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한국정치의 이해 (책소개)/1.한국정치사상

김재규의 혁명 - 역사가 감추려 한 진실을 쫓다

동방박사님 2023. 1.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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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김재규의 ‘혁명’을 추적하는 르포의 힘
그는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


『김재규의 혁명』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르포로서의 힘입니다. 기자로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김재규를 파악하고자 한 김대곤은 10?26사건의 발생 과정과 역사적 배경, 법정 공방, 그리고 김재규의 일생을 차례로 다루면서 기자로서의 감각을 내내 유지합니다. 그리고 김재규와 그의 친인척, 변호인 들처럼 김재규와 직접적으로 맞닿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와 직업적으로 연관된 사람들, 공화당 의원들과 군 지인들의 인터뷰까지를 모두 아우르며 종합적으로 김재규를 풀어내고자 노력합니다.

그 결과,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한 명일 김재규는 복잡하고 다양한 면모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는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는 당대의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중앙정보부장이었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의식을 품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깊은 친분에도 불구하고 그를 시해할 수밖에 없었고, 불교적 세계관에서 살아왔음에도 살생이라는 금기를 범했습니다. 『김재규의 혁명』은 그런 김재규를 정리하여 설명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이자 아직도 유효한 결과물입니다. 김재규는 과연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 그가 말했던 ‘역사라는 제4심’이 판단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재규의 혁명』은 그 평가의 시작으로서 필요한 책이 될 것입니다.

 

목차

프롤로그
혁명가, 혹은 대역원흉

제1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의 총성
‘대행사(大行事)’의 그날
김재규와 김계원·차지철
궁정동의 ‘그때 그 여인들’
오후 6시 5분, 대통령 도착
정승화·김정섭 도착
김재규의 ‘최후통고’
준비 완료
“버러지 같은……” 그리고 총성
마지막 확인사살
“나는 한다면 합니다”
남산이냐, 육본이냐?
대통령, 병원으로 옮겨지다
육본 벙커에서의 김재규
국군서울지구병원의 정중동
김재규의 ‘혁명 계획’
27일 새벽 4시, 김재규의 체포
체포된 관련자들

제2부 그는 왜 대통령을 살해했나?
‘원흉’과 ‘의사’의 사이
‘나름의 논리’ 가진 두 견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중용
언제부터 ‘거사’를 준비했나?
김재규의 ‘이상한 울타리’
김재규 부장, 온건노선 걸어?
거듭된 간언, 채택되지 않아
‘순리적 해결’에의 꿈 버리다
구국여성봉사단의 비위 파헤쳐

제3부 재판정의 최후진술
‘정치재판’이냐, 아니냐?
김재규의 좌우명,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
“내가 반체제의 두목”
‘역사적 사건’의 ‘역사적 심판’
검찰·변호인단의 치열한 공방
‘재정신청’으로 휴정
휴정-속개-휴정-속개
검찰관 발언의 파문
김재규, 자신 있게 진술
토요일 밤까지 재판 ‘강행’
“검찰관은 계엄사령관 뜻 아나?”
김재규, 사선변호인 변론 거부
김재규는 왜 변호인을 거부했나
재판정에서의 김재규와 부하들
‘그때 그 여인들’ 증언대에
김재규의 1심 최후진술
“가족면회를 한 번도 못했다”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됐는가?
항소심, 3일 만에 결심
김재규의 2심 최후진술
대법원, 8대 6으로 상고 기각

제4부 김재규, 그는 누구인가
고집 센 아이
일본군 특별간부후보생이 되다
육사 2기를 14등으로 졸업
‘면관’됐다가 복직
순천 유지의 딸과 결혼
‘스승’ 이종찬 장군
5·16 이후 ‘출세’ 가도 달려
6·3항쟁 때 계엄군 지휘
보안사령관·3군단장 역임
‘운명’의 중앙정보부장 취임
예의 바르고 정중해
저돌적이고 무능한(?) 사람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
그의 부하들
‘김재규의 부정’은 사실인가?
외동딸 결혼식에도 불참
그는 과연 청렴했는가?
‘내연’의 처와 친자 설
‘강한’ 어머니의 영향
감옥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불교에 정진하다
“사나이가 하는 일은 한 가지뿐”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 강조
마지막까지 의연했던 ‘장군 김재규’
역사라는 ‘제4심’은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김재규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김대곤
저자 김대곤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서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에 입사, 20여 년 동안 『신동아』 부장, 『주간동아』 부장, 편집위원 등으로 근무했다.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춘추관 관장,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우석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와 원광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책 속으로

궁정동에 도착한 시간은 4시 30분경. 박흥주는 김재규의 이발 준비를 했다. 며칠 동안 너무 바빠 이발을 계속 미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재규는 이발을 않겠다고 했다.
“각하가 일찍 나오시면 곤란하니 내일 이발하도록 하지.”
2층 집무실에 들어온 김재규는 금고에서 권총을 끄집어냈다. 독일제 7연발의 32구경 발터PPK(총번 159270)였다. 그는 작동을 시험해보고 실탄을 장전했다. 그리고 꺼내기 쉽게 서가 뒤에 감춰 두었다. --- p.17

3군단장 김재규는 유신헌법을 발표하는 박 대통령의 표정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이제는 틀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장기집권의 의도를 가진 것이 확실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그에게 유신헌법은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친척들에게 이런 말도 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박 대통령이 너무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저런 사람이 국가를 다스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국가의 지도자는 마음이 너그러워야 되는데, 어떻게 저렇게 편협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 p.68

그녀가 이렇게 강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나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김재규의 언동으로 보아 결코 사적 차원에서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 ‘믿음’에 대한 근거가 많지만, 그 중 하나의 예로 그녀는 그가 정보부장에 취임했을 때의 얘기를 든다.
“오빠는 그때 아버지와 형제들을 만난 자리에서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 얘기를 했대요. 그러면서 ‘그 자리에 가기는 하지만 하늘의 명에 따라 하겠다. 하늘의 뜻에 순응하지 않는 권력은 따르지 않겠다’고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10·26사건의 뉴스를 듣고도 오빠가 일시적 흥분이나 사욕에서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 p.91

“거사 한 달 전쯤인가, 나는 그와 함께 일본 사극 비디오를 같이 본 적이 있다. 제목은 잊었는데,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극화한 NHK의 인기 드라마였다. 일본의 전국시대 얘기인데, 일본을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한 아케치 미쓰히데의 얘기였다. 아케치는 오다를 살해한 사흘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에게 대패하는데, 패잔병들 사이에 끼어 가다가 죽창에 찔려 죽으면서 한 말이 ‘내가 폭군을 없앴는데, 왜 민중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가’였다. 그것을 보고 있던 그는 ‘한마디로 작가가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 p.196
--- p.196
 

출판사 리뷰

출간되자마자 금서로 지정된
최초의 김재규 르포, 드디어 부활


1980년대 초중반, 당시 월간 『신동아』 기자였던 김대곤은 김재규 사건을 접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10?26사건은 일반적으로 주류 언론에서의 보도에 따라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대통령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에 대한 시기심으로 ‘욱해서’ 저지른 우발적이고 권력 암투적인 사건이었다고만 여겨졌던 때였습니다. 김재규가 너무도 단순하게 ‘천하의 몹쓸 놈’으로만 취급되고 있던 시절이었고, 그때 만들어진 그러한 선입견은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곤이 취재한 김재규의 모습은 그를 단순히 정의 내려선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그의 집에서 나온 ‘자유민주주의’, ‘민주 인권 자유 평등’, ‘비리법권천’ 등의 붓글씨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김재규에 관한 무수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985년에 단순히 ‘감정에 치우친 살해범’이 아닌 ‘민주주의자’로서의 김재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책 『10?26과 김재규』를 펴냅니다. 그러나 책은 전두환 정권의 압력과 함께 나오자마자 금서가 됩니다.

원고지 80매 분량의 추가 원고 발굴
인간 김재규를 이해하는 열쇠


『10?26과 김재규』는 금서가 됐지만 단속을 피해 암암리에 계속적으로 판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김재규와 10?26사건을 다루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참고 레퍼런스가 되었습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2005년에 『김재규 X-파일』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간이 되었습니다만, 이내 절판됐습니다. 본서 『김재규의 혁명』은 그 개정판으로서 만들어졌습니다.

개정판으로서 『김재규의 혁명』은 『10?26과 김재규』와 『김재규 X-파일』을 함께 비교 대조하며 원고를 구성하고, 그동안 새롭게 확인된 사실과 자료 들을 적용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전반적인 조정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새롭게 편집 틀을 잡고 50여 개의 각주를 달았으며 저자가 본래 의도했으나 독재 정권 상황에서 할 수 없었던 표현적인 면에서의 직접적인 문장 기술도 이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원고지 약 80매 분량의 새로운 원고를 발굴하여 추가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새롭게 추가된 원고는 김재규의 인간적인 면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어서 여전히 정보가 부족한 ‘인간 김재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