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일관계사 연구 (책소개)/1.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따라서1.2.3

동방박사님 2022. 3. 2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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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통신사는 일본과 조선의 정치적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파견된 사절단이었다. 그러나 통신사는 일본에 파견되어 정치적인 면뿐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 큰 파장을 가져다주었다. 조선통신사가 방문하는 일본 지역은 문화 수혜지로서 크나큰 변화와 발전을 겪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조선통신사가 들렀던 일본 지역들을 짚어보고 현재에서의 한일 우호선린의 의미를 새겨보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최근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기행 팀이 방문한 기행지 순서대로 각 지역의 한일교류사적 의의, 현재의 모습까지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목차

제1장 첫 상륙지, 국경의 섬 쓰시마__ 최화수
제2장 아이노시마의 방파제__ 강남주
제3장 시모노세키와 통신사__ 김문식
제4장 히로시마 시모카마가리__ 강태원
제5장 조선통신사와 도모노우라__ 고다마 가이소
제6장 통신사의 보물창고, 오카야마 현의 우시마도__ 한태문

저자 소개

제작자 : 강남주 외
[필자] 강남주 ㅣ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집행위원장, 문학박사 강태원 ㅣ 대구 과학고등학교 교사, 2005 한일공통역사교재 『조선통신사』제작 참여 고다마 가이소 (兒玉戒三) ㅣ 고등학교 퇴직교사, 2005 한일공통역사교재 『조선통신사』제작 참여 김문식 ㅣ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최화수 ㅣ 국제신문 논설고문, 동아대학교 초빙교수 한태문 ㅣ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통신사학회 총무이사 [번역]...
 
 
 

출판사 리뷰

올해는 임진왜란 이후 평화의 사절로서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통신사의 규모는 약 500명이었고, 짐꾼과 안내자를 포함하여 사절단을 맞이하던 일본 환영단의 규모는 1,000~2,400명까지 되었다. 이 모든 예산을 일본 막부에서 댔다. 이런 대규모 행렬이 악기를 울리고 시도 읊으며 일본을 가로지르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지금도 쓰시마, 시즈오카, 이즈하라, 시모노세키 등에서는 조선통신사 행렬을 기리는 지역사회 자체 행사라든지 거기서 유래된 문화·유산을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가 한일 교류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여러 행사를 주관하고는 있지만 예전 조선시대에 비해서나 일본의 현재에 비해 인원이나 기타 규모 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조선통신사 일본 방문 400주년을 맞아, 조선통신사가 방문한 일본 지역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2006년 6월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기행 팀의 일본 방문기를 엮어 펴낸 책이다.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는 이 책 발간 외에도 지난 4월 15일 조선통신사 임명식 재현 행사 등의 대중행사와 각종 학술 심포지엄 등을 통해 한일 간 선린우호와 문화교류를 도모하고 있다.
 

책소개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는 조선 국왕이 일본 막부장군에게 파견했던 조선 국왕의 공식적 외교사절이었던 조선통신사 탐방 행사의 기록으로 오사카(大阪)부터 나고야(名古屋)까지의 구간 탐방을 담은 책이다.

조선통신사를 바라보는 한·일 양국의 시각 차이는 꽤 크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통신사를 ‘미개의 땅’ 일본에 우월한 문화를 전해준 ‘은인’이자 ‘구세주’로 여기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막부에 공물을 바치러 온 ‘조공사’로 알고 있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조선통신사를 조선과 일본의 정치적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 파견된 사절단이라고 보는 인식이 옳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조선통신사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열두 번 파견되었으며 이 시기는 한·일 간의 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시대로, 통신사는 평화와 선린우호를 위한 국가사절로서 선진문물을 전파함과 동시에 양국의 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교토에서 조선인 귀무덤[耳塚], 고려미술관, 쇼코쿠지(相國寺)의 지쇼인(慈照院) 등을 들러 그곳에 녹아 있는 통신사의 흔적을 살펴보며 희대의 국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최천종(崔天宗)의 이야기가 펼쳐치는 오사카, 오미하치만(近江八幡), 히코네(彦根), 오가키(大垣), 나고야에 이르는 길을 통해 옛 선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오늘날 한·일 우호선린의 의미를 새겨보고 있다.

목차

제1장 오사카, 바다 끝나자 가마로 바꿔 타다 __ 강남주
제2장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 __ 김문식
제3장 물과 호수의 나라, 오미하치만 __ 주진태
제4장 성신의 의미 되살린 히코네 __ 최화수
제5장 조센야마에 깃든 통신사의 숨결, 오가키 __ 한태문
제6장 배다리로 강을 건너 이른 나고야 __ 최학림
부 록 이 책에 나오는 탐방지

저자 소개

편자 : (사)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사단법인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는 조선통신사 관련 전통문화행사를 중심으로 한·일 양국의 활발한 문화교류와 학술연구를 통해 양국 간의 선린우호를 증진하고 공동 번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조선통신사 문화교류행사 개최, 연고지역 간 전통문화 교류, 관광상품 개발, 학술연구·유물 발굴 및 학술지·소식지 발간, 조선통신사 관련 21세기 디지털 콘텐츠 개발 및 보급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리뷰
.. 조선통신사란 무엇인가
조선통신사는 한·일 양국의 우호선린과 문화 교류를 위해 파견되었다. 이들은 국서(國書)와 일본 가속에 줄 예단의 품목인 별폭(別幅)을 가지고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동래부)까지는 육로로 간 뒤 쓰시마(對馬)를 경유, 쓰시마 번주의 안내로 해로를 이용,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하여 각 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의 요도우라(淀浦)에 상륙했다. 그 뒤 육로로 교토를 거쳐 일본의 에도(지금의 도쿄)까지 왕복했는데, 이들의 왕래 일정은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개 6개월~1년이 소요되었다. 그 규모는 조선 국왕의 국서를 가진 삼사(정사, 부사, 종사관)를 포함하여 조선의 최고 관료, 학자, 예술인, 악대, 무인(경호원), 통역관 등 300~500명에 이르렀다. 일본 막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통신사를 접대했고, 이국인의 화려한 대행렬은 일본의 백성들에게 커다란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의 지식인과 시문창수(詩文唱酬) 가 활발했으며, 고구마 재배법이나 물레방아를 보고 배워오는 등의 소득도 있었다.

.. 조선통신사의 발자취가 어린 지역들
오사카 
- 오사카는 바다와 육지의 갈림길이다. 장거리 여행에서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는 곳이어서 좋은 의미든 좋지 않은 의미든 이야기가 많았던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쓰시마 공원(松島公園) 한쪽에는 조선통신사 기념비도 서 있다. 중병에 걸려 먼 이국땅에서 어린 두 아들을 그리며 쓸쓸히 눈을 감아야 했던 김한중(金漢重)의 이야기와 희대의 국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최천종(崔天宗)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교토 -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는 고대부터 한국사와 인연을 맺어온 곳이었지만 통신사는 이곳에 거처하는 천황의 존재 때문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천황과 쇼군(將軍)의 군신관계가 성립하는 상황에서 쇼군과 조선 국왕이 동등한 입장에서 사절을 주고받는 데 대한 미묘한 견제 심리가 작동했던 것이다. 조선인 귀무덤[耳塚], 고려미술관, 쇼코쿠지(相國寺)의 지쇼인(慈照院) 등을 들러 그곳에 녹아 있는 통신사의 흔적을 살펴본다.

오미하치만 -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수많은 길 중에서 오늘날 ‘조선인가도(朝鮮人街道)’ 라고 불리는 길이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인구 7만 명이 채 못 되는 자그마한 도시 오미하치만에 있다. 조선인가도는 지방 영주인 다이묘나 다른 나라의 사신들조차 밟을 수 없는 쇼군 전용 도로로서 조선통신사에 대한 특별 대접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비와 호(琵琶湖)의 절경에 젖었던 통신사의 시흥(詩興)도 함께 느껴본다.

히코네 - ‘성신교린’이라는 조선통신사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곳으로 히코네 다카쓰키초(高月町)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기념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친한파 유학자로서 대(對)조선 외교지침서 ..교린제성(交隣堤誠)..에서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진실을 가지고 교제”할 것을 주장했던 그의 고향, 이곳 작은 시골 마을에서 들은 이 마을 초등학교 학생들의 사물놀이는 탐방단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오가키 - 매년 열리는 오가키 축제에는 각 마을이 화려하게 치장한 수레를 한 대씩 끌고 나와 행진한다. 그중 다케시마조(竹島町) 마을은 ‘조센야마(朝鮮.)’라는 이름의 수레를 끌고 나온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의 민속에 반영된 대표적인 예이다. 오가키는 통신사가 지역에 전한 선진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기개발의 계기로 삼고, 나아가 그 역사적 의미를 오늘날까지 계승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나고야 - 오가키에서 나고야로 가는 길에는 큰 강을 세 개나 건너야 했다. 통신사를 맞은 막부는 2년여에 걸친 대공사를 통해 배다리[船橋]를 놓아 이들이 강을 건너는 데 불편이 없도록 했다. 탐방단은 소가쿠지(崇覺寺)에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그린 <조선통신사 병풍사입도(朝鮮通信使屛風仕立圖)>를 감상했고, 묘젠지(妙善寺)에서 마련한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 표주를 보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책소개

'한류'의 원조,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따라 걷다

지난 2008년에 있었던 답사 기록이자 3년에 걸친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답사의 마지막 결과물로 1, 2권에 이어 아라이(新居)와 시즈오카(靜岡), 하코네(箱根), 도쿄(東京), 닛코(日光) 등지에 남아 있는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수습한 옛 숨결을 담아내고 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열두 차례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는 한일 간 문화와 평화의 교류를 상징하는 퍼레이드였다. 조선통신사는 선진 문물의 상징이었으며 그들이 지나갔던 길목에는 아직도 그 자취를 기리는 연구와 지역문화제가 행해지고 있다.

목차

제1장 세키쇼와 이마기레 강의 고장, 아라이 / 한태문
제2장 시흥 불러일으킨 시즈오카 / 최화수
제3장 통신사들의 땀과 한숨이 서린 천하절경, 하코네 / 조규익
제4장 통신사행의 최종 목적지, 에도 / 박화진
제5장 닛코 방문의 또 다른 뜻은 / 강남주

이 책에 나오는 탐방지

저자 소개

저 자 소 개
한태문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화수 부산대학교·동아대학교 강사
조규익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박화진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강남주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집행위원장
 
 

출판사 리뷰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열두 차례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는 한일 간 문화와 평화의 교류를 상징하는 퍼레이드였다. 조선통신사는 선진 문물의 상징이었으며 그들이 지나갔던 길목에는 아직도 그 자취를 기리는 연구와 지역문화제가 행해지고 있다.

(사)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는 조선통신사의 행적을 답사하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연구하여 조선통신사의 구체적인 모습을 밝혀주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현 시대에 조선통신사를 복원하는 작업 역시 한국과 일본 양국의 문화 교류에 큰 의미를 가져다준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지난 2008년에 있었던 답사 기록이자 3년에 걸친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답사의 마지막 결과물로 1, 2권에 이어 아라이(新居)와 시즈오카(靜岡), 하코네(箱根), 도쿄(東京), 닛코(日光) 등지에 남아 있는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수습한 옛 숨결을 담아내고 있다.

[내용 소개]

아라이
아라이에는 악명 높은 아라이 세키쇼(新居關所)와 ‘건너려고 해도 건널 수 없는’ 오이 강(大井川)이 있다.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아라이 세키쇼는 에도 방위를 위해 에도로 들어오는 총포와 에도에서 나가는 여자 인질을 엄격하게 검사했던 곳이지만 조선통신사는 검문 없이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50여 명의 인부가 메는 들것 위에 올라 앉아 오이 강을 건너는 조선통신사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는 곳이다.

시즈오카
‘조선통신사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세이켄지(淸見寺)에는 통신사의 묵향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우리나라 낙산사에 비견되는 절경 때문에 통신사행에서 꼭 들려야만 했던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또한 시즈오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관련이 깊은 도시이다. 때문에 그가 태상왕으로서 정치를 관장했던 슨푸 성(駿府城)과 그의 무덤이 구노 산 도쇼구(久能山 東照宮)에 있다.

하코네
맑은 물의 온천과 아름다운 하코네 호가 있어서 국제적인 관광휴양지로 꼽히는 하코네. 그러한 절경은 200년 전에 이 길을 지나간 조선통신사에게도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게 했다. 때문에 하코네를 지나갈 때 그 아름다움을 읊었던 시와 감상문이 사행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속에서 조선통신사의 수준 높은 문학적 소양과 애국충정을 느낄 수 있다.

에도
통신사행의 종착지 에도는 현재의 도쿄를 말한다.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대도시 도쿄는 에도 시대 때에도 인구 100만이 훌쩍 넘는 번화한 도시였다. 탐방단은 조선통신사의 에도 숙소였던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에서부터 센소지(淺草寺)를 거쳐 국서전명식이 행해졌던 에도 성까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에도의 백성들이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며 보냈던 열렬한 환호를 생생하게 묘사해준다.

닛코
‘닛코를 보지 않고 일본을 봤다고 얘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하제일의 절경을 자랑하는 닛코는 원래 통신사행의 정규 일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막부의 간절한 부탁에 못 이겨 닛코를 방문하게 되었다. 닛코에는 도쿠가와 이야에스(德川家康)의 또 하나의 진신 무덤이 있는 도쇼구와 3대 쇼군인 이에미쓰(德川家光)를 기리는 다이유인(大猷院)이 당시 막부의 힘을 과시하는 듯 화려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리고 린노지(輪王寺)에는 조선통신사가 가져왔던 유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