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인간과 건강 (책소개)/1.죽음.심령.사후세계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동방박사님 2023. 1. 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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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괜찮은 죽음’을 말하는 슬프고도 유쾌한 문장들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 어떤 죽음이나 지독한 아픔과 깊은 슬픔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180도 바꾸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비애로 가득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죽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말하는 주인공은 40년간 의사로 일한 데이비드 재럿 박사. 그는 병원에서 노년기를 보내는 사람들을 주로 돌보는 노인 의학 전문의로서, 삶의 처음보다는 마지막에 더 가까운 이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들이 맞이하는 죽음은 그들이 살았던 삶처럼 각기 다른 모습이다. 질병, 노화, 치매, 자살, 돌연사 등 시종일관 죽음을 얘기하지만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사에 대한 날렵한 통찰을 전한다.

저자는 금기시되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정부가, 사회가, 개인이 이제 더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죽음을 많이 말하는 사회가 오히려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것. 그가 전하는 ‘33가지 죽음 수업’은 죽음을 미화하거나 억지 교훈이나 감동을 끌어내지 않는다. 다만 리얼한 의료 현장을 스케치하듯 기록할 뿐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두렵기만 했던 나의 죽음에 대해 보다 깊이 냉철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은 가장 훌륭한 명상이 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죽음을 생각하는 하루가 삶을 생각하는 하루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죽음을 직시하는 시간이 오늘을 더 가치 있게 살아갈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다.

 

목차

작가의 말
좋은 죽음
나쁜 죽음
우리는 왜 나이 드는가
좋은 노화
죽음을 자각할 때
접시 위의 죽음
과거로의 여행
죽음의 징조
환자를 죽이는 방법
죽음에 주먹질할 때
새로운 죽음의 방식
밀물
장기적인 노력
빨간 자동차와 가정 방문
어머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아버지
의사들은 어떻게 죽는가
생전 진술서과 생전 유언장
뇌졸중에 관한 대화
놓아주기
변화하는 간병 풍경
요한복음서 11장 35절
최신식 죽음
조이스
미세한 차이와 현대 의학
포터캐빈이 들려준 이야기
전문가들
다른 드럼
아드벡 해법
그야말로 무익한 것
현대판 티토누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고마운 사람들
인용구 출처

 

 

저자 소개

40년간 영국과 캐나다,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내과 의사이자 노인 의학 전문의로 일했으며, 그중 30년을 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NHS에서 노인병학, 뇌졸중 분야의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임상의, 교수, 검사관 및 전직 의료 관리자로서 직간접적으로 여러 죽음을 경험하며 정부와 사회가 그리고 개인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대비해야 할지 오래 고민해왔다. 현대 의학이 이뤄낸 많은 성과 속에서 의사들이 공...
 
역 : 김율희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근대영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책의 힘을 믿으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지붕 외의 시인 로니』, 과학기술부에서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된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에서 올해의 청소년 책으로 선정된 『원숭이의 선물』, 『손수레 전쟁』, 뉴베리상 수상작 『희망을 닮은 아이, 엘리야』 등을 ...
 

책 속으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럿 박사님, 누가 복도에서 쓰러졌는데 심정지예요!” 심정지는 의사나 간호사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진료 중인 환자에게 예의를 차리거나 사과의 말을 건네지 않고 자리를 떠나도 되는 유일한 상황이다.
--- p.13

간호진과 언어 치료사들, 물리 치료사들, 에드나에게 수많은 시간을 쏟았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참담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참담함을 느낀 이유는 에드나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그토록 오래 지속된 ‘기나긴 죽음’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 p.21

폴린은 내가 살려내지 못한 모든 환자들을 태우는 버스의 승객이 되었다. 세월과 함께 이 버스의 자리가 채워진다. 모든 의사에게는 유령들을 태운 자기만의 버스가 있다. 내 생각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료의 명암을 감당하는 능력이 저마다 다르기에 그 능력에 적합한 전공 분야에 끌리는 것 같다.
--- p.86

현실에서 심폐 소생술은 힘들고 혼돈으로 가득하며 대개는 실패한다. 병원 밖에서 심정지가 발생한 경우, 뇌가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병원을 떠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심장이 멈추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응급실이나 관상 동맥 집중 치료실, 중환자실이다. 이런 곳에서 멀어질수록 생존 확률이 낮아진다. 뇌 손상 없이 생존할 확률은 훨씬 더 낮다.
--- p.91

소생술에 실패할 때마다, 나도 조금씩 죽는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가 자란다. 어쩔 수 없이 경험이 자라나지만, 지혜도 자란다. 인생은 불공평하고 변덕스럽지만, 동시에 소중한 것이며 결코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p.95

나는 어머니의 엉덩이에 묻은 변을 닦아내며 내가 아기였을 때 어머니가 내 엉덩이를 얼마나 많이 닦아주었겠느냐고, 내가 어머니에게 똑같이 해줄 날이 올 줄 어머니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정신이 명료하던 시절에 어머니는 자신이 늙을 거라는, 특히 ‘분별력을 잃을’ 거라는 생각을 언제나 싫어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안락사에 찬성했다. 아들이 화장실에 데려다줘야 하는 모욕을 겪을 줄 미리 알았다면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p.139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있다면, 극단적인 기분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비로 인해 몸이 젖거나 추위 또는 눈부시게 작열하는 태양을 경험하는 일은 거의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자연스러운 불편함, 실생활을 살아갈 때 느껴지는 불편함으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다. 지나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술에 취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성욕도 없다. 버려질 일도 없다. 이곳은 약광층이다.
--- p.172

죽음과 관련된 암울한 통계가 많지만 머릿속 가장 은밀한 지하 감옥으로 추방된 죽음은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와 관련이 있다. 부모들 중 5분의 1이 자녀 중 한 명이 먼저 죽는 모습을 본다. 그 자녀는 성인일 수도 있고 장년일 수도 있지만, 똑같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외래 환자 진료실에서 노인 환자의 병력을 살펴보면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병이 발견될 때가 많다. 그런 환자들은 마치 삶의 온도 조절 장치에서 눈금이 한두 단계 내려가기라도 한 듯,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서글픈 분위기를 풍긴다.
--- p.193

간호사들이 침대에서 그를 옮기려 하자 톰은 도움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톰. 우리가 몸을 들어 올릴게요”라는 간호사들의 말에 톰이 대답했다. “네, 간호 쪽을 맡아주세요. 저는 죽는 쪽을 맡을게요.” 임종을 앞두고 유머를 듣는 일은 가끔 일어나는데, 톰다운 행동이었다. 음울한 익살을 곁들인 이타적인 모습이었다.
--- p.303
 

출판사 리뷰

40년간 만난 수많은 죽음의 기록

40년간 의사로 일하며 가족으로서 의료인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죽음을 33가지 이야기로 담아낸 책이다. 암으로 인한 죽음을 비롯해 천식 발작으로 죽은 소년, 수영장에서 익사한 학생, 자살한 청년, 유아 돌연사, 나이가 들면서 뇌졸중, 치매 등 질병을 앓다가 맞이하는 죽음 등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죽는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 동료 의사의 죽음 등 그 사연도 다양하다.
저자 데이비드 재럿은 끝없는 심정지 호출, 일명 ‘블루라이트 경보’에 시달리며 죽음이란 도처에 있다는 것을 일상에서 경험했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대부분의 소생 시도가 실패로 끝난다는 외면하고픈 사실도 안다. 죽음의 원인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반응도 제각기 다르지만, 인간이 태어난 후부터는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삶의 반대편 끝에 위치한 죽음을 향해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진솔한 대화를 시작할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많은 죽음을 겪으며 그가 배운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진리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자주 죽음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 아이러니하지만, 더 많이 생각할수록 좋은 것이 바로 죽음이다.

품위 있는 마지막을 위한 노력

가장 많은 사람이 겪는 죽음의 형태, 즉 인간의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에 따른 죽음이 바로 ‘최빈도 죽음’이다. 저자는 노인 의학 전문의이자 NHS(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에서 노인병학, 뇌졸중 분야의 컨설턴트로 일하며 노인들의 죽음을 누구보다 많이 목격했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만큼 ‘노년기의 죽음’은 이전과 다른 프레임으로 새롭게 논의되어야 한다.
전 세계에서 돌봄의 대상은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노년층이다. 현대 의학은 생의 시간을 늦추었지만 그로 인해 기나긴 죽음, 다시 말해 너무나도 서서히 죽어가는 노인이 많아졌다. 나이 든 환자이기 이전에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온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이니,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주길 저자는 강력히 촉구한다. 자연을 거스르며 고통을 연장하기보다는 국가와 의료 사회가, 그리고 개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좀 더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진심 어린 호소다.
여기, 사냥을 좋아하는 한 노인이 있다. 불편한 몸이지만 오늘도 새벽부터 사냥을 떠난다. 숲속에서 홀로 죽었다고 해도 그 죽음이 과연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는지 저자는 반문한다. 와인을 가장 좋아하는 70대에게, “와인을 끊으세요. 그래야 오래 삽니다.”라는 의학적 조언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21세기를 위한 ‘죽음의 기술’

명과 암, 희와 비, 득과 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어쩌면 잔인할 수도 있는 이 불변의 진리가 삶을 지배한다. 우리는 모두 살지만 반드시 죽는다.
저자는 그 아이러니한 현실을 자신만의 블랙 유머로 승화시킨다. 그가 특출한 유머감각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심각한 치매를 앓고 있어도 여전히 고품격 유머를 구사하는 환자, 죽기 직전까지도 미소 띤 쾌활한 농담을 건네는 환자, 시신을 인도하며 건네는 어딘가 어색하지만 유쾌한 안부 인사… 생과 사가 공존하는 병원의 일상은 슬픔과 기쁨이 묘하게 뒤섞인 공간이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존재를 보다 실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 대화를 시작할 엄두조차 안 난다면, 의사이자 위로자인 재럿과 만나기를. 그가 가진 경험과 그동안 얻은 죽음에 대한 이해가 ‘나의 죽음’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집단적 기억 상실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21세기를 위한 ‘죽음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을 위해.
 

추천평

40년간 의사로 일하며 멀리서 또 가까이서 죽음을 경험한 한 인간이, 여러 죽음에 대해 느낀 감정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책이다. 영국인 특유의 블랙 유머가 곳곳에 묻어나 있지만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이 함께하기 때문이리라. 슬픈 와중에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이란 이런 걸까? 사실, 우리는 언젠가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될 운명이자 스스로 이 세상에서 떠나게 될 운명이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운명임을 책장을 넘기는 매 순간 깨닫는다, 은근하고도 깊이 있게. 제목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은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마지막을 폴 매카트니의 말로 갈음하고 싶다. 이만하면 괜찮은 추천사이길 바라며.
“And in the end, the love you get is equal to the love you give”
- 유성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실 교수)

끔찍한 주제에 대한, 매우 호감가는 안내서… 벅차다. 궁극적으로 삶을 말한다.
- [인디펜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