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한국역사의 이해 (책소개)/4.한국학연구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동방박사님 2022. 8. 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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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삼국사기』가 기록하지 않은 고구려의 미발굴 역사를 담고 있다. 고구려 최전성기인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역사이다. 헌법학자 이석연 변호사(前 법제처장)와 역사칼럼리스트 정재수 작가가 공저하였다. 저자는 감히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역사는 모두 지우자.”고 말한다. 기존의 역사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말 그대로 새로운 역사의 총람이다.

책은 일제강점기 남당 박창화 선생이 일본 왕실도서관(서릉부)에서 필사해온 『고구려사략』의 방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아울러 삼국사기를 비롯한 기존의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서도 모두 참조 반영하였다. 또한 공저자 이석연은 중국 집안의 광개토태왕릉비를 비롯한 관련 유적지와 유물을 찾아 수차례에 걸쳐 곳곳을 답사하였다. 『고구려사략』은 『삼국사기』가 기록으로만 전한 고구려 역사서 『유기』로 추정되는 문헌이다. 광개토왕기록은 〈국강호태왕기〉와 〈영락대제기〉이며, 장수왕기록은 〈장수대제기〉이다.

『고구려사략』에는 『삼국사기』가 일체 기록하지 않은 《광개토왕릉비》 비문의 8개 정복사업 기록이 모두 나온다. 어느 경우는 비문 기록보다 상세하며 참전 장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명한다. 특히 『고구려사략』 문헌 기록과의 비교를 통해 《광개토왕릉비》 비문 글자의 판독 오류를 정정하고 상당수 결자를 복원한다.

 

목차

[서문]/ [논고] 「광개토왕릉비」와 고대사의 재조명

제1장 광개토왕

1. 정복군주 광개토왕
광개토왕의 이름 담덕 | 광개토왕 묘호의 이해 | 광개토왕의 특별 문양 | 태왕과 호태왕의 사용시기 | 광개토왕의 가계 | 기존 「광개토 왕릉비」의 연구와 평가

2. 「광개토왕릉비」의 새로운 해석
1부 시조 추모왕과 광개토왕의 세계
추모왕의 다양한 이름 | 추모왕의 출신 계보 | 추모왕의 고구려 건국신화 | 고구려 기초를 다진 3대 왕 | 추모신화가 동명신화를 차용한 이유 | 최초 도읍지 홀본 서성산 | 홀본 또 다른 이름 졸본과 일본 | 고명세자 유리왕의 비밀 | 광개토왕의 세계와 죽음 | 광개토왕은 17세손인가? | 광개토왕의 등극년도와 사망년도 | 광개토왕의 장례가 늦춰진 이유 | 「광개토왕릉비」는 누가 세웠나?

2부 광개토왕의 정복사업
영락5년 비려 토벌 | 영락6년 왜잔국 정벌 | 영락8년 백신 정복 | 영락10년 신라 구원 | 영락14년 왜적 격퇴 | 영락17년 ▨▨ 공격 | 영락20년 동부여 정복 | 정복사업 정리

3부 광개토왕과 수묘인
수묘인 연호 | 수묘인 연호 구성 | 수묘인 연호 교언 | 수묘인 연호 법령

3. 광개토왕의 유적과 유물
국내성은 수도인가? | 집안일대 고구려무덤군의 이해 | 광개토왕의 무덤 태왕릉 | 우산하무덤떼의 왕릉급 무덤 | 서대총과 천추총의 무덤주인 | 마선구무덤떼의 왕릉급 무덤 | 칠성산무덤떼의 왕릉급 무덤 | 「집안고구려비」와 「광개토왕릉비」의 상관성 | 하해방무덤떼의 염모총 묵서 | 산성하와 만보정 무덤떼의 특성 | 해부리와 아리모려 묘지석 | 한반도에서 발견된 「충주고구려비」 | 평안남도 덕흥리무덤의 주인공

제2장 장수왕

1. 수성군주 장수왕
장수왕의 출신 계보 | 장수왕의 외모와 성품 | 장수왕의 등극 내막 | 시호 ‘장수’의 편견 | 장수왕의 가계 | 장수왕의 죽음에 대한 의문 | 평양 천도의 실상 | 장수왕의 대외정책 이해

2. 장수왕 치세의 올바른 이해
1부 장수왕의 외교사업
북위와의 교류 | 동진·유송·남제와의 교류 | 유연과의 교류 | 선선과의 교류 | 백제와의 관계 | 신라와의 관계 | 왜와의 관계

2부 장수왕의 정복사업
북연 흡수 | 실위 정복 | 백제 정벌 | 지두우 분할 점령 | 신라 공격

3부 장수왕의 통치사업
선대왕의 존호 제정 | 사학과 기원의 설립 | 일반백성 분류와 관리 | 관등 개정과 관모 착용 기준 | 고구려 화폐의 추적 | 중원왕조 왕명을 수여한 장수왕 | 고구려 역사서 『유기』의 행방 | 북위왕실의 피를 받은 문자명왕

3. 장수왕의 유적과 유물
평양 안학궁과 대성산성 | 장군총 무덤주인의 미스터리 | 우산하무덤떼의 왕족묘역 | 삼실총과 마조총의 공통점 | 각저총과 무용총의 벽화 | 오도신총 사진 한 장의 비밀 | 장천무덤떼의 장천1호분 동명단상 | 평양 한왕묘의 무덤주인 | 평양 동명왕릉의 허와 실 | 남포 감신총의 남녀인물상 정체 | 안악3호무덤과 평양역벽돌무덤의 비밀코드 | 불상 등에 새긴 고구려 연호 | [최초공개] 집안출토 태왕차자릉 판석

[보고]「태왕차자릉」 출토 판석, 금관 등에 관한 보고
[부록]집안일대 「고구려무덤떼」의 왕릉급 무덤 분포도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이석연 (李石淵)
 
헌법학자, 법학박사(서울대), 前 법제처장.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헌법포럼’ 대표, ‘책 권하는 사회운동본부’ 대표. 저서로는 『책, 인생을 사로잡다』, 『사마천의 사기 산책』,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여행, 인생을 유혹하다』, 『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함께 길을 가다』(공저), 『누구나 인생을 알지만 누구도 인생을 모른다』 등과 헌법 관련하여...

저 : 정재수

 
역사 작가, 역사 칼럼니스트. 백제 곤지왕 연구가. 저서로는 소설 『곤지대왕』(상,하), 『백제와 곤지왕』(상,하)과 고대사 관련하여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시리즈인 『고구려 역사의 부활』, 『백제 역사의 통곡』, 『신라 역사의 명암』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우리가 알고 있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역사는 모두 지우자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삼국사기』가 기록하지 않은 고구려의 미발굴 역사를 담고 있다. 고구려 최전성기인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역사이다. 헌법학자 이석연 변호사(前 법제처장)와 역사칼럼리스트 정재수 작가가 공저하였다. 저자는 감히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역사는 모두 지우자.”고 말한다. 기존의 역사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말 그대로 새로운 역사의 총람이다.

책은 일제강점기 남당 박창화 선생이 일본 왕실도서관(서릉부)에서 필사해온 『고구려사략』의 방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아울러 삼국사기를 비롯한 기존의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서도 모두 참조 반영하였다. 또한 공저자 이석연은 중국 집안의 광개토태왕릉비를 비롯한 관련 유적지와 유물을 찾아 수차례에 걸쳐 곳곳을 답사하였다. 『고구려사략』은 『삼국사기』가 기록으로만 전한 고구려 역사서 『유기』로 추정되는 문헌이다. 광개토왕기록은 〈국강호태왕기〉와 〈영락대제기〉이며, 장수왕기록은 〈장수대제기〉이다.

『고구려사략』에는 『삼국사기』가 일체 기록하지 않은 「광개토왕릉비」 비문의 8개 정복사업 기록이 모두 나온다. 어느 경우는 비문 기록보다 상세하며 참전 장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명한다. 특히 『고구려사략』 문헌 기록과의 비교를 통해 「광개토왕릉비」 비문 글자의 판독 오류를 정정하고 상당수 결자를 복원한다.

장수왕의 경우, 『고구려사략』 기록의 분량은 『삼국사기』의 8배에 달한다. 실로 방대한 역사 기록이다. 특히 『삼국사기』가 중원왕조 조공기록(47회)에 치중한 반면, 『고구려사략』은 주로 래조기록을 적고 있다. 래조는 상대국의 사신이 고구려에 파견되어 공물을 바치는 행위이다. 모두 65회가 나온다. 대상은 중원왕조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백제, 신라, 가야 그리고 멀리 일본열도의 왜도 고구려 장수왕에게 공물을 바친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태왕차자릉 판석’을 공개한다. 판석은 길림성 집안의 고구려무덤떼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판석 앞면에는 4행 3열로 모두 12자 명문이 새겨 있다. 「願太王次子陵安如川固如岳」이다. 이는 태왕릉 출토 벽돌 측면의 10자 명문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과 직접적으로 비교된다. ‘태왕릉-안여산’ 조합이 ‘태왕차자릉-안여천’으로 대체될 뿐 내용은 동일하다.

특히 판석 명문 글씨체는 벽돌 명문 글씨체와 똑같다. 모두 「광개토왕릉비」의 비문 글씨체인 웅위한 고구려체이다. 태왕차자릉의 주인공인 태왕차자는 『고구려사략』에 명확히 나온다. 광개토왕 담덕(談德)의 동생인 용덕(勇德)이다. 용덕은 장수왕의 실제 생부이다. 태왕차자릉 판석은 장수왕의 출생 비밀을 담고 있는 정체성의 유물이다.

책은 크게 광개토왕과 장수왕 부문으로 나눈다. 정복군주 광개토왕과 수성군주 장수왕이다. 광개토왕은 「광개토왕릉비」의 새로운 해석에 기반한 정복사업과 관련 유물 유적이며, 장수왕은 다양한 외교에 기반한 수성사업과 관련 유물 유적이다. 특히 책은 『고구려사략』의 장례 기록에 근거하여 길림성 집안의 고구려무덤떼 왕릉급 무덤의 주인공들을 모두 특정하고 있다. 이름이 확인된 20여 명의 왕족과 척족 그리고 일부 귀족이 그 대상이다. 참으로 큰 수확이다. 새롭게 발굴하여 밝힌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새 역사는 아래와 같다.

[광개토왕 부문]
- 고구려 네크로폴리스인 길림성 집안 일대 고구려무덤떼에 묻힌 왕은 고국원왕, 고국양왕,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명왕 등 5명이다. 고국원왕은 서대총, 고국양왕은 천추총, 광개토왕은 태왕릉, 장수왕은 장군총, 문자명왕은 오회분2호묘이다. 문자명왕의 오회분2호묘는 최초로 특정한 경우로 『고구려사략』 기록에 정확히 나온다.
- 집안 일대 고구려무덤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임강총은 광개토왕의 어머니 천강태후 무덤이다. 천강태후는 고구려의 형사취수제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광개토왕의 아버지 소수림왕과 작은 아버지 고국양왕의 왕후가 된 인물이다.
- 광개토왕의 장례가 3년간 지체된 이유는 익원왕 천익의 보위찬탈로 장수왕의 등극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천익은 천강태후의 동생으로 광개토왕의 외삼촌이다.
- 「광개토왕릉비」를 실제 제작하고 세운 사람은 춘태자이다. 춘태자는 소수림왕의 이복동생으로 광개토왕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된다. 광개토왕의 살아생전 교언에 따라 「광개토왕릉비」를 제작하여 세운다.
- 「광개토왕릉비」의 「신묘년(391년) 기사」에 등장하는 왜는 한반도 부여기마족인 부여백제이다. 이들은 병신년(396년) 광개토왕에게 패해 일본열도로 망명하여 야마토(대왜/대화)왕조로 재탄생한다. 일본열도 야마토의 실질시조인 백제계 응신왕은 한반도 부여백제의 여휘왕이다.
- 「광개토왕릉비」의 〈영락10년(400년) 신라 구원〉 기록은 『일본서기』가 기록한 궁월군과 120현 삼한백성의 일본열도 엑소더스를 다룬 사건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의 출애굽에 비견되는 대규모 한반도인의 일본열도 이동이다. 일본은 이들 망명 도래인으로 인해 비로소 진정한 역사시대를 맞는다.
- 천추총 인근의 마선하 강가에서 발견된 「집안고구려비」는 광개토왕의 작은 아버지 고국양왕의 공덕비이다. 『고구려사략』은 광개토왕이 ‘단지 연호를 두고 비석을 세워 공덕을 기록하였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
- 태왕릉 북쪽의 각저총과 무용총은 광개토왕의 장자 경태자의 아들 회일과 회녕 형제의 무덤이다. 무덤벽화에 그려진 백인혈통의 서역인이 증거이다.

[장수왕 부문]
- 장수왕은 재위 80년 동안 4개의 연호를 사용한다. 건흥, 장수, 연수, 연가 순이며 대략 20년 간격으로 연호를 바꾼다. 장수는 장수왕의 연호인 동시에 시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장수의 표상인 ‘무량수불’을 가리킨다.
- 장군총은 장수왕과 장수왕의 어머니 평양태후의 합장묘이다. 원래 장군총은 평양왕후의 홑무덤(단장)이나 장수왕의 유언에 따라 문자명왕이 장수왕의 시신을 널방에 추가로 안치하며 널받침이 2개인 어울무덤(합장)이 된다.
- 장수왕의 생부는 광개토왕 담덕이 아닌 광개토왕의 동생 월왕 용덕이다. 최초 공개하는 「태왕차자릉 판석」은 장수왕의 태생 비밀을 담고 있는 정체성의 유물이다.
- 타클라마칸사막의 누란(선선)과 교류의 물꼬를 튼 사람은 장수왕의 이복형 경태자이다. 경태자는 광개토왕의 장자로 아버지 광개토왕의 선택을 받지 못하여 후계자 서열에서 탈락한다. 선왕에 봉해진 경태자는 고구려를 떠나 주로 북위에서 활동하며 누란에 정착한 후 사망하여 그곳에 묻힌다.
- 장수왕의 손자 문자명왕은 중원왕조 북위 왕실의 피를 받는다. 문자명왕의 아버지 조다태자는 장수왕이 북위 명원제 탁발사의 딸 가란을 비로 맞이하여 낳은 아들이다. 가란은 조다태자를 낳고 장수왕의 왕후로 승차한다.
- 평양 북쪽의 평성에 소재한 ‘경신리1호분’은 평양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형급의 왕릉 무덤이다. ‘한왕묘(황제묘)’로 불린다. 『고구려사략』에 ‘한왕’의 관작을 받은 인물이 정확히 나온다. 안장왕의 동생 각태자이다. 각태자는 동생 안원왕이 등극하면서 동궁이 되나, 이후 아들 평성(양원왕)에게 동궁을 물려주고 ‘한왕’에 봉해진다.
- 평양 역포구역에 소재한 傳동명왕릉은 우산의 장옥원에 묻힌 안장왕 무덤이다. 傳동명왕릉은 평양 일대 왕릉급 무덤 중에서 평지가 아닌 산 중에 무덤을 쓴 유일한 케이스이다. 현재 傳동명왕릉이 소재한 진파리고분의 제령산은 당시 우산으로 불린 평양의 네크로폴리스이다.
- 안악3호무덤과 덕흥리무덤의 주인공은 고구려로 망명한 후연의 모용인과 남연의 모용진이다. 모용인은 고국원왕 시기, 모용진은 광개토왕 시기에 고구려로 넘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