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정치의 이해 (책소개)/2.민주주의

그리스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동방박사님 2022. 10. 1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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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로마 이전에 위대한 그리스가 있었다!
서양 문명의 원형, 민주주의의 창시자
그리스인을 둘러싼 거대 역사 스펙터클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필생의 역작!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모태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세계를 향한 대여정이 시작된다!

최고의 역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의 눈으로 읽는 그리스인의 역사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역사 저술가 중 한 사람인 시오노 나나미. 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모두 3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저자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리스인의 생각, 인생, 정치, 문화, 사회, 외교의 전모를 펼쳐낸다.

그중 첫째 권인 『그리스인 이야기 I: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에서는 태초 신화와 고대올림픽에서 시작해 활발한 해외 식민도시 건설과 민주주의 실험, 그리고 도시국가들 간 경쟁갈등협력과 국운을 건 두 차례의 페르시아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역사와 그 속에서 부침하는 여러 리더들과 시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휘몰아치는 전쟁의 격랑과 그 저변에서 꿈틀거리는 민주정치의 태동과 발전, 이 두 가지 축을 씨줄과 날줄로 절묘하게 교차시킴으로써, 저자는 그리스인이 꿈꾸고 실현해나간 세상을 손에 잡히듯 생생히 묘사해낸다.

지정학적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해양 대국을 건설하고,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정치 실험과 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간 그리스인들. 2,500여 년 전 그들의 고뇌와 노력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 우리의 지향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교훈을 준다.

목차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제1장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올림픽
신들의 세계
해외로 웅비

제2장 나라 만들기의 여러 모습
리쿠르고스의 ‘헌법’: 스파르타
솔론의 개혁: 아테네
페이시스트라토스 시대: 아테네
쿠데타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아테네
도편추방
기권은? 그리고 소수의견 존중은?

제3장 침략자 페르시아에 맞서
페르시아제국
제1차 페르시아전쟁
마라톤
제1차와 제2차 전쟁 사이의 10년
정적 제거
전쟁 전야
테르모필레
강제 소개
살라미스로
살라미스해전
플라타이아이전투
에게 해, 다시 그리스인의 바다로

제4장 페르시아전쟁 이후
안전보장
아테네와 피레우스의 일체화
스파르타의 젊은 장군
델로스동맹
영웅들의 그날 밤

연표
도판 출처
 

저자 소개 

저 : 시오노 나나미 (Nanami Shiono,しおの ななみ,鹽野 七生)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

역 : 이경덕 (李慶德)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힘을 배우고, 대학원에서는 세상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인류의 신화와 의례를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의례와 축제, 신화, 경제인류학 등을 강의하며 학생들과 만나고,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고대로 가...
 
 

책 속으로

고대올림픽은 정확하게 4년에 한 번씩 개최되었다. 경기가 열리는 7일을 포함해서 1개월 동안은 휴전이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인은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참가를 허용하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정 나라를 배척하거나 하지 않았다. 현대의 자동차경주에서 안전자동차safety car가 들어오면 추월이든 뭐든 할 수 없는 것처럼 어제까지 전쟁터에서 싸웠더라도 1개월 동안은 싸움을 멈췄다.
이렇듯 그리스인에게는 올림픽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오랜 세월 동안 고대올림픽이 지속되었을 리 없다. 제우스에게 한 맹세를 인간 따위가 깰 수 없다는 생각도 고대올림픽 지속을 뒷받침했을지 모른다. 고대올림픽은 늘 다투던 고대 그리스인에게서 꽃핀, 인간성에 깊이 뿌리를 둔 ‘지혜’였다. _26쪽

스파르타인은 혼자서도 충분히 강했다. 그러나 집단을 이루면 그들의 강력함은 더하기에서 곱하기로 변했다. 동료가 옆에 있으면 용감무쌍한 사람으로 변했다. 스파르타 중무장 보병의 전투력이 그리스에서 첫손가락에 꼽힌 것도 집단을 이루어 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남자들이 강한 이유를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 동성애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장년이 될 때까지 다음과 같은 자세를 꾸준히 고양했기 때문이다.
‘적에게는 절대로 등을 보이지 않는다.’
‘전쟁터에 나가면 이기거나 죽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후세 사람들은 리쿠르고스가 생각한 스파르타를 ‘무기로 쌓아 올린 국가’라고 평가한다. 리쿠르고스의 머릿속에는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 따위는 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_44쪽

솔론이 제안하고 시민집회가 가결한 법은 획기적이었다.
부채를 변제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신체로 변제하는, 즉 채무자는 채권자의 노예가 된다는 기존의 법을 폐지하는 법이었다. 도시국가 아테네의 시민집회는 귀족과 평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시대에는 아직 평민이 국가 요직에 선출될 권리가 없었지만 선거권은 있었고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법은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기에 귀족들이 불만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귀족과 평민 사이의 다툼을 해소할 필요성을 인식한 쪽은 당시 넓은 시야를 가진 그들 귀족이었다. 솔론은 착실하게 개혁의 첫걸음을 뗐다. _57쪽

그리스인은 육체 단련 자체를 좋아했다. 나라에서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부모가 기꺼이 보냈고 소년들도 기쁘게 팔레스트라를 찾았다. 로마시대나 그 이후 오늘날까지 ‘팔레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정착된 시설들은 소년 전용이 아니므로 어른들 또한 많이 찾았고 세대를 초월해 시민들의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다.
팔레스트라에서는 전원 나체나 반나체로 단련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리스 조각은 예술적인 이유로 나체를 표현했다는 주장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평소 모습’대로 묘사한 것이 ‘예술’이 되었을 뿐이다. _67쪽

근현대사 연구자들은 페이시스트라토스를 ‘티라노스(독재자)’라고 부른다. 그래서 앞으로 풀어갈 그의 치세를 ‘독재자가 아테네를 지배한 시대’라고 부른다. 이렇게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참주僭主’라고 부른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당연한 호칭이기는 하지만 참주라는 의미가 ‘제왕·군주의 이름을 참칭하는 자’라는 점에서 페이시스트라토스를 참주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가 스스로를 왕이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민주정치의 이정표’라고 불리는 솔론의 개혁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
다. 그대로 계승했다. 다만 운용 방식에 나름대로 색을 입혔을 뿐이었다. _80~81쪽

스파르타인에게 시민이란 리쿠르고스가 정한 것처럼 조국 방위에 생애를 바친 ‘전사’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도시국가 스파르타의 존속에 필수 불가결다고 여긴 수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페리오이코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헬롯도 그들이 보기에는 ‘시민’이 아니었다. 그래서 페리오이코이나 헬롯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고 시민집회 참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편 아테네에서는 솔론의 개혁이 말해주듯이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나 상인, 농민 모두가 ‘시민’이었다. 그들은 수입의 많고 적음에 따라 피선거권에 차별이 있었지만 시민집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고 또한 그런 이유로 국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어서 당당한 시민권을 지닌 ‘시민’이었다. _104~105쪽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의 필요로부터 탄생한다

『그리스인 이야기 I』 서두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 그리스인이 훗날 서양의 패자가 되는 로마인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아예 상대로 여기지조차 않았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고대 서방 세계의 대표주자는 그리스와 그리스인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쪽 동방 세계에는 페르시아라는 대제국이 강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는 상당히 결점이 많은 나라였다. 국토가 주로 바위투성이 산악지대여서 자체 생산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그리스는 한 나라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이 난립한 형태였다. 게다가 도시국가들끼리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고대올림픽이 이 지난한 전쟁을 잠시나마 멈추기 위해 탄생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그리스가 어떻게 서양 문명, 나아가 현대 문명의 한 모태로까지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신선하다. 이 책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 그리스에서 민주정치가 싹트고 발전해간 까닭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단언한다. 당시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이 요구하는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 중 최강국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였고, 코린토스와 테베가 그 뒤를 이었다. 군사력에서는 스파르타가 가장 막강했지만, 국가체제에서는 스파르타가 소수 지배였던 반면 아테네는 민주정치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민주주의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숨에 이루어진 것도, 순탄하게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아테네의 개혁은 귀족정치를 타파한 솔론의 금권정치를 시작으로 해서,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치, 클레이스테네스의 실력주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전시 위기관리 체제, 그리고 이후 아테네 민주정치의 황금기를 이끈 페리클레스 시대로 이어진다. 이들 각각은 당연히 그 자체로 완벽하거나 방향이 올바르지만은 않았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독재와 비민주의 요소가 표출되기도 했다. 다만 그 근간만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각 단계마다 ‘계급 간 갈등 해소’ ‘체제 안정’ ‘경제력 향상’ ‘국난 극복’ 등 다양한 현실의 요구, 즉 ‘필요’가 존재했고, 이에 발맞추어 나름의 색깔을 더하며 아테네 민주주의는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그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다음과 같은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고매한 이데올로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필요성 때문에 태어났다. 냉철한 선택의 결과다. 냉철하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지배하던 시대의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작동했던 것이다. 민주정치가 이데올로기로 변한 시대에 도시국가 아테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쇠퇴뿐이었다.”

‘양’의 열세를 ‘질’의 우수성과 ‘활용’의 힘으로 극복하다

민주정치의 확립과 더불어 그리스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큰 과제는 국난 극복이었다. 바로 제1차, 제2차 페르시아전쟁이 그것이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키루스 대왕의 정복 전쟁을 시작으로 중동에서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왕 중의 왕’을 자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자타공인 당대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다리우스는 마침내 그리스에까지 정복의 손길을 뻗친다.

당시 그리스의 군사력은 페르시아의 군사력에 턱없이 못 미쳤다. 누가 봐도 패배는 명약관화했다. 더욱이 그리스는 여러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였다. 일체감이 부족하고 구심점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불리한 전황을 극적으로 타개해낸 인물이 바로 아테네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였다.

페르시아전쟁 기간 동안 테미스토클레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마라톤전투, 테르모필레전투, 아르테미시온해전, 살라미스해전, 플라타이아전투, 미칼레 공략 작전 등 주요 전투가 이어지는 가운데 테미스토클레스는 탁월한 전략과 위기관리 능력, 강력한 리더십으로 끝내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를 두고 저자가 “아테네 민주정치가 낳은 아이” “아테네 최고의 유명인일 뿐 아니라 그리스 최고의 유명인”이라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심지어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존재 자체가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경이로움”이라고 극찬한다.

그런데 한 개인으로서 영웅이 아니라 그리스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그것을 ‘질’, 다시 말해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지적한다. “페르시아(동방)는 ‘양’으로 압도하는 방법으로 공격해 왔다. 그리스(서방)는 ‘질’로 맞서 싸웠다. 이때 ‘질’이란 개개인의 소질보다는 모든 시민이 지닌 자질을 활용한 종합적인 질을 의미한다. 즉 한데 모아서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를 통해 그리스는 승리했다. 보리 한 줌에 불과했지만 대제국을 상대로 이긴 것이다.”

이때 ‘활용하는 능력’이란 ‘응용력’ ‘융통성’ ‘목적 지향성’ 등으로 읽힌다. 일례로 저자는 테미스토클레스를 “누구든 활용하려 했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은” 인물로 묘사한다. 실제로 테미스토클레스는 참주(독재자)의 등장을 막기 위해 도입한 민주적 수단인 도편추방 제도를 정적 제거에 ‘활용’했으며,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라는 목적을 위해 제거한 정적을 다시 불러들여 ‘활용’했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전쟁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자질에 눈을 떴고, 이는 이후 유럽 정신을 이루는 중요한 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유럽은, 고대 그리스인이 페르시아로 대표되는 동방과 차이를 만들었던 바로 그때,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