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사회학 연구 (책소개)/3.불평등

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동방박사님 2022. 7. 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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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미친 차별이 대수롭지 않다면, 당신은 방관자거나 가해자다.”
미국의 유구한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단 하나의 창

[뉴욕 타임스] 57주 연속 베스트셀러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버락 오바마 선정 2020 최고의 책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최초 퓰리처상 수상


2008년부터 논의된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성별·연령·인종·피부색·민족·출신 지역·장애·종교 등으로 국민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타당한 내용의 이 법안은 14년째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 왔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차별로부터 자신의 존엄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이 낭자한 시대,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문해야 한다. 스스로가 쉽게 혐오를 일삼는 가해자는 아니었는지, 차별임을 알고도 묵인하는 방관자는 아니었는지 말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미국 언론 역사상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이저벨 윌커슨은 미국의 유구한 인종차별과 불평등의 이력을 밝혀온 언론인이다. 그의 근간 『카스트』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조지 플로이드 과잉 진압 사건으로 미국 내 인종 갈등이 첨예하던 시기에 출간되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1년 넘게 자리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 이민자들이 처음 발 딛는 순간부터 미국의 불평등이 시작되었다면서, 미국의 권력 카르텔을 인도의 카스트 피라미드에 비유한다. 신성함을 무기로 억압의 역사를 만든 인도의 카스트, 유대인을 극한의 공포로 밀어 넣어 처참히 살해한 나치의 인종주의, 겉으론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계급사회 유지에 일조한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까지, 세 체제 모두 얼토당토않은 기준으로 구성원 일부를 ‘열등한 족속’으로 분류한 뒤, 소수의 이윤 독점과 권력 세습을 위해 그들에게 비인간적 행위를 일삼았다. 이 책은 노예제가 폐지된 지 250년이 된 지금에도 여전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실태를 샅샅이 파헤친 보고서로, 오프라 윈프리, 버락 오바마 등 유명 인사와 [타임], [LA타임스]를 비롯한 다수의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책’으로 꼽히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목차

머리말
_격랑 앞의 조각배 하나

1 피할 수 없는 투영의 시간

박멸되지 않은 바이러스
낡은 집을 비추는 엑스레이
미국의 불가촉천민

2 분류는 차별이다

카스트의 캐스팅
이미 그릇된 사람들
근거 없는 척도
델리의 안개가 아메리카에 온다면
히틀러의 모범 사례

3 카스트의 기둥

기둥 1 신의 뜻, 자연의 법칙
기둥 2 대대손손
기둥 3 사랑과 결혼
기둥 4 순수혈통과 더러운 피
기둥 5 노동의 머드실
기둥 6 인간성 말살
기둥 7 폭력과 공포
기둥 8 타고난 우월성, 타고난 열등성

4 불 보듯 빤한 모순

미스캐스팅
맞이하지 않아도 될 죽음
세상의 죄를 짊어진 희생양
불안한 알파와 언더독의 쓸모
검은 사람들의 결백
바닥 칸을 피하라
꼴찌의 내부 총질
더 짙은 남쪽으로
메이저리거의 아킬레스건

5 보호가 만든 위험

허황된 자아도취에 빠지다
검은 머리의 소녀
스톡홀름 생존법
위계의 경계에 선 돌격대
만병의 원인은 불평등

6 값진 것을 허투루 쓰는 나라

바뀐 대본의 주인공
브래들리 효과와 이중 잣대
도치된 피해자, 도취한 가해자
투표용지 위의 민주주의
헛되이 쓴 품위 유지비
인류 보편의 감정

맺음말
_지병으로부터의 완치

 

 

저자 소개

저 : 이저벨 윌커슨 (Isabel Wilkerson)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서, <뉴욕 타임스> 시카고 지국장으로 활약했다. 미국 언론 역사상 퓰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기도 하다. 첫 책 《다른 태양들의 온기The Warmth of Other Suns》는 출간 이후 2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내셔널 북 어워드 논픽션, <타임> 10대 논픽션, <뉴욕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논픽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저술가로서의 공로를 인...
 
역 : 이경남
 
숭실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수료하고 뉴욕 [한국일보] 취재부 차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비소설 분야의 다양한 양서를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워커사우루스』, 『어떻게 성공했나』, 『노 필터』, 『규칙 없음』, 『초협력사회』,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매칭』, 『언더그라운드』, 『인문학, 공항을 읽다』, 『공감의 시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일상 속 카스트는 영화가 상영 중인 어두운 극장에서, 손전등을 바닥에 비추며 지정된 좌석으로 안내하는 말 없는 가이드와도 같다. 카스트는 감정, 도덕 문제로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카스트는 권력이다. 카스트는 자원을 놓고 누구는 가질 자격이 있다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그에 따라 어떤 이는 자원을 획득하고 통제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카스트는 존중·권위·자격을 미리 전제하는 기준으로, 누구는 이런 것에 합당한 존재이지만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고 규정한다.
---「낡은 집을 비추는 엑스레이」중에서

여성은 회의·회사·국가를 이끌 능력이 없다고, 유색인종·이민자는 권위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여기는 것. 누군가를 보며 특정 지역에 거주할 수 없다거나, 특정 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개인의 상처·충격·분노·불공평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하위 계층의 사람이 예상보다 훨씬 더 좋은 직업·자동차·집을 소유하며 명문 대학엘 다니고 권위 있는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며 불쾌해했단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다가, 또 노인네들은 소프트웨어 개발보다는 보드게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카스트가 우리의 의식 속에 절묘하게 코드화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반증이다. 카스트에 젖어 있다 보면,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된다.
---「근거 없는 척도」중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경멸하는 그랜트의 태도는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자들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그는 허약하거나 부적합한 자들을 제거하는 엄격한 제도를 통해 열등한 혈통을 번식할 수 없게 만들거나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6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위대한 인종의 소멸》은 탐탁지 않은 유전자 풀을 정화하자는 극렬 선언문으로, 독일어판은 총통 도서관에서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비치되었다. 히틀러는 그랜트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내게 바이블입니다.”
---「히틀러의 모범 사례」중에서

일본 이민자인 다카오 오자와는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웬만한 ‘백인들’보다 피부가 하얗기에 백인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따라서 시민권을 받아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내가 백인과 무엇이 다른가? 그는 그렇게 주장했다. 피부가 하얀데 왜 백인이 아니란 말인가? 실제로 피부가 하얀 사람이 백인이 아니면 누가 백인인가? 백인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 사건은 미국 대법원까지 갔다. 1922년 법원은 만장일치로 백인은 피부색이 아니라 ‘코카서스인’을 의미하며, 일본인은 코카서스인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기둥 4: 순수혈통과 더러운 피」중에서

메츨은 그의 저서 《백인성의 사망 Dying of Whiteness》에서 치명적인 간염에 시달리던 41세 백인 택시 운전사를 사례로 든다. 테네시주 의회는 부담적정보험법 Affordable Care Act을 채택하지 않았고, 의료보험 혜택의 범위도 확대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남성은 켄터키 국경 바로 건너편에 살았다면 받았을 치료를 비용이 너무 비싸 받지 못한 탓에 목숨을 잃었다.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그는 정부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내가 낸 세금으로 멕시코인이나 복지 여왕(일을 하지 않고 정부 급여로 버젓이 살아가는 사람을 비꼬는 말-옮긴이)들을 먹여 살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 남성은 메츨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바마케어를 지지하거나 거기에 가입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차라리 죽고 말죠.” 안됐지만 그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맞이하지 않아도 될 죽음」중에서

지구 최강대국은 방호복을 착용한 먼 나라의 작업자들이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검사하고 있을 때, 자신들은 상관없는 일이며 미국의 예외주의가 다른 나라들이 겪는 슬픔을 피할 수 있게 해주리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이들 해안에 상륙했고, 인체의 허약한 면역체계를 파고들 듯 이 나라 카스트 체제의 닳아빠진 기반과 조각난 연대의식과 불평등의 틈새로 스며들었다. 얼마 안 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 바이러스는 위계의 각 계층과 모든 인간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바이러스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단지 바이러스의 공격을 처음 받은 사람들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양이 되었다.
---「헛되이 쓴 품위 유지비」중에서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때맞춰 나치를 탈출했다. 아인슈타인이 떠난 다음 달 히틀러는 총리에 임명되었다. 카스트를 피해 달아난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또 다른 카스트 체제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방법이 다르고 희생양이 다를 뿐, 뿌리 깊은 증오심은 그가 방금 탈출한 곳과 다를 것이 없었다. “흑인들에 대한 처우는 최악의 질병이다. 성숙한 나이가 되면 누구나 이 나라의 문제가 새삼 부당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 건국자들의 원칙이 가소로워진다. 합리적인 인간이 그런 편견에 그렇게 질기도록 집착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병으로부터의 완치」중에서
 

출판사 리뷰

“하나님은 왜 나를 내 집에서 버림받은 이방인으로 만드셨습니까?”
인류의 절반을 불가촉천민으로 만드는 미국의 나치즘


“전쟁이 끝났습니다. 히틀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한 공립학교 논술대회에 출제된 문제이다. 16세의 한 흑인 소녀는 히틀러의 임박한 운명을 골똘히 생각하다 답을 적었고, 단 한 줄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를 검은 피부로 만들어 남은 인생을 미국에서 살게 해야 한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사는 일이 어떻기에 이토록 중벌이 되는 걸까? 검은 피부로 태어난 사람은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아프리카계 조상을 둔 미국인은, 왜 자신의 나라에서 이민자 취급을 받는가? 왜 모두가 이 미친 차별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가?

1865년 노예제는 미국 땅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밑바닥에 자리했던 사람들은 계속 그 자리를 지켜야 했다. 아프리카인들을 통해 막대한 권력과 이윤을 얻은 백인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차별을 생산해 내는 이 시스템을 쉬이 폐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 지국장으로 활약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이저벨 윌커슨Isabel Wilkerson은, 미국 사회 이면에서 오랫동안 불평등을 견고하게 떠받쳐 온 이 기이한 체제를 인도의 세습적 신분제 ‘카스트’에 비유한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표어에 가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미국의 카스트는 대들보, 바닥 장선, 샛기둥처럼 하부구조로 작용하며 계급사회를 견고하게 떠받든다. 작가는 이 단단하고 오래된 위계질서가 8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의 법칙, 대물림, 혼인 금지, 순수혈통, 노동 계층, 우생학, 공포정치, 인간성 말살까지 카스트를 견고하게 지켜온 뼈대를 마치 엑스레이로 촬영한 듯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카스트CASTE; The Origins of Our Discontents』는 노랗고 빨갛고 가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을 권력과 이윤의 희생양으로, 발판으로, 성장 동력으로 삼아온 백인 우월주의의 실상을 낱낱이 보고한다.

미국의 불가촉천민 _인도의 카스트

흑인 인권 신장 운동에 앞장선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비폭력 저항 운동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인도에 방문한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는 인도인 친구의 말을 듣고 큰 충격에 휩싸인다. “여러분, 미국에서 온 불가촉천민 친구를 소개합니다.” 그 말을 곱씹으며 이내 그는 깨닫는다. 흑인은 미국에서 불가촉천민일 수밖에 없으며, 평생 카스트라는 제도에 갇혀 살게 된다는 것을.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하위 계급인 불가촉천민은, 신의 뜻대로 태어나자마자 철저히 분류된 채 최하층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했다. 계급 간의 결혼은 금지되었고, 다른 계급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며, 하찮고 더러운 일로 취급받는 노동을 자신의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 했다. 이는 남부의 흑인 노예들의 삶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미국에 도착한 아프리카인들은 담배밭과 목화밭을 전전하며 착취와 학대에 노출되었고, 기나긴 노예 생활로 생긴 빚을 소작농이라는 또 다른 노예로 일하며 갚아나갔다. 검은 피부를 타고난 이상 최하층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를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는 고문과 폭력이 가해졌다. 이처럼 미국과 인도는 특정 집단(달리트와 아프리카인)을 바닥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무력을 사용해 이탈하지 못하게 막은 뒤, 끊임없이 희생양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었다.

작가는 카스트가 영화가 상영 중인 어두운 극장, 손전등을 바닥에 비추며 지정된 좌석으로 안내하는 말 없는 가이드와도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모든 범주의 인간에게 가치를 매기는 카스트는 존엄·권리·자격을 미리 전제하며,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보란 듯이 무시한다.

히틀러의 모범 사례 _나치의 인종주의

이토록 달콤한 권력의 카르텔에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인 사람은 바로 나치였다. 그들은 독일의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지배할 방법을 고안하던 중, 미국 남부의 짐 크로 법을 모범 사례로 삼았다. 히틀러는 흑인 노예로부터 백인의 혈통을 보호해야 한다는 미국 우생학자의 책을 가리켜 자신의 바이블이라 칭했다. 악명 높은 뉘른베르크 법안을 채택하고, 순수혈통을 위한 대대적인 학살에 들어가면서도 그들은 미국의 엄정함을 따라가기엔 부족했다고 털어놓았다. 흑인의 피를 눈곱만큼도 허락하지 않는 한 방울 규칙one-drop rule은, 나치가 보기에도 너무 가혹했다는 것이다.

나치의 독일 집권에 큰 역할을 한 전략이 있다. 바로 특정 소수에 대한 대중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흑인에 대한 백인의 판단,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판단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전략이 얼마나 유효했는지 알 수 있다. 거짓과 조작으로 특정 사람을 배제하고 구별지으면, 그를 바라보는 대중은 우월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갖는다. 이는 소수를 혐오하게 부추기고, 그 차별에 가담하게 만들어 대중들의 자연스러운 차별을 가능하게 한다. 이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장애인, 여성,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들을 특이하거나, 불편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는다. 주먹을 쥐고 때리지는 않았어도 휘두른 팔에 다친 사람이 생겼다면, 당신은 가해자다. 일부러 모르는 척한 건 아니지만 생각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당신은 방관자가 되는 것이다.

저평가된 사람들 _미국의 백인우월주의

1956년까지 미국의 공식적인 표어는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Out of Many, One’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를 포장하기 위해 오래도록 여럿을 희생시켜왔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들은 부푼 마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밟은 이민자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역량과 가치를 절하했다.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투수라 불리는 새첼 페이지는 부상도, 나이도, 도덕성도 아닌 그저 검은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메이저리그에서 배제되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연임에 성공한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임기 내내 그의 출생지와 시민권을 트집 잡는 음모론자들로부터 비난받았다. 검은 피부의 현역 NBA 선수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다리가 부러졌고, 흑인 복서 잭 존슨이 백인인 제프리스 선수를 쓰러뜨리자 뉴욕에서 집단 폭동이 일어났다. 민권과 자유를 수호하는 연방제 공화국의 숨은 권력은, 이민자들의 인권 신장을 저해하는 일에는 유독 하나가 되었다.

작가는 저명한 민권운동 역사가이자 친구인 타일러 브랜치Taylor Branch를 만나, 미국이 마치 1950년대로 회귀한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타일러는 말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삶과 백인으로서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대다수는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사실 이러한 모순으로 생기는 폐해는 최하위 카스트만 떠안는 것이 아니다. 근거 없는 백인 우월주의는 미국의 백인들을 자승자박한다. 백인의 우월성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어마어마한 무력감을 느끼고, 깊은 우울에 빠졌다가, 자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카스트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고통이었다. 다른 지역 출신의 사람이, 피부가 검은 사람이, 휠체어를 탄 사람이 모두 같은 사람임을 인지하는 사회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을 참사라는 것이다.

과거의 과실과 무지했던 현실에 책임지는 일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로 포장된 계급사회에 살고 있다. 미국의 민권법이 다른 피부색의 미국인을 보호하지 못하듯,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역시 지역감정, 수저론, 성차별, 장애 혐오로 뒤덮인 한국의 시민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K’ 이니셜을 단 채 수많은 아티스트와 콘텐츠가 해외에서 큰 활약 중이라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와 늘 함께 들려오는 것은 그들에게 향하는 인종차별 소식이다.

이에 비스듬히 거울을 대면, 아프가니스탄 난민 학생들을 거부하는 단체들이 보이고, 장애인 이동권 시위 소식에 달린 혐오 댓글이 보이고, 성차별 논란에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보인다. 이 중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작가인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것 역시 죄악이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른 폭력과 무심결에 방치한 동조에 대해 성찰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 일에 게으르지 않아야만 그동안 침묵했던 차별의 상흔을 꺼내어 서로를 치료할 수 있다. 작가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유구한 차별을 단칼에 해결하기 위해 『카스트』를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평범함을 방패 삼아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방관하지 않기를, 차별과 혐오의 파도에 휘말리는 난파선이 되지 않기를. 격랑의 시대 속에서도 꿋꿋한 조각배가 되기를 바라며 『카스트』는 쓰였다.
 

추천평

『카스트』는 미국의 낡은 동향들에 관한, 강렬하고도 시의적절한 설명이다.
-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이 책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읽어야 할 필독서다.
- 오프라 윈프리 (미국 방송인)

카스트는 인도에만 있는가? 미국이나 한국에는 없는가? 미국에 인종차별은 있어도 카스트는 없다고 많은 사람이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단언한다. 카스트는 미국을 지배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라고. 인종차별은 미국식 카스트의 ‘피부’일 뿐이다. 아무리 미국의 법과 제도가 모든 시민의 평등을 선언하더라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피부색에 따라 서로를 권력 피라미드에 분류해 집어넣고, 차별하는 현실을 살아간다. 카스트는 세상에 가장 많은 권리를 누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촘촘하게 구분해 위치시키고, 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압박하며, ‘분수’를 모르고 선을 넘는 이들을 가차 없이 ‘벌’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국민에게 선언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무수한 차별의 순간을 겪으며 살고 있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 자리한 채 일반 학교에서 거부되고, 최저임금제에서 배제되며, 지역 사회에서 격리된 삶을 산다. 성별 임금 격차가 3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음에도, 정치인들은 한국에는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현실을 눈속임하기에 바쁘다. ‘수저계급론’은 이미 전 국민이 끄덕이는 보편적 용어가 되었다.

시민을 서열화하고 수직 계층화하는 낡은 카스트를 방치하면, 결국 그 대가는 고스란히 모든 이의 고통이 된다. 사회 구조의 취약성은 약자를 가장 먼저 덮치고, 그 약자가 무방비로 방치될 때 사회의 위기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지금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은 서로를 규정하는 낡은 카스트를 부수고 함께 공정해지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이토록 당연하지만 못 본 척했던 사실을 강렬하게 일깨운다. 우리를 옥죄는 카스트를 깨기 위해, 먼저 우리는 카스트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카스트』는 우리 안의 불평등을 직시하기에 최적인 적외선 카메라다. 책에서 만난 가장 강렬한 질문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져보고 싶다. “당신은 어느 카스트에 속합니까?”
-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100여 명의 근로자가 히틀러 총통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진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군중 속 홀로 팔짱을 낀, 떨떠름한 표정의 한 남자가 유독 돋보인다. 저자인 이저벨 윌커슨은 이 사진 속 단 한 명의 반대자에 주목하며, 그처럼 집단의 광기와 시류를 거부할 용기를 갖기 위해 무엇이 요구되는지 묻는다.

책의 제목인 ‘카스트’는 그리 일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여전히 카스트 제도가 굳건히 자리하는 인도나, 역사 속 봉건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우리들의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단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저자는 특정 범주로 구분해 가치를 매기는 모든 기준과 시스템이 바로 ‘카스트’라고 말한다. 이는 피부색일 수도 있고, 성별일 수도 있으며, 종교나 국적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카스트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에도, 현대 사회의 계층 구조에도, 학교, 회사, 군대, 모임과 가정에도 존재한다. 그 누구도 카스트라는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카스트가 우리 사회의 기본 질서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체념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는 것 아닐까? 이 책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카스트가 만들어 내는 위계질서와 논리가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도록 돕는다. 미국 사회와 인종 문제를 주로 다루지만, 이 책의 메시지는 위계라는 시스템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사회 어디에서나 유효하다. 서열에 민감하며 소수자·약자의 권리에 인색한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당연시되는 질서와 권력 구조에 팔짱을 낀 채 불편한 시선과 표정으로 맞서게 만드는 것. 바로 거기에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 이민규 (『차이, 차별, 처벌』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