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근대사 연구 (책소개)/6.근대한반도전쟁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동방박사님 2022. 7. 19. 08:44
728x90

책소개

[도서] 러일전쟁 1
러일전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세계사의 대사건이었다. 대한제국은 전쟁 직후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받았고 그때부터 국권 침탈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 국민이 탄생했고 러시아에서는 혁명의 열기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간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비교하고 연구한 책은 없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와다의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조사한 최초의 책으로 러일전쟁이 어떻게 기원하고 개전했는지 밝힌다. 와다는 러일전쟁의 성격을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려 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러시아로 하여금 인정하게 한 전쟁이었다”(36쪽)라고 정의한다.

[도서] 러일전쟁 2
러일전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세계사의 대사건이었다. 대한제국은 전쟁 직후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받았고 그때부터 국권 침탈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 국민이 탄생했고 러시아에서는 혁명의 열기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간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비교하고 연구한 책은 없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와다의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조사한 최초의 책으로 러일전쟁이 어떻게 기원하고 개전했는지 밝힌다. 와다는 러일전쟁의 성격을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려 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러시아로 하여금 인정하게 한 전쟁이었다”(36쪽)라고 정의한다. 그는 전쟁의 가장 큰 목적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다”라고 밝힌다. 전쟁의 명칭은 ‘러일전쟁’이지만 전쟁의 본질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조선전쟁’이라는 것이다.

 

목차

러일전쟁 1
기원과 개전

17 · 러일전쟁 주요 인물들
35 · 한국과 북한의 독자들에게 | 와다 하루키
39 · 와다 하루키 전쟁사학(戰爭史學)의 위용 | 이웅현

제1장 러일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53 · 시바 료타로(司馬遼太?)의 견해
61 · 『고무라 외교사』(小村外交史)와 『기밀 일러전사』(機密日露?史)
63 · 비테의 『회고록』을 둘러싼 상황
69 · 전쟁 체험기의 산(山)
71 · 러시아군 공식 전사와 시만스키 조서(調書)
74 · 일본의 공식 전사와 비밀 전사
76 · 러시아 혁명 후의 연구
83 · 구미와 한국에서의 연구
86 · 일본의 연구
91 · 나의 러일전쟁 연구 역정(歷程)

제2장 근대 초기의 일본과 러시아
105 · 막말유신(幕末維新) 전야의 일본과 러시아
109 · 메이지유신과 러시아
111 · 사할린 문제
115 · 조선에 대한 일본의 관심과 러시아
119 · 러시아 황제 암살과 조선의 군란
123 · 일본의 러시아경계론
127 · 러시아에 대한 고종의 기대
136 · 일본 정부의 격렬한 반응
140 · 고종의 대러 접근 제2막
149 · 메이지 초기의 일본과 러시아
150 · 일본 제국헌법 제정과 러시아
153 · 비테의 등장과 시베리아철도 구상
155 · 러시아 황태자의 세계일주 여행
156 · 제국의회 개회일의 불상사
162 · 러시아 황태자의 일본 도착
166 · 오쓰사건(大津事件)
173 · 시베리아철도 착공
181 · 노불동맹(露佛同盟)의 성립

제3장 청일전쟁과 전후 일본?조선?러시아 관계
195 · 주재 무관 보가크와 동학농민운동
197 · 일본의 조선 출병 결정
201 ·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
202 ·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러시아
205 · 일본군의 서울 점령
207 · 러시아 정부의 제안에 대한 반응
209 · 러시아, 일본 정부의 회답을 받다
211 · 조선 정부에 대한 일본의 요구
214 · 7월 23일 사변?조선전쟁의 개시
219 · 러시아인의 관찰
222 · 조선전쟁에서 청일전쟁으로
227 · 일본의 조선 취급 방침
231 · 개전과 러시아
233 · 보가크의 첫 인상과 평양 대회전(大會戰)
237 · 보가크의 일본군 종군 관찰
240 · 이노우에 공사의 개혁 지도
244 · 러시아 황제의 죽음과 신 황제 니콜라이
246 · 새로운 외무장관
248 · 전쟁의 종장을 둘러싼 움직임
250 · 전투의 종결
252 · 전쟁 종결의 조건
256 · 강화 교섭과 러시아
260 · 간섭을 위한 장관 협의
265 · 러시아 해군, 즈푸에 집결하다
267 · 삼국간섭
272 · 조선 정부와 이노우에 공사
275 · 주둔군 문제와 조선 정부의 위기
279 · 베베르와 히트로보의 견해
282 · 미우라(三浦) 공사의 등장
285 · 이노우에 공사의 귀임
287 · 미우라 공사 도착
291 · 민비 살해
293 · 살해의 목격자들
295 · 대원군과 신정부의 성립
296 · 러시아 공사의 추궁
298 · 일본 국내의 반응
300 · 고무라 조사단의 사건 처리
305 · 랴오둥반도 반환조약의 조인과 러?청 접근
307 · 11월 28일 사건
309 · 일본과 러시아의 군비증강 계획
311 · 러시아 군부의 청일전쟁 연구
314 · 러시아 지식인과 청일전쟁

제4장 러시아의 뤼순 점령과 조차(1896-99)
337 · 고종의 아관파천
341 · 일본이 받은 충격
343 · 페테르부르크와 도쿄에서의 교섭
346 · 야마가타의 러시아 방문 구상
350 · 고무라-베베르 각서 조인
353 · 러?청 비밀동맹조약과 동청철도협정
357 · 러시아의 야마가타 아리토모
360 · 대관식과 그 후의 교섭
364 · 야마가타-로바노프 협정 조인
367 · 조선 사절의 교섭
368 · 러시아인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의 파견 문제
370 · 해군상의 경질, 외상의 죽음
372 · 보스포루스 해협 점령 문제
376 · 고종의 환궁
377 · 무라비요프 외상의 등장
378 · 러시아 군사교관의 활동
380 · 새로운 주일 공사 로젠 발령
382 · 군사교관의 증파와 베베르의 이한(離韓)
385 · 명성황후(明成皇后)의 국장(國葬)
386 · 러시아인 재정고문의 파견
387 ·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점령과 러시아
394 · 러시아 분함대(分艦隊), 뤼순으로
396 · 러시아 함대의 뤼순 입항
399 · 비테의 기회
400 · 쿠로파트킨 육군상의 등장
404 · 러?일 신협정을 요구하는 움직임
407 · 한국에서 반러시아 운동이 일어나다
409 · 로젠 의견서
411 · 러시아, 랴오둥반도를 조차하다
415 · 한국 정세의 급변
417 · 니시-로젠 의정서
421 · 요동치는 한국
425 · 주한 공사의 교대
426 · 헤이그 평화회의
434 · 마산 문제
439 · 관둥주(關東州)의 시작
443 · 주일 육해군 무관들
448 · 조선 임업이권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453 · 조선 북부로의 조사대 파견
454 · 베조브라조프의 동아시아회사
459 · 무라비요프의 20세기 외교방침
461 · 쿠로파트킨의 대(大)상주보고
463 · 1900년 해군대학 춘계 도상(圖上)훈련

제5장 의화단(義和團)사건과 러청(露淸)전쟁
485 · 의화단사건
491 · 톈진 전투
492 · 러청전쟁의 개시
495 · 블라고베셴스크의 전투와 학살
502 · 쿠로파트킨과 람스도르프
505 · 러청전쟁은 계속되다
506 · 잉커우 제압과 베이징 점령
508 · 러시아 정부의 결단
510 · 러청전쟁의 마지막 국면
512 · 의화단사건과 조선, 일본
515 · 조선을 보는 러시아의 눈
519 · 한일공수(攻守)동맹
522 · 한국중립국안의 등장
525 · 국민동맹회와 여섯 교수의 건의서
527 · 계속되는 한국 대표의 노력
531 · 러시아 정부의 방침과 고무라 공사
535 · 러청밀약 체결
539 · 황제, 티푸스를 앓다
540 · 영독협정의 조인
541 · 러청밀약의 파문
543 · 이즈볼스키의 한국중립화 구상 추진
553 · 러청교섭
558 · 반러시아론 고조
561 · 러시아 정부, 러청협정 체결을 단념하다
563 · 계속되는 전쟁의 공포
568 · 가쓰라 내각의 성립
569 · 참모총장 사하로프의 모반(謀反)
577 · 황녀의 탄생과 닥터 필리프
579 · 베조브라조프의 그림자
581 · 위기가 표면화하는 제국
583 · 일본의 러시아관
588 · 구리노 러시아주재 공사의 인사 문제
592 · 영일동맹 교섭
596 · 페테르부르크의 이토 히로부미
600 · 영일동맹의 체결을 위하여
604 · 람스도르프의 회답 만들기
607 · 영일동맹조약의 조인
608 · 러불선언
610 · 러시아, 만주철군협정을 체결하다
612 · 이즈볼스키 최후의 한국중립화안
615 · 구리노의 러?일 협상안
619 · 로젠과 파블로프의 의견
626 · 한국중립화안에 대한 일본의 반응
628 · 비테의 극동 시찰
633 · 베조브라조프의 극동 파견

653 · 찾아보기
러일전쟁 2
기원과 개전

제6장 새로운 노선의 등장
701 · 새해의 첫 나날들
704 · 제2차 해군대학 도상(圖上) 훈련
711 · 신임 해군상과 신임 군령부장
715 · 만주철군의 기한이 임박하다
719 · 극동의 베조브라조프
721 · 베조브라조프와 보가크
724 · 극동정책의 신 구상
726 · 경비대 파견 문제
729 · 페테르부르크의 보가크 호출과 중앙의 반응
732 · 4월 8일(3월 26일) 협의회
737 · 무린암(無隣庵) 회의
742 · 러청교섭 결렬
744 · 러시아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다
748 · 일본 참모본부의 개전론
752 · 쿠로파트킨의 출발과 보가크 의견서
756 · 베조브라조프의 상주보고와 황제의 지시
761 · 5월 20일(7일) 협의회
767 · 5월 협의회 이후
772 · 베조브라조프, 극동으로 출발하다
774 · 일본의 의주(義州) 개방 요구
777 · 쿠로파트킨 육군상의 일본 방문
780 · 조선의 반응
782 · 참모본부와 일곱 박사
789 · 일본의 쿠로파트킨
794 · 일본, 대러 방침을 결정하다
800 · 니콜라이와 아바자의 새로운 방침
802 · 쿠로파트킨, 일본을 떠나다
805 · 뤼순(旅順) 회의
819 · 일본의 반응
822 · 일본에서 고조되는 개전론
826 · 차르의 사로프 수도원 방문
828 · 베조브라조프와 쿠로파트킨의 논쟁
838 · 극동태수제 도입

제7장 러일교섭
855 · 교섭 개시
858 · 일본의 제1차 제안
860 · 러시아의 사정
864 · 세 장관의 경질 위기
868 · 쿠로파트킨, 황제를 수행하다
869 · 러청교섭의 중단
871 · 러시아의 회답 준비
878 · 베조브라조프의 움직임
880 · 한국 정부, 중립을 추구하다
885 · 주일 무관의 경고
889 · 러시아의 제1차 회답
892 · 가을의 위기
898 · 러?일 해군력 비교
900 · 러시아 정부의 대응
905 · 일본의 제2차 서한
912 · 『도쿄아사히신문』, 교섭 결렬을 촉구하다
914 · 알렉세예프의 펑톈(奉天) 점령
915 · 일본과 러시아 군인들의 의견
919 · 극동특별위원회 설치와 임업회사 문제
926 · 얻어맞는 수병들, 사살되는 동물들
929 · 러시아 측의 제2차 서한
935 · 개전을 촉구하는 일본 여론
940 · 공상소설 『러일전쟁 하네카와 로쿠로』
945 · 일본의 제3차 서한
951 · 일본군의 조선출병에 관한 정보
955 · 러시아의 12월 특별협의회
964 · 일본, 대러 작전계획을 결정하다
968 · 한국에 대한 방침
971 · 일본과 러시아의 상호 인식
976 · 주재 무관의 경고 전보
977 · 러시아의 제3차 서한

제8장 전야
999 · 뤼순의 긴장
1003 · 황제와 육군상은 망설이다
1006 · 가는 해, 오는 해
1007 · 이탈리아 군함의 매입
1008 · 구리노 공사와 베조브라조프
1016 · 베조브라조프의 러일동맹안
1027 · 일본 정부, 개전을 포함한 최종회답을 결정하다
1031 · 주재 무관들의 보고와 증원함대
1034 · 대한제국의 중립선언
1038 · 러시아 정부 내의 검토
1044 · 중재 조정의 요청
1046 · 일본 한국을 죄다
1050 · 마지막 장관협의
1055 · 일본의 개전 준비
1057 · 협의회가 끝난 뒤, 람스도르프
1065 · 일본, 각의에서 국교 단절을 결정하다
1071 · 러시아 외상 최후의 몸짓
1076 · 낭패한 알렉세예프
1079 · 일본의 단교 통보
1080 · 일본군 전투행동을 개시하다
1081 ·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제9장 개전
1095 · 1904(메이지37)년 2월 6일(1월 24일) 토요일
1103 · 2월 7일(1월 25일) 일요일
1112 · 2월 8일(1월 26일) 월요일
1128 · 2월 9일(1월 27일) 화요일
1136 · 2월 10일(1월 28일) 수요일
1143 · 2월 11일(1월 29일) 목요일
1146 · 2월 12일(1월 30일) 금요일
1148 · 2월 13일(1월 31일) 토요일
1150 · 2월 14일(1일) 일요일
1153 · 2월 15일(2일) 월요일
1154 · 2월 16일(3일) 화요일
1155 · 2월 17일(4일) 수요일
1156 · 2월 18일(5일) 목요일
1156 · 2월 19일(6일) 금요일
1157 · 2월 20일(7일) 토요일
1159 · 2월 21일(8일) 일요일
1159 · 2월 22일(9일) 월요일
1162 · 2월 23일(10일) 화요일
1164 · 2월 24일(11일) 수요일
1167 · 2월 25일(12일) 목요일
1168 · 2월 26일(13일) 금요일
1169 · 2월 27일(14일) 토요일
1169 · 2월 28일(15일) 일요일
1172 · 2월 29일(16일) 월요일
1175 · 3월 1일(2월 17일) 화요일
1176 · 3월 2일(2월 18일) 수요일

제10장 러일전쟁은 이렇게 일어났다
1188 · 일본이 노린 것
1190 · 조선과 러시아
1192 · 청일전쟁의 개시와 그 파문
1195 · 러시아의 만주 진출
1197 · 가쓰라-고무라 내각의 성립
1198 · 러일교섭
1200 · 러시아의 새로운 노선
1202 · 최후의 순간
1203 · 국민의 정신은 전쟁에 동원되었다
1206 · 전쟁의 확대
1207 · 전쟁이 끝난 뒤

1215 · 맺는말
1217 · 옮긴이의 말
1225 · 참고문헌
1253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와다 하루키 (Haruki Wada,わだ はるき,和田 春樹)
 
193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0년 도쿄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부터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면서 러시아사 및 남북한 현대사에 대해 연구했으며 1998년에 정년퇴직했다. 러시아사와 북한 현대사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학자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1970년대부터 베트남전 반대 운동, 한국 민주화운동과의 연대 등을 주도해 일본을 대표하는 행동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한국에 알려져 있다...

 

역 : 이웅현

 
고려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도쿄대학에서 러시아(소련)외교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이다. 저서로는 『소련의 아프간 전쟁』(2001), 『중앙아시아의 문명과 반문명』(편저, 2007), 『동아시아 철도네트워크의 역사와 정치경제학 II』(편저, 2008), 『새로운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의 미래』(공저, 2019)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일본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