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대한민국사 이해 (독서)/1.해방전후사

일제에 맞선 페미니스트 - 억압과 멸시, 굴종에서 벗어나 해방을 꿈꾼 여성들 (2023)

동방박사님 2023. 12. 2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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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봄날 햇살처럼 일제에 맞선 페미니스트들


이 책은 일제의 억압과 멸시에 맞서 해방을 꿈꾼 우봉운, 김명시, 조원숙, 강정희, 이경희, 이계순, 이경순 등 일곱 명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여성을 주제로 여성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역사학자 이임하는 일제 강점기 페미니스트들의 삶과 남긴 글을 통해 어떻게 일제에 맞서 저항했고, 여성들의 삶을 바꾸려고 했는지 생생하게 알려준다.

이 책에 담긴 여성들은 지금까지 역사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들이다. 김명시 정도가 한 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으로 2022년에 독립운동 업적을 겨우 인정받았고, 우봉운은 불교여자청년회 관련한 연구의 일부로 알려졌을 뿐이다. 저자는 해방공간에 한 편의 글이라도 남아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잡지나 신문에 실린 이들의 글을 한 편 두 편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이 글들을 통해 이들의 일제 강점기 활동을 추적해갔다. 해방공간에서 시작해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 연구를 통해 이들의 봄날 햇살처럼 따스하고 찬란한 아름다운 실천을 복원해서 책에 담을 수 있었다.

목차

머리말: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봄날 햇살처럼 아름다운 역사

1. 우봉운(禹鳳雲, 1893~?) : 억압과 멸시와 굴종에서 단연히 튀어 나오라!

‘죽기를 기하고 통일 독립 위해 나가겠다’
나의 청춘, 명동학교
블라디보스토크 삼일여학교와 철혈광복단
최초, 불교여자청년회의 조직
활발한 사회운동과 ‘돌봄’운동
‘실천적 진출과 맹렬한 이론을 세워 대항하라’
근우회, 여성 개인의 의식적 동원
1931년 근우회 해소, 여성운동 침체기 아닌 새 기축의 시작점
가난에도 굴하지 않고
독신 여성 아파트
기개와 뜨거운 동지애
수백 통의 연애편지 그리고 결혼
남편의 부재와 따뜻한 어머니

2. 김명시(金命時, 1907~1949) : 동아시아를 무대로 일제에 총을 겨눈 투사

조선 잔 다르크의 귀환과 경찰서에서의 ‘자살’(?)
육군 방첩대(CIC)에 체포된 김명시
해방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
남녀 역할이 따로 없다─조선부녀총동맹 중앙집행위원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입학과 중퇴
트랜스내셔널 반제운동가
7년간 감옥살이
김명시의 기개, 재판정에서의 싸움
만기 출옥 후, 조선의용군을 찾아가다
어머니와 항일운동가 집안

3. 조원숙(趙元淑, 1906~?) : 새 세대는 새 사람들의 것이오

가장 통쾌했던 일─교군 타고 도망 올 때
조선여자교육협회 순회연극무용단
‘현모양처주의’ 배격─단발하기
중앙여자청년동맹, 여성운동자의 단결
한양청년연맹과 국제청년기념일?
여성해방을 꿈꾸다
여성해방을 현재화한 근우회
잦은 검거에도 꿋꿋하게
고문 경관 고소 사건의 증인 출석
상해에서 돌아와서
해방, 새 세대는 새 사람들의 것
두 편의 글, 지도자론
굴곡진 역사 앞에서

4. 강정희(姜貞熙, 1905~?) : 고국이 그리워서 찾아오다

조선에 온 아끄니아
청년단체 활동─강연
중앙여자청년동맹과 근우회
독서회 사건
경성지방법원에서의 모욕적 심문
여급도 직업 부인인가
해방과 번역가로 활동

5. 이경희(李瓊姬, 1907~?) : 나는 여성운동에 취미를 가지고 있다

이경희와 권태휘가 만든 가정 1─‘주의에 공명하며’
이경희와 권태휘가 만든 가정 2─‘투사로 만들렵니다’
여성운동이 취미
근우회 경성지회 일꾼
여성해방이란

6. 이계순(李桂順, 1910~?) : 부녀 대중의 완전한 해방 없이는 참된 민주주의 건설 없다

『자본론』을 보내주시오
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책 읽기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조선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
경성지방법원에 1360원 청구
조선부녀총동맹 총무부장
부녀 대중의 완전한 해방 없이는 참된 민주주의 건설은 없다

7. 이경선(李桂順, 1914~?) : 여성의 참가 없이 전 민족 해방의 완성은 어렵다

조선 여성에게 호소함
조선부녀총동맹 선전부 위원, 뛰어난 웅변가
제주도로 돌아오다
미래의 로자 룩셈부르크라 불리다
독서회 지도와 반제동맹
조선공산당재건동맹─혁명적 노동조합의 조직
구금 생활 2년 만에 서대문형무소를 나와서

 

저자 소개 

저 : 이임하
 
현재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 교수다. 한국 전쟁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으며 언제나 여성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고민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전염병 전쟁』, 『조선의 페미니스트』,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 『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

책 속으로

일제는 여성운동가, 즉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어떤 틈도 주지 않았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아시아를 장악하려 더 큰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우회의 여성들, 즉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이 ‘전쟁 반대’를 외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으리라. 따라서 이들의 손과 발을 모두 묶어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 본문 중에서

우봉운은 1931년 여성운동이 새로운 방향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그 사례로 1930년에 일어난 평양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쟁의를 들었다. 그해 8월 8일 대동고무와 평안고무를 비롯한 평양의 10여 개 고무공장 1800여 명은 일제히 공장 문을 나왔다. 1년에 500만 족을 생산하고 중국에까지 판권을 가진 평양의 가장 중요 산업인 고무공장의 기계가 멈춰 섰다. 파업은 20여 일 동안 지속되었다.
--- 본문 중에서

김명시는 반제운동, 즉 항일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이가 조직한 반제국주의 단체는 민족, 종족, 인종을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운동가’였다. 김명시의 반제운동은 대만인, 베트남인, 필리핀인 누구라도 반제운동을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할 수 있는 모임을 꾀한 것이다. 그녀는 반제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기꺼이 참석하고 중심에서 활동했다. 그곳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면 족했다. 그녀의 반제운동은 언제나 ‘항일’을 향했다. 반제운동이 곧 독립운동과 연결되었다. 그 길이 조선의 독립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이라 믿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조원숙은 “그러나 ‘남자가 되었으면’이라는 말은 이 제도 밑에서 하는 말이지 우리 이상대로 제도가 고쳐진다면 사람으로서 성(性)의 구별이 없을 것이요, 다만 그 인격, 능률 여하에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이는 이러한 제도와 규칙을 뜯어고치기 위해 직접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 본문 중에서

그이는 ‘여급도 직업 부인이다’라고 결론 내린다. “직업이란 사람이 그 생활 자료를 획득하기 위하여 행하는 경제적 활동이다.”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직업은 신성하다.”라는 명제에 반격을 가한다. 이는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정희는 여급은 신성하지 않다는 여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 본문 중에서

이경희는 먼저 해방은 여성해방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여성해방은 다른 이들의 도움이 아닌 여성 스스로 일어서서 행해야 하는 것이다. 즉 능동적 여성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렇게 활동하는 여성의 힘은 국가의 문화와 사회 진전 그리고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데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결된 여성의 적극적 참여가 모든 부분에서 여성해방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 본문 중에서

이계순은 “부녀 대중의 완전한 해방이 없이는 참된 민주주의 건설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부녀 대중을 봉건적 인습에 억매어두고 그들의 자유와 생명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곳에 민주주의란 참말 도깨비의 장난”이라며, 진정한 민주주의국가 건설에서의 남녀동등권 법령의 실시는 토지개혁법과 노동법의 실시와 같은 의의를 갖는다고 했다.
--- 본문 중에서

「조선 여성에게 호소함」에서 이경선은 여성들에게 무조건 ‘부엌에서 나오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여성 억압 체제의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말하고, 부엌에서 나오는 것이 여성이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제안했다. 이론가이면서 활동가였던 이경선은 풍부한 역사 지식과 맥락을 들어 설득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봉운은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20대에 북간도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했다. 30대에 조선으로 돌아와 불교여자청년회, 선학원 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경성여자청년동맹, 근우회, 정우회, 북풍회 등에서 활동했다.

김명시의 활동 무대는 아시아다. 김명시의 ‘반제국주의운동’은 조선에 한정되지 않았다. 반제운동을 할 수 있다면 상해에서 하얼빈까지 걸어서 찾아가 조직할 만큼 열정이 남달랐다.

조원숙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 청년단체의 핵심 인물이었다. 전국 단위의 청년단체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 청년단체, 여성단체를 조직한 핵심 인물이었다. 근우회와 조선부녀총동맹(부총)의 맹장이었던 그이는 말년에 ‘간첩’으로 몰려 형무소에서 지내야만 했다.

강정희는 재러 한인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이 너무 그리워서 가족을 두고 조선에 왔다. 경성청년회, 북풍회, 경성여자청년회, 여성동우회, 중앙여자청년동맹, 근우회 등의 단체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이경희는 남편과 함께 청년운동, 사회운동, 독립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가족과 가족 구성원을 고민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성운동이 ‘취미’라고 밝힌 그이는 경성여자청년회, 근우회 경성지회의 창립과 활동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이계순은 대구 출신으로 여성단체에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그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대구사범학교 출신으로 대구에서 여성운동을 시작했으며 근우회 중앙본부에서 일했다.

이경선은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지만 곧장 자퇴하고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독서회, 반제동맹 활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동안 구금 생활을 했다. 그이는 해방은 여성에게 자유와 기회의 시공간이라며 거리로의 진출을 여성들에게 주문했다.