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한국역사의 이해 (책소개)/2.한국사일반

백정, 외면당한 역사의 진실 (2013)

동방박사님 2023. 3. 1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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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백정, 그 낯선 이름에 대한 기록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과연 그 많은 인물들이 모두 왕족이나 양반, 평민들이었을까? 우리가 흔히 천하다 여기고, 실제로 당시만 해도 비천하며 험한 일을 도맡았던 이들이 다수 등장한다. 비록 극중이지만 그들은 실재했으며, 그 기록 또한 유효하다. 이렇게 도축을 하고, 사냥을 하며, 광대짓을 했던 이들을 역사는 ‘백정’이라 불렀다.

바로 이 '백정‘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누군가에겐 새로울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명백하게 와 닿을 만한 백정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도서출판 책밭의 신간 『백정, 외면당한 역사의 진실』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백정 연구에 몰두해 온 저자의 연구기록이자 가려져 있던 역사의 장막을 거두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는 그림자로만 살아왔던 백정이란 존재를 한 줄기 ’진실‘이라는 이름의 빛으로 밝힐 수 있는 계기이자 큰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은 ‘신분’이라는 편견으로 백정을 천대하고 모욕했던 우리 역사 앞에 내미는 도전장이다. 기록과 증언으로 써내려간 진짜 백정의 역사다. 이젠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 의미도 퇴색했다. 조선 500년을 살았던 수많은 백정의 피는 지금 우리 혈관 속에 그대로 흐르고 있다. 『백정, 외면당한 역사의 진실』은 우리 몸에 흐르는 백정의 그 핏줄기를 따라가며 천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남아 한반도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성장한 백정의 진면목을 살피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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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의 말 우리는 과연 단일민족인가?

1.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이방인
샌즈의 눈에 비친 조선인의 인종적 다양성
조선의 이방인, 백정

2. 백정의 탄생
여러 부류: 재인, 화척 그리고 달단
백정의 전신, 양수척
백정의 출현
사회적 차별의 대상

3. 백정의 조상
고려에 온 거란인
고려의 당당한 구성원이 된 거란족
한반도에 정착한 몽골족

4. 육식문화 보급의 주역
소고기 열풍이 불다
도축 금지령
가격폭등과 밀도살의 성행

5. 백정, 호랑이 사냥을 주도하다
공공의 적 1호, 호랑이
타고난 사냥꾼

6. 착호제도, 강무 및 타위 정비
호랑이부대 창설
착호의 주역, 백정

7. 농민 되기를 강요당한 백정
정착생활자만 왕국의 신민
공존의 부정
허락을 받고 여행하라

8. 백정의 저항
범죄로 내몰린 백정
범죄의 온상
의적? 임꺽정의 출현
의적인가 도적인가?

9. 호랑이 사냥꾼의 프랑스군 및 미군 격퇴
전공으로 고관이 된 백정
백정 출신 사냥꾼 동원
프랑스군을 물리치다.
미국 함대가 몰려오다.
사냥꾼 부대에 경의를 표한 미군

10. 지난한 해방의 여정
제대로 정착하는 백정
천민 중의 천민
깨어나는 백정
 

저자 소개

저 : 이희근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연구의 성과를 학술의 틀에서 벗어나 일반대중들과 함께 나누려고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통념이나 편견 없이 역사 현상과 자료를 분석하여, 그 뒤에 감춰진 의미를 해석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의식주나 질병 등 앞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서 직접적이고도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책 속으로

조선 말에 한반도를 여행한 서양인 대부분의 인상이 그렇듯이, 당시의 조선은 많이 구겨진 모습이었다. 샌즈도 그 점에서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1898년, 그는 도쿄를 떠나 긴 항해 끝에 드디어 제물포에 첫발을 내딛었다. 샌즈의 눈에 비친 제물포항은 한 나라의 입국을 허하는 관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도 열악해 보였다. 배에서 내린 그의 시야에 방파제를 따라 쭈그리고 앉아 있는 조선인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긴 머리를 손가락 크기로 땋아 매듭을 지어 머리 위로 올린 그들의 몸집은 일본인보다 컸다. 수염을 길게 기른 조선인들의 눈동자는 회색과 푸른색 그리고 갈색이었고, 머리칼은 붉었다. 그는 조선인들이 분명 여러 민족이 혼합된 혈통일 것이라 생각했다. ---p.17

백정 중 도자혹은 도한으로 불린 도축꾼은 짐승을 잡고 고기를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기록을 보면, 그들은 도성의 서쪽 무악산 아래에 모여 살고 있었으며, 소와 말을 밀도살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으로 1950∼60년대만 해도 백정하면 푸줏간을 떠올릴 만큼 도축업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곤 했다. 피물, 즉 짐승의 가죽을 사용하여 신발 등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백정 집단도 있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피장이라고 했는데 순우리말로는 ‘갖바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갖’은 가죽이란 뜻이고, ‘바치’는 장인의 옛말이다.---p.27

조선 초기의 양인에는 그 주축인 상민만이 아니라 위로는 문무 관료로부터 아래로는 신량역천인, 법적으로는 양인이지만 천역에 종사한 사람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이 포괄되어 있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같은 양인이더라도, 양반과 신량역천인 사이에는 엄청난 신분적 차별이 존재하였다. 조선 왕조가 출범한 뒤 사회문제로 등장한 것 중 하나가 양천의 분간이라는 문제였다. 본래 양인 신분이었던 자가 고려 말 사회적 혼란기에 압량·투속 등의 방법으로 천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361년 홍건적의 개경 점령 때 호적이 없어지면서 이들의 본래 신분을 판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왕국은 양천 신분이 분명하지 않을 때 양인 신분을 인정하면서 그들을 특수한 직임에 충당시켰다. 출신은 양인이면서 특수한 일, 나아가 일반인들이 꺼리는 천한 일을 하는 사람, 즉 신량역천인은 그로 인해 다수가 생겨나고 있었다. ---p.57

도축과 더불어 사냥도 백정의 직업 중 하나였다. 조선 왕조는 건국 초부터 호환, 즉 호랑이에 의한 인명 및 가축 피해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왕조 개창 직후인 1402년, 경상도에서만 호랑이에게 피해를 당해 죽은 사람이 무려 수백 명에 달했다.
---p.129
 

출판사 리뷰

백정은 천대와 멸시의 대명사다. 그러나 알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조선이 평민 이하의 백성 중 30%에 육박하는 백정을 어떻게든 왕조의 인구로 거두고 정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점을 보면 그렇다. 산악이 발달한 서울과 인근 지역, 그리고 지리산이 버티고 있던 남원 일대의 거주 인구 대다수가 백정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백정, 외면당한 역사의 진실』은 백정에 관해 우리가 입담 수준에서 올리던 이런저런 스토리들을 차분한 지식으로 정착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조선 왕조의 통치 그룹 안에서 벌어졌던 국정에 관한 대화, 즉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차분한 사실과 관련 기록들을 바탕으로 ‘백정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결론적으로 보면 조선시대 백정으로 분류했던 다른 혈통의 사람들은 대개가 한반도 재래의 인구가 아닌, 외래 거주민이다. 특히 고려시대 만주와 중원 지역에서 벌어졌던 왕조의 힘겨루기에 따라 패망한 거란족의 다수가 한반도로 넘어와 조선시대 백정으로 정착했다는 책 속의 주장이 눈에 띈다.

화척과 재인, 달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외래 거주민이 조선에 들어와서는 백정으로 불린 사실, 소나 돼지를 잡는 도축 전문가인 이들로 인해 조선시대 한때 쇠고기 구워먹기가 큰 유행을 이뤘다는 점, 산악이 발달한 곳에 호랑이나 표범 등 맹수 사냥업이 거의 유목민에 가까웠던 이들 외래 거주민의 전문 직종이었다는 점들이 다 새겨볼 만한 내용이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한반도가 결코 배달이라는 단일계의 종족적 구성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는 점에 맞춰져 있다. 북방이나 남방으로부터 새로운 종족들이 유입해 정착함으로써 한반도의 다양한 핏줄을 형성했다는 것인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조선시대의 백정이라는 얘기다.

외래의 정착민은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다문화 가정’이다. 다양한 핏줄의 섞임은 요즘의 다문화 가정에 앞서 500여 년 훨씬 전 한반도에서 대량으로 벌어진 현상이었다. 꽤 오래전의 그런 외래 거주민 후예들은 결국 조선의 황혼녘에 총을 들고 바다에 나선다. 병인양요의 프랑스군 침입에 이 땅을 지키고자 왕조가 동원한 사냥꾼들이었다.

첨단무기를 손에 쥔 프랑스군에 맞서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로 끝까지 저항하다 숨진 백정의 후예들은 구한말 조선에 들어온 한 미국인의 눈에 ‘빨간 머리털과 수염에 180㎝가 넘는 거구’로 비쳤다. 그 인종의 다양성을 생각하며 슬쩍 거울로 얼굴을 들여다보도록 만드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다양성 속의 조화, 나아가 한반도에 사는 ‘우리’를 곰곰이 되새기게끔 만드는 것도 책이 지닌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