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사 이해 (책소개)/1.세계사

오스만제국 600년사

동방박사님 2022. 7. 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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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오스만 제국사 600년사를 편년체 통사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과 정복을 통한 군사 강국, 다민족·다종교 사회, 종교적 관용, 지적·문화적·예술적 성취, 독특한 정신적 가치관과 신념, 탁월한 건축문화와 예술, 유럽과의 교류와 상호 영향 등 오스만 제국의 특징을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말하자면 외교정치학을 공부한 학습 관성으로 복잡한 국제관계 양상의 오스만 제국을 세계사의 부분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오스만 제국을 이해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비잔티움 제국 변방의 작은 토후국이 세계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확장 전략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의 급속한 변화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인식, 그리고 당면한 변화와 혁신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제국의 생명 주기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태동기-전성기-정 체기-쇠퇴기-붕괴기 등 다섯 단계를 참고하여 오스만 제국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였는데, 국가 형성기와 전성기 다음의 17~19세기까지 3세기는 세기별로 변화 양상이 뚜렷한 특징이 있어 세기로 나누어 집필하였다.

 

목차

책을 펴내며
오스만 제국 연대기

01 역사 속의 튀르크인, 터키인

터키인의 기원
이슬람 셀주크 제국
13세기 아나톨리아

02 건국 시기 1300~1453

건국 초기 정복사업
돌발 상황 앙카라 대전
오스만 제국의 재통일
전략적 요충지 발칸
천년 고도 콘스탄티노플 정복
발칸반도 이주와 정착
오스만 전성기를 가져온 양대 군대조직
술탄의 궁정, 대재상의 내각
정리와 평가 건국기의 국가 철학

03 세계 제국 1453~1600

‘정복자’ 메흐메드 2세의 제국
셀림 1세, 맘루크 술탄국 정복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쉴레이만 1세의 세계 제국
인재 양성의 산실 메드레세와 궁정학교
장인과 예술가들의 도시 이스탄불
정리와 평가 강한 정부 강한 군사력의 세계 제국

04 격랑의 시대 1600~1700

위기의 17세기
대항해 시대, 변화에 뒤처지다
적자에 허덕이는 국가 재정
예니체리 개혁 시도
부패한 관리들, 무질서한 사회
‘미친’ 술탄 아브라힘
‘사냥꾼’ 메흐메드 4세
1683년 오스트리아 빈 침공
정리와 평가 길고 긴 정체와 쇠퇴의 길

05 변화와 외교의 시대 1700~1800

유럽의 성장과 오스만의 쇠퇴
강대국과의 평화조약
튤립 시대
제정 러시아와의 대결
18세기 개혁 시도
셀림 3세의 개혁 구상 ‘새로운 질서’
오스만 중심주의 외교에서 벗어나다
유럽에서 유행한 터키풍
정리와 평가 개혁의 실패

06 개혁과 근대화 1800~1922

혁명의 시대 19세기
마흐무드 2세의 혁신
발칸 민족주의 발흥
이집트 문제
서구식 근대화, 탄지마트 개혁
입헌군주제 도입
외채 도입과 경제난
제국의 몰락
정리와 평가 오스만인에서 터키인으로

참고문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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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이희철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세월을 해외에서 살았다. 그것도 대부분 터키이다. 외무 공무원이라는 생업도 있었지만, 인류 역사와 문화에 탐닉하며 일하는 기쁨과 삶의 활력을 얻었다. 조지워싱턴대학교의 로데릭 H. 데이비슨(1917~1996) 교수의 저술 《터키: 소사小史Turkey: A Short History》를 번역하면서 터키인들의 거대한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가깝게 실감하게 되었다. 그 후 터키인들의 선조인 흉노와 돌...
 

책 속으로

전사이자 유목민인 튀르크인들은 기후 변화, 인구 증가, 식량 부족, 지정학적 권력 경쟁 등으로 기원전 1700년대부터 최초의 거주지를 떠나 알타이산맥과 톈산산맥이 연결되는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3,500년 동안 튀르크인들은 유라시아에 걸쳐 있는 초원 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했기 때문에, 튀르크인들의 문화는 초원 유목문화가 바탕이 되었다
--- p.22

오스만 가지는 1299년 쇠위트에서 독립국가를 선언했다. 작은 변경 마을 ‘쇠위트’는 오스만 제국의 씨앗이 뿌려진 곳이 되었고, 이후 오스만 가지는 비잔티움 영토에 대한 정복사업을 수행했다
--- p.54

바예지드 군대는 1396년 9월 25일 불가리아의 ‘니코폴리스’에서 10만 명이 넘는 유럽 연합 세력 군대와 맞붙게 되었다. 중세의 마지막에 일어난 십자군 전쟁인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바예지드 1세는 대규모 유럽 연합 세력에 맞서 승리하였다. 이 전투 승리로 불가리아는 완전히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집트에 있는 이슬람 세계 종교 지도자인 칼리프는 바예지드 1세에게 ‘룸 세계의 술탄’(유럽 세계의 술탄)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 p.64~65

콘스탄티노플 정복 이후에 도시 이름은 이스탄불로 개명되었다. 메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정복하기만 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두 개 대륙의 지배자이며, 두 개 해양의 지배자’라고 칭했다. 두 개 대륙은 유럽과 아시아를 말하고, 두 개 해양은 흑해와 지중해를 말하는 것이었다. 메흐메드는 ‘세계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된 이슬람교도 전사이자 군주였다.
--- p.91

쉴레이만이 남긴 불멸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역사가들은 16세기를 ‘터키인의 시대’, 또는 ‘쉴레이만의 시대’라고 부른다. 서양 세계는 그에게 ‘장엄한 술탄 쉴레이만The Magnificent Suleyman’이라는 칭호를 주었고, 이슬람 세계는 ‘카누니 술탄 쉴레이만Kanuni Sultan Suleyman’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 p.144~145

셀림 1세는 1514년 찰드란 원정 때 타브리즈에서 책 제본가, 서예가, 금박공예가, 화가 등을 이스탄불로 데려왔다. 맘루크 원정 때인 1516~17년에는 1백여 명이 넘는 장인과 그 가족들이 이스탄불로 이주했다. 셀림 1세가 페르시아의 예술가들을 궁전에 데려온 것은 오스만 제국의 예술 발전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 p.163

유럽의 엄청난 변화 속에 오스만 제국은 세계 경제체제에 통합되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해양기술 발달로 대항해 시대를 맞아 유럽인들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무역을 하게 되었는데, 오스만 제국에는 이것이 불운이자 재앙이었다. 16세기 이전만 해도 오스만 제국은 향신료 판매 거점이었다. 아시아산 향신료가 지중해를 지나 이집트나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오스만 제국에 들어왔고, 중국과 연결된 실크로드도 오스만 제국과 연결되는 향신료 판매로였다. 사실상 세계무역을 독점했던 오스만 제국은 그 자리를 유럽인들에게 내주어야 했다.
--- p.182

이브라힘 술탄의 8년 재위는 국정 운영 면에서 한마디로 참사 그 자체였다. 바로 이전인 무라드 4세의 철권통치가 사라지면서 국정은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이브라힘 술탄은 심각한 신경쇠약 증상에 의한 이상 행동으로 ‘미친(델리)’ 술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카페스에서 나와 술탄이 되었으나 괴이한 행동으로 ‘미친 술탄’이라는 별명을 얻은 무스타파 1세(15대)와 비슷했다.
--- p.206

오스만 제국의 빈 원정 실패 이후 유럽 국가들과의 전쟁은 정리되었지만, 중부 유럽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패권은 그 빛을 잃게 되었다. 카를로비츠 조약은 오스만 제국이 상대국과 유럽식 외교방식인 협상을 통해 조약문을 작성하고 체결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 p.223

18세기 유럽은 봉건 영주들의 힘이 약해지고 국왕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중앙집권의 절대왕정 시대가 되었다. 세기 내내 유럽 국가들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자국의 이익에 따라 동맹을 구성하고 허물며 세력 균형의 전략적 선택만을 추구하였다. 오스트리아·러시아·영국·프로이센·프랑스 등 유럽의 5대 열강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를 다한다는 마키아벨리적 정치철학을 가지고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외교를 전개했다.
--- p.233

1718년부터 1730년까지 12년간 지속한 평화의 시기, 즉 ‘튤립 시대Tulip Age’가 열렸다. 튤립 시대는 정치와 경제가 이전과 비교하여 안정된 시기로 서양의 기술, 소비문화, 사회생활 양식을 모방함으로써 오스만 제국 수도를 세련미의 절정에 달하게 하였다. 아흐메드 3세는 카누니 술탄 쉴레이만 이후 150여 년 만에 나타난 견문이 넓고 교양이 넘치는 군주였다.
--- p.240

서유럽에서 오스만튀르크 문화에 관한 관심은 16세기부터 시작되었고, 이국적인 터키 문화와 풍물을 소비하고 모방하려는 열풍은 18세기에 프랑스 상류층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경향미술에서 발현된 터키풍(튀르크리)은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서유럽에서 동양에 대한 환상으로 터키 문화가 유행한 경향을 ‘튀르크리Turquerie’(터키풍)라고 불렀다.
--- p.278~279

1860년대 중반부터 몽테스키외, 루소 같은 계몽사상가의 영향을 받은 신지식인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지식인 중에는 프랑스에서 교육받고 프랑스 문화와 언어를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특히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 선교사들과 접촉한 터키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한 지식인들은 구체제의 변화를 모색하려는 민족주의자nationalist들로 주로 문학가, 관료, 학자, 군인 등 청년 터키인Young Turks들이었다.
--- p.321

새롭게 탄생하는 터키 공화국은 과거에 비교해 영토가 대폭 축소되었지만, 유럽의 열강으로부터 행정, 재정, 정치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 완전한 독립국가로 태어났다.
--- p.335
 

출판사 리뷰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오래 존속한 국가
오스만 제국 600년사

‘잊힌 제국’ 오스만


서양사에서 오스만 제국은 ‘잊힌 제국’이었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부상과 확장은 유럽인들에게 충격과 함께 시련을 안겨주었다.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이 존재하는 동안 기독교 세계(유럽)와 이슬람 세계(오스만제국)는 대결의 구도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기독교 세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서양(기독교)과 동양(이슬람)의 이분법적 담론 속에서 이슬람은 서구의 경계 대상이 되었고, 유럽을 괴롭힌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 세계 밖의 ‘타자’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오스만 제국에 관한 서구의 탐구는 지연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가장 오래 존속한 제국 중 하나이며 세계사에도 큰 영향력을 끼친 제국이다. 유목인이었던 터키인들이 아나톨리아반도에 정착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뒤 유럽 ‘땅’에서 유럽인들을 대면한 것은 14세기였다. 그로부터 19세기까지 유럽과 오스만 제국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로 정치·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했다. 르네상스, 대항해 시대, 종교개혁 등 유럽의 커다란 변화 뒤에는 오스만 제국이 있었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동로마 제국에 있던 그리스 학자들은 이슬람을 피해 서유럽으로 건너갔고, 서유럽 사람들은 그리스 학자들이 가지고 온 동로마의 중동의 학문에 자극받아 그리스 학문을 다시 탐구하자는 학풍이 유행한다. 이것이 르내상스의 시작이다. 대항해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지중해와 홍해를 통해 인도와 동방으로 가는 항로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막히자 유럽인들은 아시아로 갈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고, 결국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오랫동안 서양사에서 ‘잊힌’ 오스만 제국은 최근 반세기 동안 터키와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구 역사학자들의 탐구를 통해 서양사의 당당한 한 축으로 부활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 vs 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은 여러 면에서 로마 제국과 닮은 점이 많다. 로마가 이탈리아반도 작은 도시에서 출발하여 거대 한 제국으로 성장한 것처럼, 오스만 제국도 아나톨리아반도의 작은 도읍에서 출발하여 거대한 군사 제국이 되었다. 두 제국이 지중해 패권국의 모델이라는 것도 닮았고, 제국의 역사가 정복 전쟁으로 점철된 것도 그렇다. 그러면서도 두 제국은 광활한 영토와 법치를 기초로 다민족을 통합했고, 신앙과 예술 분야에서 지대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로마인들에게 로마 제국과 그들만의 종교와 문화가 있었다면, 터키인에게는 오스만 제국과 그들만의 종교와 문화가 있었다. 로마가 모든 로마인을 위한 세계 정상 도시였다면, 이스탄불(옛 이름 콘스탄티노플)은 모든 오스만 제국 사람들의 세계 정상 도시였다. 유럽인들에게 로마 제국이 영원한 제국인 것처럼, 오스만 제국은 모든 튀르크인(터키인)들에게 영원한 제국이다.

600년 장대한 역사의 흐름

이 책은 오스만 제국사 600년사를 편년체 통사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과 정복을 통한 군사 강국, 다민족·다종교 사회, 종교적 관용, 지적·문화적·예술적 성취, 독특한 정신적 가치관과 신념, 탁월한 건축문화와 예술, 유럽과의 교류와 상호 영향 등 오스만 제국의 특징을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말하자면 외교정치학을 공부한 학습 관성으로 복잡한 국제관계 양상의 오스만 제국을 세계사의 부분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오스만 제국을 이해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비잔티움 제국 변방의 작은 토후국이 세계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확장 전략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의 급속한 변화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인식, 그리고 당면한 변화와 혁신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제국의 생명 주기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태동기-전성기-정 체기-쇠퇴기-붕괴기 등 다섯 단계를 참고하여 오스만 제국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하였는데, 국가 형성기와 전성기 다음의 17~19세기까지 3세기는 세기별로 변화 양상이 뚜렷한 특징이 있어 세기로 나누어 집필하였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터키인들의 선조인 튀르크인들의 과거 역사와 아나톨리아반도에 튀르크인들이 진입하여 셀주크 제국을 세우는 과정을 짚어본다. 제2부는 1300∼1453년까지의 건국 시기를 다룬다. 제1대에서 7대까지의 술탄 기간으로 아나톨리아 서부 변방에서 시작된 토후국이 오스만 술탄국으로 성장하고 확대되는 과정이다. 제3부는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인 1453∼ 1600년까지로, 변경의 오스만 술탄국이 세계 제국으로 부상한 시기로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이자 고전기Classical Age이다. 제7대 술탄부터 12대 술탄까지의 기간이다. 제4부는 격랑의 시대로 1600∼1700년까지의 17세기 오스만 제국을 탐색한다. 제13대에서 22대 술탄까지의 기간이다. 오스만 제국의 영토 확장이 둔화 국면에 접어들고 술탄의 권위 추락과 통치 위기를 맞으면서 서서히 길게 진행될 정체기가 시작되는 과정을 다룬다. 제5부는 변화와 외교의 시대로 1700∼1800년까지의 18세기 오스만 제국을 다룬다.

제23대 술탄부터 28대 술탄까지의 기간으로 중앙집권체제가 약화되고 영토가 상실되는 쇠퇴기이다. 오스트리아·러시아·영국·프로이센·프랑스 등 유럽의 5대 열강이 오스만 제국 영역에서 일방적인 전략적 이익 추 구에 몰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제6부는 1800∼1922년까지 개혁과 근대화 과정을 거쳐 제1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다룬다. 제29대 술탄부터 36대 술탄까지의 기간으로 개혁에 대한 저항, 소수민족들의 독립을 향한 민족주의 열풍으로 심각한 내부 도전에 직면한 위기 상황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