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전쟁교훈여행 (2010~) (여행) 172

노근리 평화기념공원 & 쌍굴다리

노근리사건 노근리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 부터 7월29일까지 5일동안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하가리 및 황간변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및 쌍굴 일대에서 미 공군기에 의한 공중폭격과 미 제1기병사단 소속 미군들의 무차별적인 기관총 및 소총사격에 의해 수백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지난 50여년의 세월동안 유족들의 끈질긴 진실 규명활동의 결과로 2004년에 ; 노근리사건 유족들의 끄질긴 진실 규명활동의 결과로 2004년에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희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근거해서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가해당사국인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2001년 1월, 노근리사건 피해자들과 한국 국민들에게 유감표명 성명서를 발표 햇습니다. 이는 ..

대전 산내 골령골

대전 산내 골령골은 ? 1)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 일간 법적 절차 없이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최소1,800며이상, 최대 7천여 명의 민간인 들이 집산 학살 당해 암매장된 비극적인 현장이다. 2) 이승만 정부는 1950년 9월 말 북한군이 퇴각하자 민간님 수 천여명을 부역협의(비상사태하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위반혐의)로 대전형무소에 수감했고 이들중 일부는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총살 됐다. 3)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도 여순사건 관련자들이 이 곳에서 총살됐다. 4)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500여 명이다. 가해자는 ? 충남지구 CIC (방첩대),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으로, 이들은 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북한군 남하 시 북한군이 형무..

경기도양평군 지평의병. 지평리 전투기념관 (전시관)

지평의병 민족의 암흑기에 횃불처럼 타올랐던 항일의병의 효시 일제에 의한 1895년 10월 명성황후 시해와 그해 11월 단발렬 공포 후 지평출신의 이춘영과 포수 400여명이 국가의 위기를 인식하고 전국 최초로 의병을 창의하였다. 지평의병은 최초의 을미 의병으로 인근 강원지방과 충북지방의 의병병기의 도화선이 된 척사의병이다 지평리전투 중공군 참전후 유엔군의 첫 승전보 미 제 2사단 23연대 (프랑스 대대 배속)가 1951년 2월13일부터 16일까지 지평면 일대에 중공군 3~5개 사단 규모의 집중공격을 막아낸 방어전투, 유엔군이 중공군과 싸워 얻은 작전적. 전술적 승리이다. 지평리 전투이후 사기가 충만하여 38도선 희복을 위한 반격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한국 최초 조립전차 M48A3K M48A3K 전차는 ..

육군박물관 (조선시대 군사)

갑옷 갑옷은 전쟁에서 사람과 군마를 적의 창검이나 화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옷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갑옷은 청동기시대부터 가죽과 뼈. 나무조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존하는 유물은 없다. 삼국시대의 갑옷은 크게 찰갑과 판갑으로 나뉜다. 작은 갑찰들을 이어 만든 찰갑은 유동성이 있어 기마전투에 적당하였고,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판갑은 보병전투에 유리했다.현존하는 고려시대의 갑옷은 정지군인의 경번갑이 있다. 이를 통해 결번갑이 고려시대에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다. 또한 를 통해 갑찰을 연결하여 만든 두루마기형 갑옷을 사용했음을 알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금속제 혹은 가죽제 마늘을 가죽 끈으로 연결한 찰갑이 일반적이었으며, 쇄자갑, 경번갑, 두정갑 등이 사용되었다. 그 밖에도 목면으로 만든 면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