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인물사 연구 (책소개)/2.한국인물평전

초강 이범석 평전 - 분단 극복을 위해 헌신한 외교관

동방박사님 2022. 12. 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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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불행했던 현대사의 단면
그 시간을 살았던 외무장관 이범석의 생애

대한민국 외교의 초석을 다진 이범석 전 외무장관의 생애를 되돌아보는 책.이범석은 평생을 나라를 위해 바쳤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헌신하고 외교관으로서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활약은 1983년 돌연 멈추고 만다. 아웅산 묘지에서 일어난 테러로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외교력을 갖추고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한 데는 이범석의 공로가 빠질 수 없다. 그래서 그의 희생이 더욱 뼈아프다.

일제 치하 평양에서 태어난 그의 생애는 굴곡진 우리 현대사 그 자체였고 그의 마지막도 우리가 새겨야 할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 하지만 35년이란 세월에 그날의 아픈 기억은 점차 흐려진다. 이 책은 이범석의 생애를 알리는 의미가 있지만 이를 계기로 그가 어렵게 헤쳐 간 지난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뜻도 함께한다.

목차

추천사
이범석 장관님을 기리며_반기문(전 유엔사무총장)
언제나 그리운 사람, 이범석 형_김동길(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외유내강의 리더십을 생각하며_공로명(전 외교통상부 장관)

머리글
불행했던 현대사의 단면을 생각한다

제1장 일요일의 비보(悲報)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국립묘지/ 북한 화물선의 궤적/ 진혼의 나팔소리/ 아내 이정숙의 예감/ 엇갈린 운명들/ 스리랑카 대사관의 급보/ “서울에서 한 잔 하자”던 약속/ 황장엽의 증언/ 순방국 결정의 수수께끼/ 이범석의 취중 욕설/ 미얀마를 꼭 가야만 했는가/ 공개된 외교문서의 암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증언

제2장 평양에서 보낸 청소년기
장난꾸러기 도련님/ ‘평양 부자’였던 아버지/ 교육사업에 나섰던 이재순/ 어머니 황 인성 여사/ 꿈을 키웠던 평양고보 시절/ 친구들의 ‘호위꾼’/ 중일전쟁의 와중에서/ 이윤영의 딸 이정숙/ 남산현교회 사택/ 도쿄 유학을 다녀와서/ 서기산 고갯길을 뛰어넘어/ 조국 광복을 맞아

제3장 광복을 맞았으나
보성전문 편입생으로/ 조광호텔 지배인/ 이정숙과의 재회/ 사회부 말단 공무원으 로/ 번민에 찬 연애편지/ 민족의 비극, 6.25 전란/ 적십자 활동에 뛰어들다/ 미군 함 정에서의 결혼식/ 릿지웨이 장군의 초청/ 유엔군 적십자대표단/ 정전협정 이후/ 판 문점 포로교환/ 공산당의 끈질긴 생리/ 대동운수 하역회사/ 청소년적십자의 발판

제4장 본격적인 적십자 활동
청소년부장 직책을 맡아/ 미국, 캐나다 적십자 방문/ 서울적십자 사무국장/ 양수리 청소년 수련장/ 청년대원들의 ‘왕초’/ 뉴델리 첫 국제회의 참석/ 6.25 당시 납북인사 문제/ 일본의 재일교포 북송 흉계/ 제네바에 파견된 이범석/ 오무라 수용소 인권문제/ 과로로 입원하다/ 제네바의 ‘꺽다리 3인방’/ 니이가타 항구의 비극

제5장 외무부 시절
늦깎이 외교관으로/ ‘아웃사이더’로서의 눈총/ 국제기구과장을 맡아/ 유엔대표부 참사관으로/ “당신은 어느 쪽 소속이냐”/ 번역 아르바이트까지/ 의전실장의 중책/ 존슨 대통령의 방한/ 텍사스 농장에 초청받았으나/ ‘월남전 외교’의 와중에서/ 워커 대사와의 인연/ 본스틸 사령관 ‘계란 배달’/ 꿈을 키웠던 대동농장/ “이재에 밝았다”는 평가/ ‘갈비짝 선물’ 사건/ 태권도 사범들에게 여권 발급/ ‘정인숙 여인’ 사건의 유탄/ 튀니지 대사로/ 북한 친선사절단장 김태희

제6장 평양으로 가는 길
적십자회담, 그 시대적 배경/ 생이별을 각오한 유서/ “기어코 가야만 하는 길”/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한적십자 대표 김태희/ 을밀대야, 모란봉아/ 대동강문화회관 본회담/ 옥류관 만찬의 인사말/ 만경대에서 발휘된 장난기/ 박성철과의 술자리 언쟁/ 서울, 제2차 본회담/ 경회루 환영연/ 본회담 막전막후/ 워커힐 ‘캉캉쇼 만찬’/ 이범석의 전략 메모/ “빌딩들을 옮겨오느라 무척 힘들었소”/ 그 이후의 회담/ 수석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다

제7장 인도 대사에서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한국-인도 친선협회/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뉴델리의 반공포로들/ ‘붉은 요새’ 신축공사/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희망 학교’와 ‘굿모닝 마담’/ 월맹 억류 외교관들 석방교섭/ ‘1대 70’의 교환 비율/ 중앙정보부와의 갈등/ 협상이 진전되는 듯했으나/ 회담 결렬 선언/ 월맹과의 관계개선 노력/ 굿바이, 뉴델리/ 통일원장관으로 기용되다/ 간부회의 기록/ “‘북괴’라는 용어 쓰지 말라”/ 전두환의 ‘1.12 제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열정/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공안 정국에서의 고충

제8장 외교정책 사령탑에 오르다
‘한일 경제협정’의 돌파구/ 외무장관으로서 첫 국무회의/ 헤이그 국무장관과의 회담/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 나카소네의 방한/ ‘김대중 납치사건’의 후유증/ 슐츠 국무장관의 서울 방문/ 거침없는 유모어/ 호주 헤이든 장관의 방한/ ‘공관장 채점제’ 논란/ ‘해외협력청’ 신설 구상/ 노신영과의 갈등/ 외무부 예배반/ 시동을 건 ‘북방정 책’/ ‘가지 않은 외교’의 길/ 중공 민항기 불시착 사건/ KAL 007기 피격사건/ 미얀 마 순방 준비/ 출국 전날, 가을비/ 눈물의 영결식

내가 만난 이범석(가나다순 수록)
강신성(전 칠레 대사)
김무선(멕시코 유카탄 한글학교 교장)
김성엽(전 리비아 대사)
김시관(청년적십자 봉사단체 봉우회 회원)
김주훈(전 국제교류증진협회 이사)
안응모(전 내무부 장관)
윤우(의병정신 선양중앙회 명예회장)
이복형(전 멕시코 대사, 중남미문화원 관장)
이성춘(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이재춘(전 러시아 대사)
정성근(전 통일원장관 비서관)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허영섭
 
언론인. 현재 〈이데일리〉 논설실장.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저널리즘스쿨에서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거쳐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이력도 있다.
 
 

책 속으로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범석이 학교에 간다며 아침에 나갈 때는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나갔으나 저녁이 되어 셔츠 차림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입고 나갔던 점퍼를 어디에 벗어 던졌는지 추위에 떠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누님이 모처럼 마음을 먹고 사준 겨울 점퍼였다. 이상하게 생각해서 몇 차례 물어보자 그제서야 친구가 방에 군불도 못 땔 만큼 처지가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는 선뜻 벗어주고 왔다며 털어놓더라는 것이다. 금석 누나가 2014년 타계하기까지 생각 날 때마다 다른 식구들에게 들려주던 일화다.
--- pp.114-115

일단 그의 연설부터가 뛰어났다. 대학 시절부터 평소 열심히 갈고 닦은 영어 실력 덕분이었다. 워싱턴 D.C. 오찬 모임에서는 그의 연설이 당초 45분으로 잡혀 있었으나 끝내놓고 보니 한 시간도 넘겨 있었다. 원고도 없는 즉흥 연설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준 데다 줄지어 악수를 청하는 바람에 30분 이상이나 인사를 받아야 했을 정도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한국 대사의 연설을 듣고 감격했는데, 오늘 당신 연설이 더 훌륭했다”고까지 찬사를 늘어놓았다. 자기 동네에 와서 연설을 해 달라는 초청도 이어졌다.
--- pp.175-176

궁금한 나머지 다른 환자들이 이정숙에게 넌지시 물어보기까지 했다. 미국 남편들이 아내에게 잘해 준다고 소문나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도 이범석의 정성스런 병간호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다른 세 명의 환자들이 모두 미국 아녀자였다. 그들이 아내에 대한 이범석의 정성스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을 것이 틀림없다. 병실에서 이뤄진 현장 외교였다.
--- p.242

대화 도중 북한 대표단 가운데 어느 한 명이 참다못해 말문을 열었다.
“대단들 하십네다. 저토록 많은 차량을 동원하느라 얼마나 힘 드셨겠소.”
노골적으로 빈정대는 투였다.
그러자 이범석이 바로 말을 받았다.
“예,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 빌딩들을 옮겨오는 게 훨씬 더 힘들었지요.”
빌딩을 옮길 수 없듯이 자동차도 일부러 동원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순식간에 발휘된 기지였다. 이 한마디에 북측 대표단의 분위기는 싹 가라앉았고, 옆에 있던 수행원과 기자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범석의 뛰어난 언변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일화에 속한다.
--- pp.359-360

그렇지만 외무장관으로서 이처럼 적극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범석에 대한 부처 내부의 평가는 그렇게 긍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정적인 편이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경쟁관계에 있던 다른 간부급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부하 직원들에게도 후한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인기가 없는 장관’이었다. 전적으로 그의 성격 탓이었다. 자유분방하고 재치가 넘치는 기질이었건만 업무에 관해서는 엄격하고도 까다로웠다. 각 과별로 작성되는 업무일지를 직접 체크하며 세부적인 추진 사항까지 자세히 점검했을 정도다. 잘못이 발견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차없이 질책을 퍼부었다. 선이 굵었으면서도 일에 있어서만큼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심하고 꼼꼼했다.
--- p.482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한 이범석의 생애
1925년에 태어난 이범석 전 외무장관의 생애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함께한다.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스무 살이 되던 해 광복을 맞았으나 남북이 갈라지면서 실향민 신세가 되었다. 6·25전쟁 때 부산 피난 중 적십자사에 몸담아 수행했던 유엔군 포로송환 교섭 업무나 일본의 북송교포 송환 저지 노력에도 굴곡진 우리 현대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격동의 근현대사’라는 말이 있듯, 이후에도 이범석의 생애는 순탄하지 않았다. 4·19혁명 직후 외무부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신생국의 비애를 겪어가며 분단 현실에 부딪쳐야 했다. 튀니지 대사에서 돌아온 뒤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지금껏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이산가족 상봉 회담의 첫 초석을 놓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도 대사 시절에는 베트남에 억류됐던 우리 공관원들의 송환을 위해 북측 대표들과 회담 테이블에 마주앉기도 했다. 그 자신이 실향민인 입장에서 마음 편치 않은 나날이었을 것이다.
통일원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치며 차근차근 외교적 성과를 쌓은 이범석은 능력을 인정받아 외무장관의 자리에 오르는데, 결과적으로는 그의 생애를 마지막 장식하는 활동 무대가 되었다. 북한의 공작으로 인한 아웅산 묘지 테러사태로 목숨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치하에 태어나 고난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은 그의 마지막도 결국 우리 역사의 그늘진 사건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뛰어난 외교적 혜안, 부드럽지만 강한 리더십
기록과 기억으로 만나는 이범석

1983년 10월 9일. 이범석 전 외무장관이 아웅산 묘지에서 일어난 테러로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3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업무에 있어서는 철저하고 엄격한 한편, 인간적으로는 매우 따뜻하고 정이 많았다는 것. 특히나 아내 이정숙과의 러브스토리는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심성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원고를 쓰기 시작하고 2년여 만에 탄생하였다. 저자인 허영섭은 “이 장관 위주로 글을 쓴 게 사실이지만 그러면서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아울러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역사 자료 검색은 물론, 이범석 장관 생전에 교분을 쌓으며 지냈던 많은 이들과 인터뷰하며 글의 바탕을 모았다. 또한 언론계에 오랫동안 몸 담으며 다듬어온 날카로운 펜촉으로 이를 엮어 서술했으니 글이 흡입력을 가짐은 물론 객관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특히 책의 앞뒤에는 각각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공로명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추천사와 각계 인사들의 회고담(내가 만난 이범석)이 수록되어 있어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이범석 전 장관의 생전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가슴에 새겨야 할 역사의 한 장면

앞서 이야기했지만, 일제 치하 평양에서 태어나 실향민 신세가 된 그의 생애는 굴곡진 우리 현대사 그 자체였다.
적십자사에 몸담았을 때나 외무부로 자리를 옮겼을 때 한결같이 남북관계 개선에 헌신했고 외교관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한없이 약했던 당시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외교력을 갖추고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초석이 다져진 데는 이범석의 공로가 빠질 수 없다. 그래서 그의 희생이 더욱 뼈아픈 것이다.
하지만 35년이란 세월에 그날의 아픈 기억은 점차 흐려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그 비극적 사태에 대해 아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범석의 생애를 알리는 의미가 있지만 이를 계기로 그가 어렵게 헤쳐 간 지난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뜻도 함께한다.
요즘 남북 사이에 훈풍이 분다. 갈등을 극복하고 마음이 하나 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 민족 분단의 비극인 아웅산 사태는 반드시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역사의 한 장면이다.
 

추천평

이 장관님은 평생을 나라를 위해 바치신 분이다. 업무에 관한 한 매우 치밀하셨고, 부하들에게는 엄하셨다. 그렇다고 엄하시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너그러울 때는 한없이 너그러운 면모를 보여주셨다. 유머도 뛰어나셨고, 통도 매우 컸던 분이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나는 현충원에 마련된 형의 묘비에 비명을 쓰면서 이렇게 한마디 적었습니다. 그가 갈라진 국토의 통일을 위해 진력한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평양 가는 열차의 첫 기적소리 울릴 때 일어나세요”라고 누워 있는 형의 부활을 기대하였습니다.
- 김동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내가 접촉했던 이 장관은 외유내강한 분이었다. 실제로 그와 접촉이 있었던 많은 분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마음을 터놓고 상의할 수 있는 형님 같은 분으로 대하곤 했다. 마음 따뜻하고 인간미 가득한 분이었다.
- 공로명 전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