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중국.동아시아 이해 (책소개)/2.한중관계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동방박사님 2022. 10. 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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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조선시대 특히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한 조선말·광해군·인조대를 주 대상시기로 삼아 경제적·문화적·외교적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었는지를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구체적으로 살핀 본격적인 연구 성과물이다. 당시 명군의 한반도 참전이 남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 재조지은을 숭앙하는 의식이 지닌 실상과 허상을 고찰하고, 명청교체의 대세가 가시화되고 있던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동북아시아 국제질서 변동과정에서 조선이 맞이했던 도전과 그에 대한 대응의 실체를 규명한다.

목차

<선조때 후반 임진왜란과 대명관계>
1. 명군 참전과 정치적 영향
2. 명군 참전과 경제적 영향
3. 명군 참전과 사회, 문화적 영향

<광해군대의 대명관계>
4. 광해군 초, 중반 조명 사이의 쟁점
5. 대후금 출병 문제와 대명관계
6. '심하전투' 패전 이후의 대명관계

<인조반정과 대명관계의 추이>
7. 외교정책의 측면에서 본 인조반정 발생의 배경
8. 인조반정 승인을 위한 둘러싼 명과의 갈등
9. 인조반정 이후 병자호란 이전의 대명관계
 

저자 소개 

저 : 한명기
 
1962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한신대, 국민대, 가톨릭대 강사와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병자호란1, 2』,『16세기』(공저)등이 있으며, 「광해군대의 대북세력과 정국의 동향」, 「19세기 전반 반봉건 항쟁의 성격...
 

책 속으로

후금의 요구에 대한 답변 여부를 놓고 광해군과 비변사 신료들의 의견은 갈라졌다. 당시 대북파의 지도자였던 이이첨 등은 후금 사자의 목을 베고, 그들의 서신을 불태워버리자고 주장하는 등 강력한 척화론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기미하는 차원에서 그들이 보낸 서신에 속히 답하라고 지시하고, 동시에 자강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호언하였다. 나아가 말로는 후금과 결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장들이 서쪽 변방으로 부임해 가는 것은 한사코 회피하려 한다는 예를 들어 신료들의 이중적 태도를 질타하였다.

'중원의 형세가 참으로 위태로우니 이러한 때에는 안으로는 자강을, 밖으로는 기미하는 것을 꾀하여 한결같이 고려가 했던 것처럼 해야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인심을 보면 안으로는 일을 분변하지 못하면서 밖으로 큰소리만 친다. 시험삼아 조정 신료들이 수의한 것을 보면 무장들이 말한 것은 모두 압록강에 이르러 결전해야 한다는 것이니 그 뜻은 참으로 가상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의 무사들은 서쪽 변방을 사지(死地)처럼 두려워하는가. 생각이 한참 미치지 못하고 한것 빈말 뿐이다...'(광해군일기)
--- p.237
조선 군신들은 결국 송응창이나 원황 등이 강조했던 양명학 자체를 수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다만 강학을 계기로 송응창을 만나 당면한 과제인 강화론을 철회시키는 것을 관철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에 더하여 당시 이미 주자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중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올라 있었고, 주자성리학을 정통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상황 역시 명 지휘관들의 양명학 수용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다.
--- p.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