있다.
4km의 간격을 지녀야 할 DMZ가 쌍방에 의해 1/5로 축소된 것이다.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이 많다. 사실 철책선을 규정보다 앞으로 설치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위반이 아니다. 그 철책선을 따라 중무장되어 있다는 점이 위반인 것이다.
DMZ의 범위는 철책선이 어디에 있든 MDL로부터 남북으로 2km까지이다. 즉 철책선이 어디에 있든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km까지 비무장화되어야 한다. DMZ의 남북 폭이 좁아졌다면 그것은 무장화 때문이지 철책선 때문이 아닌 것이다. ---「독일 DMZ vs 한반도 DMZ」중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장소인 판문점(板門店) 세 글자의 한자(漢字)가 모두 8획으로 38선의 상징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점(店)자에 점칠 점(占)자까지 들어앉아 있으니 더욱 그럴 듯하게 들린다. 판문점은 6.25전쟁 이전에는 널문(板門)이라는 지명의 매우 한 적한 마을이었다. 1951년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정전협상이 진행되고 협정이 체결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장소이다.---「2부. 이름 모를 비목이여: 점령분할선 vs 군사분계선」중에서

주민을 이주시킨 동서독 분단선과 다르게, 한반도 분단선에는 새로운 마을을 정책적으로 건설하려는 반대의 현상이 나왔다. 1954년 유엔사로부터 행정권을 이양 받은 남한 정부는 수복지구 민간인 입주계획에 따라 남측에 토지주인이 확인되지 않았던 양구 해안면, 고성 명파리, 철원 월하리, 철원 마현리 등으로 주민을 이주시켜 마을을 조성했다.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발생한 경북 울진의 이재민 66세대를 승리전망대 뒤 바로 남쪽에 있는 마현리로 이주시켜 마을을 조성했다. ---「사라진 마을 vs 분단된 마을 vs 조성된 마을」중에서

1989년 5월 소련 고르바초프의 지원으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즉 철의 장막을 해체하였다. 그해 9월 동독인 수십만 명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동독인들이 헝가리로 가지 못하게 동독과의 국경을 봉쇄하였다. 10월 동독 지도부는 교체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국경은 다시 개방되었다. 11월 9일 동독 정부는 영구적 이민 희망자의 출국을 허용하기 위한 국경 개방안을 발표하였는데, 본래 의도와 달리 모든 동독인들에게 즉시 개방한다는 오해를 주었다. 발표 몇 시간 후 베를린장벽에 모인 수천 명의 동독인들에게 국경수비대는 국경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서베를린에서 귀환하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베를린장벽뿐 아니라 동서독 경계선 전역에서 개방이 이루어졌다. 개방 4일 동안 전체 동독 주민의 1/4이 서독을 방문했다. 출국 대열은 매우 길었고 1990년 2월까지 십여 개의 새로운 통과지점들이 설치되었다. 엘베강에서는 배로 서독행이 이루어졌다. 국경감시원은 더 이상 무기를 휴대하지 않았고 여권도 검사하지 않았다. 국경감시원들은 몇 개월에 걸쳐 절반으로 감원되었다. ---「155km 베를린 장벽 vs 155마일 남북한 분단선 」중에서

화천에는 추모 성격의 비목문화제가 매년 현충일 무렵에 열리고 있다. 산화한 무명용사의 넋을 기린 비목이라는 노랫말은 1964년 백암산 주둔 부대에서 ROTC 장교로 근무하던 한명희가 이끼 낀 돌무더기 하나를 발견하고 만든 시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녁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사실 군대에 간 당사자나 그 부모는 군대에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슬픈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때가 많을 터, 하물며 전장에서의 죽음을 애도하는 감정이야 어디 비목 노랫말 정도로 표현될 간단한 것일까. ---「목숨 걸고 넘는 담 vs 죽어서 넘는 담 vs 죽어서도 못 넘는 담」중에서

주변국끼리 또 남북한끼리 영토나 영해로 분쟁이 심화되면 통일의 길은 더욱 멀어진다. 글로벌 기준의 여러 가치를 남북한과 주변국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국제기구를 통해 주변국과 문화유산을 공동으로 보전하고 접경지역 자연도 공동으로 보호하게 된다면, 통일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동서 독 통일이 유럽연합이라는 지역공동체 형성으로 더욱 가능해졌던 역사적 사실과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엘베강 생물권 보전지역 vs DMZ 생물권 보전지역」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분단과 통일의 원리

이 책은 세대가 다른 두 사람이 거의 10년에 걸쳐 한반도와 독일이라는 지구 반대편의 두 현장을 함께 답사한 후 엮은 결과물이다. 150마일 이상의 남북한 분단선뿐 아니라 150km 이상의 베를린 장벽 그리고 거의 1,500km에 이르는 동서독 분단선을 함께 답사한 후 분단과 통일에 대해 중요하지만 놓치기 쉬운 생각 조각들을 꿴 것이다.

동서독이 어떻게 했기 때문에 남북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계가 있다. 동서독은 같은 편으로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전의 책임으로 분단된 전우였다고 볼 수 있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 아직 그런 적대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북한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독일과의 차이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고 한반도에 적용할 만한 독일의 교훈이 없는 게 아니다. 19세기 및 20세기의 독일 통일은 한반도에게 통일 노하우를 전해준다. 이유 없는 분단도 없고 원인 없는 통일도 없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무작정 기다린다고 해서 통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현장들은 무모한 쇄국과 무모한 전쟁이 분단으로 이어지고 또 개방을 통한 성장 그리고 주변과의 협력이 통일을 가져다줌을 보여준다. 특히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공동체의 설립이나 생태 네트워크와 같은 자연문화 교류는 통일 가능성뿐 아니라 통일과 분단 삶의 질도 높인다.

분단 시발의 때와 장소도 통일 촉발의 시간과 공간이 될 수 있다. 분단의 시공(時空)이냐 통일의 시공이냐는 것은 그 시공의 인간 행동에 달려 있다.

독일은 과거 분단을 회고하여 오늘날에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오늘날 분단을 극복하여 미래 통일로 나아가려는 한반도는 독일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이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세대와 모든 민족에게 그런 성찰의 공유 기회로 다가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