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계국가의 이해 (책소개)/5.중동이슬람

나의 이슬람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2009)

동방박사님 2023. 10. 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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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에서
우리가 몰랐던 생생한 이슬람을 만나다.


세계에서 이슬람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통해 이슬람의 다양한 얼굴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인도네시아는 중동 인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무슬림이 사는 이슬람 인구 대국이고, 이슬람 정체성을 가진 나라로 드물게 격정적인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예견해 볼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사회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율리아 수리야쿠수마가 쓴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인도네시아를 무대로 사회 지배 권력인 종교 이슬람과 소수 엘리트, 그리고 무슬림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 사는 중산층의 여성 지식인이자, 이슬람 모태 신앙인, 서구에서 살며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여러 겹의 정체성으로 이슬람 내부의 문제를 균형 있게 해석하고 있다.

목차

인도네시아 개관
저자의 말 - 모두의 평화, 그 먼 꿈을 향하여

1장 코란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알라의 첫 계시, “읽어라”
라마단을 끝내며 올리는 기도
예언자가 할랄을 시작한 뜻은
표현의 자유와 이교도에 대한 예의
내가 다시 신을 믿는 이유
동일한 수의 낮과 밤을 할애해야 한다
선지자의 결혼
아들딸을 차별 안 하면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내가 질밥을 쓰지 않는 이유
경건한(?) 남성은 섹시한 여성이 무섭다
립스틱은 무죄!
기도를 올리기 전에
섹슈얼 데모크라시
이슬람은 섹스는 ‘예스’라고 말한다
무슬림 청년 아즈와르가 발견한 또 다른 천국
우리가 서로를 돕는 태도

2장 국가는 바보인가

가난은 불법이다
투잡, 쓰리잡 그리고 야간 아르바이트
도둑의 소굴, 갱들의 공화국
운전사 토모와 인도네시아식 친절
권력을 물려받은 여성들
팔지 못할 것은 없다
포르노금지법안이 노리는 것
서양인들은 방귀도 안 뀐다?
무슬림 청년 하산이 발견한 또 다른 천국
누구 엉덩이가 더 깨끗한가
강한 나라가 되고 싶다고?
총 든 자들은 언젠가는 쏜다
독재자의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
지하철 표를 사면 산소통도 같이 주나요?
유니폼으로 이루는 화합
대통령의 저글링
지금 당장 바퀴벌레 박멸!
국가의 미래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3장 약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정말로 종교가 문제인 걸까?
가난한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연인 같고 새엄마 같은 도시, 자카르타
정통 혹은 전통을 구하는 우리의 자세
역사의 희생양,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독재자가 떠난 자리
묻어버려야 하는 역사적 진실은 없다
누가 우리의 영웅인가
너무나 먼 결혼의 자유
게이 민주주의
고통만은 함께
숲을 잃고 우리가 얻는 것
함께 녹아내리거나 앉은 채 당하거나
약한 자들의 무기
강도짓도 생계 수단
섹스로 정치를 말한다
여성 대통령은 여성 편일까
안나에게는 안나의 무대를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 : 율리야 수리야쿠수마 (Julia Suryakusuma)
 
인도네시아의 사회학자, 여성학자, 저널리스트 겸 사회평론가이다.. 인도네시아대학(University of Indonesia)에서 심리학을, 런던 시티대학(City University)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헤이그 사회학연구원(Institute of Social Studies)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외교관인 부모를 따라 여러 나라에서 살며 공부했지만 평생 모태 신앙 무슬림으로 살아왔다. 본격적인 ...
 
역 : 구정은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지금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강한 것보다는 힘없고 작은 것, 눈에 띄는 것보다는 가려지고 숨겨진 것에 관심이 많다. 번역을 하면서 나라 밖 소식을 전하는 일도 하고 있다.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등의 책을 썼고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등을 번역했다.

책 속으로

이슬람은 어떻게 비이성적인 폭력과 불관용의 종교로 인식되었는가'
- 맹목적인 믿음은 ‘앎(이성)이 없는 권력(종교)’이고, 이것은 진실을 교묘하게 비틀거나 못 본 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맹목성이 종교를 핑계 댄 테러의 뿌리가 되며 사회를 분열시키는 위험한 동력이 된다. --- p.23

(이슬람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아사신파를 만든 하산과 세계의 학자로 불리는 오마르는) 적에게 폭탄 세례를 퍼붓는, 그리하여 스스로 목숨도 날려버리곤 하는 급진 강경파 이슬람과, ‘계몽된’ 이슬람 학자들을 대변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과 조지 W. 부시는 거울에 비춘 듯 꼭 닮은 하산의 복제인간들이다. (이들은 모두 적의 위협을 과장하며 적대감을 부추기고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 이슬람 혹은 이슬람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꾸란》이 알라의 첫 계시로 강조했듯이 이슬람의 본질은 이성과 지식을 추구하는 오마르 쪽이다.

“읽어라,
‘창조주이신 당신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은 응혈로부터 인간을 만들어주셨다.’
읽어라, ‘당신의 주님은 한없이 마음 넓으신 분
붓 잡는 법을 가르쳐주셨고
인간에게 미지의 일을 가르쳐주셨다.’” '꾸란'96장 1-5절 --- pp.19-23

“엎드려 밤을 새우고, 혹은 서서 예배를 드리며, 내세를 두려워하고, 주의 은혜만을 희망하는자. 말하라, ‘지식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같을 수 있느냐'’ 깊은 생각이 있는 자만이 교훈을 얻는다.”
- 《꾸란》 39장 9절
《꾸란》은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반여성적 종교다'
- 우리는 무엇을 말할 때 ‘맥락’ 속에서 살펴야 한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단 한 가지는 종교의 출발 버튼을 누르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 p.61

보수적인 무슬림들은 그런 불장난(외도)을 이유로 들어 일부다처제를 옹호한다. 일부다처제가 ‘간통’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간통’을 제도화해서 ‘간통’을 예방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무슬림들은 《꾸란》을 일부다처 옹호의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이것은 《꾸란》이 쓰인 시대적 맥락을 무시하고 글자 그대로만 해석한 결과다. 《꾸란》은 부족 전쟁으로 과부가 많아지자 그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일부다처를 허용한다고 말한다. (중략) 게다가 《꾸란》은 아내를 여럿 둘 수 있으나 모든 아내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실제로 불가능한 전제조건을 붙여놓았다고 지적한다. 일상생활의 규준이 되는 이슬람의 샤리아에서도 각각의 아내에게 “동일한 수의 낮과 밤을 할애해야 한다”고 정해 놓았다. --- pp.60-61

베일을 쓴 사람은 신과 더 가까워지는가
-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머리에 작은 천 조각을 하나 얹어놓는다고 해서 어떻게 신과 더 가까워지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 p.74

옷차림은 ‘맥락’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종교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중략) 내 어머니 연배인 나니는 메카 순례를 다녀온 여성인 하자다. 신실한 나니는 이 문제를 테사와 다르게 해석한다. “큰 길에서 발가벗고 기도를 한다 해도 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신은 오로지 우리 영혼과 정신, 마음, 말과 행동, 열정과 자비심을 보실 뿐이지 머리와 몸에 뭘 덮어썼는지는 보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꾸란》도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그들은 알라한테서 숨으려고 가슴을 접는다. 그러나 그들이 옷으로 얼굴까지 싹 감추어도 알라께서는 감추는 것도 나타내는 것도 모두 아신다. 가슴속에 있는 것도 모두 잘 아신다.
-《꾸란》 11장 5절 --- p.73

무슬림이 라마단 한 달을 굶는 까닭
- ‘전투’의 의미를 지닌 사움은 알라께 순종하고 은총에 감사함을 표시하고자 내 안에 있는 욕망과 싸우는 정신적 훈련이자 실천이다. 아울러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들과 고통을 함께함으로써 무슬림의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사회적 훈련이기도 하다. --- p.35

(금식월 라마단이 끝났음을 축하하고 이슬람력의 새해를 맞는) 르바란 축제일이 되면 여유 있는 집들은 요리를 넘치도록 차려 놓고 손님, 친구, 친척들을 맞는다. (중략) 식사를 대접하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굶은 너에게 고칼로리, 고지방, 고당분으로 보답하겠노라.”
여기 어디에 영적인 수련과 성장이 있단 말인가' 낮 동안 끼니를 거르는 대신 새벽에 잘 차린 음식을 먹고 저녁에 화려한 만찬을 즐기는 것은 탐욕과 지나침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내가 보기에 요즘 들어 르바란은 서양의 크리스마스처럼 점점 더 상업화되고 있다. 신앙이 아니라 종교에 따르는 의례 그 자체가 르바란의 목적처럼 보일 때도 많다. (중략) 르바란과 관련된 좋은 전통들, 예를 들면 이슬람의 5대 의무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희사금 자캇이 과연 순수한지도 한번 짚어보자. 요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사업 상대에게 ‘르바란 꾸러미’라며 선물 보내기가 관행이 되고 있다. --- pp.32-33

종교가 갈등과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에 한 점 오아시스가 될 수 있도록
- 관용을 마음에 두어라, 좋은 일을 권하라, 무지한 자를 피하라. -'꾸란' 7장 199절

무슬림에이드와 마찬가지로 감리교구호위원회연합도 종교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돕는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난민들, 파키스탄 카슈미르의 지진 피해자들과 수단 다르푸르 난민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그들의 구호 대상이다. 전혀 다른 종교를 배경으로 한 두 단체 감리교구호위원외연합과 무슬림에이드는 2005년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아체 주민들을 돕고자 공동 현장사무소를 열었으며, 얼마 전 유혈분쟁이 일어난 스리랑카에서도 다양한 종교를 가진 이들을 함께 도왔다. 두 단체는 인도주의적 구호가 필요한 지구촌 곳곳에서 활동하고자 리스펙트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힘을 합친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며 아일린이 ‘신이 주신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겼던 열정과 신앙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들이다. 감리교구호위원회연합과 무슬림에이드는 ‘굳건한 종교적 믿음은, 완고하고 편협한 잣대를 들이대며 휘두르는 부당한 권력과는 멀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민족과 종교를 빌미로 퍼뜨리는 갈등과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들은 하나의 오아시스가 되고 있다. --- pp.112-113

본질을 가리는 종교의 형식주의적 규범
- 이슬람은 생활의 모든 면을,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 모두를 규정하는 종교다. 하지만 이슬람의 가르침과 규율도 맥락에 맞춰 해석해야 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율법도 얼마든지 개방적이 될 수 있다. 종교 안에서의 자유도 놀랄 만큼 유연하다. --- p.40-41

그는 나의 영적인 믿음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신은 믿지만 종교는 별로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종교는 교통수단일 뿐인데 그 안에 너무 많은 장치가 들어 있고 또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된다. 나에게 종교의 핵심은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고 우리 안의 신적인 속성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모든 무슬림은 먹을 때나 여행할 때나 일할 때나,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축복을 구하며 ‘비스밀라히, 라흐마니 라힘’이라 말한다. 이 말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뜻이지 ‘성나고 참을성 없고 용서할 줄 모르는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이 아니다. (중략)
이슬람이든 아니든, 이런(고기를 도축한 방법을 따지는 할랄 같은) 종교적인 형식주의에 집착하는 건 성가시고 짜증난다. 그런데,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비슷하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런 종교적 형식들이 곧 규범이 된다. 종교적 형식주의가 상식, 관용, 타인에 대한 존중, 진실, 연대, 신과의 일체감보다 우위에 서고 결국은 종교는 본질마저도 가려버리는 때도 종종 있다.

“진실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유태교도, 기독교, 사바인 등 누구든지 알라와 최후의 심판날을 믿고 좋은 일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의 주(신)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이며, 두려움도 없고 슬픔도 없을 것이다.” '꾸란' 2장 62절 --- pp.39-41

종교적 형식주의가 상식, 공감, 관용, 타인에 대한 존중, 진실, 통합과 연대, 신과의 일체감보다 우위에 서고 결국은 종교의 본질마저도 가려버리는 때도 종종 있다. 역사적으로 식품을 준비하고 조리하는 유대교 관습 코셔(kosher)에 뿌리를 둔 이슬람의 할랄은 예언자 무하마드가 청결을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위생 개념이 없던 7세기에 이슬람의 엄격한 위생규칙들은 생존을 위해서 분명 아주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생활환경이 달라졌다. --- p.40

자신이 ‘공정하고자’ 한다면 율법은 시대를 막론하고 ‘공정’ 할 수 있다. 유산 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아들에게 3분의 2를 주고 딸에게 3분의 1을 주도록 한 이슬람의 율법은 딸에게 전혀 주지 않던 과거나 다른 문화에 비해 공정한 처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고, 가계를 부양할 책임을 지고 똑같이 돈을 버는 시대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율법이 신경 쓰인다면, 아들에게 3분의 2를 물려주는 대신 딸에게는 다른 선물을 남기는 식으로 율법도 지키면서 자녀에게 공정하게 대하는 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p.68

다름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하려는 신의 축복이다
- 우리가 힘들게 일궈낸 민주화가 더 큰 분열과 종교, 민족 분쟁으로 귀결된 현실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슬픈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 애쓰는 대신, 신이 주신 다름을 이유 삼아 증오와 킺열을 키우고 있다. 종교는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기 위한 바탕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 p.97

무엇보다 (성적 소수자들과 함께한 ‘젠더, 섹슈얼리티와 국가’라는) 강좌에 참여하면서 ‘다름’을 관용으로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 신이 주신 선물로 여겨 축복해야 한다는 《꾸란》의 가르침을 새삼 돌이켜보게 되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는 ‘서로 다름 가운데 하나 됨’을 이루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왔지만 실제로 오랜 시간 동안 점점 더 분열되어왔다는 사실, 특히 도덕과 종교를 앞세우면서 더욱 편협해져왔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꾸란'은 이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의 언어와 피부색이 다양하다는 것을 신이 내려준 경이로움으로 찬양하고 있다.

천지와 갖가지 언어와 피부의 빛깔을 창조한 것은 알라의 징표다. 진실로 그 가운데는 지식 있는 자에의 징표가 있다.
- '꾸란' 30장 22절

심지어 이렇게도 말한다.

아, 믿는 자들이여, 우리는 너희를 남녀로 나누어 창조하였다. 너희들을 부족과 종족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너희들 서로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희들 중의 가장 존귀한 자는 보다 알라를 공경하는 자이니라. 알라께서는 전지하시고 통찰하신 분이다.
- '꾸란' 49장 13절

(중략)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 애쓰는 대신, 신이 주신 다름을 이유 삼아 증오와 분열을 키우고 있다. 종교를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기 위한 바탕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 pp.96-97

경건한 남자들은 섹시한 여성이 무섭다
- 다른 모든 사회적 계약과 마찬가지로, 성별에 마땅한 일이 무엇인지도 협정처럼 굳어져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를 가장 먼저 규정짓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별, 섹스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별에 마땅한 일을 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근거라기보다 권력을 쥔 사람들과 정치적 역학관계다. --- p.86

인도네시아에는 지금도 여성들을 물리적으로 남성들과 격리시키는 풍습이 남아 있고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은 가혹한 이슬람 지역규칙 프르다를 적용해 여성의 활동을 제한한다. 여성들은 이러한 억압 밑에서 숨 죽인 채 통제, 지배, 학대를 통해 착취당해 왔다. 남성들은, 성인 여성뿐 아니라 어린 여자 아이들까지 강간, 근친상간, 성희롱, 구타, 성매매 대상을 삼아 성적 쾌락과 경제적 이익을 챙겨왔다.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를 지배하는 가부장적 종교에는 이런 위선이 널리 퍼져 있다. (중략)
도덕성은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신앙 깊고 정숙한 옷차림을 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우리는 성적 유혹뿐 아니라 다양한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스스로 도덕성을 단련하는 길뿐이다. (발리를 테러한 폭탄보다 벗은 여성이 도덕적으로 다 위험하다는) 아부 바카르의 주장은 그와 그 추종자들이 지저분한 마음을 지녔고, 신앙심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래서 총으로 다른 이들을 개종시키려 드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신앙은 진실하지 않다. --- pp.80-81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 사회이니 당연히 소수집단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게다. 하지만 종교적, 민족적 소수집단뿐 아니라 성적 소수집단도 권리를 똑같이 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이들이 많다. 인구의 2퍼센트를 차지하는 중국계 소수민족의 권리가 마땅히 인정되어야 하듯이, 그보다 많은 동성애자의 권리에 눈 감아서는 안 된다. 다수파가 소수파를 어떻게 대접하는가는 그 사회가 정의로운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 p.283

인도네시아의 ‘개혁’는 국가의 통제와 폭력, 사회적 억압으로 지탱했던 수하르토 신질서 체제가 만든 사슬을 푸는 작업이다. (중략) 하지만 사실 ‘새로운 엘리트’에 ‘낡은 엘리트’도 끼어 있다. 30년 전 신질서 체제가 시작될 때 수하르토 쪽에 붙었던 많은 엘리트가 ‘개혁세력’이라는 가면을 쓰고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대개 남성이며, 관습법이나 종교 같은 전통적인 장치에 기대어 권위를 누린다. 쉽게 말하면 새로 뽑힌 지방 지도자들 역시 그 전의 지배층처럼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가치관을 빌어 정통성을 주장한다. 그들이 내세운 보수적 가치관은 대개 전통으로 내려온 ‘지역의 종교적 정체성’과 이어져 있다. 과거에 자카르타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지방 관리들이 민족주의와 국가 현대화를 내세웠던 것과 다른 점이다. 하지만 개혁세력 역시 보수적이다.

그래서 겉보기엔 새롭지만 실제로 이들은 구태의연한데, 이 ‘낡은 새 엘리트들’은 자기가 맡은 행정구역을 넘어서 전국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수하르토 정권 시절 공작 정치를 펴던 이들과는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이슬람 집단 같은 보수파의 환심을 사려고 보수 이슬람 입맛에 맞는 사회적 아젠다를 내걸기도 한다. 그래서 관습법이나 샤리아에서 끌어온 뢺수적 도덕규범을 주州나 군, 구 등 지역 차원의 규범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아체에서 두드러지는데 이 생활규범들은 여성을 눈에 띄게 차별한다. 특히 자카르타 외곽 탕그랑과 치안주르(Cianjur), 파당(Padang), 남 술라웨시처럼 종교적'사회적 다양성이 강한 지역에서 새로 적용한 이슬람 규범이 더 심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 pp.171-172
 

출판사 리뷰

대통령궁에서 침실까지, 언제 어디서나 이슬람을 만나지만
이슬람의 본뜻을 되묻게 하는 나라,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에서
우리가 몰랐던 생생한 이슬람을 만난다.

이슬람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함께 다가오는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

9.11 테러와 여성들의 히잡으로 떠오르는 이슬람은 우리에게 폭력과 억압의 종교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슬람의 전부일까?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은 세계에서 이슬람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인 인도네시아를 통해 이슬람의 다양한 얼굴을 들여다본다. 왜 인도네시아인가? 인도네시아는 중동 인구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무슬림이 사는 이슬람 인구 대국이고, 이슬람 정체성을 가진 나라로 드물게 격정적인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어 이슬람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예견케 한다.

인도네시아의 사회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율리아 수리야쿠수마의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사는 인도네시아를 무대로 사회 지배 권력인 종교 이슬람과 소수 엘리트, 그리고 무슬림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이 모두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타락한 세상을 응징한다며 폭탄 테러로 202명을 살해한 이슬람 무장조직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이슬람이 모태 신앙이지만 히잡(질밥)을 쓰는 것이 신과 우리를 가깝게 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냐고 반문하는 여성 무슬림이 있다.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와 《꾸란》 읽기에 충실하지만 첫 아내 몰래 두 번째 아내를 얻는 ‘평범한’ 무슬림 가장과 관용과 평화의 이슬람 교리에 끌려 개종하고 비정부 무슬림 조직을 만들어 그 정신을 직접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이슬람의 각기 다른 얼굴들이다.
특히, 저자는 가부장 사회에서 사는 중산층의 여성 지식인이자, 이슬람을 모태 신앙으로 갖고 있으면서 상당 기간 서구에서 살며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여러 겹의 정체성 덕에 이슬람 사회 안에서 외부를 향해, 또 외부의 시선으로 이슬람 내부의 문제를 균형 있게 해석한다.

우리가 아는 이슬람은 어디까지인가
_추상적 관념과 평면적 이미지 너머 사람들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이슬람을 만난다

우리가 아는 이슬람은 대개 AP, CNN, BBC 등 서구의 뉴스나 영어로 씌어진 콘텐츠를 통해서였다. 기독교와 무신론이 주류인 서구가 말하는 이슬람은 종교를 내세워 9.11 같은 테러를 저지르고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집단이다. 저자는 서구를 통해 보아온 이슬람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무슬림들의 이슬람을 보여준다. 특히 중동 전체를 합한 인구보다 더 많은 이슬람 신자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공존하는 폭력의 이슬람과 사랑의 이슬람, 억압의 이슬람과 관용의 이슬람, 맹목적 이슬람과 합리적 이슬람, 성(sex)을 부정하는 이슬람과 성에 자유로운 이슬람, 아랍 이슬람과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등 이슬람이 가진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무슬림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외부에 방어적이거나 맹목적인 자기 연민과는 거리가 멀다. 종교적 의례를 잘 지키는 것과 이슬람이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를 구현하는 일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꾸란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_교조적 경전주의를 넘어 시대 맥락 속에서 《꾸란》을 읽고 신의 본질을 찾는다

이슬람의 특징은 종교적 규범이 다른 종교에 비해 국가의 통치 원리나 개인의 도덕규범에 더 깊게 관여한다는 점이다. 7세기 아라비아에서 싹을 틔운 이슬람은 기존 부족신앙과 투쟁해야하는 핍박 받는 소수종교로서 공동체의 유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까닭에 《꾸란》은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한 개인의 행동지침을 많이 담고 있다. 이런 《꾸란》과 사회의 관계는 현재까지 이어져 이슬람 국가에서는 《꾸란》이 세속 법에 우선하고 그에 따라 개인의 행동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을 짚으며 이슬람에 대한 대표적인 인식 세 가지-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종교, 관용을 모르는 배타적 종교, 여성 억압적 종교-를 ?꾸란?과 시대적 맥락을 근거로 반박한다. 문제는 ?꾸란?의 내용을 시대적 맥락을 무시한 채 글자 그대로 적용하거나 (가부장, 종교, 국가) 권력이 그들의 이해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어떻게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종교가 되는가
_누가 그리고 어떻게 종교를 폭력, 억압, 차별, 독선의 도구로 이용하는지 밝힌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서구화를 격렬하게 겪고 있는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아시아가 겪은 근대화를 비슷하게 겪었다. 16, 17세기에는 향신료 집산지인 동남아시아 최대의 항구 도시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를 겪었고, 독립 후에는 자연과 자원의 부국으로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군부 독재에 오래 시달렸다. 1988년 수하르토 독재가 32년 만에 끝난 후 이슬람에 기반을 둔 나라로서 가장 폭발적인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정체성은 때로 억압과 차별, 독선의 도구로 쓰였다.

다양한 민족·언어·문화가 공존하는 1만 8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열도국가라는 특성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갈등과 폭력의 씨앗이 되곤 한다. 중앙 정부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들은 이런 갈등을 이용해 종교, 이념, 민족의 차이 간의 충돌을 부추겼고 결국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민족적, 종교적, 계급적 차이로 인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사회의 격변기마다 벌어졌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을 향한 서구의 공격이나 악의적인 선전 역시 뿌리는 같다. 강대국과 약소국, 다수종교와 소수종교, 다수민족과 소수민족, 엘리트 특권층과 빈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문제들을 권력은 종교의 문제로 위장해 대립과 분열을 조장한다. 이 과정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쪽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이다.

세계 4위 인구 대국, 시장과 자원을 함께 지닌 아시아 대국 인도네시아를 만난다.
_ 우리와 같고도 다른 역사를 지어온 인도네시아의 오늘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리는 인도네시아를 여행지 발리,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곳 정도로만 알고 있다. 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지만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지배, 2차 대전 후 독립을 맞으면서 식민 잔재를 그대로 안은 채 현대사를 시작한 과정, 많은 천연자원과 냉전체제를 이용해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을 억압하는 독재가 30년 넘게 이어진 것 등이 너무 흡사하다.

밑으로부터의 민주화 요구가 조금씩 사회를 성숙한 시민사회로 만들어가는 모습 역시 바로 얼마 전까지의 우리 모습이고, 부의 집중과 금융위기는 지금도 함께 겪고 있다. 풍부한 천연자원, 중국, 인도, 미국에 이은 세계 4위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의 저력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인도네시아의 불합리한 관행, 비민주적 요소,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등을 질책하면서도 더 나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