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역사기행 (독서)/6.성지순례답사

성당 평전 - 이탈리아 성당기행

동방박사님 2022. 11. 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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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탈리아 구석구석까지
유럽 문화의 본류를 따라가는 성당 기행


찬란한 유럽 문화의 중심을 이루었던 이탈리아 주요 도시의 성당 80곳을 소개하는 『성당 평전』은 로마의 교황청립 학교에서 수학한 신부와 가톨릭 베테랑 기자를 따라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머나먼 과거로 함께 떠나는 책이다.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 로망인 이탈리아 각 도시의 중앙광장에 랜드마크로 버티고 선 성당들, 또는 인파가 덜 몰리는 골목골목에 보석상자처럼 숨어 빛나는 성당들은 이 책에서 4백여 컷의 사진 속 장관으로뿐만 아니라 몇백 년, 때로는 두 번의 밀레니엄을 지나오며 온갖 부침의 역사를 살아낸 문화유산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성당 평전』에 소개되는 이탈리아 성당들은 5년에 걸친 여러 차례 발품의 산물이다. 이 책의 내용은 피렌체·나폴리·베네치아·바리·밀라노 장으로 구분되었고, 각 장은 인근 도시까지 아울러 그 지역의 크고 작은 성당·세례당·종탑을 비롯한 종교 건축물을 찾아간다. 전설적인 큐폴라로 유명한 피렌체 대성당, 베네치아의 물에서 솟아난 듯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피사의 사탑’으로 불리는 피사 대성당 부속 종탑, 135개의 첨탑과 3천여 조각상의 밀라노 대성당처럼 널리 알려진 성당들은 물론, 피렌체의 서민 성당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중세 성곽도시 루카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 도시 아레초의 성당, 폼페이 유적으로 가려다 기차를 잘못 타 맞닥뜨린 폼페이의 대성당, 바리 인근의 마테라·알베로벨로·오스투니·레체, 또 밀라노 근방의 베르가모·파비아의 성당을 비롯한 덜 알려진 성당들을 이 책으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성당 평전』은 가능한 한 많은 곳을 섭렵하려는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여행일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부와 가톨릭 언론인의 발과 눈을 가이드 삼아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앙의 성소를 순례함으로써 그 옛날 유럽 서민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다. 때론 인물에 대한 평전을 쓰듯 각 성당의 이름이 품고 있는 사연, 각 성당에 해당되는 가톨릭 성인의 삶과 죽음, 그들의 유해를 둘러싼 공방과 유럽사의 관계, 서민들의 일상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성당 평전』은 찬란한 건축과 예술작품은 물론 각 성당이 지어진 당시의 정치적 알력과 경제 흐름을 소개하면서, 종교와 신앙이 유럽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한다. 아울러 코로나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집에서도 직접 간 것처럼 생생한 감동을 줘,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여행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막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새로운 시선으로 서구 문화를 대하게 될 것이고, 언젠가 다시 길을 나설 시간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서기 1000년의 이탈리아로 가는 길


피렌체, 환희와 낙관주의

피렌체의 아침
땀과 믿음으로 천천히 완성하다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보통 사람을 위한 천국의 문 - 산 조반니 세례당
광장의 활기 속 비극의 역사 - 시뇨리아 광장
한 가문이 묻힌 곳 - 산 로렌초 성당, 메디치 경당
예술, 죽음 그리고 신앙 - 산타 크로체 성당
피렌체의 가장 높은 곳에서 -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수도원 성당
기도하는 세기의 예술가들 -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산 마르코 미술관
노벨라, 새로움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피렌체의 밤 -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중세 장인의 진면목 - 시에나 대성당
범어사의 탱화와 성당의 제단화 - 시에나의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신과 만난 인간의 집 -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 생가 성당
탑의 도시, 산 지미냐노
중세의 성곽도시 - 루카의 산 마르티노 대성당, 산 미켈레 성당, 산 프레디아노 성당
세계적 도시가 된 특별한 이유 - 피사 대성당, 종탑
‘인생은 아름다워’의 도시 - 아레초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현대식 대성당을 다시 짓다 - 라스페치아 대성당
다섯 개의 해안마을, 친퀘테레 - 몬테로소의 카푸친 수도회 성당, 연도 성당, 산 조 반니 성당, 베르나차의 성녀 마르가리타 성당, 코르닐리아의 성 베드로 성당, 마나롤라의 산 로렌초 성당, 리오마조레의 산 조반니 성당


나폴리, 세월을 살아낸 성소

나폴리의 암과 명
속세 한가운데 기적의 공간 - 나폴리 대성당
궁전을 리모델링한 성당 - 제수 누오보 성당
지중해를 지킨 기도의 힘 - 산타 키아라 성당
위대한 침묵을 만나는 순간 - 카르투시오회 산 마르티노 수도원 성당
성스러운 구원의 끈 - 폼페이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성당
오늘 종말이 온다면 - 폼페이 유적지
예수 옆에 있던 사람 - 아말피의 산 안드레아 대성당
해도 달도 필요 없는 도성 - 포시타노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
살아 있는 복음사가의 무덤 - 살레르노 대성당
천 년의 거룩한 성소 - 소렌토 대성당
낙원 그리고 평화 - 카프리 섬의 산 미켈레 성당


베네치아, 물 위의 희망

물을 타고 흐르는 신앙
최초의 복음사가 이야기 - 산 마르코 대성당
또 다른 최후의 만찬 - 산 조르조 마조레 대성당
건강에 대한 집단의 열망 -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고난에 동참하는 위대한 창작 - 산 로코 대신도 회당
베네치아의 보석상자 -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성당
성화의 향연 - 산 자카리아 성당
천상과 세속의 통합 -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
성녀 루치아의 빛 - 산 제레미아 성당
희망을 약속한 마지막 예언자 - 산 모이세 성당
미움이 멈추어질 날 - 게토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세 가지 다른 기도의 공간 - 베로나의 산 제노 마조레 대성당, 베로나 대성 당, 아나스타시아 성당
건축의 도시에 이어진 신앙 - 비첸차의 몬테 베리코 대성당, 비첸차 대성당
성인의 말의 힘 - 파도바의 산 안토니오 대성당
영원의 시간을 건너다 - 파도바 대성당, 세례당


바리, 남쪽의 빛

간절함이 켜켜이 쌓인 곳 - 바리의 산 니콜라 대성당
이천 년 전의 빛 - 마테라 대성당
동화 마을 언덕 위의 성당 - 알베로벨로의 산 안토니오 트룰리 성당
오상의 성 비오와 믿음 - 산 조반니 로톤도 대성당, 성 비오 성당
흰색 도시의 중심에서 - 오스투니 대성당
무른 돌, 순한 신앙 - 레체 대성당, 산타 크로체 성당


밀라노, 부활과 안식

풍요의 땅, 롬바르디아
소박함을 곁에 둔 화려함 - 밀라노 대성당
민중이 세운 성인 - 성 암브로시우스 대성당
명화의 고요한 힘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참 신앙의 이름으로 - 산 로렌초 마조레 성당
성의를 벗고 부활로 - 토리노의 산 조반니 대성당
바다로 열린 곳의 신앙 - 제노바의 산 로렌초 대성당, 안눈치아타 대성당
세월의 위대함을 마주치다 - 베르가모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콜레오니 경당
삶의 축소판의 광장에서 - 크레모나 대성당, 종탑, 세례당
예수의 피와 신앙 - 만토바의 산 안드레아 대성당, 만토바 대성당
전구를 청하다 - 모데나 대성당
커다란 십자가의 성당 - 파비아의 산 미켈레 대성당, 파비아 대성당
당신 안에 쉬기 전까지 - 파비아의 산 피에트로 인 치엘 도로 대성당, 코페르토 다리
 

저자 소개

저 : 최의영
 
1969년 춘천 출생. 1998년에 교황청립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학교 수도자 신학대학원인 클라렛티아눔(Claretianum)을 졸업했다. 로마의 이디(IDI) 제약회사(1912년 설립) 이사, 알바니아 NSBC 가톨릭대학교 부설 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동아시아 준관구장으로 재임 중이다. 저서로 『수도원 이야기』 등이 있다.
 
저 : 우광호
 
1969년 원주 출생.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가톨릭 전문 월간지 [가톨릭 비타꼰]의 주간이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아! 아프리카』, 『아빠의 기도』,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책 속으로

금융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피렌체로 돈이 몰려들었고, 부를 축적한 신흥 엘리트 계급이 나타났다. 이제 신분이 아닌 부가 계급 구분의 기준이 되었다. […] 또한 이들은 종교적으로 경건했다. 앞 세대에 있었던 흑사병의 대유행은 사람들을 종교적 성향으로 기울게 했다. […] 그 당시엔 도시와 도시 간 자존심 싸움이 대단했다. 피렌체와 인접한 피사에서는 2백 년 전인 1063년부터 대성당을 짓고 있었다. 토스카나주의 또 다른 경쟁 도시, 시에나는 이미 30년 전에 기념비적인 대성당을 축복한 상태였다. 피렌체 사람들이 ‘우리도!’를 외쳤고, 시 의회는 대성당 건축 계획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첫 망치 소리가 울렸다. 1296년의 일이다. --- p.20~22, 「피렌체의 아침」 중에서

중세 이탈리아인의 삶에서 유아세례는 빼놓을 수 없는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 사회의 백일잔치, 돌잔치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유아세례는 하나의 잔치였으며, 한 인간이 공동체 일원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 피렌체의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은 이러한 서민의 소망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번한 이웃 도시와의 전쟁, 특히 밀라노와의 전쟁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호응이 절실했다. 피렌체의 권력자와 부유층이 서민을 위한 공간인 세례당 건축에 공을 들인 이유다. 그들은 최대한 화려하고 아름답게 세례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한다. --- p.31~32, 「보통 사람을 위한 천국의 문」 중에서

14세기 초, 이탈리아 시에나 신앙인들은 미사 시간 내내 신비로움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마치 내가 어린 시절 범어사 탱화에서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제단 뒤에 설치되었던 이 제단화 〈마에스타〉는 가로세로 길이가 4미터, 2미터에 달한다. 그 거대함에 황금빛이 가득하다. 금빛이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사제가 미사를 주례하는 장면을 바라본다고 상상해보라. 게다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가. 당대 이탈리아 최고의 화가 두초가 아닌가. 어머니가 범어사 탱화 앞에서 수없이 절을 했듯이, 중세 시에나의 신자들도 시에나의 대표 보물인 이 제단화 앞에서 수없이 두 손을 모았을 것이다. --- p.84, 「범어사의 탱화와 성당의 제단화」 중에서

피사 전역은 물론이고 멀리 바다에 뜬 배에서도 삼종기도와 미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높이 1백 미터 이상으로 계획되었다. […] 든든한 밑돌을 놓긴 했지만, 워낙 진흙, 모래, 조개껍데기 등이 뒤섞인 연약한 지반이어서 서서히 한쪽 면이 내려앉는 현상이 나타났다. […] 대성당 부속 종탑으로 설계된 탓에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종탑은 성당 바로 옆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종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기울어지는 각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 고집스럽게 2백 년에 걸쳐 2차, 3차 공사를 연이어 재개하여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층수를 높여 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기울기를 심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왔고, 종국에는 현재 높이인 55.8미터, 8층에서 공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이러한 부침의 역사를 지닌 피사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든 것은, 원래는 똑바로 세우려고 했으나 의도와 달리 삐딱해진 종탑이다. --- p.105~106, 「세계적인 도시가 된 특별한 이유」 중에서

마을 안 골목으로 들어서면 왼쪽에 몬테로소 연령회가 운영하는 연도 성당이 나타난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연령회는 전 세계 대부분 성당에 조직된 장례 봉사 단체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입관, 염, 출관 및 장지 수행까지, 장례예식 전반을 유족과 함께한다. 본당 내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몬테로소에서는 연령회 단체가 아예 장례미사 전용 성당을 건축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죽음에 대한 품앗이가 이 정도로 단단하다면 마을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감은 보지 않아도 뻔할 터였다.
연도 성당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성당의 이름을 확인하고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산 조반니 성당. 세례는 아기가 태어난 직후에 받는 성사이다. 죽음과 탄생이 마주 보고 있는 형국. 죽음을 기억하는 성당 맞은편에, 새롭게 태어난 아기가 세례받는 성당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몬테로소 사람들은 그렇게 탄생과 죽음을 마을 중심의 한 장소에서 기념하고 있었다. --- p.120~121, 「다섯 개의 해안마을, 친퀘테레」 중에서

성당이 지어진 이후에도 보강공사와 리모델링은 계속됐다. 1558년 터키인들의 침공 이후 잠시 모스크로 사용되는 등 시련이 있었기에, 성전의 계속되는 리모델링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래서 소렌토 대성당에서는 서기 1000년부터 2000년에 이르는 1천 년의 시간이 공존한다. 최후의 만찬 경당에 있는 15세기 나무 십자가, 17세기 단색 대리석 제단, 세례받는 예수의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진 16세기의 대리석 주교좌, 1573년에 제작된 설교단, 성모성심 경당에 있는 15세기 패널 등이 그러하다. 특히 종탑은 본당 건물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역사가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종적으로 현재의 주요 골격이 완성된 것은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던 것을 다시 개조한 1573년이었고, 현재의 외관이 완성된 것은 1백 년 전인 1924년에 이르러서였다. --- p.198~199, 「천 년의 거룩한 성소」 중에서

살기 위해 갯벌 위에 말뚝을 박고 집을 지었다. 갯벌 위에 듬성듬성 보이는 땅은 흙을 보태 섬으로 만들었고, 섬과 섬 사이는 다리로 연결했다.
그 유배의 땅이 그들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무역을 통해 엄청난 돈이 베네치아로 몰려들었다. […] 집 지을 땅도 부족했지만, 베네치아인들은 간척을 통해 여유 땅이 생기면 가장 먼저 성당부터 지었다. --- p.213, 「물을 타고 흐르는 신앙」 중에서

베네치아의 두 상인이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다. 신앙심 깊었던 두 사람은 이교도들의 땅에서 마르코 사도의 유해를 빼내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828년 마르코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옮기는 데 성공한다. 마르코의 유해가 있던 자리에,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다른 성인의 유해를 대신 갖다 놓기도 했고, 무슬림 조사자들이 혐오감을 느끼고 물러가도록 돼지고기로 시체를 덮기도 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환호했다. 갯벌 위에 말뚝 박고 뿌리내린, 눈물 많은 이 땅에 위대한 성인의 유해를 모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성 마르코를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정하고, 소중히 유해를 모셨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성전을 지었다. 864년의 일이다. --- p.224, 「최초의 복음사가 이야기」 중에서

그 흑사병이 베네치아를 강타한 것이 1630년경이었다. 당시 베네치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20여만 명이 몰살당했다. 오늘날 한국의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의지할 곳은 신앙뿐이었다. […] 결국 1630년 10월,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는 중대 발표를 한다. 흑사병 퇴치를 위해 베네치아의 노른자위 땅에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성당을 건축하겠다는 것이었다. […]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거짓말처럼 흑사병이 사라진 것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자신들을 재앙에서 건져내 건강을 선물해준 성모 마리아를 찬미했고, 성당 건축에 더욱 정성을 들였다.
50년 후, 드디어 성당이 완공된다. 사람들은 건강을 되찾게 해준 성모 마리아께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성당 이름을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로 정했다. 공사 시작 당시 30대였던 건축 책임자 롱게나는 성전 축복식 1년 뒤인 1682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 p.236~237, 「건강에 대한 집단의 열망」 중에서

만약 당신이 당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서민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지금 병 치료를 위한 금전적 도움을 받기 위해 성 로코 대신도 회당을 방문했다. 1층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아마도 저절로 무릎을 꿇게 하는 엄숙함에 사로잡힐 것이다. 〈성모영보〉, 〈동방박사의 경배〉, 〈이집트로의 피난〉 등 예수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 틴토레토의 대작들이 줄지어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던 예수의 삶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지금 겪고 있는 병의 고통은 어쩌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한 보속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 p.240~242, 「고난에 동참하는 위대한 창작」 중에서

산 니콜라 대성당에 들어서면 이 성당이 왜 산타클로스 성당인지 알 수 있다. 천장에는 난파 직전의 위기에 처한 선원들을 구하고 어린이와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성 니콜라오의 일생을 그린 대형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 이후 바리는 1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순례지 중 하나가 된다. 삶이 행복으로만 가득하다면 성 니콜라오는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삶이 고통이기에 성 니콜라오가 반드시 필요했다. […] 각자의 간절함이 지하 경당에 가득했다. 지하 경당에 배어 있는 것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1천 년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무수한 간절함이었다. --- p.311~312, 「간절함이 켜켜이 쌓인 곳」 중에서

레체의 영적 자산이 성 푸블리오 오론초라면, 레체의 물질적 자산은 ‘레체 석재’라고도 불리는 이탈리아 석회암이다. 부드럽고 가공이 쉬운 이 돌은 레체 지역에서만 나오며,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 곳곳에 세워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의 건축 재료로 사용되었다.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서 가공하기 쉬운 돌을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레체에는 유난히 화려한 성당이 많다. 진흙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돌이 지천에 널려 있다 보니, 성당들도 그만큼 화려해진 것이다. 레체가 ‘남쪽의 피렌체’라고 불리는 이유도 도시 전체에 넘치는 르네상스풍의 화려함 때문이다. --- p.339, 「무른 돌, 순한 신앙」 중에서

밀라노에서 다보탑과 석가탑을 떠올린 것은 두 성당을 만나면서였다. 밀라노 대성당과 성 암브로시우스 대성당이 그것이다. 밀라노의 신앙은 성 암브로시우스에 의해 자리 잡았고, 뿌리 내렸고, 퍼져 나갔다. 암브로시우스는 밀라노의 석가모니인 셈이다.
그 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지점에 밀라노 대성당이 있다. 암브로시우스가 그토록 원했던 ‘믿음이 강물처럼 흐르는 시절’에 대성당이 건설된 것이다. 그래서 성 암브로시우스 성당이 신앙의 진리를 설법하는 석가탑이라면, 밀라노 대성당은 그 신앙을 증거하는 다보탑이다.. --- p.354, 「소박함을 곁에 둔 화려함」 중에서

사실 나에게는 성의를 둘러싼 이러한 오랜 진위 논쟁이 중요하지 않았다. 성의가 가짜로 판명 난다고 해도 문제 될 것 없다. 성의로 인해 흘린 눈물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걷게 했기 때문이다.
성경과 성의, 전례는 방편이고, 부활(새로운 삶)은 목적지다. 방편을 통해 의미를 깨달았다면, 그 방편은 버리는 것이다. 부활, 새로운 삶을 얻었다면 성경도, 성의도 버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편이 부활에 이르는 길을 돕느냐, 그러지 않느냐이다.
--- p.384, 「성의를 벗고 부활로」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성당을 중심으로 삶을 꾸린 옛사람들,
그 머나먼 역사와의 즐거운 대화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21세기의 우리가 들여다보는 것은 1천 년 전, 혹은 그 이전부터 성당을 중심으로 삶을 꾸려온 유럽 서민들의 생생한 삶을 엿보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우리의 돌잔치처럼, 새로 태어난 아기의 세례를 그곳에서 받았고, 일상의 대소사를 위해 그곳에서 기도했고,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예도 그곳에서 치렀다. 전쟁이 나거나 자연재해로 목숨이 위태로워졌을 때 종탑에 올라 피신했다. 성당은 그들에게 삶을 헤쳐나가는 실질적인 기반이었고, 신 앞에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동시에 기쁨과 슬픔을 이웃과 나누며 힘을 보태는 공간이었다. 우리의 조상들이 사찰의 탱화 앞에서 수없이 절을 했듯, 중세 이탈리아 사람들도 성당의 제단화 앞에서 수없이 두 손을 모았을 것이다. 머나먼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대화, 유럽 문화의 보고인 이탈리아 그곳과 이곳 한국의 대화가 『성당 평전』 안에 펼쳐져 있다.

몽골의 침략이 팔만대장경을 탄생시켰듯,
십자가 수난이 부활로 이어졌듯,
흑사병이 대성당을 가능하게 했다.


삶이 행복으로만 가득하다면 성당 건축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삶이 고통이기에 사람들은 성당을 건축했고, 은혜를 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할, 순교한 성인들의 이름을 불렀다. 프란치스코, 가타리나, 지미냐노, 세라피나, 안토니오, 클라라, 안드레아, 루치아 등의 이름을 따서 성당을 건축하거나 이름 지었고, 그 성인들의 유해를 자기 도시에 두기 위해 각축을 벌이기도 했다. 도시와 도시 간, 또는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가 성당 건축에 경쟁의 각을 세운 시기가 있었고, 이슬람을 상대로 한 대전 승리를 위해 수도자들이 기도의 힘을 결집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웅장한 건축과 그에 깃든 화려한 예술작품들을 자신들의 기도로 삼아 삶의 고난을 극복하고자 했다. 대성당은 그렇게 권력과 명예와 돈의 중심에 서서 신앙을 외치며 긴 세월, 몇백 년에 걸쳐 천천히 지어졌고, 이제껏 그래왔듯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좌절과 용기를 담고서 그 자리에 천천히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여행길……. 목적지는 성당이다. 성당에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 삶의 역사가 녹아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성당으로 향하는 길잡이를 ‘대화’로 리부팅했다. […] 현재와 대화하지 않는 성당 이야기는 죽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 나는 이 대화를 하기에 앞서 옷깃을 여몄다. 이탈리아 성당들을 여행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은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위대한 건축물 앞에 서면 티끌이 된다. ‘생각하는 먼지’가 된다. 생각할 줄 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티끌은 위대하게 존재한다. 성당이 고결한 것은 건축물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위대한 티끌들이 수백 년 공들여 빚어낸 삶의 역사이기 때문이다._「들어가는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