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계국가의 이해 (독서)/7.라틴아메리카

대체 불가 라틴아메리카 (2021 장재준)

동방박사님 2022. 12. 2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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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양성과 혼종성, 식민성과 근대성이 공존하는 곳.
잉카, 마야, 아스텍 문명을 품은 땅에서 이민족의 오랜 야만을 인내한 사람들.
혁명과 저항, 희망과 열정이 층위를 이루는 대륙, 라틴아메리카!


“자연으로부터 축복 받은 라틴아메리카는 왜 역사로부터 저주를 받았을까?
프로축구 수원삼성 서포터스는 대관절 무슨 생각으로 체 게바라 깃발을 흔드는 걸까?
새들은 왜 페루에 가서 죽고, 어떻게 조류의 배설물이 중남미 지도를 바꿔놨을까?
정말이지 좁힐 수 없는 다리 사이의 거리 때문에 탱고는 에로틱한 걸까?
화려한 골반문화로 발산되는 쿠바의 낙천성은 그저
어금니 깨문 자들의 이빨 빠진 웃음에 불과할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나열되는 다수의 질문 가운데는 책 안에서 답을 찾은 것도 있고, 여전히 물음표 상태로 남은 것들도 있다. 33개국에 6억이 넘는 인구가 사는 곳, 잉카, 마야, 아스텍 등 화려한 고대문명을 꽃피운 곳, 남북의 길이만 1만2,000㎞에 달하는 광대한 대륙. 다채롭고 풍요로운 땅이지만, 생각해보면 라틴아메리카는 늘 우리의 관심 또는 지적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있던 땅이었다. 급기야 21세기 지구의 역사에서는 변방으로 밀려나버린 대륙. “자연으로부터 축복 받은 라틴아메리카는 왜 역사로부터 저주 받았을까?”라는 첫 번째 질문이 책장을 넘기는 내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아리다.

 

목차

1 경계_길 위에 핀 꽃

국가의 바깥에 버려진 경계인(질)들
달달한 자본주의
그래, 우리는 식인종이다!
왕실을 뒷배로 거느린 로열해적
국경에 매달린 관
자유무역이 낳은 보호 장벽: 트럼프와 흉노족
천 년의 미소를 머금은 신라 여인과 안데스 사내
모체(Moche)의 후손(?) 폴 고갱에 대한 단상
짚신 신고 라틴아메리카로
쿠바의 애니깽들

2 아바나_음악의 섬

웃음도 문화일까
피아노에 갇힌 건반
가장 낮은 옥타브는 눈물이다
누가 그들의 골반을 단속할 수 있을까
〈쿠바의 연인〉; 인터뷰, 사이에서 보기(inter-view)

3 혁명_총알처럼 시를 품고

길이 체 게바라를 만들었고 체 게바라는 길이 되었다
체 게바라도 걷지 못한 길: 알베르토 그라나도의 ‘My Way’
총알처럼 시를 품고 게릴라와 함께 했던 시인들
전사 그리스도에서부터 빳빳한 남근 이미지까지
주걱을 든 페트라가 아니라 총을 쥔 페드로
미완을 그린 프리다
아멜리아에서 아멜리오로
아델리타 : 기억과 해석 투쟁
판초 비야와 벌거벗은 여자 사이

4 차스키_발바닥이 날개였던 잉카의 파발꾼

달리는 인간, 호모 쿠란스
발바닥으로 이룩한 네트워크 혁명
머물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
잉카의 헤르메스
잉카의 다기능 복합 센터, 탐보
진흙 문명을 품은 돌의 문명

5 슈거노믹스_설탕으로 빚은 땅

설탕으로 빚은 섬
바다 위의 사탕수수밭, 바베이도스
신대륙 발견 & 사탕수수 재배지의 발견
햄버거에 조롱당한 음식천국 멕시코
여전히, 초콜릿은 쓰다
부패하는 화폐, 카카오 머니
옥수수 없이는 나라도 없다
 

 

 

저자 소개

저 : 장재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학교와 미국 코넬 대학교에서 중남미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외래교수 겸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스페인어권 명작의 이해>(공저), <리듬으로 사유하기>(공저), <디코딩 라틴아메리카>(공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영화〈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은 쿠바 혁명에 다소 적대적이다. 노골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반감을 숨기지는 않는 듯하다. 영화에서 쿠바 혁명은 음악인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그들을 조기에 불명예 은퇴시킨 장본인으로 환기된다. 부당하게 쿠바 음악을 도태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에 철퇴를 가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된다. 예컨대 음악(인)이 쿠바 혁명에 ‘전속’되었다는 논리다. 이것은 빔 벤더스와 라이 쿠더가 쿠바 혁명에 붙이는 첫 물음표이자 느낌표다. 음악에 눈이 멀어 간과하기 쉽지만 선뜻 맞장구치기도 쉽지 않은 논리다. 왜냐하면 이것은 혁명 전이나 후의 부단한 섞임과 접목 및 다양한 실험들을 도외시 한 채 쿠바 음악을 지극히 정태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와 왜곡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의 골반을 단속할 수 있을까」중에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는 우리가 동경하는, 우리가 소비하는 그 체 게바라는 부재중이다. 없다. 숨 가쁘게 달려온 1만2,425km 그 어디에도 혁명의 시나리오는 없다. 자유와 해방으로 향하는 로드맵은 없다. 체 게바라의 전매특허인 화약 연기 매캐한 시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혁명가를 다루는 영화에 혁명은 통편집 되었고, 총성은 녹음되지 않았다.
---「길이 체 게바라를 만들었고, 체 게바라는 길이 되었다」중에서

길의 제국이었던 로마의 기병처럼 직선의 평지를 주로 달렸다면 몹시 따분했을까. 잉카의 차스키는 유독 험지를 선호했다. 익스트림 마니아에 더 가까웠다. 파발마와는 다르게 달리는 노면환경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차스키들은 날카로운 협곡과 천 길 낭떠러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시로 반복되는 오르막 경사구간을 그야말로 안데스의 바람처럼 가로질러 달렸다.
---「발바닥으로 이룩한 네트워크 혁명」중에서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와 페루 북부 해안의 모체(Moche) 문명이 남긴 사람얼굴모양 토기. 신라 여인과 페루 사내의 1,300년 넘게 머금은 진흙 미소가 똑 닮았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썩 잘 어울리는 미소 한 쌍이다. 지붕으로 올라가고 지하세계로 내려갔던 두 얼굴에 웃음이 그득하다.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들이 묘하게 끌리고 묘하게 닮았다.
---「천 년의 미소를 머금은 신라 여인과 안데스 사내」중에서

국경의 덫에 걸려 졸지에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로 전락한 이들 ‘경계인(질)들’은 괄호 속에 갇힌 존재들이다. 그야말로 국가의 바깥에 버려진 상태다. 생의 막다른 길목에서, 삶과 정체성의 붕괴를 겪으면서, 난민과 국민 사이를 오가며, ‘이중의 디아스포라’를 살아내고 있다.
---「국가의 바깥에 버려진 경계인(질)들」중에서

속칭 ‘토르티야 벽’으로 통하는 이 ‘치욕의 장벽'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분리 장벽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 죽음과 통곡의 벽으로 자리 잡았다. 강이나 바다를 경유해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다 수장된 월경자들도 없지 않다. 미국의 국경수비대가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2019년에만 762명이 강이나 바다에서 체포되었고 최소 66명이 월경 중에 익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경에 매달린 관」중에서

자신을 활짝 열어놓은 채, 사람과 삶을 환대하는 카리브의 신명나는 웃음. 삶에 대한 자세와 인간에 대한 태도도 제도일까? 제도의 (부)산물일까? 콤파이 세군도, 그도 자신을 쿠바라는 국가에 구겨 넣으며 살았을까? 그냥 쿠바이기에 한 세기를 그렇게 신나게 훨훨 살다 간 걸까? 문화와 삶이 고스란히 경제지표에 담길 리는 만무하다. 진짜 음악이 악보에 없듯이. 쿠바, 그 섬에 가고 싶다.
---「웃음도 문화일까」중에서
 

출판사 리뷰

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를 읽는 다섯 가지 키워드!

어떤 대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얻는 것과 같다.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중심의 관심과 지식에서 벗어나 라틴아메리카라는 세계를 만나는 경험 또한 그러하다. 이 책은 멀고 생소한 라틴아메리카로 안내하는 나침판과 같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라틴아메리카 깊숙이 들어가 있는 스스로를 만나게 된다.

키워드 1 ‘경계_길 위에 핀 꽃’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문화를 다룬다. 국경을 둘러싼 멕시코와 미국의 갈등에서 허쉬 초콜릿으로 대변되는 달달한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경계에 선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키워드 2 ‘아바나_음악의 섬’

심장박동을 닮은 쿠바 음악과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등장하는 아티스트들의 삶이 소환된다. 음악, 리듬, 영화가 생물처럼 살아 숨 쉰다.

키워드 3 ‘혁명_총알처럼 시를 품고’

혁명, 투쟁, 저항의 아이콘 체 게바라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총알처럼 시를 품었던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전사가 된 아멜리오 혹은 페트라들의 서사!

키워드 4 ‘차스키_발바닥이 날개였던 잉카의 파발꾼’

잉카제국은 발바닥으로 이룩한 문명이었다. 달리는 운명을 타고난 차스키가 없었다면 잉카제국의 번영도 없었다.

키워드 5 ‘슈거노믹스_설탕으로 빚은 땅’

애초의 라틴아메리카는 축복의 땅이고 바다였다. 그 땅에서 사탕수수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서구에 의해 발견된 사탕수수와 카카오는 수 세기 동안 그 땅의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설탕이 쿠바를 노예로 부리고, 초콜릿이 음식천국 멕시코를 조롱했다.

길 위에서 만난, 라틴아메리카의 민낯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라틴아메리카는 멀다. 멀어서 멀고 몰라서 멀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만나는 라틴아메리카는 기대만큼 친절하지는 않다. 어쩌면 길 위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만난다면 느끼게 될 당혹스러움 혹은 날것의 생경함을 책으로 먼저 느끼게 한다. 낯설지만 끌리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어느새 깊숙이 빠져들어 버리는….

스토리텔러의 내공이 만들어내는 대체불가의 스토리

이 책의 저자 장재준은 세상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이 정도는 알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이토록 단도직입적으로 쏟아낼 수는 없다. 독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그 땅에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더 진하게 배어난다. 마치 지구의 중심이 라틴아메리카에 머물러있는 듯 세상 모든 현상과 결과에 라틴아메리카와 연결 짓기를 시도한다.

쿠바 혁명과 체 게바라, 잉카와 차스키, 미국과의 국경 분쟁, 그 사이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그 땅에 학문적 빚을 진 지식인에게 기대했던,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끌어낸 담론이지만,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고갱의 족보 찾기와 신라 와당(과 안데스 토기의 유사성) 이야기는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대체불가의 발상이다. 설탕으로 일어선 땅이 설탕으로 녹아내리는 역사의 아이러니 부분에서는 식민지 역사를 지닌 동류항의 공감을 끌어낸다.

문학작품을 읽듯 밑줄 긋게 만드는 문장의 힘

당최 끊어낼 수 없이 밀도 있게 이어지는 문장과, 행갈이를 위한 커서 끝조차 파고들 틈 없이 탄탄한 텍스트의 봇물에서 문득, 자신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자음 한 획조차 허투루 내보내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진다. 그 땅에 대한 기록이든 기억이든. 사실이 아닌 것을 적지 못하고, 확인되지 않은 로망을 부풀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저자가 라틴아메리카에 보내는 헌정 혹은 진정성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래서, 그러므로,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조차도 일단 첫 문장에 올라타는 순간 끝을 볼 수밖에 없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에 속절없이 빠져든다.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고, 갖게 된다.
 

추천평

라틴아메리카를 알고자 하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다양한 국가, 지리, 인종,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그 복잡한 땅에 머리를 내려놓고 마음을 열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때로는 훨훨 날아올라 하늘 높은 곳에서 삼라만상을 굽어보고, 때로는 마음 가는 곳에 내려앉아 한 땀 한 땀 속살을 헤쳐보자. 이 책의 저자처럼.
- 우석균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