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인물사 연구 (책소개)/2.한국인물평전

심산 김창숙 평전

동방박사님 2022. 12. 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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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칼을 든 선비’ 남명 조식의 선비 정신을 이어받은 심산 김창숙 선생은 시대의 암흑기에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정도를 당당히 걸어온 참선비다. 일제강점기에 격렬하게 항일 독립 투쟁을 벌이고, 해방 후에는 치열하게 반독재 민족통일운동을 벌인 애국지사다. 이 책은 여든네 살의 생애를 외세와 불의에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일관해온 선생의 행동과 정신을 담았다.

선생은 구국 전선에 뛰어들어 처절하게 싸웠다. 일제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해 두 다리가 마비되어 앉은뱅이로 살아야 했지만, 꼿꼿함으로 통일조국수립운동과 반독재 투쟁을 벌였고 유림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성균관을 수호했다. 일제 청산을 제때에 하지 못한 탓에 왜곡된 역사관이 ‘당당’하게 주장되는 오늘날, 심산 선생의 서릿발 같은 삶은 우리 정신을 일깨우는 따끔한 가르침을 남긴다.

목차

일러두기
책머리에

제1장 한국의 '마지막 선비' 그 저항의 불꽃
'마지막 선비' 김창숙 / 을사늑약 체결에 분노하다 /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하다 / 중국에서 벌인 항일 구국 투쟁 / 나석주 의사의 거사와 피체 / '단정수립반대운동'과 성균관 복원 / 노구 이끌고 반독재 투쟁 선봉에 / 조선 선비의 상징으로

제2장 출생과 학문의 도정
한미한 가정의 고집이 센 아이 / 방종한 생활 접고 학문의 길에 / 한주학파와 남명학파 세례받아

제3장 기우는 나라 붙들고자 발버둥
단연회 조직과 국채보상운동 / 역적을 치지 않는 사람도 역적이다 / 일제 헌병대에 끌려가 협박당하고 / 고향에 사립학교 세워 민중교육

제4장 「파리장서」주도
좌절과 통음의 세월 /「파리장서」 휴대하고 망명길에 / 파리행 중단하고 상해 체류

제5장 중국에서 독립운동과 국내 잠입활동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 제1, 2차 유림단 사건 주도 / 비밀결사 신건동맹단 조직 / 나석주 의거 주도하다

제6장 앉은뱅이 되도록 고문받아
왜경에 피체되어 '환국' / 생사를 뛰어넘은 옥중 투쟁 / 무기 구형에 14년 징역 선고 / 대전 형무소에서 옥중 투쟁 / 『일선융화론』읽고 산산이 찢어

제7장 7년 만에 석방되어 시작詩作으로 울분 달래
백양사에서 수양 / 백양사 시절의 우국 시편

제8장 암흑기에 외롭게 지킨 고절
거대 감옥으로 변한 조선 천지 / 어머님 묘소 앞에서 3년 추상 / 창씨개명 거부하며 저항 / 선비의 길, 지절의 길 / 둘째 아들, 망명중 불귀객

제9장 해방은 되었지만 새 압제는 시작되고
암흑천지에 새날이 오다 / 그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나? / 옥중에서 맞은 해방의 소식 / 행정권 이양받은 여운형 만나 / 남한의 군정 수립과 신탁통치안 / 다시 만난 이승만에 실망

제10장 찬반탁의 격랑 속에서
임정 요인 위문받고 임정의 건국 노선 지지 / 정파에 초연하면서 반탁운동에 앞장서다 / 공산당 질타와 반탁 담화 발표 / 이승만과 갈등 관계 심화 / 미?소공위 관련 외로운 투쟁

제11장 성균관대학을 설립하다
유림의 친일·부패 세력 숙정 / 유림계 설득하여 유학대학 설립 / 젊어서 싹튼 교육사상

제12장 분단과 단정체제 굳어지고
이승만 단정 수립 충격 발언 / 남북협상론 제기와 한국전쟁 예언 / 북행길 김구 만나 평양회담 조언

제13장 이승만의 폭정에 맞서다
반분단 반독재 투쟁의 선봉 / 윤봉길 의사 14주기 추념사와 두 개의 정부 / 김구의 서거와 '반귀거래사' /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 이 대통령 「하야 경고문」으로 투옥

제14장 고독한 선비의 길
남들이 가지 않는 길 / 경무대에 친서 보내 이승만 질타 / 성균관대학에서 쫓겨나 / 이승만 타도에 온 몸 던져 / 청빈한 실천 유학의 표상으로

제15장 4월 혁명 뒤로 하고 백발청안 지사 영면하다
마침내 쟁취한 4월 혁명 /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 사회장으로 영결식 거행 / 후세 학자들의 평가 / 심산 선생 일화 / 심산 선생 비문과 조가

연보
심산 관련 참고 문헌
 

저자 소개

저 :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
 

출판사 리뷰

항일 투쟁과 민족통일운동에 바친 참선비의 삶

한민족이 일제에 항거하여 일으킨 거족적 민족운동인 3·1운동.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지만 여기엔 유림 대표가 빠져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유교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유림 대표가 빠져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때 이를 두고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통곡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심산 김창숙이다. 사실 심산은 「기미독립선언서」에 유림 대표로 적극 참여하려고 했으나 어머니의 병환으로 곁을 떠나지 못하다가 때를 놓쳐 서명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심산은 새로운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로 마음먹고 파리장서사건, 이른바 제1차 유림단 사건을 일으킨다. 영남과 호서 134명의 유림 대표가 서명한 「파리장서」는 심산이 준비했으며, 이를 휴대하고 단신으로 상해를 거쳐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하려고 했으나 이미 신한청년당 대표로 선정된 김규식이 독립운동 단체의 대표로 파리에 파견되어 있어서 그를 통해 전달하기로 한다. 3월 말 국내에도 각 학교에 「파리장서」를 우송하려고 했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대다수의 유림들이 일경의 잔혹한 고문으로 죽거나 처형당하였다. 바로 제1차 유림단 사건이었다.

일제 강점기 격렬하게 항일 독립 투쟁을 벌이고, 해방 뒤에 치열하게 반독재 민족통일운동을 벌인 애국지사인 심산 김창숙. 그는 한국의 마지막 선비였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의 근현대 인물 평전 시리즈 세 번째 책인 『심산 김창숙 평전』은 일제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 끝에 두 다리가 마비되어 평생토록 앉은뱅이로 삶을 보낸 선생의 일대기를 오롯이 그려낸다. 심산은 「독립선언서」에 유림 대표가 빠졌다며 유림 대표들을 모아 파리장서사건을 일으키고, 국내의 독립운동 열기가 식었다며 청년결사대를 국내에 잠입시켜 나석주 의사 의거를 일으킨다. 또한 중국에 망명해 있다가 독립운동 기지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에 몰래 잠입하기도 했으나, 훗날 심산이 비밀리에 국내를 다녀간 것이 밝혀져 600여 명의 유림 인사들이 고문과 옥고를 겪는 제2차 유림단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심산은 우리 민족이 고난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몸은 물론 가정도 돌보지 않고 구국 전선에 뛰어들어 처절하게 싸웠다.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에도 의연히 맞서는가 하면 일제 관리들을 감복시켜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기도 했다. 한편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의 『일선융화론』의 첫 몇 장을 읽고 책을 던지며 “일본에게 붙어 버린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심산은 신탁통치 반대와 국토 분단인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단호하게 반대하며 투쟁한다. 그러나 자신의 뜻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정치상황에서 심산은 유림을 재건하기로 마음먹고 성균관을 복원해 오늘날의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한다. 그러나 정치적 대립각을 세웠던 이승만 독재 정권은 이승만 하야를 요구한 심산에게 정치적 보복을 가해 성균관에서 쫓아낸다.

심산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이 있으면 끝까지 맹렬하게 투쟁하는 진정한 참선비의 삶을 산 것이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의 몰락을 지켜본 심산은 1962년 5월 10일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올곧은 선비 정신으로 반외세·반분단·반독재 투쟁에 앞장서온 심산은 세속의 부귀를 탐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청렴·강직한 지조를 지켰다. 아직도 친일파들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지금, 심산의 선비 정신은 우리의 청산 의지에 힘찬 기를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