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서양철학의 이해 (책소개)/2.논리학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 (마르틴 하이데거)

동방박사님 2022. 11. 1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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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34년 3월 총장직을 사임한 이후에 행한 여름학기 강의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에서 하이데거는 논리학을 그 시원에서부터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그로부터 더 근원적인 과제를 일깨우려고 시도한다. 이를 위해 그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하이데거가 당대에 고민했던 ‘민족’의 ‘현실적 변혁’과 연결된다. 이 강의에서 민족은 인종, 혈통과 연관된 신체적 의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육사건에 참여해야 하는 노동, 임무, 사명을 결단하는 역사적 현존재로서 규명된다. 대학의 혁명적 변화를 원하는 하이데거는 이와 관련하여 나치스-돌격대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과 대학총장을 비판하고 있다. 『검은 노트(Schwarze Hefte)』의 출판과 함께 최근 하이데거의 나치 관련 및 반유대주의에 대한 논쟁이 다시 일고 있는 때에 이 책은 사유의 혁명과 연관된 하이데거의 정치 및 국가철학을 비판적으로 숙고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목차

서문 - 논리학의 구조, 유래, 의미 그리고 필요한 변화

1절. 논리학의 내적 구조와 그것의 네 가지 고찰방향
2절. 사고에 대한 예비교육으로서 논리학. 문법과 논리학. 논리학의 역사
3절. 논리학의 유용성을 판단하는 세 가지 통상적인 입각점들
4절. 논리학의 해체를 위한 필수적 과제

1부 - 모든 논리학의 근거물음이자 주도적인 물음으로서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

5절.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모든 논리학의 근본물음이자
주도적인 물음으로 파악하는 입장에 대한 이의제기들
6절. 삼중적 선행물음으로서 본질물음과 민족의 지식교육

1장 _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
7절. 사전에 수록된 언어
8절. 대화로서 언어
9절. 언어와 인간의 관계에서의 순환운동

2장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
10절. 잘못된 물음으로서 ‘무엇’을 묻는 선행물음
11절. 선행물음의 본래적인 파악. 무엇물음에서 누구물음으로
12절. 자기 자신으로서의 인간
13절. 자기와 자기상실
14절. “우리의 자기존재는 민족‘이다”라는 말은 결단 속에 있다
15절. 첫 번째 중간물음: 민족이란 무엇인가?
16절. 두 번째 중간물음: 결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3장 역사의 본질에 대한 물음
17절. 역사의 본질에 대한 규정은 시대에 속한 그때마다의 역사적 성격에 근거한다.
역사적 현존재에서 드러나는 진리의 본질
18절. ‘역사’라는 낱말의 다의성
19절. 앎과 의지 속에 일어나는 인간적 사건: 알림
20절. 역사, 역사알림(역사기술), 역사과학의 관계
21절. 비역사적인 것
22절. 시간과의 관계에서 역사
23절. 역사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존재

2부 - 역사의 본질로서 근원적으로 통일된 시간

24절. 시간의 힘과 관계 맺고 있는 “우리 존재 전체의 변혁.” 책임을 떠맡음
25절. 두 가지 오해에 대한 거부

1장 인간의 역사성은 변화된 시간과의 관계로부터 경험된다
26절. ‘규정’에 대한 경험을 통해 시간을 경험함
27절. 존재 전체에 대한 의문과 현존재
28절. 시간이 주체적이라는 숙고에 대한 논의

2장 인간을 그에 대한 규정에서 경험함
29절. 기분, 노동, 사명, 임무의 내적 관계
30절. 민족의 규정을 통해 주체적 존재를 분쇄함
3장 인간존재와 언어
31절. 세계를 형성하고 보존하는 민족이라는 역사적 현존재의 중심을 지배하는 언어
32절. 아직 파악되지 않은 역사적 현존재의 임무로서 논리학:
언어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세계지배에 대한 염려
33절. 본래적 언어로서 시짓기

부록
편집자의 후기
하이데거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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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 메스키르히에서 출생했다. 190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1923년에는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1928년부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존재와 시간』, 『철학에의 기여』 등의 대표작을 포함하여 전집 102권의 철학 저술을 통해, 서양의 존재론을 대표하는 사유가이다.

 

역 : 김재철 (金載哲)

1961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와 동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하이데거와 딜타이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하이데거 존재론적 해석학」, 「공간과 거주의 현상학」, 「하이데거의 기초인간학」, 「상상의 현상학」, 「존재와 신비」, 「하이데거의 철학적 신비주의」 등...

 

역 : 송현아

경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하이데거를 공부하며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논문으로는 「하이데거 철학에서 대화의 본질」, 「하이데거 철학에서 들음에 관한 고찰 : 들음과 기분을 중심으로」, 「들음의 인간학」, 「불안에 대한 임상철학적 이해 ? 하이데거와 보스를 중심으로」가 있다.

 
 

책 속으로

논리학, 이것은 학문들에서 행해지는 [...] 사고절차에 대한 훈련이 아니라 존재의 심연(Abgrunde)으로 내려가며 묻는 발걸음이다. 논리학, 이것은 우리에게 소위 영원한 사고법칙의 무미건조한 수집물이 아니라 인간, 다시 말해 그의 유일무이한 인간다운 위대함을 물을 만한 장소이다.
---「서문 | 4절. 논리학의 해체를 위한 필수적 과제」중에서

논리학은 우리에게 사고의 형식과 규칙을 모아놓은 것 아니다. 로고스는 우리에게 물음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그런 까닭에 로고스를 자의적으로 앞서 결정하지 않고 아주 넓고 고유한 의미에서 말과 언어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논리학은 우리에게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다.
---「1부 | 10절. 잘못된 물음으로서 ‘무엇’을 묻는 선행물음」중에서

‘나’, 자아(ego), ‘나는 생각한다’, ‘나는 행동한다’에 의해 인간이 규정될 수 있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이 충분히 제기되지 않는 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해 어떤 개념도 가지지 않았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질 수 없다는 것만을 증명한다.
---「1부 12절. 자기 자신으로서의 인간」중에서

신체, 영혼, 정신은 인간의 구성요소이다. 분명 인간은 각기 지배적인 정의에서 바로 그것들을 통해서 규정된다. 그러므로 민족은 말하자면 큰 틀에서 이해된 인간이다. 민족-신체, 민족-영혼, 민족-정신은 (큰 틀에서 인간을 의미하는) 그 민족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우리는 마지막에 ‘우리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우리 자신은 민족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러한 대답으로 응답해야 하는 물음 자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변경한 형식이다. 지금 이 물음에 대해 ‘인간은 민족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큰 틀에서 (민족을 의미하는) 인간이다’라고 대답했다. 분명 이것은 모두 다른 대답들(신체, 영혼, 정신으로서 민족)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 하나의 대답이 아니다.
---「1부 15절. 첫 번째 중간물음: 민족이란 무엇인가?」중에서

결단성은 나의 존재를 선취한다. 나의 존재는 내가 존재하게 될 방식이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 결단한다. 그러므로 이미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이러한 결단의 수행에서 나는 결코 눈앞에 있는 주체로서 그것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기 위하여 나의 ‘자아’로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나’는 분명히 자기 자신으로서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자기 자신은 비로소 되어간다. 이 되어감(Werden)은 결단성으로서의 결단에서 시작한다.
---「1부 16절. 두 번째 중간물음: 결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중에서

시간은 역사와 사건을 규정하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무차별적인 틀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은 사건 그 자체를 나르고 이끄는 힘이다. 시간은 사건 밖에서 작동하는 힘, 즉 소모하는 힘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이다. 시간은 우리의 존재를 시간화한다. 시간화 속에 있는 시간의 시간성은 힘, 즉 우리 현존재가 그에게만 고유한 그의 존재에 이르도록 하는 힘이다. 다시 말해 현존재의 시간성은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가능성의 근거이다.
---「2부 | 26절. ‘규정’에 대한 경험을 통해 시간을 경험함」중에서

언어는 세계의 지배를 형성하며 보존하는 민족이라는 역사적 현존재의 중심이다. 시간성이 시간화되는 곳에서만 언어가 사건으로 일어난다.
---「2부 | 32절. 아직 파악되지 않은 역사적 현존재의 임무로서 논리학」중에서

참된 시짓기는 오래전부터 이미 우리를 향해 멀리서부터 말을 걸어왔으나, 우리가 아직도 결코 따라잡지 못한 그러한 존재의 언어이다. 그런 까닭에 시인의 언어는 결코 오늘날의 것이 아니다. 시인의 언어는 항상 기재해온 것이고 미래적인 것이다. 시인은 결코 동시대적이지 않다. 동시대의 시인이 조직을 결성할 수 있긴 하지만 그것은 부조리한 것이다. 시짓기와 그와 함께 하는 본래적 언어는 존재의 지배가 근원적인 작품의 우월한 범접 불가능성 속에서 드러난 곳에서만 사건으로 일어난다.
---「2부 | 33절. 본래적 언어로서 시짓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하이데거가 1934년 여름학기에 “언어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논리학”이란 제목으로 한 강의의 강의록을 편집한 전집 38A권에 대한 번역서이다. 나치 시절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직을 1년 만에 사임한 직후에 행한 논리학-강의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논조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논리학의 해체와 함께 ‘더 근원적인 과제’를 제시하려는 그의 시도에는 ‘정신적 결단의 영역’으로부터 출발하는 시대적 변화의 열망이 담겨있다.

그는 논리학의 과제를 ‘진정한 추동력과 본질적인 절박함’ 속에서 대학의 구성원이 ‘참여해야 하는 교육사건’이자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노동’으로 여긴다. 이와 연관하여 하이데거는 자신이 생각하는 민족사회주의와 대학정책에 대한 비판 및 개혁과 연관된 자신의 입장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하이데거는 대상의 진술구조와 사고규칙 및 형식에 제한된 전통 논리학과 그에 기초한 대학 학문의 편협한 지식교육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를 위해 ‘로고스의 학’이라는 본래적 의미 속에 담긴 로고스, 즉 ‘언어의 본질에 대한 선행물음’으로부터 논리학의 근원을 찾는다. 이때 언어는 사전적 언어 및 문법 또는 소통의 수단이나 ‘언어철학’의 분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말함’이라는 인간의 존재방식을 통해 해명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하이데거의 논리학은 언어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의 순환 속에서 수행되는 정신적 영역이다. 이때 인간은 종교적, 생물학적 영역, 개념적 본질 또는 객체에 맞선 주체와 같은 무엇-물음이 아니라 ‘누구-물음’에서 드러나는 선-개념적인 ‘자기 자신’이다. 자기로서 인간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존재를 본래적 또는 비본래적으로 결단하며 자기세계를 형성한다. ‘자기상실’과 ‘자기망각’이라는 비본래적 자기존재와 관련하여 하이데거는 당시 대학에서 정치적 활동에만 참여하거나 고립된 개인으로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례를 제시한다.

특히 하이데거는 자기 자신의 결단에 기초한 진정한 공동체로서 ‘우리 자기’와 대비하여 당시 학생 합숙소의 폐단을 지적하며 ‘우리 자기’를 다수의 집합이 아닌 ‘민족’ 개념을 통해 규정한다. 이때 ‘민족’은 신체와 인종, 영혼을 넘어 자기 자신의 결단과 의지에서 출발하여 역사적으로 운명을 떠맡는 각성된 정신으로서의 민족이다. 이러한 민족의 역사적 존재가 다름 아닌 ‘국가’이며 이로부터 ‘사회주의’는 본래적 의미를 갖는다. 사회주의는 ‘경제적 관념의 변화’나 맹목적 공익성을 추구하는 ‘획일주의’가 아니라 ‘우리 자기’의 역사적 존재가 참여하는 ‘노동에 대한 존경’과 ‘봉사의 무조건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민족사회주의의 의미에는 그동안 하이데거가 뚜렷하게 밝히고 있지 않은 국가 및 정치철학이 담겨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민족의 존재를 위한 역사적 현존재의 결의성을 교육사건에 참여하는 대학의 구성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데거는 전문대학을 지향하는 독일 대학의 목적이 ‘통일적이고 교육적이며 정신적인 힘’을 상실시키고 있으며, 겉으로는 혁명적 변화를 주장하는 히틀러의 교육정책이 대학의 ‘창조적 자기주장’보다는 ‘시체와 외양만을 보존’할 뿐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고 폭로하며, 대학총장이 나치스 돌격대의 유니폼을 입었다고 해서 대학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노골적으로 지적한다.

이에 대해 하이데거는 교육사건에 참여하는 ‘우리’의 역사적 자기규정을 시간성을 통해 해명한다. 교육사건에서 우리는 미래를 향해 자신의 본질을 수행하는 ‘임무’이자 과거의 유산을 떠맡는 ‘사명’에서 규정되며, 이러한 임무와 사명을 수행하는 현재가 지식에 봉사하는 ‘노동’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시간의 힘과 존재의 지배 사이에서 드러나는 ‘철학의 규정’과 연결되며, 여기에서 ‘철학의 사명, 철학의 임무, 철학의 노동’이 규정된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논리학은 미래 세대를 위해 준비하는 진정한 앎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앎은 학문 자체에 있지 않고 교과목과 학과전공에도 있지 않으며, 모든 학문 이전에 놓여 있는 동시에 모든 학문을 넘어서 있으며, 오히려 학문에 관한 결단은 철학 속에, 즉 우리가 근원적이고 지속적인 본질적 앎의 세밀한 힘을 펼칠 수 있는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이데거는 인간존재와 자기존재, 민족과 역사, 교육사건에의 참여를 통해 드러나지 않게 작동하는 비밀로서 언어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한다. 존재자 전체로서 세계는 역사적 현존재에서 사건으로 개방된다. 이러한 세계의 개방성이 다름 아닌 언어의 본질이 현성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왜 하이데거가 언어의 본질에서 논리학을 다루는지가 분명해진다. 그에게 “논리학은 결코 논리학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논리학의 물음은 세계의 지배가 언어에서 사건으로 일어남으로써 존재가 힘을 갖는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앎의 염려”이다. 이 앎은 ‘책임을 떠맡는 말’, 즉 창조적 언어를 위한 역사적 노동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근원적인 언어는 ‘시짓기의 언어’이다. 이 주제를 하이데거는 다음 학기 강의, ‘횔덜린의 시 해석’에서 다룬다.

이 책의 편집자 페터 트라브니(Peter Trawny)는 하이데거가 1931년부터 쓰기 시작한 『검은 노트』에 속하는 일련의 책들을 편집하고 출판하면서 그 속에 민족사회주의 및 반유대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이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편집자는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는 ‘논리학의 더 근원적 과제’, ‘우리 자기’, ‘민족’과 같은 말들이 이미 ‘독일 민족’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검은 노트』에 나오는 논리학-강의에 대한 언급을 통해 확인해주고 있다. “독일인만이 존재를 근원적으로 새롭게 시로 지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독일인만이 테오리아의 본질을 정복하고 마침내 논리학을 창조한다.” 편집자는 자신의 『비판적 입문서』에서 이어진 강의가 횔덜린의 시 해석이었던 이유도 하이데거가 횔덜린을 ‘독일인 중의 가장 독일인’으로 여겼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지적들은 하이데거의 철학에 이미 교육사건의 참여를 위해 나치 개입이라는 정치적 오판을 하게 된 소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