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문교양 (책소개)/3.글쓰기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

동방박사님 2022. 5. 1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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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헤르만 헤세의 시와 소설, 정치적이고 문화 비평적인 에세이는 그동안 전 세계에서 5천만 부 이상 보급되었으며, 그를 20세기에 미국, 일본과 한국 등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유럽 작가로 만들었다. 그의 글은 그 자신의 삶과 체험을 이해하게 해주는 열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헤세는 어떤 문필가보다도 책을 많이 읽은 다독가이기도 하다. 그는 수천 권의 책을 읽었고, 그중 어떤 책들은 여러 번 읽기도 했다.

13세의 나이에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헤세는 15세의 나이인 1892년 봄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달아났다가 퇴학당한다. 헤세는 마울브론 신학교를 그만둔 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서재에서 18세기 독일 문학과 철학책을 읽으며 혼자 문학 수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는 10대 후반에 많은 습작 시를 썼을 뿐만 아니라 그 시기에 세계 문학의 절반을 읽었으며, 예술사와 어학, 철학 공부에 끈기 있게 매달렸다. 그 뒤 탑시계 공장에서 견습공 생활을 한 다음 여러 곳의 서점과 고서점에 근무하며 틈틈이 습작을 하며 문학의 길을 걸었다. 헤세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사람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저자를 이해하려 하며, 그를 어떻게든 친구 삼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개인마다 자신에게 친근하고 잘 이해되며, 사랑스럽고 소중한 책의 목록이 있는 법이다. 누구든 책과 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자기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헤세는 이 책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에 대해 독자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헤세만큼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 드물고, 헤세만큼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작가도 드물지만, 그는 오히려 쓸데없는 책을 읽는 것으로 시간 낭비하는 것을 피하라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책을 너무 많이 읽음으로써 의존적인 사람을 더 의존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책은 생활력이 없는 사람에게 값싼 기만적이고 대체적인 삶을 제공해서는 안 되고, 삶으로 이끌어가고 삶에 도움이 되고 유익할 때만 가치를 지닌다. 되젊어지고 새로이 원기가 솟는 느낌이 생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책 읽는 시간은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책을 친구나 연인처럼 대우하고, 책마다 자신의 독자성을 존중해주라고 한다. 추상적 사고는 예술 창작을 부정하고 망치기에 이를 피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그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성찰하라고 말한다. 헤세는 자신을 도야하고 책에 의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하나의 법칙과 유일한 길은 읽는 것을 존중하고, 참을성 있게 이해하려 노력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인정하며, 그것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끝으로 이 책에 실린 다양한 글들은 또한 작가 헤세와 그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자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목차

머리말

1. 낭만주의와 신낭만주의
2. 책과의 교제
3. 미지의 보물
4. 값싼 책들
5. 번역
6. 책 읽기와 책 소장하기
7. 문필가에 관해
8. 기이한 소설들
9. 휴가용 읽을거리
10. 독서에 대하여
11. ‘문학에서의 표현주의’에 대하여
12. 예술가와 정신분석
13. 언어
14. 시에 대하여
15. 책 검사하기
16. 가을 저녁, 서재에서의 독서
17. 몇 권의 책에 대하여
18. 환상적인 책
19. 빌헬름 셰퍼의 주제에 대한 변주
20. 최근의 독일 문학
21. 책 읽기에 대하여
22. 오해받는 작가
23. 가을?자연과 문학
24. 글 쓰는 밤
25. 침대에서의 읽을거리
26. 문학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대한 메모
27. 책이 지닌 마력
28. 책 대청소
29. 소설책 한 권을 읽으면서
30. 세계 위기와 책
31. 즐겨 읽는 책
32. 노벨 문학상 수상에 즈음하여
33. 애송시
34. ‘빵’이란 단어에 대하여
35. 말
36. 글쓰기와 글씨

해설: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는 어떠했는가?
헤르만 헤세 연보
 

저자 소개 

저 : 헤르만 헤세 (Herman Hesse)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신교(新敎)의 목사이고, 어머니 마리는 인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을 받고, 인도로 돌아가 그곳에서 영국인 선교사와 결혼하였으나, 그와 사별한 후 요하네스와 재혼하여 그를 낳았다. 헤세는 4세부터 9세까지, 한때 스위스의 바젤에서 지낸 것 외에는 대부분 칼프에서 지냈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

편역 : 홍성광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 읽기와 글쓰기』, 니체의 『니체의 지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책 속으로

나는 어떤 책의 가치를 따질 때 그 책의 유명도나 인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에밀 슈트라우스의 놀라운 작품 『친구 하인』은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 못지않게 좋은 작품인 그의 『천사관 주인』은 초판에 그치고 말았다. 완곡하게 말하자면 창피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친구 하인』을 읽는 이유는 슈트라우스가 중요한 작가여서가 아니라 그의 이 책이 그의 다른 책들보다 우연히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란 최신 스포츠 뉴스나 강도 살인사건처럼 잠시 누구에게나 읽혀 가벼운 오락용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가 잊혀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조용하고 진지하게 향유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야 비로소 책은 자신의 가장 내적인 아름다움과 힘을 내보인다.
--- p.41

의무감이나 호기심으로 단 한 번 읽은 것으로는 결코 진정한 기쁨이나 보다 깊은 즐거움을 얻을 수 없으며, 기껏해야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금방 잊히는 긴장을 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어떤 책을 처음 우연히 읽고 보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얼마 뒤에 잊지 말고 꼭 다시 읽어보라! 두 번째 읽을 때 책의 핵심이 드러나고, 순전히 표면적인 표현적인 것에 불과했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내적인 삶의 가치, 서술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힘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경탄스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두 번 즐겁게 읽은 책이라면 값이 싸지 않더라도 반드시 사도록 해야 한다.
--- p.44

독서도 다른 모든 향유와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진심으로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보다 깊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책을 친구나 연인처럼 대우하고, 책마다 자신의 독자성을 존중해주며, 이런 독자성에 낯선 것은 아무것도 책에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무렇게 아무 때나 너무 급히 또 너무 빨리 후닥닥 읽어서는 안 되고,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좋은 시간에, 즉 여유 있고 유쾌한 기분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섬세하고 동감이 가는 언어로 쓰인 사랑스런 책은 가끔 크게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좋다.
--- p.53

도서의 정리와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고 완성하는 데서 독특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가령 학술서와 문학책, 옛날 문학과 현대 문학으로 나누고, 언어나 학문 분야에 따라 세분한 뒤 칸마다 세심하고 주도면밀하게 정리한다. 대체로 저자 이름의 알파벳 순서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방법은 간단하고 확실하다. 내적인 원칙이나 동질성에 따른 분류, 가령 연대나 역사, 나름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분류는 더 섬세한 방법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수천 권의 소장도서를 알파벳순이나 연대순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개인적 평가에 따라 전체 도서의 위치와 순서를 정하고 분류했다. 그런데도 그는 누가 어떤 책을 말하면 눈 감고도 쉽게 찾아낼 만큼 책이 꽂힌 자리를 잘 알고 있다. 전체가 그토록 유기적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소장자는 적지 않은 전체 도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보잘것없다 해도 그렇게 차츰 생겨난 도서관이 사방 벽을 가득 채우고, 책을 사서 처음 읽던 날의 즐거운 기억이 새록새록 쌓이면, 감수성이 예민한 이의 가슴 속에는 책을 소장하는 기쁨이 날로 커질 것이다. 그리고 전에는 이런 장서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 p.67

기본적으로 모든 올바른 독자는 책 애호가이기도 하다. 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을 되도록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다시 읽고 소장하며, 언제나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책을 빌려서 통독하고 되돌려주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읽은 내용은 대부분 책이 집에서 사라지는 것 못지않게 금방 없어진다. 매일 한 권의 책을 탐독할 수 있는 독자가 있다. 특히 할 일 없는 주부들 중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결국 대여 도서관이 제격이다. 그들은 재물을 모으고 친구들을 얻거나 그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지 않고 다만 어떤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고트프리트 켈러가 언젠가 그들에 관한 훌륭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이런 종류의 독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악습을 그대로 유지하게 놔둘 수밖에 없다.
--- p.82

창작과 사고가 거의 같은 것이라는 견해, 세계관을 묘사하는 것이 문학의 임무라는 견해는 오류이다. 작가에게 추상적 사고는 위험 요소이며, 심지어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사고는 결과적으로 예술적 창작을 부정하고 망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지닐 수 없다거나, 사상적으로 철저히 관념론적 철학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추상적 인식이 주된 핵심이 되는 순간 작가는 예술가이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학은 사유가의 체념이 창작자를 정화된 냉정한 삶의 관조로 이끌어가서, 작가가 가치판단이나 철학적 근본문제를 포기하고 순수 관조로 들어갔을 때 생겨난 것이다.
--- p.99

순전히 외적으로 보면 독서는 정신 집중을 위한 계기이자 필요성이다. 정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독서가 가장 그릇된 방법이다.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자는 결코 정신을 분산시키지 말고 집중시켜야 하고,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거나 생각하고 느끼든 간에 언제 어디서나 온 힘을 다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독서를 할 때도 모든 적절한 책은 정신 집중, 즉 복잡한 일의 축소와 강도 높은 단순화를 나타내야 한다고 느껴야 한다. 아무리 짧은 시도 인간적 느낌의 단순화이자 농축이다. 책을 읽을 때 스스로 주의 깊게 함께 하고 함께 체험하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나는 나쁜 독자이다. 그로써 내가 시나 소설에 가하는 부당함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쁜 독서를 통해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부당한 일을 한다. 나는 뭔가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곧 다시 잊어버리겠다고 미리 생각하는 일에 시력을 사용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내게 전혀 유익하지 않고, 내가 결코 소화하지 못할 인상들로 나의 뇌를 지치게 만든다.
--- p.112

인생은 짧다. 저승에서는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고 해로운 일이다. 내가 이때 염두에 두는 것은 나쁜 책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서의 질 자체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발걸음이나 호흡에서 그러듯이 독서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보다 풍부한 힘을 얻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는 보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자신을 잃어야 한다. 문학사를 읽어서 우리가 기쁨이나 위안, 힘이나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면 문학사를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각 없는 산만한 독서는 눈에 붕대를 감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 우리는 냉담한 선생님에게 다가가는 소심한 학생이나 술병에 다가가는 건달처럼 할 것이 아니라, 알프스에 오르는 등산객처럼, 무기고로 들어가는 전사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또한 피난민이나 삶에 불만을 품은 사람처럼 할 것이 아니라 호의를 품고 친구나 조력자에게 다가가는 사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 만약 내가 말한 대로 한다면 지금 읽히는 책의 10분의 1 정도밖에 읽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열 배는 더 기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의 책이 전혀 팔리지 않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 작가들이 열 배는 더 적게 글을 쓰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세상에 해가 되지 않으리라. 말할 것도 없이 글을 쓰는 일이 독서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p.113

우리 모두 소년 시절엔 실러의 작품과 인디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저절로 생각이나 관점이 바뀌게 된다. 셰익스피어나 괴테를 10년마다, 5년마다 한 번씩 읽으면 그때마다 다른 면이 보이고,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다 좋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 끌리는 대로 따라간다면, 완전히 새로운 문학의 리듬이 바뀌었다고 해서 낯설다고 당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인간적인 것’의 어떤 강령이 있어서, 또는 어떤 도덕에도 굴복해선 안 되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어떤 도덕이나 예술 사조에 왜 굴복해선 안 된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랑의 대상인 한에만 그렇게 하라. 어떤 도덕이나 예술 사조는 언제나 계기만 될 수 있을 뿐이지 본질은 아니다. 우리 영혼에 본질적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내면에서 불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이다. 이 불꽃은 우리에게 은총과 신의 아들임을 의미한다. 이 불꽃만이 우리에게 언제나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 p.126

작가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심하게 시달리는 부족과 지상에서의 결손은 언어다. 작가는 때로 언어를 너무나 미워하고 비난하며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또는 오히려 이러한 궁색한 도구를 가지고 일하도록 태어난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비난하며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는 화가나 음악가를 생각하며 부러워한다. 화가의 언어(색채)가 북극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똑같이 이해되듯, 음악가의 음조 역시 만국의 언어로 말한다. 또 음악가는 단성의 선율에서부터 백 가지 성부의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호른에서 클라리넷에 이르기까지, 바이올린에서 하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새롭고 개별적이며 미묘한 차이가 나는 언어들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
--- p.139

어디에나 조그만 붉은 패랭이가 피어 있다. 그것은 갈색의 낙엽 뒤에 있는 시든 풀밭에서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것은 함께 몰락의 노래를 부르지 않고, 웃고 불타오르며 자신의 조그만 붉은 깃발을 나부낀다. 무서리가 내릴 때야 비로소 그것은 죽음을 맞이한다. 조그만 형제들이여,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는 내 마음에 든다. 너희들 중의 하나, 불타오르는 조그만 패랭이를 집어 들고 주머니에 꽂은 뒤 저 건너편 다른 세상, 즉 도시로, 겨울 속으로, 문명 속으로 가져간다.
--- p.210

타고난 정원사, 타고난 의사, 타고난 교육자처럼 자신의 직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복 받은 희귀한 현상이다. 타고난 작가는 더욱 희귀하다. 그는 자신의 천부적 재능에 합당한 자격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 재능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성실성과 용기, 인내심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재능에 만족해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매혹적인 힘을 갖고 있고, 자연의 총아이며, 근면과 성실성, 훌륭한 신조로도 대체할 수 없는 천부적 재능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타고난 비평가는 타고난 작가보다 더 드물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비평 활동의 첫 번째 동인은 근면과 학식, 부지런함과 노력, 당파심이나 허영심, 악의가 아니라 은총, 타고난 명민함과 타고난 분석적 사고력, 진지한 문화적 책임감이다. 이러한 은총 받은 비평가도 자신의 재능을 꾸미거나 손상시키는 개인적 특성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는 자비로울 수도 악의적일 수도, 허영심이 있거나 겸손할 수도, 야심이 있거나 안일할 수도 있다. 또 자신의 재능을 가꾸거나 함부로 낭비할 수도 있다. 그는 그저 성실하기만 한 사람, 단지 학식만 쌓은 사람에 비해 창조성이란 은총에서 늘 앞설 것이다. 문학의 역사, 독일 문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타고난 비평가보다는 타고난 작가를 더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청년 괴테와 가령 뫼리케나 고트프리트 켈러 사이의 시기만 해도 수십 명이나 되는 진정한 작가의 이름을 댈 수 있다. 그러나 레싱과 가령 훔볼트 사이의 기간에는 비중 있는 이름으로 채우기가 더 힘들어진다.
--- p.228

고귀한 정신과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 과대평가되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에게는 선과 악, 미와 추에 대한 오늘날의 관습에 얽매여 산다는 것이 갑갑하고 끔찍한 일일 수 있다. 이러한 단순한 진리 역시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횔덜린과 니체는 정신질환자에서 다시 천재의 자리로 복귀할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도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정신분석이 출현하기 이전의 지점에 다시 서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정신과학을 발전시키려면 정신과학 고유의 방법과 체계를 가지고 추진시킬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 p.249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저 얻지 않고 자신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모든 아이는 학교 칠판에 처음으로 철자를 그려 넣고, 처음으로 읽기를 시도하면서 인위적이고 극히 복잡한 어떤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세계의 법칙과 놀이 규칙을 매우 잘 알고 완전히 익히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과 글, 책이 없이는 역사도 없고, 인류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조그만 공간, 즉 집 한 채나 방 한 칸에 인간 정신의 역사를 집어넣어 소유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책을 선택하는 형태로만 가능할 것이다.
--- p.250

세계 문학의 영역 중 내가 살면서 가장 빈번히 들여다봤고, 어쩌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1750년에서 1850년 사이의 백 년, 즉 괴테가 중심이자 정점을 이룬 시절, 오늘날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흡사 전설처럼 된 시절의 독일 문학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 아주 먼 과거와 먼 외국으로 돌아다니다가도 이젠 흥분도 실망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 영역, 즉 저 시인들, 서간 작가와 전기 작가들에게로 번번이 되돌아온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인문주의자들이면서도, 거의 모두 흙냄새와 민속적인 체취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런 책들은 특히 직접 내게 말을 건다. 그 책들에서는 풍경, 민족성과 언어가 내게 친숙하고, 어려서부터 고향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특별한 행복을 즐기고, 더없이 섬세한 뉘앙스, 매우 은밀한 암시, 매우 나직한 울림도 알아듣는다.
--- p.287

하지만 문학에서도 피와 향토, 모국어가 전부는 아니다. 그런 걸 넘어서 인류가 있고, 더없이 멀고 낯선 곳에서 고향을 발견할 가능성, 얼핏 보아 굳게 닫혀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을 사랑하고 그것과 친숙해질 놀랍고도 즐거운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그러한 사실은 내 인생의 전반부에 인도 정신과, 그런 뒤에는 중국 정신과의 만남을 통해 입증되었다. 인도에 이르는 길은 나의 경우 적어도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 나의 부모와 조부모님께서 인도에 사셨기에, 인도의 여러 언어를 배우셨고, 인도의 정신을 약간 맛보셨다.

그러나 중국에는 놀라운 문학과 중국 특유의 인간성과 인간 정신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내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걸 훨씬 넘어서서 나의 정신적 피난처이자 제2의 고향이 될 정도였다.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예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중국 문학이라 해봐야 뤼케르트가 번안한 『시경(詩經)』밖에 몰랐던 내가 리하르트 빌헬름 등의 번역을 통해 중국 문학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삶에 불가결한 요소가 된 것은 바로 지혜와 선(禪)이라는 도교의 이상이었다. 한 마디도 중국어를 할 줄 모르고, 중국에 가본 적이 없었던 내게 2천 5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중국 고대 문학에서 내 자신의 예감을 확인받고, 어떤 정신적인 분위기와 고향을 발견하는 행운이 주어진 것이다. 이전엔 그런 것을 출생과 언어로 내게 할당된 세계 속에서만 소유할 수 있었다.
--- p.289

우리의 언어는 모두 꽤 오래되었지만, 그 어휘는 끊임없이 변하는 중이다. 단어들은 병들 수 있고 죽을 수 있으며,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어떤 언어든 날마다 새 단어가 옛 단어에 덧붙여진다. 그러나 모든 발전도 이러한 성장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인생의 새로운 일, 새로운 상황, 새로운 기능과 욕구를 위해 명칭을 생각해내는 언어의 능력에 경탄하며 놀라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 개의 새로워 보이는 단어들 중에서 아흔아홉 개는 옛 단어의 기계적인 조합에 불과하며, 즉 결코 실제적이고 진정한 단어가 아니라 단지 명칭과 임시변통에 불과함을 금방 알아채게 된다. 최근 2백 년 동안 독일어에서 늘어난 어휘 수는 엄청나고 놀랄 만하다. 그러나 무게와 표현력, 언어적 핵심, 아름다움과 진정한 금 함유량 면에서는 가련할 정도로 빈약하다. 겉으로 보이는 이러한 풍요로움은 일종의 인플레이션 같은 속임수다.
--- p.302

모든 글은 잠시 후든 오랜 시간이 지난 후든, 수천 년이 지나서든 몇 분 지나서든 소멸하고 만다. 세계정신은 모든 글과 그 모든 글의 소멸을 읽으며 웃음 짓는다. 그것들 중 몇 개나마 읽고 그 의미를 헤아린다면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다. 어떤 글에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내재해있는 그 의미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다. 나는 내 글에서 그 의미를 음미했으며, 그것을 약간 명료하게 하거나 또한 은폐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았고, 또 새로운 것을 말하려 하지도 않았다. 많은 현인과 시인이 이미 여러 번 그런 말을 했다. 그때마다 약간 달라서, 매번 약간 더 명랑하거나 더 비탄에 잠길 때도, 약간 더 쓰디쓰거나 더 달콤할 때도 있었다. 어휘를 다르게 선택할 수 있고, 복문을 다르게 구성하거나 배치할 수도 있다. 팔레트 위의 색상을 다르게 배열해 사용할 수 있고, 딱딱한 연필을 쓰거나 부드러운 연필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제나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 옛날 것, 가끔 말하고 시도한 것, 영원한 것이다. 모든 쇄신은 흥미롭다. 언어와 예술 속의 모든 혁신은 흥미진진하고, 예술가들의 온갖 유희는 매혹적이다. 이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말할 가치가 있으나 결코 완전히 말할 수 없는 것은 영원히 하나로 남아 있다.
-- p.322
 

출판사 리뷰

아름다운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헤세에게서 배우는 책 읽기와 글쓰기


헤세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사람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저자를 이해하려 하며, 그를 어떻게든 한 친구 삼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개인마다 자신에게 친근하고 잘 이해되며, 사랑스럽고 소중한 책의 목록이 있는 법이다. 누구든 책과 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자기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헤세는 작가란 추상적 사고를 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일반 독자도 그런 점에선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런 추상적 사고는 결과적으로 예술 창작을 부정하고 망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지닐 수 없다거나, 사상적으로 철저히 관념론적 철학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추상적인 인식이 주된 핵심이 되는 순간 작가는 예술가이기를 멈추게 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학은 사유가의 체념이 창작자를 정화된 냉정한 삶의 관조로 이끌어가서, 작가가 가치판단이나 철학적 근본 문제를 포기하고 순수 관조로 들어갔을 때 생겨난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와도 관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