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한반도평화 연구 (책소개)/3.통일문제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철책 위로 날아가고 (2022 최진섭) - 평화책방 통일회귀선에서

동방박사님 2023. 1. 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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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강하구 너머로 북녘 개풍군이 바라다보이는 강화도 송해면에 평화책방을 낸 필자는 서점을 연 내면적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헤세의 『데미안』 때문이라 결론지었다. 책꽂이에 꽂힌 『데미안』을 보는 순간 문득 “새는 알을 깨고 신에게로 날아간다.”라는 구절이 떠올랐고, 저자 역시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알을 깨고 어디론가 날아올랐다 이제 이곳 한강하구 해안철책 근처 책방에 둥지를 튼 것이라 여겼다. 새는 어떻게 알을 깨고 나왔고, 또 어느 숲과 하늘과 강을 날아다녔을까. 저자는 이런 의문을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영향을 준 수십 권의 책을 통해 풀어본다. 그런 과정에서 니체의 영원회귀에서 통일회귀를 떠올리고, 알을 깨고 나온 자신의 새는 국가보안법으로 촘촘히 짜여진 철책, 분단과 평화가 교차하는 철책선 위로 날고 있음을 목격했다.

목차

1장_책방이 된 집 이야기

《데미안》 때문에 책방을 만들었다고? 8
거미 보살을 어찌할까요 15
서기 1948년에 판 용암수 우물과 감나무 22
봉황이여, 이 집에 서기를 내려주소서! 29
A자형 나무 사다리와 아버지의 〈추억록〉 35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41
빨간 고춧가루와 《다시, 책으로》 48
숭뢰리 해안 철책과 동부전선 DMZ의 〈고추잠자리〉 55
강화도 울트라마라톤, 평양-남포 마라손대회 64
책방을 유튜브에 소개한 이목수와 《그리스인 조르바》 72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와 낙서의 값어치 80
1999년 《올해의 좋은 시》 속의 노란 은행잎 85

2장_인생의 두 갈래 길에서 읽은 책

대를 이어 보는 시집, 김소월의 《님의 노래》 94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3
〈님의 침묵〉과 4·19혁명 1주기 문집 113
《거대한 뿌리》와 분단 44년 4월 8일의 연애편지 118
정신분열증에서 구한 〈민중의 흑백논리와 지배자의 흑백논리〉 126
의식화 서적 1번 성서 135
딸아이가 읽은 《철학에세이》는 4판 15쇄 141
이산하의 《한라산》과 힐링 혹은 킬링 148
노래책 《어머니의 노래》와 나의 어머니 154
신영복 옥중사색 《엽서》와 불타버린 엽서 162
최제우의 하느님과 《마음의 진보》 170
스콧 니어링, “나는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179
청평사 오봉산 소나무와 동체동근 186
단 한 권의 책을 들고 무인도로 떠나야 한다면 195
예수, 칼 바르트와 결혼한 박순경의 《통일신학의 여정》 211
평생 미군을 화두로 잡은 작가, 남정현의 《분지》 220
달마와 곤충, 그리고 《법구경》 230

3장_아침책 저녁에 읽다

《레닌의 회상(추억)》과 30년 만의 엠티 238
마르케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과 《Play Boy》 244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255
니체가 자비출판 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62
《조선상고사》 끼고 고구려 옛 수도 답사하고파 273
칼 융의 《티벳사자의 서》 해설과 61세의 의도적 환생 280
시몬느 보부아르의 《노년》과 마지막 한마디 288
《주역》 택화혁과 계유일주 사주 296
《딱정벌레》, 나는 누구인가? 301
라즈니쉬와 크리슈나무르티, 그리고 비노바 바베의 발바닥 309
중고서점에서 다시 산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옛날 책 몇 권 318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334
길은 최대한 직선을 지향하지만 348

4장_통일희년, 통일회귀

송두율. “나는 지금도 그들을 응시하고 있어요” 356
마녀사냥과 분홍글씨 364
첫 손님 강성호-국보법에 흘러간 꽃다운 이 내 청춘 374
김대중, 나의 소원은…… 383
〈거대한 뿌리〉와 〈김일성 만세〉 390
북한학자 조희승의 《임나일본부 해부》 탄생 비사 397
박순경, 강희남, 이유립과의 인연과 환단고기 402
통일희년, 통일회귀 411
마리산 참성단에서 ‘단군의 후예’ 막걸리를 따르며 422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북》, “고백하자면 반도는 사랑하기에 너무 좁다” 434
후기 그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던가 442
 

저자 소개 

저 : 최진섭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해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의 산마을에서 태어났다. 휴전선까지 직선거리 15Km, 임진강까지는 그 절반 정도 떨어진 최전방 접경지역이다. 눈에 익숙한 풍경은 미군부대 철조망과 미군을 상대로 한 홀이었다. 가끔 홀 앞에서 술 취한 미군병사가 10원짜리 지폐를 공중에 뿌렸는데, 그것을 한 장 주운 날은 만화방에서 귀신 잡는 따이한이 주인공인 만화책을 실컷 읽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독서목록의...

 

책 속으로

책꽂이를 만들고, 책을 정리하던 어느 날 빛바랜 표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바로 저 책 때문이었어. 《데미안》을 보는 순간 10대 시절부터 즐겨 외우던 구절,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낸 쪽지글이 떠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데미안》과 바로 이 문장이 나로 하여금 강화도에 책방을 열게 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답장이었다.
--- p.10

그는 언제부턴가 책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빠르게 읽는 습관이 생겼고, 헤세의 걸작 《유리알 유희》를 최대한 빠르게 읽으려다 실패했다. 내게도 이런 독서 습관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단순히 사라진 신비감과 둔해진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나의 읽기 회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 p.51

김현이라는 평론가는 이름 두 자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여겼는데, 인제 보니 둘째 딸의 탄생과 함께 한 작가였다. 1992년 11월 20일 초판본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지성사), 인지에 한글로 ‘김현’이라는 도장이 찍힌 이 책은 아들이 딸로 둔갑한 희극적 사건의 가족사가 담긴 책이었다.
--- p.84

정 교수는 “분명히 어제 읽었는데, 밑줄까지 긋고 느낌표도 찍고, 강조 표시도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라고 본인의 사례를 들면서 “그럼에도 (나는) 왜 읽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는 바로 쥐스킨트 에세이 ‘문학적 건망증’의 질문이자 대답이라 말한다. 쥐스킨트는 이렇게 묻는다.
--- p.87

특히 한완상 교수의 《지식인과 허위의식》(현대사상사, 1977)에 들어있는 〈개방적 사고의 구조와 특성〉이라는 글과 비슷한 주제의 〈민중의 흑백논리와 지배자의 흑백논리〉(1979년 1월에 씀)는 한마디도 과장하지 않고 표현해서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고, 정신분열증 직전의 뇌를 치료한 묘약이었다.
--- p.127

버스 회사에 전화해서 분실물 신고했다. 다행히도 몇 시간 후에 ㅇㅇ시 영주터미널을 경유하는 서울행 버스 기사에게 받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오, 레닌 동지, 나는 아직 당신을 떠나보낼 때가 아닌 모양이요! 책을 되찾았을 때의 반가움을 잊을 수가 없다.
--- p.242

전혜린이 글을 쓰던 1960년대 한국의 많은 젊은이는 실존주의로 알을 깨려 했다면, 1980년대 청년의 다수는 마르크스의 붉은 망치가 필요한 시대였다. 신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휩쓸고 간 2022년, 지금의 젊은이를 옥죄는 껍질의 주성분과 이를 깨야 할 무기는 과거와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 p.346

영원회귀에서 통일회귀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회귀 사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에서 허무주의가 아닌 능동적 허무주의, 긍정의 디오니시즘을 추구하는 초인을 제시했다. 니체는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과 같은 존재라 했는데, 휴전선 철조망이 있는 나라의 인간은 분단과 통일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 p.420
 

출판사 리뷰

1. 『데미안』 때문에 책방을 열게 되었다고?

2021년 여름 강화도 농가 주택에 평화책방이란 간판을 단 저자에게 사람들이 묻는다. 어쩌다 이곳에 서점을 내게 됐나요? 이런저런 외면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하던 저자는 자신에게 ‘책방을 내게 된 내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빛바랜 표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바로 저 책 때문이었어.’라는 결론을 내린다.

“바로 『데미안』과 바로 이 문장이 나로 하여금 강화도에 책방을 열게 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답장이었다.” (본문 10p)

의심할 여지 없이 『데미안』 때문에 책방을 열게 되었다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데미안』, 그 책의 주인공처럼 알을 깨고 나오려고 몸부림치던 소년은 몇십 년을 날아서 지금 강화도 북단 철책선 가까운 곳에 서점을 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우연한 일이었지만 필연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2. 인생의 사다리, 도끼 역할을 한 책들

저자는 이후 책방에 꽂혀 있는 책 중에 『데미안』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갯길, 두 갈래 길에서 영향을 받은 책을 골라서 다시 살펴봤다. 어떤 책은 친구나 스승 역할을 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따로 떨어진 것 같지만 그것을 꿰맞추는 독자에 의해 하나의 세계로 연결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떠나보낸 헌책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복음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저자는 이런 발견을 할 때마다 한 편의 글로 남겼고, 수십 편의 글이 쌓였다. 이를 연결해서 엮은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철책 위로 날아가고』(이하 ‘알을 깨고 나온 새’)는 한 평범한 독자의, 책벌레는커녕 그 흔한 문학 소년에도 끼지 못한 저자의 정신적 성장기이자, 시대의 정치적 단면을 보여주는 미세한 자료가 되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과거에 읽은 책이 안개처럼 사라진 게 아니라 여전히 현재, 미래와 함께 세 줄의 새끼가 되어 인생의 드라마를 엮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는 설령 자신이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읽지는 않았더라도 책으로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고, 책으로 만든 사다리를 밟고 진리와 역사의 탑을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사회적 투쟁과 영적 각성의 도끼 역할을 하기도 한다.

3. 내 인생에서 우러나온 나만의 말은 무엇인가?

저자는 급류가 흐르는 인생의 강을 건널 때 책으로 다리를 만들고 징검다리를 놓았다. 사람마다 징검다리로 쓸 책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 설령 똑같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소화해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방식은 상이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중년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하는데, 그 책의 독자가 저자인 카잔차키스처럼 사회주의자로 살지는 않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조르바가 추구하는 자유를 자기 인생의 지침으로 삼았다 해도, 어떤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자이거나 자유주의자, 어떤 이는 사회민주주의자이거나 사회주의자, 또 어떤 이는 반공주의자나 보수주의자로 살아간다.

10대의 애독서 중 첫 번째로 손꼽을 수 있는 『데미안』을 읽은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청소년기에 모두가 알을 깨기 위해 분투했지만 그들이 날아간 방향은 모두 다르고, 인생의 깃발도 다르다. 심지어는 『데미안』을 읽고 나서 알을 깨는 방식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책에서 소개한 전혜린 작가의 여고생 친구도 그렇다. 전혜린에게 『데미안』을 빌려 간 친구는 자살했고, 가족들은 그녀가 읽고 있던 『데미안』을 무덤 속에 같이 넣었다고 한다.

『알을 깨고 나온 새』의 저자는 ‘『데미안』 때문에 책방을 만들었다고?’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수십 권의 책에 얽힌 이야기를 쓰면서, 한마디의 말을 찾으려 했다. 저자는 『데미안』의 첫 문장이 “나는 정말 나 자신으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오는 인생을 살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던가?”라는 사실에 놀란다. 이 의미심장한 첫 문장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읽으니 가슴을 세게 두들기는 말이라는 데 놀란 것이다.

내 인생에서 우러나온 나만의 말은 무엇인가? 그것이 있다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저절로 드러날 것이라 여겼다. 저자는 헤세, 루이제 린저, 김소월, 김수영, 레닌, 붓다의 말이 아닌 나만의 말을 찾았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자기의 말을 찾기 전까지는 아무리 달변가라도 정신적 벙어리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말을 하는 것은 마치 선사가 불현듯 언어가 끊긴 길에서 오도송을 부르는 것처럼 희귀한 일이 아닐까 싶다.

4.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그리고 정치적 자유

저자는 자신만의 말을 찾기 위하여, 인생의 오솔길, 고갯길, 언덕길에 읽은 책을 소환했다. 평화책방에 있는 헌책을 다시 읽고, 분실하거나 내다 버린 책 중에 다시 보고 싶은 책은 인터넷 중고서적에서 구해 살펴보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되돌아본 인생의 여정과 책에 얽힌 이야기를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1장. 책방이 된 집 이야기에서는 강화 북단 해안 철책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농가 주택에 평화책방을 만드는 과정과 이에 얽힌 책 이야기, 2장. 인생의 두 갈래 길에서 읽은 책에서는 주로 청소년 시기에 정치적, 종교적 각성을 불러일으킨 책 이야기, 3장. 아침 책 저녁에 읽다에서는 과거에 읽은 책이지만 현재에 다시 곱씹어보면서 교훈을 얻을 책을 주로 다뤘다. 그리고 4장. 통일희년, 통일회귀에서는 이 시대의 주요 모순이라 할 수 있는 분단 현실, 국가보안법 문제를 드러내는 책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와 함께 분단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 이념의 하나로 단군 민족주의를 제시했다.

독자인 저자와 책(주인공), 현실 세계의 3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을 벌여나가는데, 첫 번째 기본 축은 정치적 자유이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4·19혁명 1주기 기념문집〉과 김수영 시집을 통해 4월 혁명에 눈을 뜬 뒤 민주와 정의를 억압한 군사 정권에 반감을 지니게 되고, 정치적 자유를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된다. 1980년 광주항쟁 발발 직후 의식은 높았으나 조직적으로 정치적 실천을 하지 못해 생긴 정신적 혼돈과 분열 증세를 치유해 준 책은 대학교 입학 후 만난 한완상 교수의 글 〈민중의 흑백논리와 지배자의 흑백논리〉이다. 저자는 이 책과의 만남을 “한마디도 과장하지 않고 표현해서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고, 정신분열증 직전의 뇌를 치료한 묘약이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밖에도 『철학에세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이산하 시인의 『한라산』, 남정현의 소설 『분지』 등의 책이 저자에게 정치적 ‘세례’를 주었는데, 이런 책에서 얻은 힘으로 분단의 철조망을 오른다. 이럴 때 책은 역사의 탑을 오르는 사다리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축은 정신적 각성을 도와준 책이다. 『성서』, 『라즈니쉬 명상록』, 대행 스님의 『한마음 요전』,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와 같은 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저자가 과거에는 제대로 감응하지 못했는데, 수십 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그 의미를 재발견한 책도 있다. 『데미안』을 쓴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며, 10대에는 들여다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게 된다. 헤르만 헤세가 전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이방이고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나이 먹은 지금에 와서는 고뇌를 함께 나누는 친구이자 도반이 된 것이다. 헤세의 방황과 지향점을 살펴보면서, 그와 정신세계를 함께 했던 칼 융, 그리고 니체에 친밀감이 생기고 이들의 책을 다시 살펴본다. 특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그의 어록을 읽으면서, 10대 시절엔 뜬구름 잡는 것 같았던 니체의 잠언을 꼭꼭 씹으며 그 맛을 음미하게 된다.

이처럼 젊은 시절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예전에는 몰랐던 의미를 재발견하거나 전혀 새로운 경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 이는 어찌 보면 책이 독자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독자가 책 속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저자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을 통해 인생을 돌아보는 자전적인 요소도 많다. 박정희의 10대, 전두환의 20대를 통과하고,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로 전환했다는 문민시대를 살아온 자신의 삶을 “금지와 위선이 주류인 시대와의 불화는 숙명이었다.”(본문 443P)라고 요약하기도 했다. 여기서 불화는 단지 불평과 자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저자가 첫 번째 의식화 도서로 꼽은 『철학에세이』에서 말하는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서의 불화로 해석하는 게 맞다.

5. 어릴 때 읽은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이 책 곳곳에 담겨있는 저자의 고뇌 중의 하나는 생로병사 중 노이다. 저자가 강화도에 책방을 만들고, 이 책을 쓸 때의 나이가 61세인데, 그는 이를 ‘환생’으로 여기기도 했다. 저자가 태어난 1961년 신축년에는 2월에 〈민족일보가〉 창간했고, 5월에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1961년 10월 17일, 프랑스 경찰은 파리에서 가두 행진하는 알제리인 수백 명을 학살했다. 그 후로 60년 동안 국내외엔 수많은 사건이 벌어졌고, 그물망같이 연결된 세상에서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 과거를 회상하면 누구나 그렇듯이 개인적으론 후회스러운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환갑을 통과하는 것에 대해 “60년을 지구에서 살다 인간으로 다시 한번 태어났다 생각하니 일단 안도의 마음이 생긴다. 어느 정도 시간을 번 셈이다.”라고 소감을 밝힌다.

과거에 교우했던 책을 다시 만나서 교제하게 됐다는 점에 관해서는 행복감마저 느낀다. 첫사랑의 대상을 다시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대부분은 실망으로 끝나게 된다는 경험담이 많지만, 다시 만난 책은 그렇지 않다. 수십 년 전에 읽었던 책장을 다시 넘기며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죽어가던 고목 나무가 소생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10대 때 빠져들지 못했던 『싯다르타』의 구절구절에서 헤세의 의도와 고뇌를 느끼며, 인간적 매력을 느꼈던 루소의 『참회록』을 읽으며, 10대 시절 저자가 몰입했던 이유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면서, 과거에 읽은 똑같은 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 진심으로 60 이상 살게 된 것에 행복한 마음을 갖는다고 고백한다.

“수십 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뒤적거리다 ‘61세까지 살아 있어서 너무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나 20대 초반에는 헤세나 루소를 높이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고, 책에 써진 활자를 이해하기에 급급했다. 교과서, 세계위인전에 나오거나 노벨문학상을 탄 그들은 범인과는 다른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수시로 공포와 좌절감에 휩싸이며 줄타기하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던 불안한 존재였음을 알게 됐다. 이제는 활자에 녹아있는 그들의 희열과 번민을 느끼며 독서 할 수 있게 됐다.”(본문 319P)

6. 평화책방과 통일회귀선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목표로 삼은 것 중의 하나는 자신 속에서 우러나온, 자기만의 말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자기만의 말을 찾지 못하고 니체의 어록을 읽다가 ‘영원회귀’에서 ‘통일회귀’를 떠올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평화책방이나 해안 철책선이 통일회귀선이거나 분단회귀선이 걸쳐 있는 곳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과 같은 존재라 했는데, 저자는 “휴전선 철조망이 있는 나라의 인간은 분단과 통일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존재”(본문 421p)가 아닌가 싶다고 썼다.

통일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는 저자의 살아온 인생 과정 때문인지, 책방이 철책선 근방이라 그런지, 이 책에 실린 54편 중 상당수 글의 소재와 결론은 ‘분단과 통일’이다. 저자는 북녘 산하가 마주 보이는 해안 철책선에서 가까운 평화책방에서 선과 악, 전쟁과 평화, 주체와 사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초인을 떠올린다. 그는 “어쩌면 이곳(책방)이 통일회귀선이거나 분단회귀선이 걸쳐 있는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늦은 가을 해질녘, 평화책방에서 가까운 해안 철책을 걷다 보면 수천 마리의 기러기가 떼를 지어 한강하구 너머로 월북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이들은 남북의 분단과 국가보안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이다. 저자는 이를 바라보며 10대 시절 알을 깨고 나온 자신의 새가 철책 위로 날고 있다고 생각한다.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곳은 강물이었다. 모든 고통, 쾌락, 선과 악이 뒤엉켜 흐르는 강물을 보며, 강물에 투신하려던 싯다르타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며, 고통스러워하기를 끝내고 “ 사건들의 흐름과 삶의 강물에 동의하는, 흐름에 맡긴 채 통일성에 귀속되는 깨달음”(본문 337P)을 얻었다. 저자는 『알을 깨고 나온 새』 후기에서 통일과 평화, 화해의 상징으로 남북의 합쳐진 강물을 지목한다.

“강화도와 그 너머 개풍군 사이 조강(祖江)엔 휴전선도 없다. 수천수만 년, 그 이전부터 흘러온 저 강물엔 좌우도, 선악도 없으며, 분단과 통일마저 없다. 단지, 좌우의 강물이 하나 되어 구별 없이 흐를 뿐이다.” (본문 4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