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계국가의 이해 (책소개)/1.독일역사와 문화

베를린 포츠담 (2019)

동방박사님 2023. 7.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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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베를린에는 좋은 것들이 두 배로 존재한다

유독 베를린에는 문화적인 명소들이 두 군데 이상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주력 오페라극장만 세 군데이며, 도시를 대표할 만한 대형 도서관과 커다란 공원도 두 군데가 있다. 다른 도시라면 하나만 있어도 놀라울 정도인 박물관 밀집 지역도 베를린에는 두 군데가 존재한다. 베를린이 이렇게 두 배로 풍요로운 도시가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분단이었다. 도시가 두 개로 쪼개지면서 기존의 문화 시설들이 동베를린 혹은 서베를린 중 한쪽에만 속하게 되었고, 분단된 두 도시는 그렇게 상대 진영에게 빼앗긴(?) 시설을 메꾸기 위해 새로 문화 인프라를 확장시켰던 것이다. 그러다 통일이 되면서 동서 베를린에 하나씩 존재하던 대표 문화 기관들이 다시 하나의 베를린으로 모였다. 그래서 베를린에는 멋진 문화 기관들이 두 배로 풍요롭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듯 2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인한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는 현재의 베를린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격동의 20세기를 잊지 않기 위한 수많은 기념물들 역시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전위적인 유대인 박물관, 폭격으로 부서진 옛 건물을 일부러 그대로 놔두고 그 옆에 현대적으로 지은 교회, 단 하나의 조각상만 두고 건물 전체를 비워 놓은 전몰장병 추모소, 베를린 장벽의 잔해 위에 그려 놓은 거리 미술들만 담아 놓은 미술관 등, 베를린에는 비극적인 역사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승화시킨 장소들이 유독 많다. 그래서 베를린은 조금 더 많은 침묵 속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풍월당의 『베를린』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독특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는 베를린의 사회적 배경을 간략히 안내하고, 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소설이나 영화 등 다양한 작품들도 함께 소개함으로써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작지만 개성적인 상점들을 소개하는‘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시리즈만의 개성은 『베를린』에서도 그대로 발휘된다. 골목에 숨겨진 작은 카페부터 도시를 둘러싼 역사의 흐름까지 알차게 수록한 『베를린』과 함께라면 누구보다도 이 도시를 알차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예술의 도시

이제 일어서는 새로운 유럽의 수도
과거에서 현재까지 베를린의 변천
동베를린(동백림) 사건
새로운 예술의 도시
철의 나라 프로이센, 겸손과 검소의 도시 베를린
베를린을 여행하기
베를린에 가기 전에 봐두면 좋은 10편의 영화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

브란덴부르크 문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나치 희생자 추모비들
연방의회 의사당, 라이히슈타크
의사당 옆의 세 건물
파리 광장
브란덴부르크 문 박물관
DZ 은행, 악시카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아들론 호텔
운터 덴 린덴 지역
운터 덴 린덴
코미셰 오페라극장
러시아 대사관 (구소련 대사관)
카페 아인슈타인
프리드리히 대왕 기마상
베를린 주립 도서관
훔볼트 대학교
인물 ‘빌헬름 및 알렉산더 훔볼트 형제’
노이에 바헤
막심 고리키 극장
독일 역사 박물관
베벨 광장
베를린 분서 사건과 분서 사건 기념비
도이체 방크 쿤스트할레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성 헤드비히 대성당
호텔 드 롬
훔볼트 대학 도서관
프리드리히스베르더 교회
인물 ‘카를 프리드리히 쉰켈’
쉰켈 파빌리온
피에르 불레즈 잘
인물 ‘다니엘 바렌보임’
슐로스 다리

박물관 섬

박물관 섬, 무제움 인셀
제임스 지몬 갤러리 및 고고학 산책로
인물 ‘제임스 지몬’
페르가몬 박물관
페르가몬 파노라마
알테스 무제움, 구 박물관
노이에스 무제음, 신 박물관
구 국립 미술관, 알테 나치오날 갈레리
보데 박물관
베를린 돔
훔볼트 포룸, 구 베를린 궁전

알렉산더 광장 부근

마르크스 엥겔스 포룸
DDR 박물관
오스탈기
암펠만
알렉산더 광장
소설 알프레트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베를린 TV 송신탑, 페른세투름
영화 「굿바이 레닌」
발터 쾨니히 서점
하케셰 회페
하우스 슈바르첸베르크
아우구스트 슈트라세
폭스뷔네, 인민 극장
붉은 시청
성모 교회
루터 동상
카를 마르크스 알레
카를 마르크스 서점
카페 지빌레
영화 「타인의 삶」
니콜라이 지구
니콜라이 교회
칠레 미술관
에프라임 궁전
구 시청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콜비츠 광장
카페 안나 블루메
세인트 조지 영어책방
뵈즈너
에른스트 탤만 공원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공원 및 기념관
화해의 교회
화해의 예배당
조각상 「화해」
문화 양조장
보난자
오첼로트
프라터 가르텐
도로텐슈타트 묘지
인발리덴 묘지
함부르크역 미술관, 함부르거 반호프
베를린 중앙역
콘디토라이 부흐발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남쪽 지역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콰르티어 207, 206, 205
젠다르멘 마르크트
실러 기념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프랑스 돔
독일 돔
파스벤더 운트 라우슈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
리젠트 호텔
멘델스존 하우스
찰리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
페터 페히터 추모비
찰리 검문소 박물관
트라비 박물관
트라반트
공포의 지형학 박물관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
유대인 박물관
베를리니셰 갈레리
모둘러
베르크하우스
저스트 뮤직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북쪽 지역

두스만
프리드리히 슈트라세역 및 트래넨팔라스트
소설 크리스타 볼프 『나누어진 하늘』
베를린 앙상블
베르톨트 브레히트 광장 및 기념비
인물 ‘베르톨트 브레히트’
희곡 베르톨트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도이체 극장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
보로스 미술관

포츠담 광장 부근

포츠담 광장
인물 ‘베를린에서 만나는 현대건축가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베를린 영화 박물관
다임러 현대미술관
하우스 후트
베를린 국제 영화제
라이프치히 광장
달리 미술관
독일 스파이 박물관
쿨투르포룸 부근
쿨투르포룸
국립 회화관
신 국립 미술관
장식미술 박물관
동판화 박물관
필하모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인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악기 박물관
성 마테우스 교회
베를린 미술 도서관
주립 도서관
독일 저항 기념관
바우하우스 박물관,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쿠담 지역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쿠담, 쿠어퓌르스텐담
라인하르츠
문학의 집과 그 안의 카페 빈터가르텐
케테 콜비츠 미술관
인물 ‘케테 콜비츠’
초콜라티어 에리히 하만
C/O 베를린, 아메리카 하우스
사진 박물관 및 헬뮤트 뉴튼 재단
인물 ‘헬무트 뉴튼’
사비니 광장
빌리 브란트 하우스
카페엠 본사
베를린 동물원
가스등 야외 박물관
티어가르텐
전승기념탑, 지게스조일레
카페 암 노이엔 제
다스 스투에 호텔
조각대로, 타우엔치엔 슈트라세
카데베, 카우프하우스 데스 베스텐스
카페 아인슈타인 본점
로자 룩셈부르크 기념비 및 로자 룩셈부르크 다리
인물 ‘로자 룩셈부르크’
어반 네이션

샤를로텐부르크 지역

베를린 도이체 오페라극장
로가츠키
샤를로텐부르크 빌머스도르프 미술관, 빌라 오펜하임
브로트가르텐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베르그루엔 미술관
인물 ‘하인츠 베르그루엔’
샤르프 게르스텐베르크 미술관
브뢰안 미술관
슈투벤라우흐 슈트라세 묘지
게오르크 콜베 미술관
올림피아파크
발트뷔네
브뤼케 미술관

트렙토어 지역

오버바움 다리
분자 인간
트렙토어 공원
베를린 모더니즘 주택단지

포츠담

포츠담
상수시 궁전
인물 ‘프리드리히 대왕’
체칠리엔호프 궁전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슈트라세
카르슈타트, 슈타트팔레
성 페터와 파울 교회
부에나 비다 커피 클럽
네덜란드 구역
얀 보우만 하우스
라 메종 드 쇼콜라
카페 구암
포츠담 도시 궁전
포츠담 영화 박물관
성 니콜라이 교회
플럭서스 플러스 미술관
글리니커 다리 및 글리니커 호수
영화 「스파이 브릿지」

부록

베를린의 호텔
베를린의 카페 및 식당
가는 방법
베를린 추천 투어 코스

저자 소개

저 : 박종호 (朴鐘澔)
 
풍월당 대표, 오페라 평론가, 문화 예술 칼럼니스트, 정신과 전문의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신은 품격 있는 교양인이자 균형 잡힌 경계인이 되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고 관찰하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정작 필요한 사람은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가진 관찰자라고 생각하는 그는, 보고 듣고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쓰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면 어....

책 속으로

베를린 사람들은 화려한 옷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의 무채색의 옷을 입는다. 그들은 짙은 색이나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는 것을 겸손과 검소라고 생각하며, 화려한 색상이나 유명한 브랜드나 값진 보석으로 치장한 사람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다. 존경은커녕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있을지 모른다. “베를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색의 옷은 두 가지 뿐인데, 바로 스키복과 수영복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에 가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턱시도를 입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해지고 무릎이 나온 코르덴 바지를 입은 신사가 진지하게 공연에 몰두한다. 누구도 남의 옷이나 자신의 옷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공연의 본질만을 추구한다. 베를리너(베를린 사람)들의 검소한 옷차림은 멋 내기 좋아하는 뮌헨과는 많이 다르다. 같은 독일이지만, 프로이센과 바이에른의 기질 차이일 것이다.
--- p.30쪽

당신은 말문을 잃고 멍해질 것이다. 이 건물은 1931년부터 ‘국립 전몰자 추모관’이 되었다. 즉 이제는 ‘전쟁의 승리를 찬미하는 곳’이 아니라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기원하는 기념관’이 된 것이다. 이 건물은 통일 이후에 ‘잔학행위 및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위한 독일연방공화국 기념관’으로 다시 명명되었다. 내부의 모든 물건들을 들어내고 텅 비운 공간에는 헬무트 콜 총리의 제안으로 단 하나의 조각만을 남겼다.

가운데에는 늙은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남자를 끌어안고 있다. 마른 남자는 힘없이 늘어져 있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각은 흔히 ‘피에타pieta’라고 부른다. 즉 어머니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끌어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장성한 아들의 주검을 끌어안은 마리아. 유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상이다. 그러나 죽은 아들을 안고 우는 이가 어찌 성모뿐일까? 양차 대전을 겪은 독일에서는 수백만 명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안고 울었으며, 더 많은 어머니가 아들의 시신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여생을 마쳤다. 그런데 그런 수백만 명을 기려야 할 공간에 쓰러져 있는 이는 한 명뿐이다. 하지만 아들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모습은 수만 개의 기념비보다도 더 강렬하게 호소해온다.
--- p.71

나는 유럽의 주요 도시를 방문할 때면 자주 묘지를 찾는다. 묘지에 가면 그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있고 그들을 만날 수도 있다. 여행이란 결국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이 세운 공간이 도시다. 어떤 도시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어떤 도시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그의 의도와 사상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묘지는 나에게 흥미로운 공간이자 사당祠堂이며 학교다. 나는 묘지에서 내 인생과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 p.164

유럽을 여행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들 중 하나는 거대한 역사驛舍들이었다. 유럽 주요 도시의 철도역들은 크기도 하지만 무척 공들여 지어져서 해당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역들도 시대가 변하면 용도가 바뀌기도 한다. 특히 도시가 팽창하면 기차역도 팽창한 도시의 새 외곽으로 이동한다. 이럴 경우 기존에 역으로 사용하던 역사적인 건물이 시내에 그냥 남게 된다. 그럴 때는 용도를 변경함으로써 건물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파리의 오르세역이 훌륭한 미술관이 된 사례는 유명하고, 바덴바덴역은 세계적인 공연장이 되었다. 그런 그들의 건물들을 볼 때마다 과거의 건물들을 개발논리에 따라 없애버린 우리를 돌이켜보게 된다.

베를린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베를린 중앙역의 건너편에 낡은 역사가 있었다. 과거 함부르크로 떠나는 열차가 출발하여 함부르크 철도역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하지만 철도가 중앙역으로 통합되면서 여기는 더 이상 역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1996년에 현대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미술관임에도 과거의 역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곳은 지금 베를린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 중 하나다.
--- p.167

나는 이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새로 알게 되었다. 영화나 책에서 무수히 보아온 그들의 비극이지만, 어쩌면 나는 그 비극을 그저 ‘사실’로만 받아들였을 뿐, 진정으로 깊은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실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 복도 저 복도를 다니면서 창피해서 눈물을 감추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방문객들이 다들 훌쩍거리면서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로 샤워를 한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티타늄 벽에 반사되는 햇살이 겨우 눈물이 마른 눈을 때린다. 왜 이곳에 꼭 가봐야 한다고 그가 말했는지 알게 되었다. 유대인이 얼마나 많이 죽었고 독일인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여기 오는 게 아니다. 이곳은 나 자신을 치유해주는 곳이었다. 한낱 먼지 같은 목숨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곳만큼 강렬하게 말해주는 곳도 흔치 않았다.
--- p.204

이 교회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선친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어서 이름이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다. 1895년에 헌당되었으니 그리 오래된 곳은 아니다. 2차 대전 때 영국 폭격기는 교회를 심각하게 파괴했다. 종탑은 반파되었고, 예배당은 쓸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서베를린시는 교회를 재건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부서진 종탑을 그대로 둔 채 새 건물을 세우자는 에곤 아이어만의 방안이 채택되었다. 즉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자신들의 신전을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이다.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폐허를 보존하기로 한 결정은 획기적인 용단이었다. 스스로 전쟁의 원흉임을 자인하고 자손만대에 다시는 이런 일을 일으키지 말라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아이어만은 원래 있던 교회 옆에 마치 부상자를 부축하는 건장한 위생병 같은 튼튼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올렸다. 새 교회의 벽면은 작은 입방형의 푸른색 유리 수만 개를 이용하여 만들어졌고, 새 종탑은 부서진 종탑보다 조금 낮은 키에서 멈추었다. 둘은 다정하게 서 있다. 이렇게 독특하고 의미가 깊은 교회, 반전反戰의 정신을 기리는 교회가 1963년에 완성되었다.
--- p.271
 

출판사 리뷰

유럽을 이끌어가는 도시, 그러나 방문객을 산책과 사색으로 이끄는 곳, 베를린

보통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려 한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나 만년설로 덮인 산처럼, 보는 사람을 압도시키는 자연의 풍광이 대표적인 예다. 도시를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신기하고 거대한 형태를 지닌 건물들과 화려하게 꾸며진 거리가 랜드마크로 각인되어 있고, 많은 여행객들은 그 유명한 장소들을 찾아 나서곤 한다. 보자마자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는 랜드마크는 그처럼 쉽고 매혹적이다. 하지만 가끔은, 혹은 어떤 여행자들은 오래 걷고 오래 생각할 수 있는 도시를 원하기도 한다. 혼자 또는 둘이서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나 일본의 중소 도시를 찾아가는 경우가 그렇다. 그렇다면 유럽에서는 어디가 좋을까? 여행 인프라가 잘 갖춰질 정도로 규모가 크면서도 화려하거나 요란하지도 않은 도시는 어디일까? 그중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다.

베를린에는 좋은 것들이 두 배로 존재한다

유독 베를린에는 문화적인 명소들이 두 군데 이상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주력 오페라극장은 세 군데이며, 도시를 대표할 만한 대형 도서관과 커다란 공원도 두 군데가 있다. 다른 도시라면 하나만 있어도 놀라울 정도인 박물관 밀집 지역도 두 군데가 존재한다. 베를린이 이렇게 두 배로 풍요로운 도시가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분단이었다. 도시가 두 개로 쪼개지면서 기존의 문화 시설들이 동베를린 혹은 서베를린 중 한쪽에만 속하게 되었고, 분단된 두 도시는 그렇게 상대 진영에게 빼앗긴(?) 시설을 메꾸기 위해 새로 문화 인프라를 확장시켰던 것이다. 그러다 통일이 되면서 동서 베를린에 하나씩 존재하던 대표 문화 기관들이 다시 하나의 베를린으로 모였다. 그래서 베를린에는 멋진 문화 기관들이 두 배로 풍요롭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듯 2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인한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는 현재의 베를린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격동의 20세기를 잊지 않기 위한 수많은 기념물들 역시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전위적인 유대인 박물관, 폭격으로 부서진 옛 건물을 일부러 그대로 놔두고 그 옆에 현대적으로 지은 교회, 단 하나의 조각상만 두고 건물 전체를 비워 놓은 전몰장병 추모소, 베를린 장벽의 잔해 위에 그려 놓은 거리 미술들만 담아 놓은 미술관 등, 베를린에는 비극적인 역사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승화시킨 장소들이 유독 많다. 그래서 베를린은 조금 더 많은 침묵 속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격동의 역사와 번영하는 현재를 동시에 만난다

이렇듯 아픈 역사를 추념하는 장소가 유독 많은 베를린이지만, 현재 유럽을 선도하는 독일의 수도인 이 도시는 세계를 대표하는 현대건축가들의 작업이 집약된 장소이기도 하다. 분단으로 인해 황폐해졌던 포츠담 광장의 공터는 유명 건축가들이 각자의 양식을 뽐내며 지어진 빌딩으로 가득하며, 전쟁 때 파괴되었던 건물들 역시 미래를 선도하는 진보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그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필하모니’일 것이다). 특히 동베를린에 해당했던 지역들은 공산주의 시절의 흔적과 새로 개발된 건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풍월당의 『베를린』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독특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는 베를린의 사회적 배경을 간략히 안내하고, 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소설이나 영화 등 다양한 작품들도 함께 소개함으로써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작고 즐거운 가게들까지

또한 작지만 개성적인 상점들을 소개하는‘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시리즈만의 개성은 『베를린』에서도 그대로 발휘된다. 많은 관광객들이 다국적 브랜드 매장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쿠담 거리의 경우, 이 책은 그 번화한 거리가 아니라 바로 뒤에 있는 골목들을 소개한다. 작은 길가에 숨어 있는 개성적인 서점, 문구용품점, 카페, 식당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록에서는 경제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숙소 및 베를린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작은 동네 식당까지 꼼꼼히 수록했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부터 도시를 둘러싼 역사의 흐름까지 수록한 『베를린』과 함께라면 누구보다도 이 도시를 알차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