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자연도(현재: 영종도)의 삶 자연도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는 중국과의 무역 거점이자 조운수로 (漕運水路)의 역할을 수행하여 송의 사신과 상인들을 접대하던 객관 '경원정'이 있었다. 다라서 자연도에 주둔하던 수군과 말 목장 관리인, 소금을 생산하여 수익을 얻던 주민까지 적지 않은 수의 주민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한 고려시대 무신정권 이후 조선초기까지 유배지로 쓰였다. 당시 섬 주민들은 주로 막집(幕室)이나 초가집에 거주했다. 그러나 조선초, 고려말부터 이어진 왜구의 침략으로 섬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켜 섬을 비우고, 국영 말 목장을 설치하는 정책에 다라 적은 수의 주민들만이 살게 되었다. 수군(水軍) 목자(牧子) 염부(鹽夫)등의 집이 30여 호였다는 기록이 세종실리지에 전한다. 병인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