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불교의 이해 (책소개)/1.불교입문인물

불교 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동방박사님 2022. 5. 1. 20:19
728x90

책소개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를 살펴보다


인도 초기불교문헌에서부터 동아시아 대승불교문헌에 이르기까지 지옥도와 아귀도의 업인業因과 고통 상에 대한 교설을 분석하고, 나아가 두 악도惡道로부터의 구제를 위한 수행법과 의식儀式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불교문헌 안에서 동아시아 불교도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지옥도와 아귀도로 떨어지는 업인과 고통의 내용을 살펴보았으며, 아귀상태로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조상과 자신의 사후를 위해 설행하는 의식과 수행법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들을 문헌 속에서 찾았다.

 

목차

책을 내면서

1 서론 11

2 불교의 8대 근본지옥에 관하여 15


1) 첫 번째 근본지옥: 살생을 좋아하는 자, 등활(等活)지옥으로! 23
2) 흑승(黑繩)지옥: 도둑질의 업을 지은 자, 검은 오랏줄의 고통을 31
3) 사음(邪淫)의 죄를 지은 자들이 떨어지는 중합(衆合)지옥 33
4) 고통과 회한의 비명이 울리는 규환(叫喚)지옥 52
5) ‘망어(거짓말)’의 악업과 대규환(大叫喚)지옥 68
6) 사견(邪見)을 가진 자가 떨어지는 염천의 초열(焦熱)지옥 88
7) 초열지옥보다 더 뜨거운 대초열지옥의 문을 열며 107
8) 궁극의 고통과 공포, 아비(阿鼻)지옥 113

3 다른 종교의 지옥에 관하여 125

1) 『신곡』의 지옥과 순례자 125
2) 한국 무가 속의 지옥; 바리데기 서사 130
3) 『금오신화』 「남염부주지」의 지옥 133
4) 도교의 지옥과 시왕신앙 136
5) 이슬람의 지옥 138
??소결 141

4 굶주린 귀신의 세계, 아귀도餓鬼道 147

1) 아귀, 그리고 아귀가 사는 세계 147
(1) 아귀도는 어떠한 세계인가 147
(2) 경문에 나타나는 악업의 상징, 아귀 152
2) 경전 속에 나타난 아귀의 형상 157
3) 아귀도에 태어나게 되는 업인(業因) 170
(1) 전생의 간탐(?貪)으로 인해 아귀도에 떨어지다 172
(2) 외도와 파계자들, 아귀로 태어나다 187
4) 아귀의 고통상 197
??소결 208

5 아귀도餓鬼道를 벗어나기 위한 수행법과 의례 211

1) 자업자득의 과보와 타업자득의 공덕 211
2) 참회와 염불, 경전독송의 수행법 219
3) 음력 7월 15일의 망자천도의례: 동아시아불교의 우란분(盂蘭盆) 229
(1) 동북아시아의 우란분(盂蘭盆) 229
(2) 동남아 각국의 사자공양의식 237
4) 선조의 망혼을 천도하는 재의식 243
5) 아귀에게 음식을 베푸는 보시공덕: 시아귀법(施餓鬼法)과 시식(施食) 253
(1) 보시바라밀과 시아귀법 253
(2) 망혼에 베푸는 시식(施食)과 헌식(獻食) 265
6) 생전에 사후를 위해 공덕을 닦는 예수재(預修齋) 275
(1) 예수재의 설행의 배경과 역사: 수생(受生)신앙·시왕신앙·지장신앙 275
(2) 생전예수재의 내용과 형식 286
??소결 291

6 결론 295

참고문헌 304
 

저자 소개 

저 : 김성순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학사),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석사 및 박사를 졸업하였다. 주요 저술로는 『동아시아 염불결사의 연구』, 『테마 한국불교 7·9』(공저), 번역서인 『왕생요집(往生要集)』,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사』, 『돈황학대사전』(공역) 등이 있다. 현재 전남대학교 연구교수이며, 주로 동아시아불교와 종교문화의 비교연구, 그리고 불교의례 분야를 주제로 하는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위...
 

책 속으로

‘지옥地獄’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범어의 naraka 또는 niraya 를 현실의 감옥에 비유하여 번역한 용어이다. 범어 ‘naraka’는 본래 ‘행복이 없는 곳無幸處’를 의미했고, 사람이 죽어서 가는 암흑세계를 의미 하는 용어였다. naraka는 한역 과정에서 ‘奈落迦’, ‘奈落’ 또는 ‘泥黎’ 등으로 음역되거나, ‘不自在’, ‘狹處’ ‘地獄’ 등으로 의역되었다.
--- p.15

이 팔한지옥의 한역漢譯 명칭에서는 죄인들이 추워서 천연두[?]가 생기고 몸이 부어터져서 부스럼과 문둥병이 생기며, 추위 탓에 소리를 낼 수 없어 혀끝만 움직이다가 괴상한 소리를 내는 고통의 양상이 나타난다. 또한 청련(utpala)이나, 홍련(padma) 등의 꽃 이름이 지옥에 붙은 것은 추위에 동상이 걸린 것이 극심해서 푸른색, 붉은색으로 피부색이 변하고 연꽃모양으로 피부가 짓물러 터지는 고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p.22

다음 합지옥의 열 다섯 번째 별처지옥인 화분처火盆處, 즉 ‘불동이’ 지옥은 속세의 생활을 하던 자가 사문이 된 후에도 애욕과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업인이 되어 떨어지게 되는 곳이다. 커다란 동이[盆]에 불꽃이 가득 넘실대는 듯한 이 지옥에서는 죄인의 몸이 마치 장작과 같은 구실을 하게 된다. 죄인은 전생에 계율을 어기고 남의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이 지옥에서 혀가 불타고, 애욕에 가득 차서 남의 여자를 훔쳐보았기 때문에 눈알이 불타며, 계율을 어기고 남의 여자와 서로 웃고 노래하며 그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귀에 끓는 백랍 물이 부어지게 되고, 계율을 범하여 다른 승려의 향을 취했기 때문에 그 코를 베이게 되는 것이다.
--- p.51

다음 수고뇌무수량처受苦惱無數量處는 탐욕이나 분노로 인해 거짓말하는 것,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이 시키는 거짓말을 하는 것, 자신과 가까운 무리의 이익을 위해 하는 거짓말의 죄업으로 인해 떨어지게 되는 지옥이다. 이 수고뇌무수량처에서는 대규환지옥 이전의 근본지옥인 등활지옥, 흑승지옥, 중합지옥, 규환지옥 등에서 받는 것을 모두 합친 것만큼의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는 거짓말이 갖는 부정적인 확장성 때문에 이전의 업; 살생, 음주, 사음 등보다 무거운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말이란 계속 퍼져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거짓말에 얽힌 악업의 인연도 계속 자라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 그에 따른 지옥의 고통 역시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짓말의 또 다른 부정적인 업은 선근의 기둥을 끊어 없애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다니면서 또 다른 오해와 악을 재생산하는 거짓말의 악업이 종내는 사람들의 선근을 파괴시키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는 교의라 하겠다.
--- p.72

다음 초열지옥의 네 번째 별처지옥으로 ‘적동미니선처赤銅彌泥旋處’가 있다. 적동색의 ‘미니’가 돌고 있는 별처지옥은 과연 어떠한 곳일까? 이 적동미니선처 역시 외도들이 떨어지는 별처지옥으로서, 모든 것은 업의 과보가 아니라, 마혜수라, 즉 대자재천(大自在天; Mahe?vara)이 변화를 일으켜 만들어낸다는一切皆是魔醯首羅之所化作非是業果 신앙을 가지고 있던 자재천외도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 적동미니선처에는 적동색의 구릿물이 마치 바다처럼 그 안에 가득 차 있고, 쇠로 된 물고기인 미니 어가 떠다니고 있으며, 이곳에 떨어진 죄인들은 뜨거운 구릿물 바다에서 온몸이 삶겨지고, 튀겨진 채로 부서져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된다.
--- p.95

아비지옥 안에는 불꽃이 가득 차 있어서 수미산과 같은 거대한 물체도 다 태울 수 있지만, 죄인들만은 몸이 다 타더라도 끝내 죽지는 않는다. 또한 아비지옥과 그 지옥중생에게서는 세상의 어느 나쁜 냄새와도 견줄 수 없는 역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아비지옥은 이전의 일곱 근본지옥과 그 별처지옥에 떨어지는 업인들의 총합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더하여 오역죄를 지은 중생들이 나게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아비지옥을 무간無間지옥으로도 부르는 것일까? 이는 아비지옥의 여러 특성 중에서도, 죄인들이 모두 타서 서로 간에 구별할 수 있는 틈이 전혀 없기 때문이며, 또한 그 지옥에서 받게 되는 고통의 세력이 간단(間斷; 쉬거나 끊어짐)없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 p.116

이슬람에서는 지옥을 ‘자한남(jahannam 혹은 나르n?r)’으로 부르며, 단순히 징벌의 공간이 아니라, 생전에 죄로 인해 더럽혀진 영혼을 정화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극히 악한 죄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징벌의 기간이 끝나면 지옥을 빠져나와 전국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이슬람의 지옥사상은 지옥을 영원한 것으로 보는 기독교보다는 죄업을 고통으로 보상하면 다시 윤회할 수 있다고 보는 불교에 더 가깝다.
--- p.139

이는 동북아문화권에서 아귀가 ‘굶주리는 귀신’으로 해석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힌두이즘적인 프레타의 개념이 불교에 수용되어 육도 윤회의 범주 안에 배속되고, 중국에 와서는 지옥도와 아귀도 중생의 대표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p.150

『증일아함경?一阿含經』에 따르면 죽은 자는 형신形神이 분리되어 선취와 악취로 가는데, 그 갈림길의 근거가 되는 것은 ‘죄를 많이 지은’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선취란 윤회하는 육도 중에 아수라, 인, 천도를 말하는데, 이를 3선취라고도 한다. 악취는 지옥, 아귀, 축생도의 3악취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별히 죄의 유형을 세분화하지 않고, 악취로 떨어진 자들이 지옥에 떨어져서 칼산, 화차, 화로에 들어가고 구리를 녹인 물을 마시고, 또한 무수겁 동안 아귀의 형상으로 지어져 키가 수 십 유순이고 목구멍이 바늘과 같으며, 그 입에 구리 녹인 물을 붓게 된다고 설하고 있다.
--- p.171

주목할 것은 승려에게 공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귀에게 음식을 베푸는 보시도 공덕의 범주에 수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불교 의식에서 아귀에게 베푸는 보시는 무차별적이고, 온 우주 법계를 아우를 정도로 대상이 확대된다. 보시의 대상이 넓고, 수혜자의 숫자가 많을수록 그 공덕도 커지리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불특정 다수의 무주고혼 아귀들에게 음식을 보시한 공덕으로 돌아가신 선조의 천도를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동아시아불교의 아귀구제의식의 기본적인 토대라 할 수 있다.
--- p.213

한국불교의 천도재는 돌아가신 부모 내지 가족, 선조의 망혼을천도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의식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후 7일 마다 망자를 천도하기 위하여 지내는 천도재가 칠재七齋이며, 일곱 번 지내는 경우에는 칠칠재, 두 번 지내는 경우에는 이칠재로 부른다. 재의 설행 시기는 ‘우란분재盂蘭盆齋’나 ‘팔관재八關齋’처럼 특정한 날에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재주齋主의 설재 요청이 있을 경우에 설행하는 방식이다. 또 설행 방법과 기간은 전통적으로 7일에 한 번씩 49일간 일곱 번을 지내는 칠칠재七七齋와 49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사십구재[종재], 백 일이 되는 날에 지내는 백일재百日齋가 있고, 1일간 지내는 권공재, 3일간 지내는 영산재처럼 재의 종류에 따라 설행기간이 정해져 있기도 하며, 상주권공이나 영산재처럼 낮에 지내는 ‘낮재’가 있는가 하면, 예수재나 각배재처럼 밤에 지내는 ‘밤재’도 있다.
--- p.243~244

원래 초기 불교문헌에서는 후손들이 조상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게 되면 육도 가운데 아귀계를 제외한 다른 세상에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 다고 설하고 있다. 아귀계에 떨어진 조상들은 후손들이 제를 지내거나 보시 등의 선행을 하고 그 공덕을 회향하면 이를 공유할 수 있지만, 만약 조상이 천상, 지옥 등에 떨어지면 제사의 효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 p.266

불교의 예수의식 관련 경전들은 사람이 생전에 자신의 사후를 위해 예수생칠재를 하여 얻은 공덕이 사후에 친지들에 의해 설재設齋되는 것보다 훨씬 공덕이 크다고 선양하고 있다. 이러한 예수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장례에서 지전을 태워 명계의 망인이 사용할 수 있다는 관념이 더해지고, 이 양자가 결합하여 새로운 기고신앙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신앙과 의례의 결합을 통해 도교와 불교 양자 모두가 생전에 스스로 미리 지전을 태워서 사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예비하게 된 것이다.
--- p.281

불교에서는 망자가 된 조상이나, 가족 혹은 주인 없는 이들의 영혼을 구제하여 극락으로 천도하고자 했던 영산재, 칠칠재, 수륙재 등의 천도의식을 행했으며, 미리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여 행하는 생전예수재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무속에서는 사자의 망혼을 지배하는 명부신들이 사는 지하계에 지옥이 존재하며, 인간이 생전에 지은 공과功過에 따라서 지옥과 극락행이 구분된다고 믿는다. 무속과 불교의 지옥관은 그 교의적 교섭으로 인해 공통점을 갖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차이 역시 존재한다. 먼저 불교가 염불이나 보시 등의 수행과 천도의식으로 공덕을 쌓아 지옥행을 면하는 반면에, 무속에서는 진오구굿이나 해원굿 등을 통해 망자를 극락으로 보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 p.297
 

출판사 리뷰

이 책의 3분의 1 분량을 차지하는 ‘지옥’ 관련 서술은 2017년도 한 해 동안 법보신문에 매주 ‘지옥을 사유하다’라는 주제의 칼럼으로 47회에 걸쳐 연재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그 중 보태거나, 뺀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거의 그대로 실었다.

왜 하필 ‘지옥’에 관한 내용을 생각했을까 하는 질문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왕생요집(往生要集)』이라는 중세 일본 천태교단의 승도(僧都) 겐신(源信)의 저서를 번역 중이었기 때문에 내게는 그런 질문 자체가 좀 생소하게 느껴졌다.

『왕생요집』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10대문(大文)으로 나뉘는데, 그 중 첫 번째 대문인 염리예토(厭離穢土)편의 첫머리가 ‘지옥(地獄)’이다. 겐신은 왜 하필 인도와 동아시아의 정토 관련 불교문헌의 핵심을 추린 『왕생요집』의 첫머리를 ‘지옥’편으로 시작했을까?

불교문헌의 지옥에 관한 교의와 서사를 들여다보면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인간의 본성을 관조하는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왕생요집』의 찬술자인 겐신은 ‘일체 초목까지 다 불성이 있다’는 본각(本覺)사상을 주창했던 일본 천태교단의 지도자였다. 모든 인간에게 불성이 있으며, 모든 존재가 진여의 현현이라는 천태 본각사상의 교의와 지옥의 서사는 많이 어그러지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러한 지옥 서사는 본각사상이 놓칠 수밖에 없는 인간 본성의 악한 측면을 경계하고, 계도하기 위한 ‘중심 잡기’ 차원의 교의적 시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불교문헌 속에서 제시하는 지옥에 떨어지는 죄-업인은 너무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불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오계(五戒; 불살생, 불음주, 불사음, 불투도, 불망어)로 수렴된다.

지옥 관련 교설을 찾아 다양한 불교문헌을 뒤지고, 일부 번역된 문헌은 재확인하면서 느낀 것은 적게는 천 년, 많게는 2천 년 이상 된 그 글들의 지옥과 죄악에 관한 묘사가 무척 생생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옥에서 전생의 죄업을 갚는 고통에 대한 묘사는 섬뜩하리만치 사실감이 넘치기까지 해서 혹시 고문의 교과서로 활용되지 않았나 할 정도였다. 이렇게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생생한 지옥 교설은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악의 본성을 관조하게 하고, 계율을 지키도록 계도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불교문헌 속의 아귀에 관한 교설에서는 무섭다기보다는 역한 내용이 많았으며, 역시 불교도들, 나아가 인간에 대한 강한 계도적 경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내가 본 불교문헌 속의 아귀는 실재라기 보다는 악업의 상징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며, 아귀마다 다른 명칭 자체에서 악업과 그에 따른 고통의 과보를 연상할 수 있는 구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귀라는 존재를 ‘전설의 고향’이나, 지괴(志怪)소설에 등장하는 ‘원귀(?鬼)’와 유사한 것으로 인식하거나, 경전에 등장하는 것 자체를 낯설어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내게는 불교문헌 속의 상징과 비유, 그리고 상상력에 대해 인색하게 평가하는 시각으로 받아들여졌다. 불교 문헌은 오로지 경건하고, 진지하고, 잘 정련된 서술만으로 채워져야 하는가? 성서의 [애가] 혹은 [요한계시록]은 어떻게들 수용하는가?

한국불교 구성원, 특히 스님들 가운데 불교와 귀신을 연결짓는 것 자체를 달가와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찰 법회에서 신도들에게 하는 법문 중에 조상 영가(靈駕)니, 무주고혼이니, 망혼이니 하는 귀신 얘기는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현상은 문헌 상의 교의와 실제 불교신도들의 생활 정서 간의 괴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도대체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고통을 추스르기 위해 모여든 신도들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한 얘기를 빼면 뭘 들려준단 말인가.

더 나아가, 먼저 간 부모나 형제자매 등을 위한 천도의식 등이 여전히 현 한국사회에서 설행되고 있고, 산 사람들이 의식을 통해 위로를 얻으며 망자를 편안히 보내는 현상이 현재진행형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의식의 의미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인도 초기불교에서 동아시아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문헌이 성립되던 시기에는 전문수행자 아닌 일반 재가불자 중에 그 많은 불교경전과 주석서들을 문해할 수 있는 비율은 많아야 0.2%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머지 대다수 불자들은 삶에서 만나게 되는 실존적 고통 내지 사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답을 의식(儀式)에서 구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 아니었을까.

결국 대승불교 문헌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망자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수행법과 의식에 관한 교의가 들어설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동아시아 불교도들에게 있어서 불교문헌 속에 나타난 지옥도와 아귀도의 참상은 무척 두렵고 역겹지만, 다행히 그 문헌들은 두 악도에의 윤회를 피할 수 있는 구제의 길까지 자세히 일러주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 불교도들에게 그 문헌 속의 지옥도와 아귀도를 설명해 준 승려들은 구제의식을 설행해 줄 수 있는 의례집행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불교문헌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문헌이 저술된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까지 필요로 한다. 고대 인도의 여성관이나, 사회적 질서, 직업과 인종에 대한 인식 등이 드러나는 대목은 오늘날의 인권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바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많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문헌 속의 죄나 악업에 대한 인식에서는 현대의 기준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는 불교 계율이 인류 보편적 선(善)이나, 윤리의식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불교문헌 속의 지옥교설은 2017년에 신문사 칼럼 연재를 위해 1년 동안 뒤적였었고, 아귀도 관련 교설은 2019년에 연구재단에서 받은 시간강사 연구지원 주제였기 때문에 각 문헌들을 심도 있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불교도들이 지옥도와 아귀도라는 두 악도 윤회로부터의 구제를 위해 설행했던 불교의례에 관한 연구는 2021년도에 선정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신청 주제와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2017년부터 연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연구과제들을 수행한 중간 결과물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책 제목에 ‘불교문헌’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경·율·론 삼장(三藏)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범주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전과 그에 대한 주석인 논(論), 논서에 대한 소(疏)까지 모두 분석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러한 문헌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명칭으로서 ‘불교문헌’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또한 ‘구제의식’이라는 용어는 ‘구원의례’ 혹은 ‘천도의례’ 등을 놓고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은 ‘망자에 대한 구제’라는 의례의 목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선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