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인물사 연구 (책소개)/2.한국인물평전

이매창 평전 - 통념에 갇힌 기생의 이미지, 그 허상을 벗기다

동방박사님 2022. 12. 1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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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통념에 갇힌 기생의 이미지, 그 허상을 벗기다

'한겨레역사인물평전' 조선편. 아무나 꺾을 수 있는 길가의 꽃이라 하여 '노류장화(路柳墻花)'라 일컬어졌던 수많은 기생들. 이 말에는 기생을 하찮게 여기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멸시와 그들에게 웃음을 팔아야 했던 여인들의 애환이 함축되어 있다. 남자들만의 세계, 양반들만의 세상에서 천민으로 살아간 기생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런데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기생들 가운데 유독 매창은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평생토록 유희경을 유일한 정인으로 삼으며 춤과 노래, 시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펼치다가 38세에 짧은 생을 마쳤다는 비운의 기생. 하지만 그녀가 일편단심의 사랑을 했다는 통념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각색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삶 혹은 후대 사람들의 각색을 폄하할 순 없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매창의 시 58편,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시들을 기초 자료로 사용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조선시대에 창작된 고아하고 품격 있는 시들을 통해 매창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매창 주변 인물들의 문집 역시 평전 집필을 위한 실증적 자료로 사용되었다. 다행히도 매창이 유희경, 허균, 이귀, 고홍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양반들과 당당한 벗으로 교유한 덕분에 그들의 문집에 매창에 관한 기록들이 간간히 남아 있고, 그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 매창의 삶을 재구해낸 것이다.

 

목차

발간의 글 _‘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 (정출헌|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점필재연구소 소장)
머리말 _그들이 사랑했던 기생, 매창의 자취를 찾아서

1장 매창, 기생이 되다
아전 아비와 관비 어미의 슬하에서|기생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한 밑그림들|관기로서 매창의 삶을 재구하다|예비 예술인으로서의 훈련 과정

2장 어린 기생, 매창
기생 명선을 통해 본 동기의 삶|기역과 기명에 관한 추적|계생, 계수나무 위로 떠오른 둥근 달|성인 기생이 된다는 것은|전문 기예인이 된다는 것은|기명을 얻은 후 매창의 일상|매창의 성장기를 함께한 부안현감들

3장 유희경과의 사랑, 그리고 이별
아전들이 엮어준 『매창집』|매창과 『매창집』에 대한 오해|42세 시객 유희경과의 첫 만남|유희경의 문집에 남은 매창의 흔적|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십여 년 만의 해후

4장 기첩으로서의 매창, 그리고 서울 생활
서울에서 보낸 삼 년, 그 흔적 찾기|매창의 첩살이를 증명하는 이야기들|매창과 류도의 깊은 인연|매창을 첩으로 들인 의문의 주인공|누군가의 첩이 된다는 것은|관기를 첩으로 들이는 네 가지 방법|첩살이 덕분에 피한 아찔한 사건들

5장 다시 돌아온 부안, 그리고 전쟁
꿈만 같았던 서울 생황을 마치고|임진왜란 이후 혼란스러웠던 부안의 사정|성숙해진 매창, 시기로 거듭나다

6장 매창, 연회에 나서다
하층민의 삶을 재구하다|스물아홉, 허균과의 첫 만남|매창의 연인 이귀|허균을 통해 이어진 인연의 고리들|관찰사와 기생의 관계|연회의 꽃 기생|위로받고 위로하는 존재|매창의 시제를 아낀 이들|문인들의 기록에 남은 서른셋 기생의 삶|매창이 남긴 의문의 시 한 편

7장 동지 허균과 그 벗들
허균과 민인길, 운명의 첫 만남|민인길의 뒤를 이은 현감들|양반 유람에 빠질 수 없는 동반자들|변산의 아름다움에 취하다|유람에서 주고받은 시|허균, 새로운 세상을 꿈꾼 혁명가|매창의 시에 담긴 허균의 부안 생활|권세와 부귀에 연연하지 않는 삶|허균, 변산 유람에 나서다|허난설헌의 시로 허균을 위로하다|그들이 꿈꿨던 소박한 세상

8장 문인들과 당당하게 교유하다
시끌벅적했던 부안 생활|하나둘 매창의 곁을 떠나고|조선 최고의 시인 권필과의 인연|뱃놀이에 나선 매창과 문인들|신분적 주종 관계를 넘어서|몇 번을 이별하고 다시 만나다|고홍달과 매창의 관계|죽을 때까지 이어진 기생의 부역|사라진 매창의 흔적을 찾아서|발견되지 않은 시첩을 기대하며

9장 매창, 죽다
윤선의 선정비, 논란의 시작|매창, 논란의 중심에 놓이다|허균에게 매창의 존재란|문제의 시를 지은 주인공|파문의 중심에서|새장에 갇힌 새가 날아가듯|시로 매창의 죽음을 애도하다|매창의 죽음, 그 이후

10장 끝나지 않은 이야기
맑고 고운 노랫소리로|매창을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대대손손 사랑받은 까닭

주석|주요 저술 및 참고문헌 목록|연보|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김준형
1967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조선조 패설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야담과 패설문학을 공부해왔으며, 좀더 폭넓게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가운데서 고전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매창 평전』을 필두로 우리 고전에 대한 발굴과 소개, 그리고 새로운 해석 작업도...
 

책 속으로

여덟 살, 어린 기생 매창은 무과 출신의 고을 수령인 양대수를 보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 불행하게도 그 실상을 확인할 길은 없다. 양대수는 문집을 남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그의 글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문집 귀퉁이에 그의 시가 한 편이라도 남아 있을 법한데 아직은 확인된 게 전혀 없다. 잊힌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당시의 풍경도 그저 상상으로만 그려볼 뿐이다. 어린 매창이 바라본 무인 양대수는 아마도 거인처럼 느껴졌으리라. 자신은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하찮은 모습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포와 존경심. 양대수를 바라볼 때마다 어린 기생 매창에게는 두 감정이 공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매창은 양대수와 그가 초대한 사람들 앞에서 여러 차례 거문고를 비롯한 악기도 연주하고, 춤과 노래도 보여줬을 것이다. 그런 매창을 양대수는 흐뭇하게 바라봤을 터다. 여덟 살 어린 기생은 양대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열두 살 기생으로 성장해갔다.
-73~74쪽

『매창집』에 실린 시를 두고 온전히 유희경과의 사랑을 그렸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매창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국가의 공물인 관기였던 탓이다. 기생은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존재였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를 사랑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것이 기생에게 주어진 임무였고, 숙명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매창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하여 가끔씩 역사적 진실까지 부정했던 것은 아닐까?
매창은 기생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후 매창이 기생이라는 질곡에서 벗어나 위대한 여류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인간 매창이 지닌 자의식에서 비롯한다. 인간 본연의 아픔을 사랑으로 승화시켜내는 매력을 매창은 맘껏 드러냈다. 우리는 매창을 단지 유희경의 연인으로만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매창의 매력과 아름다움에는 눈감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유희경에게서 매창을 놓아주는 것이 매창의 진면목을 보는 시발점이다. 유희경은 매창이 사랑한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것이 진실이다.
-93쪽

전쟁의 발발과 현감의 빈번한 교체. 어느덧 매창은 스물두 살에서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혼란하고 어수선한 상황이 오히려 매창에게는 휴식이 되었을 수도 있다. 기생에게 주어진 두 가지 부역, 즉 춤과 노래로 연회의 흥을 돋우고 남성을 접대하는 일. 전시에는 아무래도 조금은 자유롭지 않았을까? 매창에게 주어진 약간 사치스러운 여유. 매창은 그 시간에 고민을 시로 표현하고 삶을 성찰하며 스스로를 성숙시켰으리라. 매창에게 이 시간은 자기 갱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기 갱신의 방향은 분명했다.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 아픈 상처를 안고 돌아온 고향에서 맞이한 참혹한 전쟁. 삶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보잘것없는 존재들의 아우성과 몸부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을까? 매창은 이 세상이 아닌 저 먼 세상을 꿈꾸었으리라. 매창은 자의식을 갖춰갔다. 이는 이후 허균과 그의 벗들을 만나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168쪽

매창은 스물아홉 살이 되던 1601년, 부안에서 허균을 처음 만난다. (……) 거문고를 타는 솜씨와 시를 쓰는 재주에 빠져든 허균은 마음으로 매창을 받아들였다. 비가 내리는 한여름 날, 거문고가 놓인 방 안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시로 수작하는 풍경. 나지막한 빗소리와 시를 읊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 울리는 거문고 소리. 매창과 허균, 두 사람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았을 풍경이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우정은 매창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_176~177쪽

권필(權?)의 문집인 『석주집(石洲集)』에 실린 시의 제목이 흥미롭다. 「여자 친구 천향에게 주며」다. 천향은 매창의 자다. 권필은 기생인 매창에게 격식을 갖춰 시를 썼다. 또한 기생이란 표현 대신 여자 친구라 했다. 권필은 매창을 일개 기생이 아니라 친구로 대했다. 매창은 권필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과 신분적으로 주종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친구의 수평관계로 지냈던 것이다. 기생의 명성은 문인과의 만남에서부터 이루어진다. 문인들은 기생의 시를 보고 재주를 판단한다. 재주가 있는 기생은 자연히 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차츰 명성을 얻게 된다. 그렇지 못한 기생은 춤과 노래로써 그 재주를 드러내야만 했다.
-280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평전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앞서 살아간 옛사람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마음과 시대를 헤아려보는 여정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여정에서 나 자신이 옛사람이 되어 헤아려보기도 하고, 옛사람이 내 귀에 속내를 속삭여주는 경이로운 체험을 맛보기도 할 것입니다. 때론 앞길을 설계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겠지요. 퇴계 이황은 그런 경지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할까”라고.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옛사람이 맞닥뜨린 갈등과 옛사람이 고민했던 선택을 헤아리며 그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가슴 벅찬 공명이 가능한 까닭은 그도 나도 시대를 벗어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란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것이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우리 시대에 굳이 평전이 필요한 까닭일 것입니다.
-한겨레역사인물평전 ‘발간의 글’ 중에서

통념에 갇힌 기생의 이미지, 그 허상을 벗기다!
실증적 자료를 통해 되살려낸 기생 매창의 숨겨진 이야기들


아무나 꺾을 수 있는 길가의 꽃이라 하여 ‘노류장화(路柳墻花)’라 일컬어졌던 수많은 기생들. 이 말에는 기생을 하찮게 여기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멸시와 그들에게 웃음을 팔아야 했던 여인들의 애환이 함축되어 있다. 남자들만의 세계, 양반들만의 세상에서 천민으로 살아간 기생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런데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기생들 가운데 유독 매창은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평생토록 유희경을 유일한 정인으로 삼으며 춤과 노래, 시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펼치다가 38세에 짧은 생을 마쳤다는 비운의 기생. 하지만 그녀가 일편단심의 사랑을 했다는 통념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각색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삶 혹은 후대 사람들의 각색을 폄하할 순 없다. 매창은 허균을 비롯한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름을 떨쳤다. 그녀가 당대 사람들과 폭넓게 교유하며 예술과 사랑을 나누었고, 그런 그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시대를 넘어 지속되었기에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 아닐까. 이 책은 매창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련 자료들을 씨줄과 날줄 엮듯 엮어가며 그녀의 삶을 복원한다. 섬세한 시와 따스한 사랑이 녹아 있는, 인간 매창의 모습을 만나보자.

사랑은 과연 하나뿐인가, 일편단심만이 사랑인가?
지고지순함으로 가려진 조선 명기의 본모습을 찾아서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는구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지라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일별했을 이 시조에는 임과 이별하는 매창의 안타까운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기생이란 여러 남자를 상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지만, 매창은 한평생 이 시조에 등장하는 임, 즉 유희경(劉希慶)만을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과연 실제로 그러했을까? 기생이었던 매창이 일편단심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가능했을까? 또한 그것이 매창을 드높여 칭송하는 이유였을까?

매창이 유희경만을 사랑했다는 에피소드는 1876년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이 편찬한 『가곡원류(歌曲源流)』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는 위의 시조와 함께 ‘유희경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자 매창이 이 노래를 지어 수절했다’는 짧은 설명이 덧붙여 있다. 이는 매창이 유희경만을 사랑하며 수절했다는 오해의 출발점이 되었다. 물론 매창의 시조가 뿜어내는 애절함이 그녀를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힘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이유를 덧붙이자면, 매창 연구가 시작된 1970년대의 풍토도 한몫했다. 열녀를 칭송하는 담론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도 강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했으며, 이를 통해 기생 매창의 지고지순한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그녀의 다채로운 면모를 주목하는 데 방해요인이 되었다. 또한 실제로 매창이 유희경 한 사람만을 곁에 두었던 것도 아니다. 매창이 지은 시편들, 그리고 그녀의 주변 인물들이 남긴 여러 자료들을 통해 그녀의 삶을 간략히 재구해보면 다음과 같다.

매창은 1573년 전북 부안에서 아전 이탕종(李湯從)과 관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춤, 악기를 익혔고, 수령 주변에서 갖은 심부름을 하며 성장했다. 앞서 언급한 내용과 달리 매창은 여느 기생들처럼 수많은 남자들을 상대했다. 유희경과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다 헤어졌고, 이후에는 서울에서 첩살이를 하기도 했다. 당시의 기생에게 첩살이란 좀더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으며, 특히 매창은 이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부안에 있었더라면 기축옥사에서 역모에 연루되어 죽은 전라도사(全羅道事) 조대중(曺大中)과 함께 저세상에 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청춘을 보낸 매창은, 퇴기 취급을 받을 나이에 다다르면서 오히려 시를 짓는 시기(詩妓)로서의 이미지를 굳혀나갔다. 각종 연회에 초대받아 양반들과 시를 주고받고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연회의 흥을 돋우는 기생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당대 최고의 시비평가였던 허균과 교유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허균은 매창에게 행운과 함께 불행도 가져다주었다. 연인이었던 윤선(尹鐥)의 선정비 옆에서 매창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 일이 엉뚱하게 비화되어 허균을 비롯한 벗들, 그리고 매창의 말년에도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 38세의 짧은 생을 살았던 매창의 삶은, 이처럼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기생 매창의 삶을 다룬 최초의 평전
매창과 문인들의 시를 비롯한 각종 사료를 통해 그녀의 삶을 복원한다!


우리 역사 속 인물들 중 평전을 집필할 만큼 사료가 많이 남아 있는 인물이 얼마나 될까.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들이란, 대부분 당대에 권력을 누렸던 이들이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권력과 거리가 멀었거나 신분이 낮은 인물의 경우 현재에 그들의 삶을 재구하는 일은 지난해 보인다. 게다가 한 인물의 일생을 되짚어보는 평전을 집필할 때는 더더욱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창 역시 많은 사료가 전해오는 인물은 아니다. 그녀가 당대에 명성을 얻어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기생의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또한 당나라 최고의 여류시인인 설도(薛濤)와 견줄 만하다는 찬사를 받으며 저명한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천민이라는 신분은 그녀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기에는 충분한 제약이 되었다. 이러한 제약은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매창 평전』은 우선 현재까지 전해오는 매창의 시 58편,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시들을 기초 자료로 사용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조선시대에 창작된 고아하고 품격 있는 시들을 통해 매창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매창 주변 인물들의 문집 역시 평전 집필을 위한 실증적 자료로 사용되었다. 다행히도 매창이 유희경, 허균, 이귀, 고홍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양반들과 당당한 벗으로 교유한 덕분에 그들의 문집에 매창에 관한 기록들이 간간히 남아 있고, 그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 매창의 삶을 재구해낸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을 평전 집필의 자료로 삼기에는 부족했다. 그리하여 더해진 것이 기생의 일반론과 관련한 사료들이다. 성장 후의 매창에 관한 자료들은 다소 남아 있지만, 어린 시절 매창에 관한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다른 어린 기생의 삶을 기록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일반론을 도출해내어 비어 있는 삶의 편린들을 추정해보는 방식으로 매창을 그려낸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이매창 평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생 매창의 삶을 오롯이 복원해낸 작업이면서 동시에 조선시대 기생사(妓生史)를 조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즉 이번 평전은 매창이라는 인물을 살펴보면서 역사 속에 잠들어 실체에 대한 조명이 미흡했던 기생의 삶을 실증적으로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다.

소설을 비롯해서 드라마나 영화 등 많은 매체들에서 기생이란 존재에 주목하는 것은, 소재의 특이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실에 부합하는 실증적 연구들은 좀더 진척되어야 할 터. 『이매창 평전』은 구체적인 자료의 고증을 통해 조선 중기의 대표적 기생인 매창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를 그려낸다. 눈 밝은 연구자의 고증을 통해 당대 문인들과 당당히 교유한 시기(詩妓)이자 사랑에 아파하며 눈물 흘리던 여인 매창은 그렇게 우리에게 아련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