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테마여행 (2006~) (여행)/5.섬여행 32

인천 월미도 (2021년 10월22일 금요일)

당일치기 인천월미도와 영종도 구읍뱃터의 여행을 사진과 함께 글도 함께 써보고자 한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났다. 인천에서의 기억중 월미도를 를 이야기 하고자한다. 초등학교 입학 1년전 신학대학 선생님께서 6개월 정도 우리집에서 과외를 가리킨적이 있다. 동네아이들을 모아서 5명정도 과외를 가리키고 계셨는데 여름방학에 월미도로 소풍을 가자고 해서 월미도에 처음 발을 디뎠다. 당시 1960년대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월미도가 인천의 유명관광지 이지만 그당시에는 월미도주변이 아무것도 없고 오직 섬, 그자체 이었는데 육지에서 월미도 가는길은 염전이 많았다. 사각형모양의 염전의 작은 뚝방을 걸어서 월미도 같던 기억이 있고, 또하나의 기억은 소월미도의 추억이다. 지금은 소월미도야 일반인이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용도로 사용..

모도 해안둘례길

모도의 유래는 한 어부가 고기를 낚기 위해 그물을 쳐 두었는데 그물에 고기와 함께 띠(풀)가 섞여 있었다 하여 띠엄이라 불리다 띠 모자를서 모도로 불리게 되었으며, 장봉도의 경우 섬의 모양이 길고 봉우리가 많아 장봉도라 명명하게 되었다. 현재의 북도면은 신도, 시도, 모도 세 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며, 영종 삼못선착장에서 출발한 도선이 신도를 경유하여 장봉도에 40분 내외면 도착할 수 있어 마치 하나의 섬처럼 교통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천공항의 개항과 더불어 북도면이 도심과 고도의 접근성을 이루면서 옹진군에서 유일하게 도심에서 1시간 내외에 도착할수 있는 섬이 되어 이를 바탕으로 드라마 풀하우스, 슬픈연가, 연인 등이 촬영되어 새로운 관광지로서 조명 받고 있다.

시도에서 조망한 강화도 마니산

마니산 첨성단은 단군이 하늘에서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마니산에 쌓은 제단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둥근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여러번 고쳐 쌓았기 때문에 현쟁 본래의 모습은 찿을 수 없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사찰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부첨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의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정족산과 더불어 강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시도

북도면 신도.시도, 모도, 장봉도의 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강화현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넓고 비옥한 목초지를 바탕으로 말을 사육하는 국영목장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1914년 강화군에서 부천군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으며 1968년 장봉도에서 장봉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에는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도면을 이루는 섬인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 장봉도(長峰島)의 각 명칭에는 그 유래가 있다. 먼저 신도는 섬 주민들의 인심이 후하고 정직하여 서로 믿고 살아간다는 뜻을 믿을 신자를 사용하여 신도로 불리게 되었으며 강화도 마니산의 궁도 연습장에서 활 연습을 ..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신도

북도면 신도,시도, 모도.장봉도의 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강화현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넓고 비옥한 목초지를 바탕으로 말을 사육하는 국영목장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1914년 강화군에서 부천군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으며 1968년 장봉도에서 장봉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에는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도면을 이루는 섬인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 장봉도(長峰島)의 각 명칭에는 그 유래가 있다. 먼저 신도는 섬 주민들의 인심이 후하고 정직하여 서로 믿고 살아간다는 뜻을 믿을 신자를 사용하여 신도로 불리게 되었으며 강화도 마니산의 궁도 연습장에서 활 연습을 할..

인천 삼목항. 신도.모도.시도 항구.

북도면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 장봉도(長峰島)의 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강화현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넓고 비옥한 목초지를 바탕으로 말을 사육하는 국영목장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1914년 강화군에서 부천군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으며 1968년 장봉도에서 장봉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에는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도면을 이루는 섬인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 장봉도(長峰島)의 각 명칭에는 그 유래가 있다. 먼저 신도는 섬 주민들의 인심이 후하고 정직하여 서로 믿고 살아간다는 뜻을 믿을 신자를 사용하여 신도로 불리게 되었으며 강화도 마니산의..

영종도 구읍뱃터 둘레길

영종구읍뱃터 둘레길 구읍뱃터 앞에 유채꽃이 아름답다, 예전에는 갯벌 이었던 곳이다, 이제는 갯벌에 흙을 덮어 땅으로 변해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섰다. 바닷가 해변 뻘이보이는 곳은 예전 구읍배터 옆에 배 두세척 정도의 수리를 하는 작은 조선소가 있었는데. 이제는 해변 둘레길과 바이크도 이용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영종도

영종도 영종도는 나에게 참 친숙고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영종도는 행정구역이 지금은 인천광역시이지만 1960년대에는 옹진군에 속해있는 인천에서 가장 가까운 큰 섬이다. 섬에는 중산리, 운서리. 운북리. 운남리로 나뉘어져 있었도, 현재 사진으로 보이는 곳이 구읍 뱃터이다. 이곳을 통해서 인천으로 여객선이 하루에 다섯번 다녔다. 지금은 월미도에서 출항하지만 이전에는 연안부두에서 출항하고 1960~70대에는 인천 북항 (만수동지역)에서 출발하였다. 구읍뱃터에 내리면 영종도를 순회하는 버스를 타고 마을마다 버스를 내리고 (기억나는 마을이름: 동계.장춘 젖게. 전수,여담포) 영종 마을중에서는 가장 큰 마을은 전수이다. 1980년 까지만 해도 영종은 전기가 안들어와서 초롱불을 키고 사는 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