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한국역사의 이해 (책소개)/9.한국문화.한국사

허기진 도시의 밭은 식탐 (황교익)

동방박사님 2022. 11. 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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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혀끝이 아닌 삶으로 맛보는 서울음식

“서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살피면 서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허기진 도시의 밭은 식탐』의 저자 황교익은 이런 생각을 갖고 1년여에 걸쳐 서울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서울음식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500년 조선왕조의 도읍지였으니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이 먼저 떠오르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음식 중에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은 없다. 서울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저자는 어떤 음식을 통해 어떤 서울을 발견했을까? (* 이 책은 2013년 발행한 『서울을 먹다』에서 황교익 저자의 글만 모아 재편집한 것입니다.)

 

목차

책을 내며_ 내가 먹었던 것은 ‘뜨거운 눈물’ 6
들어가며_ 무엇이 서울음식인가 13

1장 서울 설렁탕
조선의 왕에게 얻어먹다 21

2장 종로 빈대떡
가난도 낭만이게 하다 35

3장 신림동 순대
전라도의 이름으로 47

4장 성북동 칼국수
골목길에 숨은 경상도의 권력 59

5장 마포 돼지갈비
한때 남자의 음식이었던 73

6장 신당동 떡볶이
고삐리를 해방시키다 87

7장 용산 부대찌개
전쟁과 가난을 추억하다 103

8장 장충동 족발
체력은 국력이었던 그 시절의 보양음식 117

9장 청진동 해장국
조선 장꾼의 음식이었다 131

10장 영등포 감자탕
뼛골 빠지는 삶 145

11장 을지로 평양냉면
평양이라는 이름의 맛 159

12장 오장동 함흥냉면
함경도 아바이의 삶이 이리 질길까 173

13장 동대문 닭한마리
시장 사람들의 저렴한 보양 185

14장 신길동 홍어
날것의 전라도 197

15장 홍대 앞 일본음식
반일과 친일 사이의 입맛 209

16장 을지로 골뱅이
동해에서 인쇄 골목으로 온 까닭은 221

17장 왕십리 곱창
살을 못 먹는 변두리 233

 

 

저자 소개

저 : 황교익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 시인을 꿈꾸었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공부했고, 〈농민신문〉에서 일하며 음식 전문 작가가 되었다. 1992년부터 전국 각지의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었다. 2000년, 그 기록을 엮어낸 첫 저서 『맛따라 갈까보다』는 한국 최초의 인문학적 향토음식 보고서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소문난 옛날 맛집』, 『황교익의 맛있는 여행』, 『미각의 제국』, 『한국음식문화 박물지』, 『허기...
 

출판사 리뷰

서울은 이주민의 도시이다

황교익이 『허기진 도시의 밭은 식탐』에서 소개하는 음식은 17가지이다. 그런데 그 음식 중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서울 명물로 소문난 설렁탕 외에 냉면, 홍어회, 부대찌개 같은 음식이 포함되어 있다. ‘저 음식들이 서울음식이라고?’ 하는 의문을 가질 만한 음식들이다. 냉면은 늘 앞에 평양이나 함흥이라는 지명을 달고 있으며, 홍어는 대표적인 남도음식으로 꼽힌다. 부대찌개 하면 사람들은 으레 의정부를 떠올린다. 저자가 이런 음식들을 서울음식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4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토박이라고 부를 만한 기준인 3대째 이상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세대는 불과 6.5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90퍼센트가 넘는 서울 사람들이 비교적 근래에 팔도 각지에서 서울로 옮겨 온 이주민인 것이다.
서울음식에는 이런 이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이북 실향민들의 삶이 을지로 평양냉면과 오장동 함흥냉면에 스며 있다. 평양냉면 전문점인 우래옥, 을지면옥 등에 가면 연세 지긋한 실향민들 만나기가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보다 쉽다.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추운 겨울밤 뜨거운 아랫목에서 먹던 어머니의 냉면 맛을 을지로에서 찾는다.
신림동에 가면 순대타운이 있다. 원래 재래시장 노점에서 시작한 순대볶음집들이 두 개의 건물에 입주하여 타운을 이룬 것이다. 이곳 순대타운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간판에 전라도의 지명이 붙어 있다. 이촌향도의 1960~70년대, 신림동 인근에는 전라도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읍내와 같았던 신림시장에서 값싼 순대볶음에 소주 한잔 하면서 낯선 서울에 적응했다. 음식을 통해 본 서울은 이주민의 도시이다.

음식으로 엿보는 서울의 삶

서울음식에는 서울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옥에는 야간통행금지가 서슬 퍼렇던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다. 밤새 기사 쓰고 나온 광화문 일대 언론사 기자들, 철야한 노동자들, 밤새워 술을 마셔 댄 글쟁이들, 통금에 걸려 잡혀 있던 사람들, 주변 여관에서 자고 나온 사람들 그리고 밤새 클럽에서 춤을 추다 나온 고고족들이 통금이 풀리는 새벽 4시에 청진옥에서 속을 풀었다. 장충동 족발 골목은 장충체육관에 빚을 지고 있다.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레슬링 시합을 보며 김일의 박치기 한 방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응원에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체력은 국력이던 시절의 보양을 위해 족발 골목을 찾았다. 지금 신당동 떡볶잇집은 고등학생보다 가족 손님이 더 많이 찾는다. 신당동 떡볶잇집에서 수줍은 미팅도 하고 장발의 디제이를 보며 열광하던 ‘고삐리’들이 이제 아들딸의 손을 잡고 와 젊었던 그 시절을 추억하기 때문이다.
서울은 가난하였다. 서울음식 또한 가난이 만들어 낸 음식이다. 1970년대 좁은 작업장에서는 쉴 새 없이 미싱이 돌아갔다. 작업장으로 들이던 원단이 지게에 실려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분주히 다니던 곳이 동대문 일대이다. 동대문에서 왕십리 쪽으로 조금 벗어나면 마치코바라고 불리던 조그만 철공소들이 밀집해 있었다. 봉제 공장에서, 철공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저녁시간을 위로하던 음식이 곱창구이다. 살코기는 외국으로 수출해야 했던 가난한 한국의 더욱 가난한 노동자들은 소와 돼지의 부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서울살이를 견뎌 냈다.

서울과 서울의 삶을 기억하다

오랫동안 사대문 안을 지키던 해장국집과 빈대떡집은 이제 그 옛날의 골목을 떠나 어느 듣보잡의 이름을 하고 있는 고층건물의 한 귀퉁이에 겨우 붙어 있다. 재개발의 밀려 이미 사라진 영등포 감자탕 골목처럼, 왕십리 곱창집들도 사라지고 있다. 이 가난한 이주민의 도시에서의 삶을, 서울 사람들의 밭은 식탐을 달래 주던 음식들을 기억하고 기록한 이 책이 소중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