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사회학 연구 (책소개)/6.아나키즘

놈 촘스키 - 제국주의 비판에 앞장서온 아나키스트

동방박사님 2022. 12. 1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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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국주의 비판에 앞장서온 아나키스트
“우리는 어떤 개혁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학교가 경쟁을 강조하고 부추기는 것은 학생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촘스키를 아나키스트라고 하면 싫어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생각해 혼란과 폭력과 분열 등을 연상한다. 또 무정부주의자들이란 ‘기본적인 규칙도 없는 무질서한 사회’를 만들려는 헛된 꿈을 꾸는 몽상가들이라고 생각한다. 무정부주의가 촘스키 사상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하면 ‘촘스키를 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놀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촘스키에게 아나키즘은 명백한 대안을 갖고 있는 정치 이론이다. 사람들은 아나키즘에 대해 이론으로서는 좋지만 실천은 불가능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적어도 촘스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촘스키는 아나키즘의 진실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아나키스트의 관점에서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비평한다. 여느 아나키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촘스키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권력과 그 국가권력을 떠받치고 있는 허울 좋은 대의 민주주의와 선전 체제를 비판한다.

 

목차

머리말 : 왜 지금 촘스키인가? · 005

금욕주의자와 아나키스트 · 019
미국과 미국인을 비판하다 · 027
아나키스트로 성장하다 · 035
언어학을 공부하다 · 045
언어학이란 무엇인가? · 049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 · 055
인간의 본성과 윤리 · 065
촘스키의 정치적 활동 · 069
촘스키에게 사상이 있는가? · 079
촘스키는 아나키스트인가? · 083
촘스키의 고전적 자유주의 · 091
촘스키의 행동 아나키즘 · 095
오웰과 러셀 · 103
미디어와 교육 통제 · 109
촘스키의 정치적 강연 · 117
미국의 권력과 새로운 관료들 · 121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분쟁 · 127
남미에 대한 미국의 만행 · 131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 137
세르비아 분쟁 · 141
9·11 · 145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다 · 149
점령하라 운동 · 153
맺음말 :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를 결합하자 · 157

촘스키의 저술 목록 · 166
 

저자 소개

저 : 박홍규 (朴洪圭)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법대·영국 노팅엄대학 법대·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학·고베대학·리쓰메이칸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
 

책 속으로

촘스키는 인간을 기계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 개개인을 복잡한 독립체로 본다. 개인을 존중하기에 어떤 집단이나 당파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물론 가족이나 직장이 있지만, 그 구성원으로서도 집단에 대한 어떤 충성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속했던 MIT에 대해서는 그것이 군산복합체의 온상이라는 등 엄중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그는 유대인이지만 유대교를 믿지도 않고 이스라엘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준엄한 비판을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미국인이지만 미국을 이 세상 사람 누구보다도 철저히 비판한다.
--- p.33~34, 「미국과 미국인을 비판하다」

촘스키의 이론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인지과학, 컴퓨터공학, 생물학 등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촘스키는 1980~1990년대에 모든 분야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였다. 또 역사상의 모든 저술가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10명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마르크스와 동급의 인용 빈도를 보이며, 생존해 있는 지식인들 중에는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 p.62,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

촘스키에 의하면 지식인들이 하는 일은 지식을 독점하고 개인적인 특권을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간단한 것을 어렵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수많은 대중매체와 수많은 지적 유희를 통해 더욱더 과장된다. 촘스키는 이런 현상은 좌파 지식인을 비롯해 현대의 지식인들이 자신들만의 위대한 경력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권력을 만들어 일반 대중을 주변화하고 일반 대중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려는 욕망에서 생긴 것이라고 본다.
--- p.80, 「촘스키에게 사상이 있는가?」

촘스키와 허먼에 의하면 지배계급은 뉴스 필터(news filter)로 구성되는 선전 모델(propaganda model)을 사용해 여론을 조작한다. 첫 번째 뉴스 필터는 매스미디어의 규모와 소유권과 이익의 추구다. 매스미디어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익 추구이고, 따라서 미디어 소유권은 소수의 거대 기업에 집중되며, 그 구조에서도 영향력이 큰 미디어가 있다. 이를 중층 효과(tiering effect)라고 한다. 즉, 소수의 미디어가 광범위한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대형 미디어 기업이 군소 미디어 기업에 뉴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기업은 인터넷을 통해서 네티즌들을 소비 기계로 전락시킨다.
--- p.110~111, 「미디어와 교육 통제」

촘스키는 2003년에 쓴 『패권인가 생존인가』에서 9·11에서 희생된 미국인은 3,000명 정도지만 미군의 직접적 테러로 희생된 사람은 서류상으로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고발했다. 미국의 우익은 당연히 분노했고 이 책을 비난하는 주장들이 들끓었다. 『패권인가 생존인가』는 그런 반응을 예상한 듯 대중을 속이는 것, 즉 여론 조작이 모든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미국은 그런 무기를 개발할 의도와 역량을 가진 국가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뻔뻔하게 말을 바꾸었다. 이를 촘스키는 미국의 ‘고결한 의도’에 의해 국제법이고 뭐고 관계없이 미국 편에 서지 않으면 미국의 적으로 몰아세운다고 비난한다. 이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점령과도 같은 논리다. 야만인을 위한 식민지 건설이므로 야만인들은 제국주의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p.147, 「9·11」
 

출판사 리뷰

촘스키는 10대 초부터 아나키스트로 살았다. 촘스키는 10세이던 1938년, 스페인 시민전쟁이 파시스트의 승리로 기울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파시즘의 공포에 대한 글을 써서 학교 신문에 기고했다. 그가 최초로 쓴 아나키즘 글이었다. 촘스키는 10대 시절에 중고 책방에서 루돌프 로커가 발간한 아나키즘 주간지인 『자유노동자의 목소리』를 비롯해 아나키스트 문헌을 탐독했으며, 스페인 시민전쟁에 대해 이모부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나키스트로 살며 글을 쓰고 행동에 나섰다. 촘스키는 청소년 시절 이웃 사람들이 나치를 공공연히 지지하고 유대인들을 멸시하는 반유대주의에 맞서 대담하게 저항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 옆에 독일군 포로수용소가 세워지자 친구들은 포로들을 조롱하고 멸시했지만 촘스키는 포로들을 옹호하며 친구들의 조롱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이른바 정통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촘스키는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촘스키는 이른바 ‘정통’ 아나키스트보다 훨씬 ‘유연한’ 아나키스트다. 촘스키는 정통 아나키스트가 절대로 아나키스트로 보지 않는 사상가들인 아리스토텔레스, 르네 데카르트, 장 자크 루소, 이마누엘 칸트, 데이비드 흄, 루돌프 로커 같은 사상가들을 중요한 아나키스트 사상가로 본다. 촘스키는 계몽운동과 고전 자유주의가 추동한 진보적인 사회 변화의 바탕에는 아나키즘의 핵심 요소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밝혀낸다.

제국주의를 비판하다

촘스키는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언어학자이지만 제국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철학자이기도 하다. 촘스키의 제국주의 비판은 단적으로 미국 비판이다. 사회운동가와 정치철학가로서 촘스키의 60년 넘는 세월의 행보를 단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바로 ‘미국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촘스키의 책이나 글은 대부분 자신의 조국인 미국의 대외정책을 제국주의 침략이라고 규정하며 비판하는 것이다.

촘스키는 인류 평화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바로 미국이라고 말한다. 촘스키는 뉘른베르크 재판의 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모든 미국 대통령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전 세계 여러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고, 전쟁을 일으켜 국제정치적 긴장을 악화시키고, 결국에는 인류와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위협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촘스키는 미국을 가리켜 국제 규범을 지키지 않는 ‘불량 국가’라고 말한다. 촘스키는 베트남전쟁,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점령, 칠레와 니카라과 등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만행,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세르비아 분쟁 등을 분석하며 미국의 민낯을 드러낸다. 촘스키는 지속적으로 반미주의의 세계적 연대를 추구해왔는데, 이런 유형의 지식인은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006년 유엔 총회에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악마’라는 비판을 담은 유명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차베스는 촘스키의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보이며, “미국 국민은 꼭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다음 날 촘스키의 저서는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기에 촘스키는 ‘미국의 양심’이니 ‘세계의 양심’이라고 불린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다

촘스키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반대한다. 촘스키는 “독재, 전체주의, 제도의 폭력도 인간성을 파괴하나 대기업이 더 위험한 이유는 돈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사기업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적 이익을 추구할 뿐 인권, 평등 같은 단어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했다. 촘스키의 어록 중에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말이 있다.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가 그것이다. 하지만 원문은 이와 조금 차이가 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다. “이 뻔뻔하고 부패한 정부는 우리의 고속도로, 교육, 보건 의료 시스템, 급수 시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포함하여 어떤 것이든지 그리고 모든 것을 민영화하길 원한다.”

촘스키는 2011년 가을부터 2012년 봄까지의 벌어진 ‘점령하라’ 운동도 지난 30년간의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계급투쟁이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촘스키는 거대한 사유 자본과 기업들은 끊임없이 정치권력을 통제하고 불평등을 시스템화하면서 부를 증폭시켜 나갔다면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정부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억압하고 조종해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촘스키는 거대 자본이 획책하고 있는 그런 지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시민이 모여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촘스키는 정치권력과 자본이 자신의 지속과 확대를 위해 언론과 정보를 효과적으로 조작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이른바 ‘여론 조작’이다. “신문 언론도 사기업화되어 광고주인 사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사기업들은 광고로 언론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잘못된 이익의 먹이사슬을 형성했다.” 촘스키는 미국과 여론 조작, 신자유주의에 대한 종합적인 비판으로,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함께 국가-거대 자본-언론의 거대한 연합체가 정치권력과 세계를 장악해 나가면서, 언론을 통해 대중의 동의를 조작해 인류를 계속해서 분열시키고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반세기 이상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주류 권력과 기업·언론에서 엄청난 모략과 비난을 받아왔음에도 촘스키는 굴복하지 않고 그들을 비판해왔다.

허무주의를 경계하다

촘스키는 인간 세상에 지적으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를 결합해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촘스키는 우리의 앞날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촘스키는 무엇보다도 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면서 희망을 갖자고 이야기한다. 희망을 포기하고 체념해 소극적으로 처신하면 최악의 결과를 자초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강연할 때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의 실천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가져왔는지를 개괄하고 사회적 변화를 우리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촘스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행동을 하기 위해선 겸허하게 역사를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인간 본성에 대해 정확하게 모를뿐더러 인간 세상에 지적으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촘스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보면 정치 변화의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촘스키는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 미디어는 여론 조작을 통해 인류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자 하기 때문에 그들의 실체를 분명히 보고 그들이 만드는 기만의 숲을 파헤쳐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류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이성을 발휘해야만 인류를 탄압·학살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게 촘스키의 생각이다. 촘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극복하게 해주는 마법의 해답이나 기적의 방법도 없고, 오로지 우리에게 친숙한 다음이 있을 뿐이다. 즉, 이해를 위한 정직한 탐구, 교육·조직·가해자에 대한 국가 폭력의 비용을 높이거나 제도 변화의 기초를 다지는 행동, 포기의 유혹과 수많은 실패와 오직 제한적인 성공에도 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고무되어 지속될 수 있는 종류의 확고한 책임감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