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중국.동아시아 이해 (책소개)/4.동양역사문화

고대 페르시아의 역사 (2008) - 아케메니드 페르시아·파르티아 왕조·사산조 페르시아

동방박사님 2024. 6. 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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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은 비록 서구 문명에 뒤쳐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 세계를 살펴보면 세상을 호령한 것은 유럽이 아니라 오히려 페르시아였다. 이집트와 바벨론 등 당시 거대한 문명을 흡수하여 페르시아 문명으로 발전시킨 페르시아의 제국들을 살펴보고 있으며, 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목차

페르시아를 찾아서
아리안족 이동 이전의 페르시아
아리안족의 이동과 새로운 왕국의 성립
첫 번째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분권과 공존의 시대, 파르티아 왕조
고대 페르시아의 마지막 제국, 사산조 페르시아

저자 소개 

저 : 유흥태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중동아프리카 지역학을 공부하고 이란 이스파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란에서 연구하며 이란과 중동을 보던 시각을 넓히고자 영국 런던대학교 SOAS(School of Oriental & African Studies) 중동연구소(London Middle East Institute)에서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숨겨진 보석 같은 페르시아, 이란을 알리고자...

책 속으로

페르시아 하면 화려하고 신비스러운 중동의 매력적 문화가 떠오르지만 이란하면 왠지 호메이니와 이슬람 혁명, 근본주의 이슬람, 핵무기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놀랍게도 이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페르시아와 이란은 같은 나라이다. 1935년 팔레비 왕정에 의해 이란으로 국호가 개명되기 전까지 이란은 페르시아로 불렸다. 아리안족의 후예라는 의미를 지닌 이란은 수천 년간 불리어 온 페르시아라는 이름에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팔레비 왕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 p.3

페르시아는 이란의 파르시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여 중앙아시아에서 멀리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고대 중근동 지역을 통치한 강대국이었다. 이곳에서 수많은 고대 종교들이 태동하였고 많은 문화들이 혼합되고 재창조되어 새로운 고대 문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대 세계의 최강국으로 아시아와 유럽에까지 맹위를 떨쳤던 페르시아의 전설은 사라졌다. 지금의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후 이라크와의 전쟁, 끊임없는 외부 세계와의 갈등으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그러나 고대 페르시아와 같은 강력한 영향력은 갖지 못했지만 이란은 현재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꾸준한 경제 성장을 하고 있으며 페르시아의 문화와 자부심을 가슴에 담고 새로운 시대를 다시금 꿈꾸고 있다. --- pp.3-4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왕국 중 하나로 기억되는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왕조(The Achaemenids, BC 550~BC 330)에 대한 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왕조 스스로가 남긴 기록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현재 대부분의 사료를 헤로도토스의 역사책에 의존하고 있고 그 외에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왕조 시대의 건축물과 부조물에 새겨진 글씨 그리고 미술품들을 통해서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고 있다. (중략)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왕조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열망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 당시 중근동 지역을 통합하여 한 문명으로 발전시킨 탁월함과 거대 제국을 큰 어려움 없이 다스린 노하우 등 아직도 많은 역사가들이 이 왕조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연구 저작물을 발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 속에서 다양한 거대 왕조들이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왕조가 만들어낸 세계 제국을 다스리는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였다. --- pp.24-25

사산조 페르시아는 약 400년 이상 지속된 왕조로 로마와의 치열한 전쟁과 내부의 권력 다툼이 있었지만 이란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세계적인 파워를 가졌던 왕조였다. 많은 도시에서 농부들, 유목민, 수공업자들, 상인들이 함께 어울려 살았다. 그러나 시골 농부의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무거운 세금이 삶을 짓눌렀으며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었다. 사산 왕조는 농부를 비롯한 하층민의 피와 왕족 귀족의 피는 원천적으로 달라서 태어난 핏줄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고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사회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갔다. 이런 이유로 하층민은 자신들의 생활에 대해 불만조차 품지 못했다.
--- 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