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사 이해 (책소개)/1.세계사

잃어버린 계몽 시대 : 중앙아시아의 황금기, 아랍 정복부터 티무르 시대까지 (S. 프레더릭 스타)

동방박사님 2022. 8. 1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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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앙아시아 지역은 단순한 ‘문명의 교차로’가 아닌,
새로운 세계사적 문명을 창출한 ‘길목문명’


실크로드를 비롯해 몽골, 중앙아시아 지역을 떠올리면 무엇보다 ‘문명의 교차로’라는 문구가 제일 먼저 인상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즉 중국의 비단이나 종이가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졌으며, 서쪽 끝 세계 최초의 무역상인이라 일컬어지는 소그드인들이 실크로드를 거쳐 한반도에까지 와 무역을 했다는 것이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이들 지역은 척박한 기후와 정착해 살기에는 힘든 조건들 때문에 유목 생활방식이 적합하며, 이는 곧 기질적으로 싸움을 좋아하고 약탈을 주로 일삼아 수준 높은 문명을 만들지는 못했다는 이미지로 굳어져 왔다. 과연 이 지역에 대한 이러한 지금까지의 평가가 올바른 것일까?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의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식의 근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이 결코 단순한 문명 ‘전달’의 역할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창출하는 데 세계사적으로 기여했음을 다양한 사료와 접근방식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다. 중앙아시아 특유의 개방성과 관용정신이 “탐구적인, 박식한, 수리적인, 세속적인, 자신감 있는” 사회를 만들어냈으며,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이슬람 문명의 요람인 동쪽(중앙아시아)에서 불어온 바람은 이슬람 세계의 서쪽 지역(우리가 흔히 중동이라고 칭하는 지역)은 물론이고 그 외 문화권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목차

서문 7
등장인물 17
연대표 27

제1장 세상의 중심 45

시간과 공간 49 / 배우 소개 54 / 제기하기는 쉬우나 답하기는 어려운 세 가지 질문 74 / 가지 않을 길 76

제2장 세속적인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고대의 땅 85

기온 상승이 있었는가 95 / ‘집약’문명 98 / 고부가가치를 양산하던 무역업자들 103 / 제국의 지대 추구자들 115 / 말(馬), 등자, 그리고 유목민 123 / 도시문화 129

제3장 기술과 사상, 종교의 도가니 133

문해력과 산술 능력 133 / 과학 139 / 수많은 문자 언어들 143 / 자라투스트라와 빛과 어둠의 세계 147 / 신들을 대동한 그리스인들 154 / 불교도의 수도생활 161 / 헬레니즘의 대변자, 기독교도 170 / 정체성과 유산 177

제4장 어떻게 아랍은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또한 중앙아시아는 바그다드 정복을 준비했는가 189

정복 직전의 중앙아시아: 개요 190 / 종교와 약탈: 동쪽으로 밀려드는 아랍인들 195 / 쿠타이바의 문명전(戰) 200 / 중앙아시아의 반격 205 / 중앙아시아의 테르미도르 동안에 성립된 거래 211 / 아부 무슬림과 아바스의 후손들 215 / 아부 무슬림의 경이로운 시절, 750~751년 217 / 승자는 누구인가 219

제5장 바그다드에 부는 동풍 225

바그다드 228 / 하룬 알 라시드: 지하드를 외친 한량 234 / 바르마크 가문이 이끈 번역운동의 사각지대 241 / 바르마크 가문의 몰락 245 / 마문: 독단적인 이성의 옹호자 246 / 마문의 지혜의 집 251 / 무타질라파(Mutazilism) 256 / 후주(後奏) 263

제6장 유랑하는 학자들 269

바그다드의 중앙아시아인들 272 / 아랍 동료들 277 / 중앙아시아의 위력: 의학과 수학, 그리고 천문학 279 / 최고의 과학자 콰리즈미 283 / 콰리즈미는 정말 중앙아시아의 아들이었는가 292 / 철학적인 질문들 298 / 킨디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 300 / 파라비, 불가능한 일을 해내다 306 / 신중한 혁신가 311 / 현혹될 정도로 비정치적으로 보였던 파라비의 정치관 314 / 파라비가 놓친 기회 317 / 중앙아시아는 두뇌 유출로 고통받았는가 319

제7장 호라산: 중앙아시아의 떠오르는 별 323

학문의 도시 니샤푸르: 자연 물리적 환경 328 / 교육과 정신적 삶, 그리고 사회적 갈등 331 / 지적 전통의 창시자들 335 / 호라산의 회의론자와 자유사상가들 337 / 전통주의자들의 충동 340 / 발히와 하산 나이사부리, 그리고 불합리 342 / 시스탄에서 들려오는 페르시아인들의 봉기 346 / 투스: 전위적인 벽지(僻地) 352 / 페르도우시의 외로운 사명 356 / 현실적인 『왕의 서(書)』 359 / 부계 지배의 모순들 362 / 분별력 또는 지혜가 없는 세상 363

제8장 중앙아시아의 전성기: 사만 왕조 369

안팎에서 제기된 시아파의 도전 391 /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었던 전통주의자들 396 / 무함마드 알 부하리: 고아의 탐구 400 / 구술사학 403 / 만사(萬事)에 관한 법 405 / 기세등등한 전통주의자들 408 / 아부 알리 알 후사인 이븐 시나 410 / 이븐 시나, 비루니, 그리고 우주 417 / 부하라의 황혼기 426

제9장 사막에서의 한때: 마문 휘하의 구르간지 429

호라즘: 기술에 기반한 사회 429 / 아랍의 침략과 그 여파 434 / 박식가이자 교사였던 아불 와파 부즈자니 436 / 호라즘에서의 쿠데타 438 / 무함마드 비루니의 어린 시절 439 / 비루니, 역사를 발명하다 442 / 마문 가문의 구르간지 448 / 별개의 궤도에 있던 슈퍼스타들, 1004~10 453 / 『의학정전』 456 / 구르간지의 몰락 464 / 후주: 이븐 시나가 모든 지식을 종합하다 468

제10장 튀르크인들이 무대에 등장하다: 카슈가르의 마흐무드와 발라사군의 유수프 479

민족 선전원의 자질 483 / 놀라운 카라한인들 486 / 마흐무드 카슈가리가 깃발을 들다 490 / ‘문화적 쇠퇴’기(期)? 496 / 창조적으로 조성된 튀르크 거리 498 / 튀르크 승전탑 502 / 카라한인들의 동화(同化) 507 / 『행운을 가져오는 지혜』 509 / 세계를 포용하고 수피적 대안을 거부한 발라사구니 511 /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한 은둔자 512 / 카슈가르의 잔광 514

제11장 튀르크인 약탈자 치하에서의 문화: 가즈니의 마흐무드 517

새로운 형태의 통치자 517 / 마흐무드의 부상과 그를 지원한 정부 523 / ‘지상의 신의 그림자’ 525 / 완불하기 528 / 마흐무드 세계의 성격과 문화 530 / ‘속세의 광휘’: 건설자 마흐무드 534 / 가즈니 치하에서의 역사학자들 540 / 궁정시인들 544 / 페르도우시: 투란의 노예 550 / 마흐무드 치하에서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555 / 비루니의 인도 560 / 인도 과학에 천착한 비루니 565 / 시간과 인간의 역사 566 / 문화로서의 종교 567 / 힌두교, 이슬람, 마흐무드에 관한 비루니의 생각 573 / 종결부 577 / 미루니, 아메리카를 발견하다 583 / 태양에 관한 이해와 비중(比重) 587 / 가즈니의 몰락 588

제12장 셀주크 통치 아래에서의 미진(微震) 591

가잘리의 위기 591 / 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의 변화의 곡선 594 / 분주한 셀주크와 투르크멘 부족들 595 / 니잠 알 물크: 투스의 마키아벨리 601 / 셀주크 건축과 제조업 606 / 셀주크 치하에서의 학문 세계 610 / 안팎에서 분출된 위험한 사상가들 619 / 니잠 알 물크의 반격: 니자미야 마드라사 624 / 철학자 하이얌 629 / 마음속의 대안: 수피즘 631 / 1092~95년의 위기 635 / 가잘리의 신경쇠약을 다시 논하며 638 / 『철학자들의 부조리』 642 / 셀주크의 종말: 술탄 산자르 651 / 건축가 산자르 654 / 후원자로서의 산자르 658 / 산자르의 억류와 죽음 661 / 오마르 하이얌의 최후의 심판 664

제13장 몽골의 세기 673

권력의 오만함: 호라즘 샤 673 / 호라즘 통치 아래에서의 지식인의 삶 676 / 수피 르네상스 678 / 재앙을 부르며 684 / 몽골의 복수 688 / 베이징(北京)에의 정착 693 / 몽골 치하의 중국에서의 중앙아시아 문화 696 / 몽골 치하의 이란에서의 중앙아시아 문화 699 / 잠시 소생한 위대한 전통: 나시르 알 딘 알 투시 707 / 중앙아시아의 황폐화 713 / 몽골 치하의 중앙아시아 719 / 몽골의 멍에 아래에서의 문화 721 / 민중문화: 민간전승과 종교 724 / 암흑 시대의 대차대조표 731

제14장 타메를란(티무르)과 그의 후계자들 735

권력의 뼈대 740 / 티무르 이후: 평화와 교역 744 / 티무르 손자들 시대의 문화 746 / 울루그베그: 왕위에 오른 과학자 752 / 나바이: 후원자이자 시인 762 / 미학적 세기의 종말 769 / 티무르의 의붓자식들: 무굴, 사파비, 그리고 오스만 771 / 인쇄되지 않은 말 781 / 계승자들, 그리고 상실된 유산 782

제15장 회고하며: 모래와 굴 785

왜 발생했을까 788 / 모래알을 품은 굴 793 /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795 / 환경적 가설들 798 / 몽골 문제를 전술로 삼기 799 / 악당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 800 / 부유한 후원자들이 지갑을 닫았는가 802 / 통치자들의 부조 803 / 비(非)사변적인 튀르크인들 804 / 무슬림 대(對) 무슬림 805 / 악한 천재, 가잘리 808 / 중요한 시기 선택 813 /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815

옮긴이의 말 817
사항 찾아보기 833
인명 찾아보기 853
지명 찾아보기 869
 

저자 소개 

미국의 러시아, 유라시아 문제 전문가로 1962년 예일 대학을 졸업했으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울러 그는 툴레인(Tulane) 대학 부총장(1979~82)과 오벌린(Oberlin) 대학 총장(1983~94)을 역임했으며, 중앙아시아-코카서스 연구소(Central Asia-Causasus Institute and Silk Road Studie...
 
역 : 이은정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를 졸업하고, 터키 국립 앙카라 대학 사학과에서 18세기 오스만 제국에 끼친 프랑스의 영향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서울대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오스만 제국의 황실 하렘 여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과의 갈등과 교류로 혼란스러웠던 오스만 제국의 19세기 역사와 오스만 여성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터키에서의 정치 이슬람의 부상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끼...
 

출판사 리뷰

중앙아시아 지역은 단순한 ‘문명의 교차로’가 아닌,
새로운 세계사적 문명을 창출한 ‘길목문명’


실크로드를 비롯해 몽골, 중앙아시아 지역을 떠올리면 무엇보다 ‘문명의 교차로’라는 문구가 제일 먼저 인상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즉 중국의 비단이나 종이가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졌으며, 서쪽 끝 세계 최초의 무역상인이라 일컬어지는 소그드인들이 실크로드를 거쳐 한반도에까지 와 무역을 했다는 것이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이들 지역은 척박한 기후와 정착해 살기에는 힘든 조건들 때문에 유목 생활방식이 적합하며, 이는 곧 기질적으로 싸움을 좋아하고 약탈을 주로 일삼아 수준 높은 문명을 만들지는 못했다는 이미지로 굳어져 왔다. 과연 이 지역에 대한 이러한 지금까지의 평가가 올바른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식의 근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이 결코 단순한 문명 ‘전달’의 역할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창출하는 데 세계사적으로 기여했음을 다양한 사료와 접근방식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길목문명’(crossroads civilization)으로서의 중앙아시아의 특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중앙아시아 특유의 개방성과 관용정신이 “탐구적인, 박식한, 수리적인, 세속적인, 자신감 있는” 사회를 만들어냈으며,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이슬람 문명의 요람인 동쪽(중앙아시아)에서 불어온 바람은 이슬람 세계의 서쪽 지역(우리가 흔히 중동이라고 칭하는 지역)은 물론이고 그 외 문화권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중앙아시아가 단순히 문명의 교차로라기보다는 국제적인 관계에 의해 온전히 영향을 받으면서도 결국에는 수세기 동안 형성된 토착적인 힘이 더 크게 작용하는 가운데 ‘길목문명’ 특유의 독창성과 고급문명을 일구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슬람 문명의 중심을 더 동쪽으로 옮겨놓다:
사마르칸트, 투스, 메르브, 부하라, 니샤푸르의 중요성


이 책은 우선 흔히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로 아라비아반도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오늘날의 이란 지역인 서부 페르시아 지역 정도를 뇌리에 떠올리는 우리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테러가 빈번하며 아편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등 무정부적인 정치 상황으로 알려진 북부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비롯해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멀고도 생소한 중앙아시아 지역이야말로 이슬람 문명의 요람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발흐, 메르브, 니샤푸르, 투스, 시스탄, 부하라, 사마르칸트 같은 도시들을 열거하며 중앙아시아적인, 즉 페르시아적이면서도 도시적이고 일찍이 실용기술이 발달한 도시의 면면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다시 말해 저자는 이슬람 세계의 공간을 동쪽으로 확장해 이슬람 문명의 축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세계의 지적 허브로서 서기 1000년을 전후로 400~500년 동안 문화적 전성기를 누리던 ‘계몽의 시대’(Age of Enlightenment)에 주목한다. 즉 중앙아시아는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교량 역할을 하며 고대와 근대 세계를 연결하는 위대한 고리였고, 인도와 중국, 중동, 유럽 모두와 교류하며 비범한 문화적, 지적 활력을 전수했다는 것이다. 언어와 인종, 민족, 지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의 주민들은 매우 다원적인 하나의 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세속 및 종교 영역 모두에서 풍부하게 축적된 문화적, 지적 경험을 가지고 황금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은 서구의 르네상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개인을 발견하거나 재발견했고 미래에 도래할 과학혁명의 선각자가 되었다는 것이다(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이 책의 제4장에서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알 라지, 알 파라비, 알 킨디, 알 콰리즈미, 이븐 시나, 알 비루니 등 숱한 사상가와 과학자들이 현대 문명의 기원이 되는 다양한 사상적 발흥과 과학적 성취를 통해 중앙아시아 문명권을 독보적인 자리에 설 수 있게끔 만들었다).

‘페르시아적인 요소’가 중앙아시아의 문명 내지 문화의 핵심을 이루다

그런데 이러한 중앙아시아 특유의 문명 내지 문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 가운데 하나는 아바스 시대의 이른바 ‘아랍 르네상스’를 주도한 대다수의 선구자들이 실상은 아랍인이 아니라 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란계의 다양한 원주민이거나 다른 동부 지역민들이었다는 것이다. 칼리프 제국의 수도였던 바그다드 내에서 벌어진 끊임없는 내부 반목과 피로 얼룩진 쿠데타, 사회적인 갈등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아랍 정복 후 몇 세대도 지나지 않아 철학과 과학, 예술 분야에서 지도자 역할을 맡게 되면서 다원적이지만 매우 실용적이고 독특한 그들만의 정체성을 가진 다양한 이란계 및 튀르크계 지식인 집단이 창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중앙아시아 역사의 저류에 페르시아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렇듯 찬란했던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왜 지금은 보잘 것 없게 되었는가

이렇듯 과학적이고도 실용적인/경험적인 학문과 지적 세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관개시설 운용을 통한 도시의 발전과 대륙 중개무역을 통해 획득한 물질적 풍요, 새로운 사상 및 사고방식에 대한 열린 태도가 중앙아시아 특유의 찬란한 문명/문화를 일구어냈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즉 그렇게 찬란했던 이 지역의 문명/문화가 왜 21세기 지금에 와서는 쪼그라들다시피하고 잊혀진 문명 세계처럼 취급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그것은 바로 ‘종교’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선진 문명/문화를 일구어냈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좀처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양극화가 심화되었던 주제가 바로 이성과 종교 사이의 관계였다. 철두철미한 합리주의를 열렬히 후원했던 마문 시대에 촉발된 신학논쟁이 궁극적으로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 간의 싸움으로 비화되면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혁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회를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몽 시대의 절정기에 발생한 신학적 충돌이 곧 노골적으로 힘을 겨루는 시험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철학,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이 벌어졌고 이는 알 가잘리(Al-Ghazali)가 합리주의자들의 주장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싸웠던 300년 후에나 막을 내렸다.

이성과 논리, 경험을 밀쳐낸 수피 신비주의의 도래,
그리고 그 중심에 ‘알 가잘리’가 자리하다


이성도 논리도 인류의 진정한 목적과는 무관하며,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탐구는 무엇이든지 간에 그저 공허한 망상이라고 생각한 가잘리의 공격은 이슬람의 이름으로 감히 합리주의와 계몽을 옹호하는 이들을 침묵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자들에게 강력한 지적 무기를 제공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와 공격이 결국 과학과 철학이 꽃피웠던 땅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알 가잘리 이후, 더 이상 자유로운 과학적 탐색과 거리낌 없는 철학적 사유가 다시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성과 논리를 밀쳐내고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지식인들을 신비주의적 직감과 전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에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종속적인 지위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중앙아시아 문화와 12~13세기의 역경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피 신비주의 부상을 직겁적으로 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이슬람 내에서 수피즘을 정당화하고 핵심적인 앎의 방식으로서 수피즘이 자리 잡도록 하는 데 기여를 했다.

세계사의 중심으로서의 중앙아시아 역사 복원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이니 우리나라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이니 하는 기획을 비롯해, 전 세계는 물론 우리에게도 이제 중앙아시아 지역은 큰 관심 영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 관심의 증폭만큼이나 포괄적인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은 매우 드물고, 주로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예술, 종교, 역사 등 전반을 매우 경제적이면서도 짜임새 있게 직조해냄으로써 세계사에 기여한 이 지역의 특장점을 매우 설득력 있게 서술해내고 있다.

저자는 수차례 이 책의 집필 목적을 누군가에 의해 고집스럽게 주변적이고 후진적인 지역으로 규정되어 온 중앙아시아가 사실은 수세기 동안 정치와 경제 세계의 주축이었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적 생활의 중심지였음을 알리고, 이는 개방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중앙아시아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적 축적에서 기인했음을 보여 주시 위함이라고 역설한다. 즉 중앙아시아 지역은 단순한 문명의 교차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