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인물사 연구 (책소개)/2.한국인물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 조선의 얼

동방박사님 2022. 12. 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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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칼보다 강한 붓으로
‘조선의 얼’을 지킨 정인보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서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한 김삼웅. 그가 이번엔 위당 정인보의 삶과 업적을 이야기한다. 학문적 성격이 강하지 않아 정인보의 삶과 철학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정인보는 칼보다 강한 붓으로 민족의 혼과 얼을 지켜냈다. 민족정신을 지키는 것은 곧 나라의 근간을 지키는 것이기에 그 일에 평생을 다했다. 하지만 현재는 전기 한 권도 없는 실정이니 그에 관한 연구와 대접은 너무 초라한 편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위당 그의 일생과 사상을 담아내고자 펜을 들었다. 글을 통해 살아난 정인보의 삶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이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한 걸음걸음이었다.
특히나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사에서의 중요한 사건인 ‘임시정부봉대 혁명’에서 정인보가 부위원장으로 앞장섰단 사실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어 자료적 가치도 높다.
이 책이 정인보를 바로 알고 그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조선의 얼’을 현대인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목차

여는 말_ 위당 정인보 선생을 알아야 할 이유

1장 학문의 가문에서 태어나
2장 양명학 전습과 동제사 창립 참여
3장 한말 지배층과 비판지식인의 맥락
4장 초야에서 연희전문대 교수로
5장 민족언론인의 맥을 잇다
6장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살리기운동
7장 국학 탐구에 열정을 쏟다
8장 양명학연론 집필
9장 불후의 역저 ‘조선의 얼’ 쓰다
10장 ‘조선사연구’에 심혈 기울여
11장 시조문학의 우듬지가 되다
12장 신채호 회상과 그의 사학 평가
13장 김태준의 이데올로기성 비판
14장 ‘얼’의 매운향기로 각종 저술
15장 명승지 기행문의 전범 남겨
16장 훼절의 시대 시골 은거, 지조지켜
17장 해방의 감격 속에서
18장 국학대학장, 초대 감찰위원장 지내
19장 4대 국경일 등 노랫말 짓다
20장 납북 도중에 사망, 평양재북인사 묘역에
21장 전문가들의 촌평

닫는 말_ 글쓴이의 덧붙이는 말
 

저자 소개 

저 :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
 

출판사 리뷰

정인보를 설명하는 수많은 표현

한국의 마지막 강화학파, 최후의 양명학자,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언론인, 신채호를 잇는 민족사학자, 전통적인 한문학자, 고아한 우리말로 조선의 정한을 담은 시조작가, 4대 국경일 노랫말 작사자, 동제사 발족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조선의 마지막 선비, 독야청청의 지조인….
이렇게 위당 정인보를 설명하는 표현은 아주 많다. “양명학연론”을 저술해 ‘양명학’하면 정인보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고 양명학자로서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또한 다산에 대한 연구로 조선 고유의 실학사상을 정립하기도 했다. 후대에 국어국문학 사전에도 실릴 만큼 국문학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4대 국경일의 노랫말과 시조 작품을 보면 정인보의 애국정신, 학문, 역사인식, 지절, 문장력 등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정인보의 이런 삶을 가만히 보여준다. 결코 찬양조가 아니다.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한 수많은 자료를 탐독하고 평론을 덧붙이는 또 하나의 ‘김삼웅 표’ 평전이다. ‘위당에 관한 연구가 깊지도 않고 너무 넓고 높은 그의 학문세계와 지행합일의 실천사상의 언저리에도 머무르기 어려운 처지임에도 감히 붓을 들어 평전에 도전하기로 작심’했다며 겸손하게 서두를 열었지만, 그의 붓 끝에서 살아난 정인보의 삶은 객관적이고도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정인보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자료임이 분명하다.

칼보다 강한 붓으로 일제에 대항하다

“나를 춥고 굶주리게 할 수는 있어도 나의 얼을 빼앗아가지는 못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내선일체’를 모토로 민족말살정책에 몰두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이 조선의 민족정신을 뒤흔들고자 무던히도 시도했던 것을 보면 하나의 민족이 가지는 정신과 얼은 나라와 국민을 지탱하게 하는 근간이다. 정인보는 이런 얼의 중요성을 진즉에 깨달은 사람이었다. 총독부가 조선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조선의 역사를 뿌리부터 왜곡하는 “조선반도사”를 편찬할 때 이에 맞서 정인보는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집필했다. 이는 조선사를 ‘얼’이라는 주제로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일부는 그가 국내에서 직접 항일운동 전선에 나서지 않았다며 용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인보는 ‘칼보다 강한 붓’으로써 평생 민족의 혼과 얼을 탐구하고 지켜냈다. 또한 처음으로 ‘국학’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여 이 땅에 ‘국학’의 뿌리를 내리고 품격이 높은 국한문 혼용의 산문을 쓰고 고아한 한국어로 시조를 지었으며 민족의 정신과 뿌리를 다루는 국사, 국문학 등에 힘을 쏟았다. 이에 따라 새 나라의 건설에는 민족의 얼이 깃든 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동지들과 국학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4대 국경일의 노랫말을 지어 그의 애국정신, 역사인식, 문장력을 듬뿍 담아내었다.
이처럼 그의 생은 칼로 싸우는 투사의 삶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조선의 뿌리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니 그가 항일운동 전선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한때 열정적인 투사였다가 쉽게 변절하는 사람들도 쉬이 보이는 시대에, 국내에서 꿋꿋하게 민족진영의 빈자리를 지키며 일제에 대항한 정인보의 의지는 어느 시대건 귀감이 될 만한 모습이었다.

임시정부봉대 혁명
그 중심에 정인보가 있었다


정인보가 늘 글만 쓰는 유약한 선비는 아니었다. 새 나라의 건국에 앞장선 지도자의 면모도 있었다. 감투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신생 정부수립 초기에 관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였을 것이다. 국학대학을 설립해 초대 학장에 취임하고, 이승만 정부의 초대 감찰위원장 시절 이승만 측근의 비리를 파헤치다가 1년여 만에 사표를 던지고 뛰쳐나온 사실이나, 명예나 궁핍함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간 결기를 보아도 그가 뒤에 숨어 글만 쓴 나약한 선비는 아니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그동안 정인보의 행적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임시정부봉대 혁명위원회’에서 정인보가 부위원장을 맡아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임정봉대의 목적은 ‘미군정을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세운다는 것’이었으나 결국 이 거사는 불발로 끝났다. 아마 성사되었다면 한국 현대사를 물굽이가 바뀌고 정인보의 인생행로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선천적으로 정치나 권력에 맞지 않았던 정인보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한국 현대사에서 큰 획을 그었을지 모를 정치 사건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이는 새로 수립되는 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잡아 민족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했던 그의 사명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정인보를 연구함에 있어 훌륭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칼보다 강한 붓으로 민족을 지켰지만
돌아온 것은…


해방 후 이승만 정권과 길항 관계가 유지되고, 6·25 전쟁 중에 납북되면서 그의 유족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이승만 정부가 납북자 가족들을 심하게 억압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가족은 어렵게 장만하여 살고 있던 집을 자유당의 실력자 임철호에게 빼앗기는 수난을 당했다. 이승만 정부의 농림부장관 임철호가 권력을 빙자하여 절취한 것이다. 정인보는 납북되어 개성으로 가던 중 낙오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하나 자세한 것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가 많은 업적을 남김과 더불어 인품이나 학문의 깊이에 있어서 뭇사람의 존경을 받았음에도 그에 관한 연구와 대접은 너무 초라하고 미약한 편이다.
현대에는 정인보가 강조했던 ‘민족의 얼’을 잊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민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자칫 국수주의로 빠질 위험은 있으나, 우리의 문화·역사·전통을 부정함 역시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않아야 대한민국은 존속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전이 정인보를 바로 알고 그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조선의 얼’을 현대인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