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2.부산시 관광

부산 이중섭 거리

동방박사님 2015. 1. 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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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독립전()과 자유전()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각광을 받았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자유전의 개칭)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3년에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을 수상하였다.

이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와 1945년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일시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로 봉직하기도 하였다.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친구인 시인 구상()의 시집 『응향()』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6·25 사변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제주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였다.

이 무렵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붕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밀항하여 가족들을 만났으나 굴욕적인 처가 신세가 싫어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에서 죽었다.

화단 활동은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한묵()이봉산상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과 신사실파에 일시 참여한 것 외에 통영·서울·대구에서의 개인전이 기록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 발간을 위시하여, 평전()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많은 작가론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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