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해외성지순례 (1997~2018) (여행지)/5.튀르키 (초대교회)

69.골로새 터

동방박사님 2018. 8. 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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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

바울이 옥중에서 편지를 보낸 골로새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 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를지어다 (골1:2)


골로새는 라오디아에서부터 리쿠스계곡을 따라 약16km 올라간 곳으로 고대 브르기아의 남서쪽에 있었다.

라오디게아에서는 17.6km 히에라볼리에서는 20.8km 떨어진 이곳은 로마의 아시아 영토에 속한 도시로서 헬라화한 지역이지만 본래 골로새란 이름은 브르기아 지명인듯 하다. 골로새는 아시아쪽 터키지방으로 위치는 리쿠스지방의 계곡이다. 고대로부터 동방과 서방을 잇는 관문으로 ,오늘날에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이곳을 통과한다. 리쿠스 지역에 있는 3개의 주요 도시 가운데 골로새가 첫 번째로 승격되었다. 강시 이곳 주민들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브루기아인 들 이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여신을 숭배했다. 그리고 BC401년에 크세노픈 바사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진군을 설명하면서 골로새는 번창한 큰 도시라고 설명했다.이런 사실로 보아 헬라시대 이전의 골로새는 이 지방에서 가장 번창 했음을 알수 있다.헬라시대에는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와 함께 경쟁을 했던 세 도시로, 로마 시대에는 여전히 이지역이 직물공업 중심지 였다.


1855년 해밀튼은 이곳을 답사하여 도시의 유적들과 리쿠스 강 남쪽에서 성채 (아크로폴리스)를 확인 했으며, 대리석의 건축물 유적과 극장유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강 북쪽에서는 바위를 깍아 만든 공동묘지를 확인하였다. 골로새의 동편, 강의 북편에는 성 미가엘을 위한 비잔틴 교회가 세워졌는데, 그것은 홍수 때에  바위를 깨뜨려 강물이 흐르도록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이 교회는 12세기 말에 터키의 침입으로 파괴 되었다.

리쿠스 계곡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바울이 에베소에 머믈러 있을 당시로 여겨지며 (행19:10) 골로새 사람인 에바브로를 통해서인 듯하다 (골1:7 4;12~13)  바울은 이곳을 방문한 일이 없는 것 같으나 로마옥중에서 이곳에 골로새서를 써 이곳으로 보냈다 (골1:4. 2:1)  그후 이곳을 방문하고자 하는 그의 소원(몬1;22)은 오랫시간이 흐른 뒤에 이루어 졌다. 그의 종인 오네시모 (골4:9)는 초기 골로새교회 교인 이었다. 골로새는 시민의 구성상황과 마찬가지로 유대인과 헬라인, 브루기아인이 섞여 있었는데, 이것은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반박한 사변적인 이단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골로새는 8세기에 황폐되어 남쪽으로 4.2km떨어진 (코나에 오늘날- 호나즈) 근처의 채석장으로 변했다. 골로새는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행해지지 않아 지금까지ㅍ고고학적인 연구와 역사적인 연구의 결과만으로 골로새서에 입각한 이도시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